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에 대하여


2009년 7월 15일 by 김 승엽 View blog reactions

명카 드라이브의 “냉면”이 검색어로 자주 올라오니까 갑자기 냉면에 대해 쓰고 싶어졌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께서 작은 식당을 하셨는데, 여름이 되면 냉면이나 콩국수 같은 것들을 여름 특별 메뉴로 올리곤 하셨다. 덕분에 나는 여름의 시작을 우리 집에서 그 해 냉면을 처음 시작 날과 동일하게 생각했다. 붉은색 바탕에 하얀 글씨로 “냉면”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집 앞에 내걸리고, 냉면 배달해 주시는 아저씨가 마분지에 쌓인 냉면뭉치를 가져오시면 닭 한 마리, 마늘, 양파, 대파, 계피 등이 들어간 커다란 육수 냄비가 끓어올랐다. 계란 지단이 부쳐져서 가늘게 썰리고, 삶은 계란을 까서 커다란 그릇에 옮겨 놓으면, 이제 막 국민학교에서 돌아온 어린 꼬마도 그런 주방의 변화를 보면서 “이제 여름이구나” 생각하게 됐던 것이다.

지금은 냉면을 좋아하지만 어렸을 적에는 냉면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는데, 우리 집에서 냉면을 시작하는 그 날만은 꼭 냉면을 먹었다. 물냉면보다 비빔냉면을 좋아해서 꼭 그것만 먹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손으로 비벼주신 매운 냉면을 먹고 입 주변이 벌겋게 돼서 찬물을 벌컥 벌컥 들이키곤 했다. 어렸을 때 맛있게 먹었던 기억 때문인지 고깃집에 가거나, 점심시간에 뭘 먹을까 고민할 때, 꼭 냉면을 떠올린다. 뜨거운 국물보다 속 시원하게 차가운 육수를 들이키고 싶은 생각이 들 때면 냉면을 시켜 먹게 되는데, 내 입맛에 맞는 냉면집 찾기가 참 힘들었다. 혹 처음 먹어보는 가게에서 냉면을 먹게 되면 비빔냉면을 시켜 먹다가 육수를 부어 먹곤 했는데, 물냉면이 먹고 싶어도 워낙 입맛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그나마 실패할 확률이 적은 비빔냉면을 시키는 잔머리를 굴리게 된 것이다. 요즘에는 겨우 입 맛에 맞는 냉면집도 찾고 인스턴트로 나오는 냉면들도 양념을 좀 하면 먹을만하지만, 어머니가 해 주시는 냉면 맛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직도 어머니 혼자서 식당을 하고 계시지만, 손 가는 것에 비해 손님이 별로 없어 가끔 식구들이 먹고 싶어 할 때만 냉면을 하곤 하신다. 아버지께서 생전에 냉면을 참 좋아하셔서, 살아계셨더라면 아직도 여름 메뉴로 냉면을 올려놓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하루 종일 끓이고 식혀 육수 만드는 힘든 과정을 알고 있으니, 커가면서 아버지 식성을 닮아가는 아들이래도 이제는 어머니께 냉면 해 달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여름 다 가기 전에 집에 내려가서 어머니가 해주신 냉면 한 그릇 먹고 싶은데, 언제 좋아하시는 선물 사 들고 연락도 없이 내려가 봐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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