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의 첨단에는 무엇이 있는가.


2006년 12월 5일 by 김 승엽 View blog reactions

군운 동쪽으로 삼일을 가면 하늘을 떠받치는 듯 우뚝 솟은 두개의 봉우리가 나타난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신이 장난이라도 쳐 놓은 듯 형제처럼 솟은 두 개의 산은 흑과 백, 선과 악을 상징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 모습이 달랐다. 북쪽에 솟은 산은 풀 한포기 찾아 볼 수 없는 바위산으로 사시사철 빙설에 뒤덮여 하얗다 못해 푸르른 빛을 발하며 남쪽의 산보다 조금 높아 그 이름이 백형산(白兄)이라 했고 남쪽의 산은 수십 수백 년 된 거목들로 뒤덮여 있었으나 백형산의 흰빛이 너무 강해서인지 아니면 죽은 나무들이 많아서 인지 그 색이 푸르게 보이지 않고 검은 빛을 띠어 그 이름을 흑제산(黑弟)산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 이름은 그 기이한 형상에 의해 세인들이 붙인 이름일 뿐이고 실제로는 북의 산은 독지(篤志), 남의 산은 비령(菲翎)이라 했다.

산세가 험해 좀처럼 사람이 접근하지 않는 백형산 중턱에 검은 그림자 두개가 나타났다. 백지에 떨어진 두 방울 먹물처럼 눈 쌓인 백형 한 자락에 나타난 두 그림자는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두 사람 모두 눈에는 검은색 천을 감은 채 거친 숨을 내쉬는 모습이 꽤나 지친 것 같았지만 어디에도 그들이 쉴만한 자리는 찾을 수가 없었다.

“어떤 미친놈이 이런 산을 오르자고 그런 거야?”
입가에 허옇게 서리가 붙은 채 앞장서 가던 사내가 갑자기 멈추어 서서 뒤 따라오던 사람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이렇게 소리쳤다. 앞서 가던 남자의 커다란 목소리에 뒤따라오던 남자 역시 멈추어서더니 말했다.

“바로 네놈이지 누구긴 누구냐! 미친놈!”

뒤의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이렇게 말하자 그 말을 들은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전혀 기억나지 않는 듯한 얼굴로 다시 소리쳤다.

“내가 이런 산을 오르자고 했다고? 난 기억나지 않는데……. 노인네가 이쪽으로 가자고 하지 않았었나?”

“으음”

앞선 남자의 말에 뒤의 남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는 작게 신음소리만을 내뱉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앞쪽의 남자가 갑자기 큰소리로 웃더니 뒤의 남자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이런 미친 노인네. 이렇게 험한 산으로 가야 안전하다고 한 게 노인네였잖아. 그런데 내가 그랬다고 덮어씌워!”

앞선 남자의 큰 목소리에 뒤의 남자가 신음소리 같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안 그래도 낮에는 눈이 안 보여 고생하는데 온통 허옇게 눈이 쌓여 번쩍이는 산으로 내가 가자고 그랬다고? 저 젊은 놈이 정말 미쳤구먼!”

뒤의 남자는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아직도 큰소리로 웃어대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큰소리로 계속 떠들다간 눈사태라도 날 테니 조심하는 것이 좋을걸!”

“눈사태? 눈사태 따위에 이 강양진이 죽을 것 같아? 그 밑에서도 십년을 살아남았는데 내가 여기서 죽는다고?”

양진이 이렇게 다시 소리치자 뒤 따르던 막우는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막우가 걸어 올라오기 시작하자 양진이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산 정상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허연 김이 피어오르는 몸이 식기 전에 산을 넘어야겠다고 마음먹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부러진 창을 지팡이 삼아 산을 오르던 막우는 남쪽 멀리 보이는 비령산을 바라보았다. 앞서 가고 있는 저 강양진이란 자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저 산을 다시 보지 못했을 수 있었다는 생각에 막우는 산을 오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게 몇 년 전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예전 그는 저 산을 넘은 적이 있었다. 아내도 자식도 버리고 그는 홀로 저 산을 넘은 적이 있었다.

‘무엇을 위해서 나는 저 산을 넘었었는가?’

막우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지만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검이었나?’

막우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얼른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검에 뜻을 품었다면 아마 그는 저 산을 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산을 넘었다. 시간이 지나 퇴색한 자신의 의지에 막우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집사람과 아이는 잘 있을까?’

매정하게 떠나버리고서 아내와 아이를 생각하는 자신이 우습기도 했지만 이제 성인이 되어있을 자신의 아이 생각에 막우는 잠시 눈을 감았다. 혹 자신의 아이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였지만 역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막우도 무디어지고 말았구나.”

막우는 웃으며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양진의 뒤를 따랐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할 무렵 양진이 산 중턱에서서 산 너머 보이는 멀리 보이는 마을을 가리키며 막우에게 말했다.

“이봐 늙은이 잘하면 오늘 날이 저물기 전에 저 마을에 닿을 수 있겠는데.”

양진의 말을 듣고 막우가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그럼 여기서 잠시 쉬어가자.”

그리고는 작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 모습에 양진이 안 된다는 듯 꽥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런 곳에서 쉬게 되면 땀이 식어서 더 추울 거라고 힘들어도 지금 빨리 갈 길을 재촉해야 돼.”

양진이 이렇게 말하고서는 앉아있는 막우의 팔의 잡아 일으키려고 하자 막우가 씨익하고 웃으며 양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 혹 연한의 수하들이 쫓아올까봐 걱정이라도 돼서 그러는건가?”

“뭐!”

막우의 말에 양진이 화라도 난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깟 연한의 수하쯤이야 내 한 손으로도 쓸어버릴 수가 있어. 그런데 내가 겁을 낸다고! 이 노인네 생각해서 말했더니……”

양진은 이렇게 말하더니 막우의 옆에 놓인 작은 바위에 털썩 주저 안자 말했다.

“그래 쉬자고! 나야 노인네 보다 젊으니 이런 추위 정도야 걱정 없으니!”

“그래그래.”

막우는 이렇게 말하고서는 잠시 숨을 돌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양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째서 그 팔에 쇳덩이는 잘라내지 않는 거냐?”

막우가 묻자 양진이 자신의 팔에 달린 쇳덩이를 들어 쳐다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몰라. 십여 년을 이걸 차고 있으면서 정이라도 들었나?”

양진의 대답에 막우가 손을 뻗어 차가워진 쇳덩이를 만져 보더니 말했다.

“이런 게 팔에 달려 있으면 검을 쓰는데도 불편할 텐데. 뭐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것 아닌가?”

“다른 이유?”

양진이 골똘히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무릎을 탁치고는 말했다.

“아 그래! 생각났다!”

그 모습에 막우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양진을 바라보았다.

“사실은 말이지 나도 뭔가 생각이 있어서 이걸 달아 놓았는데 지금까지 잊어버리고 있었어!”

양진의 대답에 막우가 웃기는 놈이라는 표정으로 양진을 쳐다보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래 그럼 그 이유가 뭐야?”

“방패야!”

양진이 간단하게 방패라고 대답하자 막우가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물었다.

“방패라니! 그런 게 필요한가? 몸만 둔해지고 상대에게 틈만 주게 될 텐데.”

“하하하 그러니까 당신이 노인네야.”

막우의 물음에 양진이 큰소리로 웃더니 쇳덩이가 달린 팔을 들어 막우에게 들이밀며 말했다.

“이렇게 탈옥수가 된 이상은 일대 일의 싸움보다는 다수와의 싸움이 많을 거란말야. 거기서 이 놈으로 많은 상대의 공격을 흘려 내려고 했던 거야. 이제는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덕분에 한손으로도 검을 쓸 수 있게 되기도 했고 말이지!”

양진의 말을 들은 막우는 자신의 얼굴 앞에 와 있는 쇳덩이를 앞으로 밀어 내더니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래서 네 놈이 미친놈이라는 거다. 알겠냐?”

“응?”

막우의 말에 양진이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막우를 바라보았다.

“그런 쇳덩이를 끌고 사람들 사이를 다니면 성한 놈으로 보지 않을 텐데, 도망 다니는 놈이 그렇게 사람들 눈을 끌려고 하니 미친놈이지!”

막우가 이렇게 말하자 양진이 그 말도 맞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막우 쪽으로 고개를 확 돌리고 말했다.

“그래서 놈들이 잡으러 오면 다 죽여 버리면 되잖아!”

양진이 이렇게 말하자 막우가 할 수 없다는 듯이 신음소리를 흘리더니 말했다.

“미친놈하고 이러고 있는 내가 웃기는 놈이지! 네 놈 검이나 이리 줘봐! 귀한 검 같은데 한 번 구경이나 해보자!”

막우가 양진의 허리에 꽂힌 검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자 양진이 자신의 검을 한번 힐끔 쳐다보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검집 채 뽑아 막우에게 건넸다.
양진에게 검을 받아든 막우는 검집에서 검을 뽑아 날을 세우고 겨누어 살펴보았다. 눈밭에 반사된 햇빛 때문인지 허옇게 번쩍이는 칼날을 살펴보던 막우는 다시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는 자루를 감싸고 있던 천을 풀어내고는 다시 그 밑의 가죽마저 풀어내더니 슴베가 드러나자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양진은 막우가 하는 모양을 가만히 살펴보고 있다가 그가 슴베에 적힌 문구를 유심히 살펴보자 고개를 들이밀어 슴베와 막우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왜? 뭐라고 적혀 있는데 그렇게 유심히 쳐다보는 거요?”

양진의 물음에 막우가 다시 풀어 놓은 검 자루를 맞추면서 말했다.

“이 검은 누구에게 받은 거냐?”

막우가 이렇게 묻자 양진은 무슨 소리냐는 듯한 얼굴로 그의 손에서 검을 빼앗아 다시 풀어 슴베를 살펴보더니 말했다.

“백록(白鹿) 이라는 말 밖에 없는데 왜 그러는 거요!”

양진이 이렇게 말하자 막우가 슴베 반대쪽을 보여주며 말했다.

“독지 삼년(三年)? 이게 뭐가 어쨌다는 거야?”

양진이 이렇게 묻자 막우가 턱을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원래 슴베에는 만든 이의 이름과 날짜 같은 게 적히는 법인데 이 검에는 만든 이 이름은 없고 독지 삼년이라고 이상한 날짜만 적혀 있어서 그런 거다.”

“백록이 만든 사람 이름 인가 보지, 아! 그러고 보니 이 검 이름이 백록이라고 그랬었지!”

“만든 이 이름 대신에 검 이름이 적혀 있는 거로구만 그럼 이 독지 삼년은 뭐야? 독지 산에서 현제 삼년에 만들었다는 건가?”
막우가 이렇게 묻자 양진이 음 하고 뭔가 고심하는 듯 하더니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그게 도대체 어쨌다는 거야! 이 노인네야. 그런걸 알아서 뭐할려고?”

양진이 이렇게 소리치자 막우가 날카로운 눈으로 양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 놈 혓바닥 놀리는 꼬락서니 하고는…….흠!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검을 본적이 있어서 그런 거야! 그 검에는 자사(紫蛇)라는 이름과 비령 사년이라고 적혀 있었거든!”

“자사?”

막우의 말에 양진이 뜻밖이라는 듯 이렇게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보던 막우는 자사와 백록이라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다가 알 수 없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양진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쉬고 가자!”

“뭐야 사람 궁금하게 만들더니 그만 둔건가?”

막우가 일어서자 양진도 따라 일어나며 이렇게 말했다. 그 모습에 막우가 입가에 미소를 흘리면서 양진에게 이야기 했다.

“잘은 모르지만 그 백록이라는 검하고 자사가 관계가 있는 것 같으니까 조심해! 예전에 내가 쓰던 자사라는 놈은 요물이었거든!”

“요물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양진이 이렇게 되묻자 막우가 허허거리더니 양진 허리의 백록이란 검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알려주지!”

막우가 이렇게 말하자 양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양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분 괴상하게 만드는 노인네 구만!”

양진은 이렇게 말하더니 길을 재촉했고 막우도 그 뒤를 따르며 백록이란 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백록이라. 어쩌면 해를 끼치지 않을 수도 있는 건가? 자사야 그 성질이 워낙 차갑고 어두웠지만 저 검은 그런 것 같지는 않으니……’

산자락을 다 내려오기까지 막우는 백록이란 검 생각에 빠져 있었다.

허연 눈밭이 점차 사라지고 땅에 푸른빛이 돌기 시작할 즈음에는 해가 저물어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지만 두 사람은 멈추지 않았다. 눈 쌓인 산을 벋어 났지만 야영을 하기에는 추운 날씨였다. 양진의 뒤를 따르던 막우는 땀에 흠뻑 젖은 천조각을 벗어버렸다. 땀 때문인지 눈이 따갑기도 했지만 날이 어두워지자 앞이 잘 안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바람이 가라앉고 키 작은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양진이 멈추어 뒤따라오던 막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만 더 가면 쉴 만한 곳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은 괜찮소?”

양진의 목소리가 꽤 차분해 진 것을 느끼고는 막우가 양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 놈! 이제 좀 제정신이 돌아온 건가?’

막우는 이렇게 생각하며 멈춰선 양진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날을 새며 걸어도 상관없으니 걱정하지 마.”

그 말에 양진은 다시 걷기 시작하더니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런데 어쩌다 그런 곳에 갇힌거요?”

“응?”

막우가 양진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이렇게 되묻자 그제서야 고개를 돌리고 다시 물었다.

“어쩌다 거기 갇히게 된 거냐고 물었소.”

“너는 왜 갇혔냐?”

양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막우가 이렇게 받아쳤다. 그러자 양진이 조용히 옛일을 되새기는 듯 하더니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의 현제가 즉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버지와 나는 연한이 어떤 더러운 술책을 꾀하고 있다고 생각했소. 권좌 세습을 막기 위해 뭉쳤던 영주들의 수장이 그 세습을 주장하고 양제의 나이어린 아들을 황제로 내세운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지. 게다가 양제 사후에 세상사람 모두가 연한이 권좌에 앉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때에 말이오.”

뒤따르며 양진의 말을 듣던 막우는 그의 차분한 음성이 신기하게까지 느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괴상한 목소리로 정신 나간 소리를 연발하던 자가 저렇게 말하는 게 신기했던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앞으로 달려 나가 이야기 하는 양진의 얼굴이라도 확인하고 싶었지만 양진의 이야기가 계속 되자 그 생각도 사라져 버렸다.

“ 겉으로는 양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황제의 정해진 임기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연한이 어떤 속셈이 있다는 것은 알아챌 수 있었소.”

“속셈?”

막우는 도대체 연한이 무슨 이유로 현제를 내세웠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속셈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지 못했지만 양제의 신하였던 아버지는 연한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결국 아들인 나를 데리고 나서셨소……”

“그게 실패한 거로구만.”
막우가 양진의 말을 끊고 이렇게 말했다. 그 말에 양진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원래 나도 아버지와 함께 참수 되었어야 하지만 부자를 같이 참수 시키면 세인의 비난을 받을 것을 걱정했는지 그렇게 하지는 않았소. 황제와 내가 어린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목숨을 구하게 된 나는 유배지 대신 운하궁의 지하에 갇히게 된 거요.”

양진은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니 옛일이라도 생각이 났는지 초승달이 빛나고 있는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았다. 그 바람에 발걸음이 늦추어져 양진과 막우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결국 신하의 도리란 것을 실천하다가 그 모양이 된 거구만.”

막우가 이렇게 말하자 갑자기 양진이 큰소리로 웃어젖히더니 뒤로 획 고개를 돌리고 막우를 쏘아보며 말했다.

“맞아! 맞는 이야기야. 그래 그러는 노인네는 어쩌다 그 속에 갇혔지. 나보다 더 훨씬 오래전에 그 곳에 갇힌 것 같은데 말이야.”

마치 귀신같이 치켜 올라간 눈매에 범인이라면 금세 겁이라도 먹었겠지만 막우는 픽 웃으며 그의 옆으로 다가서더니 어깨를 한번 툭 치더니 말했다.

“나도 그 신하의 도리라는 것 때문에 그 곳에 갇혔거든….하하하하!”

뭐가 즐거운지 호쾌한 웃음소리로 한참을 웃던 막우가 자신을 노려보는 양진의 눈을 마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자네와 자네 아버지가 모시던 양제와 연한을 죽이려고 했다는 점이 다른 점이랄까.”

막우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촌구석 검사가 출세를 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 양제 즉위 이전 황제 세습을 꿈꾸던 주경황제에게는 그의 야심 만큼이나 많은 적들이 있었고 그 때문에 그 들에 대항할 검사들이 필요했지. 하지만 검사들이란게 원래 귀족이나 관하고는 거리가 먼 족속들이 아닌가. 덕분에 별다른 배경도 없던 나는 검 실력하나만으로 발탁되어 그 주경황제에 편에 서서 그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네.”

“썩은 나무에 둥지를 틀고, 시체를 밟아 자신의 영달을 꾀했다는 말이구만.”

막우의 말을 듣던 양진의 눈빛이 약간은 수그러 들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 말에 막우는 그 말이 맞다는 듯 웃더니 이야기를 계속했다.

“맞아! 그랬던 거지. 결국 그 썩은 나무가 뽑힐 때 까지도 나는 그 둥지를 떠나지 않고 연한과 양제를 죽이려고 하다 잡히게 된 거지. 계란으로 바위를 치더라도 그것이 검사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하고 말이지. 내가 검사라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황제의 개가 된놈이 결국 그 검사의 도리라는 것을 지키려고 하다 이 신세가 되다니 웃기는 일이지.”

막우는 이렇게 말하고서는 얼굴을 찌푸렸다. 옛일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그의 팔은 잘리고 남아 있지 않은데도 마치 아직도 달려 있는 것처럼 그 손끝이 아파오는 것 같았다.

양진은 막우의 말을 듣더니 대뜸 이렇게 이야기 했다.

“그럼 결국 우리는 적이면서 친구가 되는 거구만. 양제를 사이에 주고는 적이고 연한을 두고는 친구라. 재미있는 인연이군.”

“그렇게 되는구만.”

두 사람은 나란히 걸으며 큰소리로 같이 웃기 시작했다. 차가운 밤공기를 헤치고 울려퍼지는 두사람의 웃음소리는 다른 사람이 들었으면 귀신의 것이라고 여길만큼 음산한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지만 두사람에게는 뭔가 알수 없는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웃음소리였다.

아무 말 없이 웃으며 걷던 두 사람은 커다란 나무 밑에 다다르자 멈추어 섰다.

“여기서 쉬어갈 셈인가?”

멈춰선 막우가 양진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자 양진이 나무에 기대어 앉으며 말했다.

“하곡까지 가려면 여기에서 쉬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그 말에 막우도 그 옆에 따라 앉더니 이제 막 눈을 감은 양진을 깨우며 말했다.

“이대로 그냥 잘 테냐?”

막우의 물음에 양진이 눈에 매었던 천을 풀어헤치며 대뜸 소리쳤다.

“아니 그럼 그냥 자야지. 여기서 불이라도 피우자는 이야긴가? 불씨 하나 구할 수 없는 데서 불 피울 재주라도 가지고 있으쇼?”
양진이 귀찮은 노인네라는 듯 이렇게 다그치자 막우가 허허거리더니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며 내놓으며 말했다.

“어떤 놈이 불씨가 없다고 하더냐? 젊은 놈 성질하고는 쯧쯧.”

“이제 뭐요?”

양진이 막우가 꺼내놓은 물건을 바라보니 그것은 다음 아닌 부싯돌과 곱게 말린 종이였다. 양진이 그것을 보고 어디서 났느냐고 물으려고 하는데 그것을 눈치 챘는지 벌써 일어나 나뭇가지를 모으던 막우가 대답했다.

“옷 안쪽 주머니에 있더구먼. 그런데 불 정도는 피울 줄 알겠지?”

그 물음에 양진이 말린 종이를 한번 들추어보더니 일어나 막우 쪽으로 가며 말했다.

“팔 하나 보다는 두 팔로 모으는 게 빠를 테니 노인네는 가서 불이나 피우쇼. 나뭇가지는 내가 모으지”

양진의 말에 막우가 작게 웃음을 흘리더니 말했다.

“이 미친놈! 한 손으로 어떻게 불을 피우는가. 혹 정말 불도 못 피워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

막우가 이렇게 말하자 양진이 풀어헤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불 피워 본지 하도 오래돼서 잊어버렸나?”

그 모습에 막우가 소리 내서 웃더니 나무 밑으로 가서 부싯돌을 집어 들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귀한 집 아들이라 불이란 것을 피울 일이 없었겠구먼.”

막우는 이렇게 말하면 양진이 뭐라도 한마디 하겠구나 생각하고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양진은 나뭇가지만 주워 담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막우는 자리에 앉아 발로 부싯돌을 잡고는 한참을 씨름하다 겨우 불을 피우고는 아직도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 양진을 불렀다.

다행히 나뭇가지가 불에 바싹 말라 있어 불이 제법 커지자 막우가 두 손을 뻗어 불을 쬐고 있는 양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하곡에는 무슨 일로 가는 거냐?”

막우의 물음에 양진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하곡에 가서 사람을 만나라고 했거든.”

“만나라고 했다고? 누가 그랬다는 거냐?”

막우가 그의 짧은 대답에 이렇게 되묻자 양진이 짜증난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누구긴 누구야. 황제 놈이지!”

“뭐?”

황제라는 말에 막우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도와주었으니 저 강양진이란 자가 그 지하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것이 황제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막우가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양진이 갑자기 자신의 검을 뽑아 들고는 모닥불을 쑤시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막우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의 손에서 검을 빼앗아 들더니 말했다.

“ 아니 그래도 검사라는 자가 검을 불쏘시개로 쓰다니 ……”

그러자 양진이 다시 막우의 손에서 검을 빼앗더니 다시 검으로 모닥불을 들쑤시며 말했다.

“노인네 아직도 검사라는 이름에 미련이라도 남아 있나 보지?”

“음……. 아무리 그래도 그 따위 짓거리는 하지 않아.”

막우가 양진의 짓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 했지만 양진은 상관하지 않는 다는 듯 계속 하다 말했다.

“어차피 검이란 것은 도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그 말에 막우가 양진의 눈을 바라보았다. 광기가 가신 그의 눈을 바라보던 막우는 그의 눈빛이 검사답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분명 양진의 두 눈은 양진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막우가 아닌 것 같았다. 마치 막우의 뒤편에 자신의 과거라도 숨어 있는 듯 그의 눈은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진의 눈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던 막우가 나뭇가지로 불속에 들어가 있는 양진의 검을 꺼내 불 밖으로 내 놓으며 말했다.

“네 말대로 도구일 뿐이지만.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는 사람들로서는 그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지.”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다! 라……. 그 한치 앞 목숨도 알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끌어들인 것이 바로 이 물건이 아니던가?”

양진이 이렇게 말하고서는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막우가 양진의 손에서 검을 빼앗아 들더니 그것으로 양진의 목을 겨누더니 말했다.

“착 하고 손에 감기는 맛이 일품인 놈이야. 한 때였지만 난 말이지, 이 검이란 것의 목표란 결국 사람을 죽이는 거라고 생각했었지. 자 봐 이 검 날 끝을……”

막우는 이렇게 말하고서는 검 날을 눈으로 가리키더니 말을 계속 했다.

“이렇게 선 날에 검사들의 가치가 살아 있는 거야. 진정한 검사라면 어느 쪽에도 휩쓸리지 말고 그 검의 날이 있는 방향으로만 나가야 하는 거지. 삶이나 죽음 따위는 연연하지 말고 검 하나 만을 믿어야 하는 거야. 결국 그것이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한다고 해도 말이야.”
막우가 이렇게 말하자 양진이 픽하고 웃더니 검집을 허리에서 뽑아 검에 끼워 넣어 막우의 손에서 빼앗아 들고는 말했다.

“그래 그렇게 말하는 노인네는 그 검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살아왔나?”

양진의 말에 막우가 픽하고 웃더니 말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살지 못했지. 그래서 말이야.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살려고 마음먹었거든”

막우의 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뭐가 재미있는지 한참을 웃더니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잠이라도 들었는지 조용한 풀벌레 소리와 모닥불 타는 소리만이 두 사람을 감쌌다.

“자는가?”

누워 있던 막우가 몸을 일으키며 이렇게 말했지만 양진에게선 대답대신 코고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막우는 천천히 양진이 누워있는 옆으로 다가가 놓여 있던 백록이란 검을 집어 들더니 검을 뽑아 모닥불 빛에 살펴보았다. 그을음이 검 끝에 묻어 있는 것을 보고는 막우는 검을 무릎사이에 놓고 천천히 날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이런 검에 숯검정이 묻어 있는 꼴을 누군가 봤다면 아마 널 죽이려고 했을 거다.”

막우는 이렇게 말하고서는 누워서 잠에 곯아떨어진 양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알 수 없는 놈이라는 듯 웃더니 백록을 들고 한참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잠도 자지 않고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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