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이 마모루 (押井 守)


2006년 7월 28일 by 김 승엽 View blog reactions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보이지 않는 손처럼 절대적이라고 보아도 좋을 듯 싶다. 다만 이러한 일본의 애니메이션들이 소규모의 제작 환경에서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세계적 진출을 막는 하나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지브리"" 역시 장인 정신으로 뭉친 영세적 제작사이기 때문에 한번의 실패가 치명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실제로도 '이웃의 야마다' 군이라는 작품의 실패로 스튜디오 지브리는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이러한 일본 애니메이션이 이제 그 기세를 세계로 펼치려고 서서히 준비하고 있다. 셀 애니메이션으로 대표되던 애니메이션 제작이 점차 디지털화 되어가고 3차원 그래픽 기술의 발달로 셀과 CG(Computer Graphics) 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짐에 따라 제작단가가 하락하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일본인들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깊은 애정과 우리와는 다른 인식은 그들의 애니메이션이 세계화되는데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우리 나라 역시 젊은 층 중에 일본 애니메이션 한편쯤 보지 않은 사람이 없고 알게 모르게 일본 애니메이션 (세계적으로 저패니메이션이라는 신조어를 낳은)은 우리 깊숙이 들어와 있다. 나 역시 어린 시절에 "은하 철도 999"와 "마징가"를 우리 나라 만화 영화인줄 알고 보냈었다.

한 달에 수많은 장르와 작품들이 세상에 나오고 있는 일본에 비해 우리 나라는 아직까지도 그 수준이 하청국가에 미치고 있는 것이 슬픈 사실이다. 비록 점점 그 인식이 달라지고 국가적 지원도 커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 나라의 애니메이션이 외형적인 면에서 보다 내면적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낯설지 모르지만 작가주의 감독으로 전세계의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을 열광시키는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중 "오시이 마모루"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이유가 바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며 문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높이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분석해서 우리 나라 애니메이션이 가야할 길에 대한 해답을 얻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이다.

매니아를 열광시키는 작가주의 감독

오시이 마모루 押井 守(Oshii Mamoru)

오시이 마모루 내가 지금껏 보아온 그의 작품들은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나 "모노노케 히메","이웃의 토토로"같은 작품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나 강한 남성과 회화적 화면 연출로 기억에 남는 데자키 오사무 ( 대표작 : 내일의 죠 , 베르사이유의 장미 )등의 감독들과는 달리 오시이 마모루는 독특하고 철학적인 애니메이션으로 관객에게 애니메이션은 아이들만의 문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려 하는 것 같다.

"공각 기동대 ( Ghost in the Shell )"라는 작품은 오시이 마모루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작품으로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될 정도의 작품성을 가지고 매니아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며 개봉되기 이전부터 인터넷 등을 통해 상당한 반응과 호평을 받았다.

"공각 기동대"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 작품은 솔직히 아주 재미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관객의 뇌리에 뿌리내리는 오시이 마모루 특유의 연출과 원작 재해석 능력은 이 작품에서 그 극에 달해도 좋다고 말할 수 있다.

1951년 토쿄에서 태어난 오시이 마모루는 말 그대로 시네마 키드 이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서클 활동으로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던 오시이 마모루가 이렇게 일본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이끌 차세대 리더로 추앙 받게된 뒤에는 독수리 오형제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과학 닌자대 갓챠맨"이라는 작품이 있다. 영화는 많이 보았지만 애니메이션은 "철완 아톰"과 "마징가 Z" 밖에 보지 못했다고 전해지는 그가 이 "과학 닌자대 갓차맨"이란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애니메이션 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타츠노코(龍の子)사에 입사해서 자신이 감명 받았던 갓챠맨의 속편을 연출하게 되면서 그는 실질적으로 애니메이션 연출에서 스승이 되는 토미우리 히사유키를 만난다. 토미우리 히사유키는 갓차맨의 기본틀을 완성한 실질적인 창조자로 아직은 연출에 관해서 미숙한 오시이가 가지고 있던 많은 의문과 어려움을 해결해 주었다고 한다. 토미우리는 갓챠맨 말고도 "AREA88" 이라는 작품의 연출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국내에선 "지옥의 외인부대"란 제목으로 상영된 이 작품은 리얼한 공중전의 묘사와 스토리로 당시 국내의 청소년들 사이에 상당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그 후 오시이는 1981년 우르세이 야츠라라는 작품으로 연출에서 감독으로 데뷔하면서 인기 감독의 대열에 오르게 된다. 4년이라는 극히 짧은 기간에 인기 애니메이션 감독이 된 오시이는 댈로스 라고 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최초의 OVA(Original Video Animation)의 감독을 맡게 되면서 한층 더 도약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정상을 향해 치닫던 오시이 마모루도 1985년 천사의 알이란 작품을 감독하고 나서 일거리가 없어 집에서 전자 오락 게임을 하며 소일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컬트 애니메이션으로 분류되는 이 "천사의 알" 이란 작품은 대사가 거의 없고 음산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관객들의 외면을 받게 되는데 최초로 그의 컬트적 성향이 드러난 최초의 작품으로 말할 수 있다. "천사의 알"감독 이후 일거리가 없어서 집에 틀어박혀 전자 오락에 심취해서 인지는 몰라도 그의 작품에는 그러한 전자 오락적 요소가 드문 드문 보이고 특히 그의 최근의 실사영화 "아발론 " 역시 미래의 컴퓨터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공각 기동대" , "기동 경찰 패트레이버" , "천사의 알" 이 세 작품을 평가 비교 하면서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 보자.

공각 기동대 ( Ghost in the shell )

공각 기동대 포스터 영제목 Ghost in the shell 의 이 애니메이션으로 인해 저패니메이션 매니아들은 불타오르고 말았다. 시로 마사무네의 동명 만화를 애니메이션화한 이 작품은 오시이 특유의 연출력에 의해 시로 마사무네가 그렸던 근 미래와는 다른 모습의 작품이 되어버리고 말았으며 CG(Computer Graphics)와의 결합과 숨겨진 작가의 의도에 의해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재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 내용은 쿠사나기 모토코라고 하는 대 테러집안 부대여 소령의 자아에 대한 성찰로 사이보그인 여주인공의 존재에 대해 물음으로 해서 크게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이보그의 등장과 인간에 대한 물음은 영화 블레이드 런너와 매우 흡사한데 그러한 이유로 공각 기동대를 블레이드 런너의 애니메이션 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

고스트로 대변되는 인간이 가진 본능, 욕구, 감정은 구리와 전자의 흐름으로 대체되어버린 세계의 전뇌(電腦)에 의해 사라지고 광대한 네트와 결합해버리는 모습은 할리우드의 애매한 SF와는 달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작 공각기동대는 2권의 단행본으로 구성된 코믹스로 해적판이 우리 나라에 들어와 있었는데 어찌 어찌해서 구한 이 만화책을 이해하기 위해 10번 정도를 본 것 같다. 물론 대략의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는 한번 정도만 읽으면 되지만 시로 마사무네 작품의 특징인 많은 주석과 대사로 인해 10번 가까이는 읽었던 것 같다.

- 불행하게도 시로 마사무네의 작품이 지저분한 주석과 대사가 많은데 해적판이었던 관계로 제대로 해석되지 않아 안 그래도 난해한 작품이 더 난해해져 버리고 말았다. 만화에서 나오는 모토코는 사이버 섹스를 즐기는 레즈비언으로 등장하고 어째서 모토코가 사이보그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약간이지만 등장한다. –

인형사로 불리는 프로젝트 2501에 대한 에피소드와 그 외의 에피소드들을 뭉뚱그려 원작의 엑기스를 뽑고 광학 미채라는 조금 괴상한 18금 취향의 (이것을 18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왜 모토코가 옷을 벗었나 하는데 있다. 전뇌가 해킹 당해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던 그 범죄자는 분명 옷을 입고 광학 미채를 사용하는데 말이다. 혹시 사이보그는 옷을 벗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설정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또 한가지 극 초반 모토코가 빌딩에서 벌거벗고 낙하하는 장면이 영화 “제5원소”에서도 사용되는데 그래서인지 이 리루라는 여 주인공도 거의 벗고 있다.)장치를 추가해서 멋진 애니메이션을 한편 만들어 냈다.(후지코마라고 불리는 인공지능 전투로봇이 빠진 게 좀 아쉬운데 플레이 스테이션용 게임 공각기동대의 오프닝을 보면 이 후지코마가 등장한다. 그 오프닝 역시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능가할 정도의 상당한 퀄리티를 가지고 있다. 지금 공각 기동대 2부가 NEW TYPE 에서 연재되고 있다고 하니까 오시이가 다시 한 번 이것을 영상화한다면 어떻게 재구성할지 궁금하다)

별로 재미는 없는 공각 기동대를 재미있게 보는 방법 중 하나가 메카닉 디자인에 주목하는 것이다. 오시이 작품의 메카닉 디자인은 제임스 카메론이 영화에 쓰고 싶다고 할 정도로 미국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그 메카닉 디자인중 화기류의 디자인이 현대 사용되고 있는 화기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작품 마지막에 모토코가 사용하는 총은 바로 FN-P90 이라는 풀 팝업 방식(개머리판 쪽에 탄창을 삽입하는 방식)의 총과 흡사하다. 이 총은 50발 탄창인데 그래서 난사가 가능하다고 한다. ( 실제로도 모토코는 극의 후반 보행전차와의 싸움에서 엄청난 난사를 해댄다. )

이런 점은 SF적인 디자인의 총을 사용해서 SF적인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현실적인 면을 살리는 장점이 되는데 누구 나가 기억할 거미형 전차와의 싸움에서 달아오른 총열과 노리쇠를 교체하는 장면 그리고 물에 ""치익"" 소리와 함께 식어 가는 모습에서 그 리얼리티에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총에 맞아 조금씩 뼈대를 드러내는 콘크리트 기둥의 연출은 신선했다. 총열을 교체하는 장면에서 실제 모델이 있다면 좀더 사실적인 장면을 연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은 뻔한 이치다.

2번째 공각 기동대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멋진 총격전이다. 가히 최고의 총격전이라고 불러도 좋은 이 연출은 지금까지의 애니메이션에서 볼수 없었던 극한의 리얼리티가 압권이다. 반동에 의해 밀리는 몸과 총을 맞아 찌그러지는 차체등은 정말 20세기 최고의 총격전이라고 할수 있다.

세 번째의 방법은 뭐니뭐니 해도 작가만의 재 구성력인데 이는 작가가 완성한 그 동안의 일연의 작품의 끝에 공각 기동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가 작품에서 주로 등장시키는 자연물과 새, 개, 화석, 천사 등의 이미지가 공각 기동대에서도 여지 없이 등장하고 이는 작가의 컬트 적인 성향과 더불어 관객에게 색다른 이미지와 메세지를 전달한다. 모토코가 저격 당할 때 그녀에 눈에 보이는 천사나 그녀가 다이빙하며 수면에 비치는 자신의 잔상에 천천히 다가가는 모습들은 이러한 성향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또한 마지막 결투의 장소가 자연사 박물관인 점은 조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싸우는 장소는 진화의 역사를 설명하는 자연사 박물관이었던 것이다. 이는 인간의 진화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광속의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새로운 자아가 생겨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마지막 모토코가 남기는 "네트는 광대해"라는 말은 자아를 찾던 그녀에게 새로운 자아 광속의 네트워크 시대에 파생된 신인류의 자아가 자리 잡았음을 말한다.

주로 공각 기동대의 감상법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 졌는데 공각 기동대는 그의 애니메이션 작품 중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을 수 있으며 지금까지의 그의 역량을 집대성한 작품이라 할수 있다 .

패트레이버(극장판 1 , 2 편)

패트레이버 패트레이버 극장판 1편은 꽤 시간이 지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구성 및 퀄리티 그리고 내용적인 측면에서 다른 애니메이션과 차별성을 가진다. 감독 오시이 마모루는 1편에서 현대 문명과 인간의 모습을 레이버와 프로그래머 고층빌딩사이로 부는 바람을 매개체로 표현해 냈는데 문명의 발전 그리고 잊혀지는 것들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TV 시리즈물의 극장 판임에도 패트레이버의 활약보다는 레이버에 타고 있는 인간의 모습에 초점을 두고 현실감 넘치는 세계를 만들어 냈는데 원작에 대한 독특한 해석과 재구성으로 인해 오시이 마모루의 작가 관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거대 로봇물로 분류하기 껄끄러울 정도의 이 패트레이버 극장판 1편은 분명 거대 로봇이 등장하지만 말 그대로 로봇은 기계일 뿐이다. 마징가와 건담 마크로스로 이어지는 로봇물의 변화에서도 보면 과거 슈퍼 히어로였던 거대 로봇의 역할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볼 수 있고 건담에서의 병기의 개념에서 마크로스의 소모품을 지나 이제 생활 속의 로봇으로까지 내려와 버렸다. 분명 이것은 로봇을 해석하는 시각이 변화하고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초점은 인간에게 맞추어 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시이 마모루는 거기에 멈추지 않고 그 인간에게 맞추어진 세계가 만들어낸 과학 만능의 물질 문명 사회를 고층빌딩사이로 부는 바람이라는 상처 입은 자연과 과거의 이미지로 하여금 꼬집고 있다. 이 작품에서의 인간은 과거 로봇 물에서의 작은 인간의 모습이 아닌 중심적 위치로서의 인간이고 또한 복잡 미묘한 사회성의 동물로 등장한다. 1편은 분명 로봇이 대변하는 기계보다는 인간을 또한 자연을 망가뜨리고 지배자의 모습으로 군림하는 인간보다는 상처입고 사라져간 과거의 자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만든 인간주의와 과학주의로 인한 폐단에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는 현재의 세계와 닮아있다. 내용을 살펴보자면 레이버에 탑재되는 OS가 고층빌딩이 만든 바람이 만든 소리에 반응하여 폭주하게 된다는 이야기지만 그러한 내용을 풀어내는 방법에서 여타의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1편의 이러한 광범위한 주제를 자신만의 색깔로 풀어낸 오시이 마모루는 2편에서는 좀더 리얼리티를 가미하여 일본이라는 나라 내에서의 문제 와 전쟁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한번 인간이 가진 문제들을 되짚어 보고 있다. 오시이는 2편에서는 자위대와 경찰간의 세력 다툼과 힘의 견제 그리고 전쟁이 가진 폐해를 외면하고 마는 인간의 모습을 소재로 하나의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2편의 경우는 컴퓨터 그래픽이 사용된 장면이 공각 기동대에서의 그래픽 사용과 비슷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오시이가 작품 내에서 어떤 방법으로 CG를 사용했는지 하는 변화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2편에서는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동남아시아의 내전에 참가했다가 부하를 잃은 한 명의 남자가 전쟁의 폐해를 잊어버리고 사는 자국의 사람들에게 일종의 테러를 가하는 모습이 주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모습은 걸프전 당시 생중계 되었던 전쟁의 오락 화를 꼬집고 있는 것 같다. 미사일이 날아가고 사람이 죽어 가는 모습이 생중계 되어 전세계의 TV에 방송되는 모습은 성격만 다를 뿐 스너프 필름이나 마찬가지다. 신속 정확한 전달이라는 뉴스의 목적을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이러한 미디어의 폐단은 분명 현대가 가진 문제이고 인류의 어두운 면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평화라고 생각하고 있는 현대에도 이 지구 어느 곳에서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단지 그 전쟁이라는 단어를 잊고 지낼 뿐이다. 아마도 감독은 전쟁이라는 모래 위에 지어진 평화라는 집에 대해 관객에게 말하고자 했을 것이고 그것은 일본이라는 국한된 지역 내에서의 이야기지만 주제만은 국한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제에 대한 이야기 말고 오시이 마모루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메카닉 디자인적 측면을 보면 등장하는 4족 보행전차나 각종 화기의 모습에서 오시이의 메카닉 디자인이 사실적이고 현실감 넘치는 일종의 자신만의 유형을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2편의 배경은 일본의 시가를 직접 사진 촬영하여 옮긴 것으로 사실 감 넘치는 모습을 볼수 있다.

천사의 알

천사의 알오시이 마모루, 야마노 요시타카 원작에 오시이가 각본 감독을 맡은 이 작품은 난해하고 모호한 작품으로 대중에게 외면을 받은 작품으로 기록된다. 사실 오시이의 다른 작품들도 대중들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일본의 수많은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을 위한 작품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천사의 알은 오시이 마모루의 작가주의 적 작품 세계의 시초가 되는 작품으로 평가 할 수 있다.

천사의 알이라 믿으며 커다란 알 하나를 배속에 품고 다니는 소녀와 무엇인가를 쫓는 한 소년의 이야기인 이 작품은 환타지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천사의 알고 비슷한 환타지적 분위기를 찾을 수 있는 장르가 하나 있는데 바로 게임이다. 화이날 환타지란 제목으로 근 10편까지의 시리즈를 내놓고 있는 일본 게임 제작사 스퀘어의 이 롤플레잉 게임은 그중 몇 편을 아마노 요시타카가 캐릭터 일러스트를 맡은 적이 있는데 그래서 인지 모르지만 그 화이날 판타지의 세계가 이 천사의 알이란 작품과 비슷하다. 현재인지 미래인지도 알수 없고 어디인지도 알수 없는 모호한 이러한 세계에 오시이 마모루가 한몫 거들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은 이상하다. 사실 아마노 요시타카와 오시이 마모루의 분위기는 상반적이다. 아마노 요시타카의 일러스트들이 환타지 적이고 귀족적인 분위기를 풍기는데 비해 오시이의 작품들은 실사 영화의 촬영기법에 기반을 둔 리얼리즘이 강한 영상으로 우리에게 인식되어있다. 그러한 두 사람이 뭉친 이 천사의 알에 혹시 화이널 환타지라고 하는 게임이 숨어있지는 않았는가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오시이가 게임 광이었고 그 때문에 아마노의 일러스트에 감동 받아 같이 작업을 하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어쨌든 천사의 알은 화이널 환타지의 이미지적 기초에 구약 성경의 스토리를 집어넣은 컬트 환타지라고 불러도 좋을 듯 싶다.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정말 모호하고 난해하다. 적은 대사, 그리고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대사들 거기에 몽환적인 배경과 등장인물들. 아마도 오시이 마모루는 감독이 숟가락으로 직접 떠서 관객들에게 주제를 전달하는 것을 거부하고 관객 스스로 느끼고 자신의 감정의 흐름에 의해 스토리를 쓰게 하고 싶어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가 이 작품을 어렵게 만들었고 관객을 혼란에 빠뜨렸다.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는, 그림자는 보이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실로 칸트의 무리를 쫓는 사람들 그리고 천사의 알이라 믿으며 알을 소중히 품고 다니는 한 아이 , 자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왔는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꿈인지도 모르는 한 남자 , 그리고 소녀가 모아놓은 물병들 그것들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작품의 성격을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오시이가 이후의 작품들에서 사용했던 메시지 전달적 소재들이 등장한다. 물과 물고기, 화석과 새 이러한 소재들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것을 파악하는 것이 상당히 힘들고 애니메이션을 즐기려고 하는 사람들에겐 아주 짜증 나는 일임에 틀림없다.

나 역시도 60분 정도의 이 작품을 보면서 하품을 몇 번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해석으로 천사의 알에서 내포한 내용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러한 분석의 중심에는 천사의 알을 품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천사의 알 #2소녀는 실질적으로 아직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존재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소녀가 배속에 알을 품고 다니면서 그 소녀는 아직 가지고 있지 않은 모체로서의 여성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한다. 여기서 알은 그 안에 천사가 들어있는지 새가 들어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닌 알 자체가 자궁을 의미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소녀가 품안에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은 흡사 그녀가 임신을 하고 있는 처럼 보인다. 이것은 미숙한 모성이 알이라는 매체를 통해 아직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만족감을 소녀에게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간추려 보면 순결한 소녀가 알이라는 것을 품안에 품게 되면서 그녀는 모태로서의 의미를 갖게 되고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우리는 신약에서 볼 수 있다. 바로 성모 마리아가 바로 그렇다.

간추려 말하자면 천사의 알에서 등장하는 알은 그 자체의 여성의 자궁의 의미를 가지며 아직 미성숙한 소녀에게 모태로서의 의미를 심어주게 된다는 것이다.

구약의 노아의 방주를 줄거리로 하고 있지만 등장하는 소녀의 이미지는 바로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와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왜 남자는 알을 깨어 버렸는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나는 이 알을 깨어버린 행위가 바로 소녀가 가지고 있던 순결의 파괴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자궁으로서의 이미지를 가지 알이 동시에 소녀가 가지고 있던 순결의 의미 역시 가지고 있다면 남자가 알을 깨어버린 일이 이해가 된다. 더욱이 알이 깨어진 것을 발견하고 소녀가 남자를 쫓아가다가 물 속에 빠졌을 때 일순 그녀가 성숙한 여자의 모습으로 화면에 비친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기 방울이 떠올라 수면에 알과 같은 모양으로 비치는 모습은 그녀가 가졌던 알의 의미 난소의 의미가 아닐까. 얼마전의 가요 "성인식"에서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하면 이해가 빠를까. 구약의 줄거리에 신약의 인물 거기에 순결과 모성이라는 의미를 부여해서 해석해본 나름대로의 해석은 분명 다른 이들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난 단지 오시이 마모루가 등장시킨 소녀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해본 것 뿐 다른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느낀다. 이렇게 여러 해석이 가능해서 일까 천사의 알은 어렵다.

짧게 나마 전에 써두었던 개인적인 평론들에 덧붙여 세 작품을 살펴보았다. 위의 세 작품의 공통점으로 오시이 마모루적인 색채를 들 수 있다. 공각 기동대와 패트레이버 이 두 작품은 천사의 알이 오시이 마모루의 개인적 색채를 들어낸 최초의 작품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개인적 색채를 대중과 공유하기 위해 대중성이 많이 첨가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천사의 알의 경우를 보면 너무나 난해하다는 단점이 있는데 패트레이버와 공각 기동대도 난해하기는 하지만 대중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난해함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두 작품은 컴퓨터 그래픽의 사용과 영화 필름 촬영 후 디지털화한 배경이 등장한다. 공각 기동대의 경우에는 홍콩의 수상도시를 그 실제 배경으로 필름 촬영해 디지털화 한 것이고 패트레이버의 경우에는 일본 시가지를 사진 촬영해 그대로 옮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세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찾아 볼 수 있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러한 이미지들은 오시이 마모루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아서 그의 작품이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개와 새, 물고기, 물, 천사, 폐허의 이6개의 이미지들이 오시이 마모루의 색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공각기동대에서 모토코가 저격 당하기전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를 보는 장면이나 수면위로 떠오르는 장면, 자연사 박물관의 폐허 등등에서 이러한 이미지가 등장하고 패트레이버에서도 갈매기 떼라든지 버셋 하운드 품종의 개가 등장한다. 천사의 알에서는 이러한 이미지 전부가 등장한다.

오시이 마모루가 작품 내에서 이렇게 독특한 자신만의 이미지를 집어넣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생각을 관객에게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키워드의 역할일지도 모른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 작품의 또 다른 특징으로 실사 영화적 연출을 들 수 있겠다.

실제로도 몇 편의 실사 영화를 감독한 적이 있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갓챠맨과 그 이후의 작품들에서 영화와 같은 연출력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은 오시이 마모루 이전대의 감독 대표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나 타카하타 이사오 등이 회화적 연출에 주력한 것과는 비교가 된다.

오시이 마모루의 세 작품을 다시 비교 분석하면서 문득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생각하는 여성상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바로 캐릭터 분석적 측면에서의 감독에 대한 접근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캐릭터 특히 여성캐릭터 들과는 분명 차별 화된 오시이 마모루 작품 속의 여성캐릭터 들을 살펴보자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속에서의 여성 캐릭터

공각 기동대에서 주인공 쿠사나기 모토코는 독립적이고 냉소적인 전문직의 여성으로 등장한다. 그녀에게는 남자에게서 자신의 존재를 찾으려는 과거의 헌신적 여성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녀는 자기 스스로 혼란에 빠져버린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그것을 찾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자신의 자아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것은 바로 그녀가 완전한 기계도 인간도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그녀에게 모태로서의 여성이 상실된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실감이 작품 내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여성인가에 대해 주목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인간인가 하는 문제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시이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은 전문직의 매우 이성적인 여성들이 등장한다. 냉정하고 차가운 여성상은 패트레이버에서도 등장한다. 테러리스트와 대립하는 나구모 시노부 경부를 한번 살펴보자 . 극장판에서 등장하는 그녀는 과거가 있는 미혼모로 등장한다. 그녀 역시 경찰이라는 전문직의 여성이고 쿠사나기 모토코와 마찬가지로 공격적인 직업을 가진 여성이다. 그러한 그녀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승진에서 누락되는 이유는 그녀가 여성이며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가 있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엘리트이지만 그러한 이유로 남자들만의 경찰이란 조직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 역시 매우 이성적이고 냉소적인 농담한마디 통하지 않는 여성으로 등장한다. 마치 굳건한 성과 같은 이미지의 두 여성은 상당히 공통점이 많다.

이렇게 강하고 냉소적인 여성상을 갖게 된 데에는 오시이의 유년시절 가족의 불화가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가정의 불화로 영화에만 파묻히게 된 오시이의 어린 시절 실업자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분명 오시이는 어머니의 이미지를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느끼고 그녀에게서 모성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러한 이미지가 그의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

이 두 명의 전문직의 딱딱하고 강해 보이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기 이전의 여성 캐릭터인 천사의 알에서의 소녀는 사람을 두려워하긴 하지만 이 두 사람처럼 딱딱해 보이지는 않는다. 말수가 적고 사람을 무서워하는 그녀의 모습은 오시이가 느끼는 여성의 이미지라기 보다는 유년시절의 자신의 이미지는 아니었을까 싶다. 임신한 어머니처럼 자신의 알을 소중히 여기는 소녀를 통해서 자신이 여자였다면 어머니였다면 하는 오시이의 내면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내가 생각하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

개인적으로 저패니메이션 관련 칼럼을 비정기적으로 연재하면서 한 편 한편 칼럼을 쓸 때마다 어떤 작품에 대해 적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러한 고민은 내 글을 읽어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작품에 대한 생각을 어줍잖은 나의 글로 오염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기도 하고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애니메이션보다는 매니아적 취향에 가까운 작품을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그쪽 작품에 대한 글을 많이 쓰지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이다. 사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작품들은 매니아적 취향이 강하다. 이 말은 역으로 대중들에게 외면 당할 소지가 상당히 많다는 말이 된다. 내용적으로는 공각 기동대는 대중들에게 어필할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다만 그 연출과 액션 등이 관객의 시각적 욕구를 강하게 자극하여 내용적으로 부족한 대중성을 대신하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 나라에서 애니메이션을 재미 추구 이상의 이유로 찾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그리 쉽지 않다. 몇 몇 유명세를 타는 작품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오시이의 작품들은 유명세를 타지 못했다면 정말 사장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매니아들에게 사랑 받는 일련의 광적 팬들을 이끌고 있는 오시이는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벽을 허물려는 듯이 그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애니메이션 같은 영화와 영화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 다만 이러한 작가가 취향이 타인들에게 짐작 가능한 여지를 준다면 오시이 감독은 변화를 꾀해야 하지 않을까.

그가 지금껏 다뤄온 "인간이란?" 하는 소재에서 잠시 물러서서 다른 곳을 쳐다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헐리우드적 재미를 추구하던 카와지리 요시아키도 철완 버디란 작품으로 변화를 꾀했고 안노 히데야키 감독 역시 그 동안의 패러디가 난무하던 작품에서 잠시 벗어나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이란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색다른 인상을 심어 주었었다.

그가 각본을 썼던 최근작 "인랑"에서 그는 학생운동 세대인 자신의 경험을 담아 인간 늑대라는 역시나 재미는 없지만 생각은 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을 내놓았다. 이제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도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디지털 속에서의 인간과 전쟁 속에서의 인간 , 사회 속에서의 인간을 다룬 지금까지의 노선에서 잠시 벗어나 그가 관객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코믹물이나 연애물을 만든다면 어떨까. "조상님 만만세!!"라는 작품 이후 별 다른 변화를 보이고 있지 않은 오시이 마모루감독이 독자적인 색채를 잃지 않은 채로 변화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고여 있는 물을 썩기 마련이듯이 같은 색깔의 그림은 지루해지기 마련이듯이 같은 분위기의 껍질만 다른 영화를 보기 위해 관객들은 돈을 내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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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esponses to “오시이 마모루 (押井 守)”

  1. 김 승엽 c-kr말하길

    dawnsea// 워드프레스가 사이트에 처음 댓글을 남기시는 분의 경우에는 관리자의 승인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댓글이 바로 등록이 안돼서 그렇습니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에 대한 이 글은거의 3년 전 즈음에 적었던 글인데 하드디스크에서 썩고 있는게 아까워서 끄집어 내봤습니다. dawnsea님의 덧글을 보고 나니 천사의 알을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 특히 2번과 3번에 대해서는 저도 많이 공감합니다. ( 지금보니 등장하는 여성캐릭터에만 너무 치중했었던 것 같네요.)

  2. dawnsea c-kr말하길

    덧글을 길게 써서 그런지 잘 안 남겨지네요.

    제 홈이 트랙백 기능이 안 되서 링크를 남겨둡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http://www.troot.co.kr/trbbs/zboard.php?id=newgal&no=2282

  3. dawnsea c-kr말하길

    저도 팬으로서 간만에 좋은 글 읽었습니다.

    지금부터의 덧글은 오래된 기억에 의존하는데다가,
    원래 오래된 기억이 그렇듯이 "강하게 추정" 부분이 사실로 기억속에서 둔갑했을 수도 있으니 참고하시고요.
    이미 이정도의 글을 쓰신 분이라면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요 :)

    * * * 1.

    매트릭스가 공각기동대 오마쥬 운운하는데.
    사실. 성공한 표절이라고 봐야죠.

    위에서 언급하신 "개와 새, 물고기, 물, 천사, 폐허"와 함께.
    특히 오시이마모루 감독이 광적으로 집착하는 소재, 즉,

    1. 소련제 하인드디 류의 대형공격헬기에 대한 애착. (공각,패트,아바론등)
    2. 호버링하는 공격헬기의 기총공격.
    3. 기총공격시에 떨어지는 탄피의 미학적인 낙하. (달로스에서 부터 등장하죠)

    ..와 같은 장면과.

    4. 탱크에 어프로치 하는 쿠사나기의 총격씬. 기둥 뒤에 숨고 기둥이 공격에 파여 나가는 씬.

    .. 같은 장면은 콘티까지 베꼈다고 생각합니다만..

    * * * 2.

    본 지가 오래되서 기억이 잘 안 나긴 하지만.. (VHS 시절 덜덜덜;;)
    천사의 알에서 등장한 "그림자 물고기 습격"은 저는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1. 그림자 물고기는 실라칸스와 같은 고대 물고기를 연상시킨다.
    2. 그림자는 허상미며, 그림자 물고기 사냥은 인류의 진화론적 세계관이 허상에 대한 집착을 암시한다.

    3. 천사의 알에는 잠시 "생명의 나무" 를 연상시킬만한 씬이 등장한다.
    성경, 이단성경등, 각종 오컬트 작품에서 인용되는 "생명의 나무"는 인류 진화 가지에 대한 메타포로서 해석이 되는데.
    이유는 공각기동대에서 증명이 됩니다.

    공각기동대 1의 마지막 전투씬은 박물관입니다.
    탱크의 총격에 쿠사나기는 전력으로 아크로바틱 도주씬(-_-;;)을 선보이는데.
    총격에 의해서 쿠사나기의 도주 경로가 바닥부터 벽까지 파여나갑니다.

    그 파여나간 최종 총격은 인류 진화 가지가 나무형 토폴로지로 표현되어 있는 테라코타의 마지막 가지 부분 "Human" 이었던 것입니다.

    * * * 3.

    그렇다면 오시이마모루 감독은 진화론의 부정자인가?
    제 생각에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감독(-_-;)은 딱히 진화론을 지정해서 부정하는 것 같지는 않고요,
    인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다각도로 진지하게 연구하는 연구자의 성격이 강하다고 해야 할까요.
    천사의 알에서 소녀가 성인여자로 변하는 씬은 인류가 어떤 계기를 통해서 양자적 점프에 가까운 성장을 하는 것을 보여주는 씬 같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쿠사나기 + 프로젝트 2051의 결합도 마찬가지로 해석이 됩니다.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류는 어디로 "양자적" 성장을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특히 공각기동대 원작 코믹스를 보자면,
    이 장면이 이렇게 거룩하고 비장하게 묘사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인드 디형 공격헬기의 날개가 천사로 느껴질 만큼"의 비장한 각오로 "인류보완계획"의 "모르모트"가 되는 장면 같다고 해야 할까요.

    * * *

    제 홈피가 개인용 홈이라 장사가-_-? 안 되서 트랙백 기능을 없애버렸습니다.
    장문의 덧글을 남기게 됨을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간만에 이런 좋은 글을 보니 이렇게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저도 오시이마모루에 관한 생각 이모저모를 한 번 정리해 보려고는 하는데.
    생각만큼 쉽게는 안 되네요.
    사실 여기에 일본 애니 "레인", 미국 영화 "토탈리콜"까지 결부시키고 싶습니다만, 아직 생각의 깊이가 짧아서 이만. -_-;;
    게다가 생각만큼 애니를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해서요 ㅎㅎㅎ -_-;

    쓰신 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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