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 속의 이야기
2009년 6월 10일 by 김 승엽Tweet
2001년 정도에 썼던 것 같은 좀 괴상한 이야기. 올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좀 고쳐서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급하게 손을 봤는데, 원래대로 어정쩡한 것 같다.
혼자서 하는 등산은 스스로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길고도 짧은 고백 같다. 아무 생각도 없이 속을 헐떡거리며 산비탈을 오르고 나서 나지막한 경사의 내리막길을 걸을 때, 머릿속에 피어 오르는 수많은 생각들은 내 몸을 적시는 땀처럼 흘러나와 산바람에 날아가버린다.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고 있는 내가 그녀를 집에 남겨두고 혼자서 이 산에 찾은 것은, 지금의 이 답답한 상황도 한 줄기 불어오는 산바람에 날아가진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숨을 헐떡일 때도, 잠시 앉아 물을 마시며 쉬는 동안에도 아내의 얼굴은 지워지지 않았다.
눈웃음으로 나를 반겨주던 그녀의 표정이 어느 순간 증오에서 경멸의 눈초리로 바뀌어 가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원인이 다름 아닌 나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그녀가 다른 여자의 머리카락을 옷깃에서 찾아 내게 들이 밀었을 때 나는 그만 두어야 했다. 하지만 불륜드라마의 오래된 공식처럼, 나는 내 아내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고,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는 용의주도하게 내 목을 졸라오고 있었다. 나와 애인이 모텔로 들어가는 사진과 애인의 신상명세 등을 그녀의 성격 만큼이나 꼼꼼히 서류로 정리해 내 앞에 들이밀었을 때는 내 앞에 서있던 아내가 내 목을 조르고 있는 것 같은 환각마저 보였다.
그러나 아내는 관계를 정리하라고만 할 뿐, 이혼까지 요구하지는 않았다. 평소의 그녀의 성격이라면 당연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가 늦게 귀가하기 시작했다.
한적한 산길을 내가 어쩌다 이런 상황에 빠졌는지 고민 하며 걷는 동안, 문득 누군가 저 풀숲 너머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집을 나설 때의 아내의 날카로운 눈빛 때문이었을까? 애써 잊어버리려고 길가에 피어있는 풀꽃에 눈길을 주었다. 의외로 산길이라는 게 좌우를 살필 만한 여유를 주지 않는다. 하늘 높이 솟아 있는 활엽수들에 의해 햇빛이 가려져 한 낮에도 해질녘의 오후같이 어둠이 깔려 있고 그 밑으로는 언제부터 쌓였을지 모를 축축해 보이는 나뭇잎들이 미끈거려 발목에 힘을 주게 한다. 그렇게 걷다 보면 바닥을 주시하게 되고 가끔 앞을 바라보게 될 뿐 좌우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될 경우가 많다. 그 때에도 바로 그랬다. 바닥을 바라보며 걷다 막 고개를 들어 앞쪽을 살피려는 순간 눈앞으로 무엇인가가 지나갔다. 아니 지나갔다 라는 표현보다는 튀어 올랐다는 표현이 옳았다. 털이 부스스한 뭔가가 눈앞에서 튀어 올랐다.
원래 겁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아무도 없이 혼자 걷는 산길에서 그런 괴상한 일과 맞닥뜨리자 등에서 땀이 흘렀다. 뭘까. 두서너 걸음 뒤로 물러서서 그 물체가 튀어 오른 방향을 살펴보았지만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조그만 산새라도 날아오른 건가?’
그 조그만 물체가 대각선으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양이 산새가 날아오르는 것을 잘못 본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긴장했던 마음을 풀고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리 크지 않은 배낭에 1인용 텐트와 얼마간의 먹을 것을 넣고 산길을 이렇게 헤매는 일은 내게 골치 아픈 일들이 생기기 전부터, 뭐랄까 일상에서 잃어버린 모험심을 되찾으려고 하는 취미같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가까운 직장동료의 소개로 시작하게 된 이 색다른 취미는 지도도 없이 밤이 깊으면 산 속에서 그대로 텐트를 치고 자는, 조금은 무모한 일인 듯 싶지만 의외로 그러한 일들이 주말 동안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나에게 일상의 피로를 가시게 해주었다. 이런 비밀스러운 취미는 아내에게도 자세히 이야기하진 않았다. 조용하고 나에게 성실했던 전형적인 전업주부 스타일의 그녀는 나갔다 온다는 말에 처음에는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어느 때부터 인가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혹 나에 대한 애정이 사라진 것은 아닌가 걱정하던 때도 있었지만 바람을 피우기 시작하면서 그런 생각도 사라져버렸다.
얼마나 산길을 지났을까 이제 어둑해지는 것을 보니 텐트 칠만한 곳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어디가 좋을까 하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동안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생선이 썩는 것 같은 지독한 냄새가 어디선가 풍겨 왔다. 예전에도 강물에 떠내려온 짐승의 시체에서 맡아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그런 냄새가 풍겼다. 어디서 냄새가 풍기는지 찾아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흉측한 생각이지만 사람 시체라도 찾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방금 전 손전등으로 비춰보았던 방향 저편으로 사람 발이 조금 삐져 나온 것 같기도 했다. 생매장이라도 했나. 세상이 험하니 별의 별 생각이 떠오르다 결국 예전 선배에게 들었던 시체 이야기가 떠올랐다. 물에 반쯤 엎드려 있는 그 시체의 물에 담긴 부분은 다 썩어 뼈가 드러나 있고 물에 잠기지 않은 부분은 그대로더라는 이야기. 몸을 흠칫 떨었다가 앞으로 더 걸어나갔다. 냄새는 사라졌지만 괴기스런 상상들마저 머리 속에서 사라지진 않았다. 아까 나를 놀래 켰던 이상한 물체 덕분에 흥분했던 심장이 더 심하게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앞쪽에 조그마한 공터가 나타나 나는 바닥을 조금 비추어 보고는 해지기 전에 텐트를 치려고 서둘렀다. 텐트를 치고 주변에 백반 조각과 담배를 뿌리고 텐트 안에 들어가 있기까지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텐트 안에 막 들어서 지친 다리를 펴고 누웠을 때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풀숲을 헤치는 소리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 나는 밖에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거기 누구요?"
아무 대답이 없다. 산 짐승일까. 다시 텐트에서 나와 사방으로 손전등을 비추어 보았지만 소리를 낼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텐트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다시 그 소리가 들렸다. 날갯짓 소리 비슷한 뭐랄까 옷자락 소리 같은 그런 파드득 하는 소리가 뒤쪽에서 들렸다가 이내 멈추었다. 고개를 바로 돌렸지만 역시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리고 전의 산행 답지 않게 수상한 일이 많이 일어나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까 불쑥 튀어 올랐던 이상한 물체가 새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산 짐승이라면 쫓아 버려야 했다. 하지만 형체를 보이지 않으니 그것도 수월한 일은 아니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심이 점점 가슴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텐트 안으로 들어온 뒤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누워먹을 것을 집으려고 바닥을 더듬거리다 미쳐 치우지 못한 바닥의 무엇인가가 손에 잡혔다. 딱딱하면서 조금 눌리는 마치 사람 발뒤꿈치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의 무엇인가가 손에 잡혔다. 그리고 혹시 이게 사람 발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텐트 안에서 아까의 썩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혹시 시체가 묻힌 위에 텐트를 친 건가 …
이런 생각이 나자 도저히 그대로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텐트로 나와 손전등을 켜고 아까의 그 물체가 만져졌던 부분의 텐트 바닥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 막 바닥의 그 물체가 모습을 드러내려는 순간 아까 들렸던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리고 검은 그림자가 앞 쪽 풀숲에서 고개를 내밀자 놀라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서다 무엇인가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이 내 등을 훑어 내렸다. 배가 뜨끈해지고 온몸에 힘이 빠지더니, 눈앞이 흐려지자 난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다음날 어제 남자가 텐트를 친 그 자리에 다른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죽은 건지 기절한 건지 알 수 없는 남자 주위를 돌며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그가 막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네 접니다. 근데 좀 골치 아프게 됐습니다. 제가 손도 대지 않았는데 뒤로 물러서다가 텐트 지지대에 찔려서 죽었어요. 넘어지면서 머리도 돌에 부딪혔는지 머리도 깨져 버린 것 같고. 남편 되시는 분이 겁이 많으신가 봐요. 제 그림자보고 겁을 집어 먹은 것 같더라고요. 뭐 어찌보면 잘된 일이죠. 제 손에 피를 묻힐 필요 없어졌으니까. 이틀 뒤에 경찰에 전화해서 이 쪽으로 산행 갔는데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세요. 일단 친정에 가있는 알리바이가 있으니까 의심하진 않을 겁니다. 아 그런데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왔을까요? 그 뒤로도 그 여자하고 연락을 하고 지냈던 것 같은데요. 우리가 저지른 일을 알고 있었던 걸까요? "
남자는 전화를 끊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야전 삽을 들어 텐트 구석에 삐죽 나와있는 발가락 위에 흙을 덮었다. 붉은 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는 여자의 발이었다. 남자는 대충 덮은 뒤, 그 위에 낙엽을 가져와 슬슬 뿌리고 되돌아 길을 내려갔다. 죽어서 누워있는 남자와 산바람이 불어 흔들리는 텐트 옆으로 아까의 발과 같은 색의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는 손가락이 삐죽 땅 위로 솟아올라 산을 내려가는 남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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