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빌맨 묵시록 아몬
2006년 9월 18일 by 김 승엽Tweet

그가 생각하는 선과 악은 무엇인가 – 데빌맨 묵시록 아몬
나가이 고(永井 豪)라는 일본 만화가에 대해 한 번쯤 들어봤을거라고 생각한다. 마징가, 그랜다이져 같은 거대 로봇물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 만화가는 그 외에도 큐티하니, 겟코가면, 파렴치 학원, 바이올런스 잭, 마왕 단테 같은 문제작들의 작가이기도 한데 그 중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데빌맨이다. 나가이 고의 데빌맨은 일본에서는 매우 유명한 작품인데 비해,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는데 ( 최근의 실사 영화나 몇 편의 만화 외에는 관련된 작품들을 찾기 쉽지 않은데 원작만화는 예전에 해적판으로 들어왔었던 것 같다.) 원작자가 작품으로 상당한 사회적 이슈를 만들었던 사람이고 그 때문인지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이 OVA도 표현 수위가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니다.
유명 출판 만화인 데빌맨 시리즈는 통념을 깨는 설정과 소재로 관객을 소름끼치게 하고, 기분 나쁠 정도로 잔인한 장면들이 등장하곤 한다.
후도 아키라
부동명(不動明)왕이 일본 발음으로 후도 아키라가 되던가? 어쨌든 이 아키라라는 남자에게는 미키라는 자신의 여자 친구가 선과 악의 대결이란 숙명적인 싸움에서의 승리보다도 우선하는 것 처럼 보인다.
인간이 출현하기 이전에 지상을 지배했던 데몬족이 얼음 속에서 잠들어 있다가 기상이변을 이유로 천천히 부활하여 지구정복을 꾀하게 된다는 스토리나, 데빌맨으로 변신하는 후도 아키라의 모습 등 여러 가지 부분에서 우리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일단의 특징을 살펴 볼 수가 있다.
먼저 강식장갑 가이버 에서 등장하는 인간 출현이전의 설정은 데빌맨의 것과 매우 흡사하다. 거기다 인간을 위협하는 대상을 쳐부수는 우리의 히어로들의 모습이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했던 적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얼마전 에바 신드롬을 일으켰던 신 세기 에반겔리온의 초기 설정 그림을 본 적이 있다면 그 암울한 색과 육식동물의 굽은 척추 같은 에바의 등 부분 설정 그림을 기억할 것이다. 전혀 선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악에 가까워 보이는 이러한 겉모습. 데빌맨은 그러한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시발점이라고 보아도 좋은 작품으로 독자의 입장에서 가장 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데빌맨의 모습은 이름 그대로 악마 그 자체의 모습을 띄고 있다. 에바는 탑승하는 인간에 따라 최후 결전 병기도 될 수 있고 인류의 존폐를 위협하는 무기도 될 수 있다. 데빌맨 역시 후도 아키라라는 인간이 데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따라 천사 또는 악마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의 악마성에 대한 반문은 아닐까? 만약 신지가 연약하고 가냘픈 소년이 아니었다면 그 신지가 악마성에 가득찬 미친 남자의 로망에 빠져 세계정복을 추구했다면 과연 에바는 그런 신지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아니었을까. 이것은 나가이고의 마징가에서와 같다. 마징가는 분명 슈퍼 히어로 로봇지만 그 모습이나 격투장면은 그다지 히어로 같지 않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솔직하게 말해서 데빌맨 OVA는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잔인한 장면보다도 관객의 신경을 자극하는 장면이 등장해서 청소년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데 (그 이유는 뒤에 소개하겠다) 치가 떨릴 정도의 몇 몇 장면은 삭제되었으면 하고 바랄 정도였다. 도대체 어린이 살해장면이나 죽어 가는 여자의 다리를 보여주는 장면 그리고 미키의 잘린 머리들은 어느 정도의 잔인함은 넘길 수 있다고 자신하는 나에게도 거북스러웠다. 그것은 장면 자체의 잔혹함 때문이 아니라 그 노골적인 모습을 통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수 많은 연상들 때문이었다.
데빌맨 묵시록 아몬은 원작 데빌맨에 비해 작가가 다른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이라고 하는데 데빌맨 시리즈의 전체적 줄거리와 함께 후도 아키라라는 청년이 변신한 데빌맨 그리고 아몬의 싸움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왜 데빌맨으로 변신하는지 그리고 왜 싸우는가에 대한 이유는 단순치 않으니 나가이 고라는 작가를 만만히 보면 안 된다. 그래서 잠깐 OVA 의 내용을 떠나 원작 만화의 내용도 살펴보자. 데빌맨의 모습은 악마의 모습이다 근래 에반겔리온에서의 에바가 괴수의 이미지 였던 것과 같이, 아니 그걸 넘어서서 데빌맨은 악마의 모습을 그대로 이어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후도 아키라가 악마로 변신하는가? 이는 작가가 성악설을 믿는지는 몰라도 인간 본성의 악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내재된 악의 표출이 강한 힘과 혐오스런 모습의 데빌맨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데빌맨과 아몬
데몬족 최고의 전사라는 아몬과 데빌맨을 비교해 봤을 때 느낄 수 있는 외형적 차이는 거의 없다. 사람들의 상식으로 바라봤을 때 이 둘의 모습은 괴물 임에 틀림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둘의 차이는 크다. 데빌맨이 후토 아키라라는 청년의 정신에 지배된 말하자면 한 인간의 가면과 같다면, 아몬의 경우는 동물적 본능을 그대로 가진 순수한 악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구도에서 당연히 선이어야 할 데빌맨은 인간적인 의지보다는 본능과 욕망에 가깝게 다가가 있다. 작품 내의 인간들이 자신들의 안전 만을 꾀하는 매우 이기적인 모습으로 마을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악한 본성을 지배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인류의 멸망이나 선의 추구 같은 거창한 명제가 아닌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이다. 물론 데빌맨은 데빌맨 군단을 이끌고 사탄과 싸우지만 인류는 이미 사라지도 남아있지 않다. 바닥에 떨어진 애인의 목을 바라보는 데빌맨의 모습은 악의 본성과는 다른 이미지이니 아이러니한 점이다. 변신의 키워드를 역행하고 근원적 악을 외형으로 표출시킨 데빌맨의 이러한 아이러니는 인간의 잔인한 이기주의와 맞물려 인간세상을 흉칙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그러한 이유로 나가이 고의 작품이 프라임 타임에 방영되었을 때 많은 일본 학부모들의 원성이 자자했었다니 이해가 간다. 악의 이중적인 모습과 선 악의 단순함을 꼬아낸 이 작품은 마징가로만 나가이 고를 알고 있을 분들에게는 충격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시 OVA로 돌아가 질적인 측면을 보면 그림체나 캐릭터는 멋있다.(눈에 거슬릴 정도의 촌티는 보이지 않는다.) 데빌맨 시리즈는 출판 만화로도 많은 시리즈가 나와 있고 애니메이션으로는 그 원작의 분위기가 많이 완화되었다고 하니 OVA를 보면서 치를 떨었던 나로서는 도대체 만화 원작은 얼마나 잔인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했었다.
아몬이라는 데몬족 최고의 전사와 후도 아키라라는 청년의 싸움이며 데몬 이라는 적과 인간이라는 존재에 내재한 악에 대한 이야기 데빌맨은 호러 액션물이지만 그 내용은 가볍지 않고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 역시 가볍지 않다.
2000년에 제작된 작품으로 데빌맨을 아시는 분들이라면 부담 없이 보실수 있을 것 같고 처음 접하시는 분들에게는 전반적인 스토리의 이해가 없이는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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