Hellic – Abandoned Planet #4
2012년 1월 24일 by 김 승엽Tw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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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llic - Abandoned Plane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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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헬릭은 한낮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지난 밤, 그다지 과음을 하진 않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머리가 깨질 듯 아파, 눈 안쪽에서도 통증이 느껴졌다.
“제나가 가져온 포도주 맛이 조금 이상하긴 했는데……”
헬릭이 캡슐을 열고 머리에 손을 얹은 채,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을 때 레베카가 캡슐 옆에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비상 탈출 장치에 부착되어 있던 커다란 낙하산 모듈을 꺼내든 채 헬릭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숙취로 인한 두통이군!”
헬릭이 고개를 끄덕이자 레베카가 컨테이너 안을 가리켰다.
“들어가봐. 안에 숙취로머리를 쥐어짜는 인간이 또 하나 있으니까.”
레베카는 이렇게 말하고는 묘한 웃음을 띠었다. 헬릭이 일어나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자 레베카의 말대로 제나가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진통제 같은 거 있어?”
헬릭의 물음에 제나가 손을 내저었다. 짐작은 했지만 이 두통이 가실때까지 참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헬릭은 제나 앞에 비스듬히 놓인 다른 의자에 앉아 말했다.
“아무래도 어제 그 포도주가 이상했던 것 같아. 따온 포도로 만들었을 거라고 짐작은 하지만 대체 어떻게 만든 거야?”
“실컷 마셔놓고 딴 소리하는 거야!직접 만든 술인데도 제대로 취하게 해줬잖아. 그랬으면 됐지 뭘 더 바라는 거야! 덕분에 이런 숙취도 느껴보잖아.”
“그래! 확실히 취하긴 했지.”
헬릭이 이렇게 말하며 어이없다는 듯 웃자, 제나가 따라 웃더니 머리가 온통 헝클어진 채로 고개를 들고 말했다.
“어제 내가 한 말 기억해?”
제나의 물음에 헬릭이 어떤 말을 의미하는지 몰라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네 소원을 들어 주겠다는 말.”
“아! 그거 말이군. 그래 기억하고 있는데 왜?”
헬릭의 대답에 제나가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왜긴 들어주려고 그러는 거지. 물론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제나의 말에 헬릭은 집중하지 못하고 귀찮다는 듯 이렇게 내뱉었다. 다만, 어젯밤 자신이 제나의 말을 다른 의미로 오해했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속으론 잠시 안도했다.
‘어젯밤 그녀를 따라 들어갔더라면 큰일 날 뻔 했군.’
헬릭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제나가 다시 말했다.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소원 아냐?”
그 말에 헬릭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럼 빠져 나갈 방법을 알고 있다는 거야?”
“이제 제대로 알아 들었나 보군. 말했잖아 잘 될지는 모른다고.”
제나가 이렇게 말하고는 헬릭의 놀란 표정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느긋한표정의 제나와는 반대로 헬릭의 표정은 놀람과 원망이 섞인 묘한 것으로 변해있었다.
“방법이 있었으면서 왜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던 거지?”
헬릭의 표정이 바뀐 것을 알아 챈 제나가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왜 화를 내는 거지? 여기서지낸 지 얼마나 됐다고 내가 숨겼다고 하는 거야? 그리고, 레베카도 거의 수리 됐고, 네가 타고 온 비상 탈출 캡슐 덕에 가능성이 높아지긴 했지만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말을 안 했던 거지 숨긴 건 아니라고!”
흥분한 제나의 목소리에 헬릭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말대로였지만 처음에 그 가능성에 대해 귀띔이라도 해주었다면 연결되지 않는 통신장치를 붙들고 씨름할 필요도 없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녀를 추궁하거나 자극하는 것이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꾹 참았다.
“알겠어. 내가 오해 했군. 그런데 그 방법이 대체 뭐지?”
헬릭이 마음을 가라 앉히고 묻자, 제나가 의자를 끌고 문 앞에 가 앉은 뒤, 구름이 가득 덮인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늘을 잘 봐.”
헬릭은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번개가 수시로 번쩍이는 하늘은 바닥에 깔린 이끼와 함께 어울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왜 지상으로는 번개가 떨어지지 않을까?”
“그야 고도가 매우 높은 곳에서 발생하기 때문이겠지.”
헬릭이 대답하자 제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번개의 발생 빈도에 비해 들리는 천둥소리가 작긴 하지만 간혹 큰소리가 들리는데도 바닥에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잘 보라고 저 번개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한 점을 향하는 것 같지 않아?”
제나의 말에 헬릭이 번개가 치는 모양을 확인했지만, 제나의 말대로 한 점을 향하는 지는 알 수 없었다. 헬릭이 대답 없이 하늘을 주시하자 제나가 자신의 PDA를 꺼내 헬릭에게 내밀었다. 헬릭이 그것을 받아 화면을 확인했을때, 거기에는 흡사 성난 가시복어 같은 타원형 물체의 형상이 떠올라 있었다.
“생긴 것처럼 이름도 가시복어(Porcupinefish)야. 지상에 떨어지는 번개를 막기 위해 띄워 올린 비행선.”
제나의 말에 헬릭이 PDA를 조작해 다른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낙뢰를 흡수해 동력으로 활용하고 구름을 생성하는 기능에 대한 내용이 PDA에 나와 있었다.
“저 번개 구름은 우리가 갔던 사냥터 너머의 해양에서 생성되는 것 같은데 저렇게 빈틈없이 유지 된다는 건 그 비행선이 여전히 동작하고 있다는 말이겠지. 완벽하게는 아닌것 같지만.”
헬릭은 PDA를 내리고 다시 하늘을 살폈지만 구름 층이 두터워서 비행선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 PDA에 나온 것은 소형이고, 그 소형을 관리하는 대형 가시복어가 있어.”
헬릭이 하늘을 주시하는 동안 제나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보이지 않지만 번개의 형태를 보면 대강의 위치는 짐작할 수 있지. 한 동안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 컨테이너에서 자료들을 발견한 건가?”
헬릭이 PDA를 다시 제나에게 건네주며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곳이 저 가시복어와 토양 환경 조성용 차량을 관리하던 곳 같아. 가시복어는 직접 조종하거나 한 것 같진 않고 수리나 작동 상태를 파악하는 정도 같지만.”
제나의 말을 듣자 컨테이너와 비상식량의 존재에 대해 가졌던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저 가시복어란 비행선과 탈출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비행선에 대한 건 잘 알겠는데, 대체 어떻게 탈출 한다는 거지?”
헬릭의 물음에 제나가 머리를 쓸어 내리며 대답했다.
“내 생각에 가시복어가 정상 작동을 해서 단순히 공중에 떠 있는 피뢰침이 아니라 구름 내 전하의 방전을 적극적으로 유도한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통신 장치로도 위성과 통신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어떻게 정상 작동 시킨다는 거지. 어떤 고장이 났을지도 모르고, 더구나 위성과 통신도 안 되는데 번개 한가운데 떠 있는 비행선을 무슨 수로 조종한다는 건지 모르겠군.”
헬릭이 이렇게 대답하고는 의자에 돌아와 앉았다. 제나와의 대화로 두통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여기서 찾아 낸 자료에는 위성에서 가시복어로 보내는 통신 프로토콜에 대한 자료와 명령어들도 있어. 레베카가 분석한다면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거야. 문제는 어떻게 가시복어에 명령을 내리는가 하는 건데. 그 동안 내가 생각했던 건 명령어를 발신하는 비행선을 띄우는 거였어.
제나의 말에 헬릭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비행선을 만들 수 있다면 바로 통신위성에 연결해서 구조요청을 보내면 되지, 어째서 가시복어를 이용하려는 거지?”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럴 경우 회신을 받지 못해. 띄워 올린 비행선에 구조 신호나 음성을 저장해 그게 제대로 전달되기를 바랄 뿐이지. 그리고 네가 방금 전에 말한 대로 우리가 띄울 비행선이 구름 안에서 위성과 통신이 가능하다는 확신도 없고. 구름 안이긴 하지만 거리가 가까운 가시복어 쪽이 확률이 더 높지. 그리고 가시복어의 경우에는 최악의 상황에선 우리가 직접 가시복어를 타고 올라가 통신시도를 해볼 수도 있는 차선책이 가능해지지.”
제나의 대답에 헬릭이 관자놀이에 손을 가져갔다. 두통 때문에 그녀의 방법을 대신할 만한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두통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군! 그럼 비행선은 어떻게 만들 거지?”
“일단 너는 좀 쉬고 있어. 지금 얘기해도 소용 없을 것 같으니까. 난 레베카를 좀 보고 올 테니 이따 다시 이야기 하자고.”
제나는 이야기를 하면서 두통이 가시기라도 했는지 들어올 때 머리를 쥐어뜯고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고맙다는 말을 못했군.”
제나가 나가고 난 뒤, 헬릭은 낮게 중얼거렸다. 그녀가 자신에게 방법을 숨기고 있었다는 생각 때문에 줄곧 본심과는 다른 비관적인 물음만 던졌었지만, 그녀가 제시한 방법으로 한 가닥 희망이 생긴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헬릭은 잠을 더 자면 두통이 좀 가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등받이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어느 새 제나의 낙천적인 성격이 전염이라도 된 것일까? 탈출에 대한 가능성으로 흥분되었을 텐데도 술 때문에 숙면을 취하지 못했던 헬릭은 금세 잠에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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