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0083 스타 더스트 메모리


2006년 8월 18일 by 김 승엽

강한 남성을 원하는 여성 "니나" – 건담 0083 스타 더스트 메모리

스타더스트 메모리몇 년 전 어린이날, 늦잠을 자고 일어난 오전 10시 TV에서 낯 익은 로봇이 등장하고 있었다. “아니 건담이 왜 TV에 나오고 있지!” 놀라서 비디오 테이프를 보고 있지 않나 확인할 정도 였다. 그리고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녹화를 시작했는데, 이렇게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자다 일어나 눈 비비며 보게 된 0083은 김국환씨의 영 어울리지 않는 주제가가 함께 하고있었다. 건담 극장판이 – 원래 OVA를 극장용으로 편집 ‘지온의 잔광’이라는 제목으로 재 편집해 내놓았다고 하는데 이게 우리나라에서 방송했다. – 국내 방송 됐다는 점, 그것도 어린이 날 이었다는 사실에서 국내 방송사가 가끔 저지르는 놀라운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지구를 향해 당겨지는 손지구를 향해 당겨지는 손
극의 클라이막스, 콜로니는 가토에 의해 지구를 향해 겨냥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세사람 가토,우카키,니나. 니나 역시 가토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지만 정작 가토에게 총을 쏜 것은 우라키였다. 그녀가 가토를 쏘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운명의 장난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까.

원 주제가는 'Man of destiny'로 상당히 맘에 들어서 한동안 흥얼거리고 다니기도 했다. 제목 Stardust Memory 는 국내 방영 시 별의 먼지 작전이라고 번역되었던 것 같은데 다름 아닌 지온의 작전 이름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 Stardust Memory 역시 0080처럼 남녀관계가 스토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0080과는 다른 트랜디 적 삼각관계가 등장한다는 점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지온의 강하고 신념에 찬 남자와 연합의 부드럽지만 우유부단한 남자 그리고 두 남자를 사랑하는 변덕스러운 여자라는 설정은 좀 평이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0083은 그래도 재미있다. 0080같은 감동은 없지만 덴드로비움 같은 거대 메카나 지구로 낙하하는 식민지를 솔라 시스템으로 태운다는 설정, 그리고 그 밑에 깔린 거대한 음모 등은 주머니 속 이야기에서 별의 이야기로 넘어간 것과 같다. 대규모의 변화이긴 하지만 스토리의 무게는 가벼운 느낌, 이것은 넓어지기만 한 얕은 물 웅덩이의 느낌이다. 다만 한가지 지온의 지구 공격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히 주목할 만 한데 인류에 의한 지구 공격이란 설정은 그냥 넘기기엔 위험한 발상이다. 국가의 의미가 모성의 의미를 가진 것처럼 우주적 현실에서의 지구에 대한 공격은 말 그래도 어머니에 대한 공격을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은 뿌리, 모태에 대한 공격이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폐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라는 자유와 인간의 욕망과 갈등 그리고 신념은 어머니마저 공격하게 만든 것이다. 이것은 인류가 지금껏 이루어온 역사의 숨겨져 있던 어두운 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가토가 그러한 일을 저지를 때 지구의 피해와 죽어갈 민간인들에 대해 조금만 고민하고 마지막 레버를 당길 때 멈칫거렸다면 조금 위안이 될 수 있으나 가토는 조금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신념에 녹아버린 영혼처럼 그는 식민지의 괘도를 바꾸어 버린다. 그리고 여기서 만나게 되는 세 명의 등장인물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모순들과 맞닥들인다.

니나 가토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니나
극의 클라이막스에서 니나는 가토에게 총을 겨눈다. 그녀의 얼굴에 나타난 두려움은 자신에게 총을 겨누게 한 가토에 대한 두려움일까? 하지만 그녀는 결국 총을 쏘지 못한다.

니나와 코우니나 퍼플턴의 변덕스러운 성격과 건담에 대한 알 수 없는 소유욕을 마치 일렉트라 콤플렉스와 닮아있다. 물론 그것은 가토와 코우 우라키 사이에서 보이는 니나의 모습이 이 두 사람을 남성이 아닌 마치 건담의 부속물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건담이 강한 남성의 이미지를 대변한다면 니나가 두 남자를 사이에서 고민한 것이 아닌 건담이라는 자신의 이상적 남성에 어떤 남자가 어울리릴지, 두 개의 부속물을 양 손에 쥐고 고민에 빠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 또 니나에게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으나 지온의 신념에 따라 그녀를 배신하는 가토의 모습은 일견 멋진 남자로 보일 수 있으나 – 군인으로서는 최고임에는 틀림없다 – 사실 인간성을 상실한 이데올로기의 노예같다. 거기에 연합의 파일럿은 코우 우라키는 정말 우유부단한 남성의 표본으로 이런 부드럽기만 한 연체동물 같은 남자는 여자에겐 인기 있을지 모르나 실제 매력은 없어보인다. 가토와의 대결을 원하는 그는 니나를 차지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자신에게 치욕을 맛보게 한 가토에 대한 복수 이상의 의미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이 말은 대의적 목표를 두고 지금껏 선의 입장에서 섰던 우리들의 히어로들과는 달리 0083에서 등장한 이 코우 우라키라는 남자는 많은 단점을 가진 말 그대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너무 인간적 단점들이 많아서 매력이 없을 정도로) 겉으로 강하지만 속은 부드러운 갑각류의 남자가 매력덩어리라는 사실을 여자들이 알아주려나…… (내가 보아온 봐로는 그런데 … 사실 우리 아버지 시절의 남자들이 거의 그런 것 같다)

덴드로비움이것이 바로 덴드로비움

이야기가 남성상에 까지 흘러왔는데 메카닉을 살펴보면 덴드로비움이라는 물건이 등장한다. 이 건담 시리즈 사상 최대의 메카는 1/144 스케일로도 60센티미터가 넘어간다는 엽기적 모델로, 멋지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작품 내에서 이 덴드로비움이 전함들을 작살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뭐랄까 속 시원하다는 생각보다,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물건의 가격 상상하기도 싫다.-

0080보다는 가볍지만 재미는 보장하는 작품, 0083 스타 더스트 메모리. 아직도 내 시체를 넘어서 가라는 대사가 기억 나는데… 선과 악의 차이가 분명치 않은, 현실과 너무도 닮아 있는 이러한 세계관이 건담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0080을 보고 강한 액션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분들에게는 시원스런 액션을 안겨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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