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誰も知らない。)


2006년 1월 24일 by 김 승엽 View blog reactions

nobodyknow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남자가 혼자 영화보며 눈물을 흘리는 일 처럼 볼썽 사나운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내가 그러고 있다. 감성이 풍부한 것도 아닌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시거나 목이 메인 것을 행여 들킬까 헛기침을 하는 일이 많아져서 이 영화를 보기 전에도 꽤 망설였다. 주말에 보는 영화 정보 프로그램을 본 기억으론 이 영화, 분명 나를 울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주인공 아키라와 엄마가 새 아파트로 이사오는 가을로부터 시작해 약 1년간 진행되는데 미혼모로 각각 아빠가 다른 네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 철없는 엄마는 아이가 많다는 이유로 아파트에서 쫓겨날 것을 걱정해 아키라를 제외한 다른 세 명의 아이들을 가방에 넣어 데려오거나 밤 늦게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집에 데려온다. 집 안에서는 떠들어도 안되고 나가서도 안된다는 룰에 따라 아이들은 이웃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새 집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엄마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떠나면서 이 네 남매의 생활은 조금씩 부서져간다.

학교에도 보내지 않아 집 안에서 갇혀 지내는 아이들과 돈이 떨어져 가는 것을 걱정하며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아키라의 모습에 영화는 심각한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불행하지만 약하진 않은 그들의 모습을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줄 뿐 관객의 감정을 억지로 주무르려고 하지 않는다. 아키라와 동생들은 이웃과 사회 그리고 심지어 또래들로 부터도 소외되고 제목처럼 주위의 아무도 그들의 불행에 대해 알지 못한다. 편의점의 아르바이트 생이나 친구들로부터 왕따 당하는 소녀 사키 정도가 그들과 교류하고 있지만 그것이 아이들이 처한 문제에 직접적인 해결이 되지는 못한다. 그들은 서로를 섣불리 위로하려 하지 않으며 단지 같이 있어주고, 놀아주는 것 만으로 서로의 상처를 감싸 안는다.- 이런 소재를 한국에서 다루었다면 눈물을 짜내려고 수 많은 고난 속에 아이들을 밀어넣어, 보는 이를 괴롭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 극 중간 아키라가 도둑으로 몰린 상황이 조금 위험했는데 나는 그에게 닥친 고난이 걱정스러우면서도 그 편의점 주인이 이 아이들의 상황을 알아채 조금 도움을 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걱정과 기대는 이내 해결되었고 고난을 넘겼음에도 집으로 돌아오는 아키라의 손에 들린 찐빵봉지는 너무나 처량해 나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어른스러운 아키라와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하는 교코, 장난기 가득한 밝은 아이 시게루, 그리고 아폴로 초코를 좋아하는 귀여운 유키 이 네 명의 아이들은 생활비가 떨어져 전기와 수도가 끊긴 상황에도 베란다에 컵라면 용기 화분을 놓고 꽃씨를, 희망을 심는다.

영화가 종반에 이르러 사고로 유키가 죽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안타까운 마음은 있었지만 눈물은 흘리진 않았다. 시게루가 유키가 집에 처음 왔을 때 처럼 그렇게 다시 집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이제 못 봐?" 라고 물었을 때 교코가 말 없이 시게루의 손을 꼭 잡는 부분에서도 참을 수 있었고 유키를 공항 활주로 부근에 묻는 아키라의 작은 손이 떨리는 것을 봤을 때도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사키와 남은 세명의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그만 목이 답답해져 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그 동안 꾹꾹 눌러 참아왔던 감정들이 폭발하는 것 같아서 엔딩롤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다가 결국에는 담배에 불을 붙이게 하고 말았다. 보는 동안에는 편안하지만 보고 나서 길게 여운이 남는 영화를 오래간만에 보게 되어서 좋았지만 여전히 마음이 무거운 밤이다.


아키라역의 야기라 유아 기자회견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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