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육을 아는 자


2007년 1월 20일 by 김 승엽

살육을 아는 자

강 양진과 이 막우가 하곡에 들어선 것은 백형을 넘은지 닷새가 되는 날이었다. 양진이 옷차림에는 어울리지 않는 거들먹거리는 걸음걸이로 사람 눈길이라도 끌려는지 하곡 성문을 넘자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 하나가 두 사람을 수상하게 여겼는지 잡아 세우려 하다 눈에 천을 감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맹인이라 생각했는지 그만 두고 말았다. 양진의 팔에 달린 커다란 쇳덩이를 봤더라면 분명 세웠을 터였지만 막우가 몸으로 가린 덕분에 문지기의 눈을 피할 수가 있었다. 잠시 동안이지만 자신들을 주시하던 문지기의 눈초리를 눈치 챈 막우가 앞서가는 양진 옆으로 다가서면서 말했다.

“그렇게 거들먹거리고 걷다가는 길 가던 개도 한 번 더 쳐다볼 거다.”

막우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이 걸리는지 이렇게 말하자 양진이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고개를 돌려 천에 가려 보이지 않는 막우의 눈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개 말고 관병들이 좀 쳐다봐 줬으면 좋겠는데.”

양진이 이렇게 말하자 막우가 할 수 없는 놈이라는 듯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앞 장서 가던 양진이 무슨 생각인지 식당 한 곳으로 들어가 척하니 자리에 앉자 막우도 얼른 그의 뒤를 따라 그의 앞자리에 가서 앉았다.

“돈도 없는 놈이 어떻게 하려고 이런 곳에 들어오나?”

막우가 이렇게 말하자 양진이 번쩍 손을 들어 점원을 부르더니 말했다.

“여기 요기 할만 것 하고 술 좀 가져오게.”

양진이 이렇게 말하자 양진과 막우의 몰골을 훑어보던 점원이 주인 쪽을 한번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행색을 보아하니 둘 다 맹인 같은데다 먹고 돈도 제대로 낼 것 같지 않아 주인에게 내쫓을지를 묻는 것이었다.

두 사람을 맹인으로 생각했는지 이제 손짓까지 하는 점원을 바라보던 막우가 무슨 생각이냐는 듯 탁자 밑으로 양진을 살짝 걷어차자 갑자기 양진이 탁자위에 허리에 찼던 백록을 탁 소리가 나게 올려놓더니 말했다.

“계속 거기 서서 주인 눈치만 보고 있다가는 언제 네 놈 손이 달아날지……”

양진이 이렇게 말하자 점원이 깜짝 놀란 얼굴로 다시 주인을 바라보았다. 점원의 놀란 얼굴에 멀리 서서 바라보고 있던 주인은 탁자위에 올라온 검을 보고는 달려오더니 말했다.

“아이구 죄송합니다. 점원 놈이 몰라 뵙고 실수를 한 모양입니다.”

주인이 달려와 굽실거리자 옆에 서 있던 점원도 주인을 따라 굽실거리기 시작했다. 양진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짐짓 화가 누그러진 듯 탁자 위에 올려놓은 백록을 내려놓더니 말했다.

“주인장은 말이 좀 통하는구먼. 어서 가져오게.”

양진의 말에 주인이 점원을 데리고 사라졌고 고개를 돌려 주인과 점원을 바라보던 막우가 양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말 그대로 강도짓이구만”

막우의 말에 양진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굶어 죽을 지도 모르는데 강도짓이라도 해야지.”

양진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지만 막우는 저 주인이 그대로 밖으로 나가 관병들에게 알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계속 고개를 돌려 점원과 주인을 살폈다. 하지만 막우의 생각이 지나쳤는지 주인은 그대로 자리에 돌아가 있었고 잠시 후 점원이 음식과 술을 가지고 왔다.

점원이 음식을 놓고 가자 양진은 기다렸다는 듯 술을 들어 잔에 따르지도 않고 병채 들어 들이키더니 막우에게 술병을 건네더니 말했다.

“오랜만의 술이라 그런지 목을 넘어가면서 취하는 것 같구만.”

막우는 양진이 건넨 술병을 받아 잔에 한잔 따라 마시고는 젓가락을 들어 점원이 내온 수육을 한 젓가락 집어 들었다. 막우가 젓가락을 들고 천천히 먹는 것과는 달리 양진은 마치 걸신이라도 들린 듯 맨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입가에 묻은 고기 기름을 손등으로 훔치더니 저쪽에서 탁자를 정리하고 있던 점원을 불렀다.

양진의 손짓에 점원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자 양진은 대 뜸 점원의 목덜미를 잡아끌더니 귓가에 대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주변에서 이 세향이나 양 조웅이란 이름을 들어 본적이 있느냐?”

어찌나 강한 힘으로 목덜미를 잡았는지 점원이 겁에 잔뜩 질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앞에서 보고 있던 막우가 손을 뻗어 점원의 목을 잡고 있는 양진의 손을 풀었다. 양진의 손이 풀리자 점원이 자신의 목덜미를 주무르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더니 말했다.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 그렇군.”
양진이 이렇게 말하고는 손짓으로 점원을 다시 보내고서는 탁자위의 술병을 들어 한 모금 들이키고는 말했다.

“어떻게 찾는다. 이세향 , 양조웅이라. 양조웅이란 이름은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으니 이것을 어떻게 한다? 벽에다 벽보라도 붙여야 하는 건가?”

혼잣말을 하듯 양진이 이렇게 중얼거리자 아무 말 없이 음식을 먹고 있던 막우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래 그 두 사람을 찾아야 하는 건가?”

막우의 말에 양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뭐 별로 찾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계속 이렇게 강도짓을 하면서 다닐 수도 없을 것 같아서 그런 것뿐이지.”

“그도 그렇구먼.”

양진의 말에 막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때 누군가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기척을 느끼고는 막우가 고개를 돌렸다.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네 명의 사내가 막우와 양진이 앉은 쪽을 잠시 훑어보더니 그대로 주인에게 다가갔고 그들이 오자 주인이 눈짓으로 두 사람 쪽을 가리키며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그들에게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자신들을 향한 눈빛에 막우가 고개를 돌려 양진을 바라보았으나 양진은 그 들의 눈빛 같은 것은 눈치 채지 못했는지 술만 들이켜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막우가 술병을 잡아 들이키고 있는 양진의 손을 잡는데 어느 틈에 다가왔는지 네 명중 하나가 막우 쪽으로 다가와 말했다.

“꽤나 거친 양반들이라는데 음식값은 가지고들 계시겠지.”

“그런 것 가지고 있지 않은데 어쩌지”

막우가 뭐라 하기도 전에 양진이 사내를 향해 말했다.

“오호라. 무전취식이라도 하시겠다. 우리가 이 곳을 보호해주는 댓가를 받는 이상 당신들을 그냥 둘 수는 없지.”

사내는 말을 마치고서는 뒤로 한걸음 물러서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더니 말했다.

“검을 차고 있는 것을 보니 검사인 것 같은데 순순히 돈을 낼 테냐 아니면 우리들과 겨루어 볼 테냐?”

사내의 말에 양진이 큰소리로 웃더니 막우를 보며 말했다.

“빌붙어 먹고 사는 주제에 주둥아리는 살았구먼. 그렇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내의 검이 양진의 목 쪽으로 날아들었지만 양진의 팔에 달린 쇳덩이에 막혀 짧은 떨림 만을 남기고 뒤로 물러섰다.

사내의 선공에 막우가 뒤로 물러났고 양진이 검을 들고 일어서더니 뒤에 서 있던 나머지 세 명의 검사를 향해 소리쳤다.

“그래 너희들도 검사들이냐?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뽑아봐라.”

순식간에 둘러싸인 양진이 재미있다는 듯한 얼굴로 네 명의 검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긴 무전취식하는 나나 빌붙어 먹고사는 너희들이나 다를 바 없지만 나는 내게 검을 들이댄 놈들을 그냥 보내지는 않거든.”

양진이 이렇게 이야기하자 뒤 쪽에 서서 바라보고 있던 막우가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내뱉었다.

“미친놈을 건드렸구먼.”

그 말이 신호가 되기라도 한 듯 양진을 둘러싸고 있던 네 명중 오른쪽 끝에 있던 사내가 기합소리와 함께 양우의 가슴 쪽으로 검을 찔러 들어왔다. 양진은 몸을 돌려 검을 피하며 앞쪽으로 나온 사내의 오른 발등을 찍은 채 팔에 매달린 쇳덩이로 얼굴을 세게 후려쳤다. 발등이 검에 꿰뚫린 채 얼굴을 얻어맞은 사내는 그대로 뒤로 고꾸라졌는데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코언저리가 뭉개져 마치 코가 없어진 것처럼 보였다.
바닥에 넘어져 온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던 세 명의 검사가 그 모습에 놀랐는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양진은 쓰러진 검사를 흘깃 쳐다보더니 발 등에 박혀 있던 검을 뽑아 사내의 가슴에 가져가더니 말했다.

“죽은 건가?”

그 말과 함께 검이 사내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떨고 있던 사내의 몸이 멈추자 양진이 검을 뽑아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세 명의 검사를 향해 말했다.

“너희들도 이 정도인건 아니지? 그래 가지고서는 빌붙어 먹고 사는 것도 힘들겠는데.”

양진의 말에 쓰러진 동료를 바라보며 양진에게 검을 겨누고 있던 검사 하나가 양진의 오른쪽 어깨를 세로로 베어 들어왔다. 자신의 어깨를 노리고 날아오는 검을 양진은 옆으로 밀어내 흘리고는 사내의 이마 한가운데 검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마치 머리에 자국만을 남기려는 듯 양진의 검은 머리를 꿰뚫지 않고 작은 상처만을 남겼다.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남자는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멈춰서 버렸다. 양진은 이마에 닿았던 검을 거두면서 뒤로 물러서 말했다.

“재미없다”

그 말에 남은 두 명의 검사가 자신들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아직도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는 사내의 양쪽 팔을 잡고 물러서면서 소리쳤다.

“네 놈 가만두지 않겠다.”

그리고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식당을 나가자 양진이 그들의 뒤에다 대고 소리쳤다.

“그래 좀 재미있는 놈을 데리고 와라!”

양진은 이렇게 말하고 미친 듯 웃어대더니 저 쪽 구석에서 겁에 질린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주인과 점원을 향해 이리오라는 듯 손짓을 보내며 말했다.

“거기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이 시체나 치우지 그래. 먹는데 이런 흉물스러운 게 있으면 밥맛 떨어지잖아.”

양진은 이렇게 말하고서는 자리에 가 앉자 막우가 걸어와 시체를 한 번 훑어보더니 말했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잘도 죽이는구먼. 자비나 인내 같은 말은 잃어버리기라도 한 모양이지.”

하지만 양진은 막우의 말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술만 들이켜고 있었다. 술 한 병을 다 마셨는지 탁자위에 술병을 턱하고 내려놓은 양진은 죽은 검사의 시체를 끌고 나가는 주인과 점원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술이 떨어졌으니 술 좀 더 가져오게”

양진의 말에 시체를 끌고 나가던 점원이 고개를 굽실거리며 대답했다.

시체를 한 곳으로 치운 점원이 술병을 들고 양진에게 왔을 즈음 식당 입구가 시끄러워지더니 열 댓 명의 사내가 들어섰다. 그들이 들어서자 막우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멀찍이 물러서면서 양진에게 말했다.

“네가 바라는 대로 재미있는 놈이 온 것 같다.”

“응?”

막우의 말에 양진이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묻다가 식당 입구 쪽에 몰려서 있는 사내들을 발견하고는 픽 웃으며 말했다.

“배 좀 채우려다가 시체만 쌓겠군!”

양진은 이렇게 말하고서는 손으로 탁자위의 고기를 한 움큼 집어 들어 입안 가득 우겨 넣더니 백록을 들고 사내들 쪽으로 걸어갔다. 양진이 걸어오자 기다렸다는 듯 맨 앞에 서 있던 사내가 손가락으로 양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우리 아이들을 건드린 게 네놈이냐?”

사내의 거친 목소리를 들으며 떡 하니 앞에선 양진은 남자의 옷차림과 허리에 찬 검을 살펴보는 듯하더니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빌붙어 사는 놈이 옷차림 하난 거창하구나.”

“뭣이!”

양진의 말에 사내가 검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양진은 검을 뽑지도 않고 사내를 바라보고 있다가 턱을 만지면서 말했다.

“네 놈 하나로 되겠나. 이 왕 떼로 몰려 왔으니 한꺼번에 덤벼보시지.”

양진의 말에 사내가 더 이상 참기 힘들었는지 검을 날렸다. 비어있는 양진의 가슴을 향해 바람소리와 함께 내려오는 검을 양진은 슬쩍 뒤로 물러나 피했고, 피할 것을 예감했는지 사내의 검은 바로 방향을 바꾸어 양진의 왼쪽 허리로 찔러 들어왔다. 양진은 검도 뽑지 않은 채 몸을 틀어 찔러 들어오는 사내의 검을 피하더니 몸을 되돌리며 발검과 함께 앞에선 사내의 허리를 쳤다. 양진의 검이 사내의 몸에 잠긴 듯 멈추더니 사내의 입에서 바람이 새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양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검을 당겨 사내의 몸에서 빼냄과 동시에 사내의 목을 가볍게 그었다. 순간 사내의 몸이 뒤로 쓰러지더니 목에서 품어져 나온 피가 뒤에 서있던 검사들의 얼굴에 흩뿌려졌다.

얼굴에 뜨거운 피를 뒤집어쓴 검사들이 순간 검을 뽑아 들며 양진을 향해 공격해 들어왔다. 양진은 자신의 온몸을 향해 쏟아지는 공격을 팔에 매달린 쇳덩이로 흘려내면서 자신의 옆구리를 향해 공격해 들어오는 사내의 가슴에 검을 꽂았다. 가슴뼈 사이를 살짝 스치며 꽂혔는지 손끝에 뼈가 긁히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양진은 괴상한 미소를 흘렸다. 양진은 자신의 쪽으로 쓰러지는 사내의 멱살을 잡아 앞에선 검사들에게 집어 던지며 뒤로 물러서면서 소리쳤다.

“제대로 된 놈은 없구만.”

두 명의 동료를 잃은 사내들이 양진의 목소리에 겁이라도 집어 먹었는지 슬금슬금 물러서는데 순간 뒤 쪽에서 카랑 카랑한 목소리가 그들의 발걸음을 막았다.

“저 놈 하나를 죽이지 못하고 물러설 테냐?”

그 목소리에 도망치려던 사람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있는데 그들 사이를 뚫고 카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인 듯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 이제 막 스물이 넘었을 듯해 보이는 젊은 여자가 땋아 내린 머리를 어깨 뒤로 넘기며 무리 앞에 서더니 양진을 향해 말했다.

“무슨 이유로 우리에게 검을 들이대는 거냐?”

여자의 말을 듣고 있던 양진은 재미있다는 듯 여자를 훑어보다가 그녀의 허리에 검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검 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우두머리인가 보구나? 거 재미있겠는데.”

양진이 이렇게 말하고는 검 끝을 떨어뜨린 채 여자의 얼굴을 노려보자 검집을 잡고 있던 여자의 왼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멀찌감치 떨어져 양진을 바라보던 막우는 이제는 볼 것도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아 술을 따라 마시고 있었다.

“잔말 말고 물은 말에나 대답해라!”

양진의 빈정거리는 소리에 여자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그러고 보니 여자를 품어본지도 오래된 것 같은데…”

양진은 이렇게 말하면서 앞에선 여자의 알몸이라도 쳐다보는 듯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턱을 만지며 음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여자도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것을 알았는지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장식 삼아 달고 다니는 줄 알았더니 쓸 줄도 아는 모양이구만.”

검을 뽑아든 여자의 자세를 살펴보고는 양진이 이렇게 내뱉더니 바닥을 향하고 있던 검을 쳐들었다. 오른손만으로 검을 잡고 그 끝으로 여자의 가슴 한가운데를 겨누고 있던 양진은 자신의 머리 쪽을 노리는 여자의 검을 살짝 쳐내면서 앞으로 뻗은 여자의 오른팔을 살짝 베었다. 푸른 색 옷이 배어나온 피로 보라색으로 물들었지만 여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상처도 살피지 않고 다음 공격을 계속했다. 팔에서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지만 그게 오히려 여자의 전의를 불태우게 했는지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양진은 자신의 몸에 구멍이라도 내려는 듯 빠른 속도로 찔러 들어오는 여자의 검을 피하면서 왼손으로 잡고 있던 검 집으로 여자의 왼쪽 무릎을 안쪽으로부터 후려쳤다.
그 바람에 중심을 잃은 여자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가 재빨리 일어나려는 순간 양진의 검이 여자의 왼쪽 어깨를 찔렀다. 깊게 찌르지는 않았지만 통증이 심했는지 순간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뒤 쪽에 물러서 바라보고 있던 막우는 양진이 금세라도 끝낼 수 있는 싸움을 길게 끌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여자를 베는 것을 꺼려서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검을 잡은 손으로 왼쪽 어깨의 상처를 막고 있던 여자가 한 걸은 뒤로 물러서자 뒤쪽에 서 있던 검사들이 앞으로 튀어나와 양진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양진의 검이 움직여 오른쪽 끝에 있던 사내의 뺨을 꿰뚫고 들어갔다. 뺨을 꿰뚤린 사내가 검을 한손으로 잡고 왼손으로 뺨을 만지는 자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사내의 검을 아래에서 위로 쳐 떨어뜨리게 하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그 반동력으로 목을 쳤다. 완전히 베어지지 않고 목 한가운데 들어간 검을 그대로 밀어 뒤에 있는 사내의 눈을 찌른 양진은 그 상태에서 검을 한번 비틀어 빼낸 양진은 자신의 왼쪽 허리를 노리는 검을 쇳덩이로 막아 흘리고는 몸을 움직여 왼쪽 어깨로 상대의 몸을 강하게 밀쳤다. 그리고선 어깨에 밀려 나가떨어진 상대의 정강이를 밟아 부러뜨리고는 자신의 뒤쪽으로 다가서는 검사의 검을 피하며 상대의 겨드랑이를 검으로 쳐올렸다. 팔이 잘리지는 않았지만 상처를 깊게 입은 상대가 팔에 힘을 잃고 검을 떨어뜨리자 가슴을 세로로 베고는 검 자루로 얼굴을 후려쳐 쓰러뜨렸다.

술을 마시다 양진이 싸우는 모습을 돌아본 막우는 많은 수의 적을 상대하는 그의 움직임이 남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먼저 공격하지 않고 상대의 선공을 기다렸다 흘려내고는 공격하는 것이 마치 전장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본능적으로 피하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움직임. 하지만 거기에 살인을 즐기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조금은 다른 점이었다. 전장의 긴장이 보이지 않는 것이 신기한 일이라고 막우는 생각했다.

양진은 자루에 맞고 쓰러진 남자를 넘으며 자신의 왼쪽 어깨를 내려치는 검사의 검을 맞받아쳤다 자신의 공격이 막히자 상대의 오른발이 양진의 명치를 노리고 날아들었지만 양진은 왼손으로 발목을 잡고는 밀어냈다. 중심을 잃고 상대가 쓰러지자 그 모습이 웃기기라도 한 듯 양진이 픽하고 웃었다. 넘어졌던 검사가 일어나 자세를 다시 잡는 순간 양진은 자신의 오른쪽에서 공격해 오는 검사의 허리를 검으로 돌려쳐 쓰러뜨리고는 막 일어나 양진의 다리를 찔러 들어오는 검사의 정수리를 검으로 내리쳤다. 머리가 깨진 것처럼 둔탁한 소리를 내며 상대가 쓰러지자 양진이 쓰러진 시체를 넘으며 남은 검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시간 끌지 말고 한꺼번에 공격해라.”

하지만 그 말에 오히려 검사들이 뒤로 물러서자 양진이 웃으며 말했다.

“처음의 기세는 다 사라진 건가? 이제 좀 재미있어지려고 하는데.”

그 말에 상처 입은 어깨를 누르며 뒤에 물러서 있던 여검사가 앞으로 내딛으며 양진의 팔을 자를 듯 베어 들어왔다. 매우 빠른 공격이었지만 양진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여 검사의 검을 쇳덩이로 막으며 양진의 검이 여검사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여검사의 목을 꿰뚫을줄 알았던 검은 살짝 닿기만 할뿐 더 움직이지 않았고 그 바람에 여검사가 옆으로 검을 쳐내고는 다시 뒤로 물러설 수 있었다. 목이 살짝 찔렸는지 피가 묻어 나오자 여 검사의 눈이 양진의 눈을 노려보았다. 잠시 그 녀의 눈을 마주보던 양진은 뒤 쪽에 서있던 검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자를 앞세우고 너희들은 그 뒤에 숨을 생각이냐?”

양진의 말에 뒤에 서있던 검사들이 앞으로 나서려하자 여검사가 그들을 막으며 말했다.

“나나 너희들이 나서봤자 희생만 늘 뿐이다.”

그 말을 들은 양진이 검에 묻은 피를 가볍게 털어내고는 실망했다는 표정이 되어 말했다.

“뭐야 도망이라도 치겠다는 말인가? 그 좋던 기세는 다 어디간거지.”

그러자 여 검사가 옆에 있던 사내에게 뭐라 귓속말을 했고 무슨 이야기였는지 말을 들은 검사가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른 놈들을 더 불러오라고 한건가?”

양진이 이렇게 묻자 여검사가 입술을 씰룩거리는 듯 하더니 말했다.

“네 놈에게 걸맞은 상대를 불러오라고 한 것 뿐이다.”

“나에게 걸 맞는 상대라 그런 놈이 있을 리가 없는데……”

양진은 이렇게 말하고는 뭐가 재미있는지 큰소리로 껄껄대며 웃다가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너희들도 그 놈이 올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소리 겠군. 그럼 나도 그 걸맞은 상대를 같이 기다려 볼까.”

양진이 몸을 돌려 자리에 돌아와 앉자 술잔을 들이키던 막우가 말했다.

“꽤나 요란하게 밥을 먹는군.”

“재미있는 것이 있을 때는 놀면서 먹기도 하거든”

양진이 이렇게 말하고는 술병을 집어 들자 막우가 그의 눈을 잠시 바라보았다. 제정신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려고 했던 것일까 양진의 눈을 주시하던 막우는 젓가락으로 고기 한점을 집어 들고는 말했다.

“여자는 왜 죽이지 않았지?”

막우의 말에 양진이 술병을 탁자에 내려 놓더니 말했다.

“여기서 죽여 버리면 더 재미있는 상대가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더 재미있는 상대라 정말 그 이유뿐인가?”

막우가 이렇게 말하고는 집어들은 고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양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막우의 뒤쪽에 검사들과 함께 서있는 여자를 바라보더니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 여동생이 살아있으면 저 정도 나이가 되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한참 후에 새어나온 양진의 말에 막우가 그런 건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전쟁터에서 싸우는 것처럼 날 뛰더니 그 이유 때문에 죽이지 않았다고 참 웃기는 놈이란 말이야. 너란 놈은. 그래 다음 상대를 베고 난 뒤에도 저 여검사는 살려둘 생각이냐?”

그 말에 양진이 다시 한번 여검사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전장에서 만난 적을 살려 준다는 건 웃기는 일이겠지?”

막우는 순간 양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가 미쳐서 그런 건지 아니면 오랫동안 갇혀 지내 그의 성품이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 막우는 아무 말 없이 양진을 바라보다가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탁자에 마주 앉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술을 마시고 있는 두 사람과는 달리 입구 쪽에 모여 있던 검사들은 죽은 동료의 시체를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가끔 고통 섞인 신음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양진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 두 번째 가져온 술병이 비어갈 무렵 양진이 점원을 부르려고 고개를 돌리는데 마침 식당 문이 소리를 내며 남자 하나가 식당으로 걸어 들어갔다. 흰머리가 섞인 머리를 곱게 넘기고 갈색으로 염색한 삼베옷을 입은 삼십대 중반 정도의 남자를 바라보던 양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그래 내 상대가 당신인가?”

양진이 물었지만 남자는 양진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옆에 있는 여검사에게 말했다.

“왜 날 부른 거지?”

남자의 물음에 여자가 눈으로 양진을 가리키고는 말했다.

“저 자에게 당했습니다.”

그 말에 남자는 자신의 허리에 찬 검을 왼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하긴 그런 일이 아니면 날 부르지도 않았겠지”

남자는 이렇게 말하더니 양진 쪽으로 다가와 마주섰다. 남자를 주시하고 있던 양진은 남자의 걸음걸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검을 잡았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헤치고 양진 앞에 선 남자는 주위의 시체들을 한번 훑어보더니 말했다.

“아무리 실력이 형편없는 자들 이라곤 하지만 이건 너무 하구만.”

남자의 말에 양진이 앞쪽에 있던 시체의 팔을 발로 치우며 말했다.

“저런 놈들에게 팔린 걸 봐서는 별 기대는 되지 않는데……”

양진의 말에 남자는 씩하고 미소를 짓더니 검을 뽑았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똑바로 선채 검만 뽑아든 남자를 바라보며 양진도 검을 뽑았다. 양진이 검을 뽑음과 동시에 남자가 앞 쪽으로 뛰어들며 양진의 목 쪽으로 검을 날렸다. 양진이 그 검을 옆으로 피하며 앞으로 나온 남자의 팔을 베려는데 어느 틈에 남자의 발이 양진의 무릎을 걷어찼다.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자세를 잡느라 남자의 팔을 베지 못하고 양진이 뒤로 물러서자 검이 이번에는 양진의 가슴 쪽으로 파고들었다. 너무 빨라 양진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팔에 매달린 쇳덩이로 진로를 가로 막자 검이 옆으로 살짝 비켜가며 양진의 옷자락을 찔렀다 빠졌다.

“어때 이 정도면 당신 상대가 될 만한가?”

남자가 뒤 쪽으로 두어 걸음 빠져 이렇게 묻자 양진이 미소 지은 얼굴로 대답했다.

“확실히 기다린 보람은 있는데.”

양진은 이렇게 말하고 옷자락에 뚫린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보았다. 그리고 검을 세워 잡는가 싶더니 어느새 남자 쪽으로 뛰어올라 남자의 목을 가로로 베었다. 양진의 공격을 남자는 검으로 막으며 피하는 듯하더니 옆에 있던 긴 의자 한쪽을 발로 걷어차 양진 쪽으로 날렸다. 얼굴 쪽으로 긴 의자가 쓰러지는 것을 양진이 쳐내고 남자의 가슴을 베기 위해 앞으로 나섰을 때는 남자의 검이 벌써 양진의 눈을 노리고 날아들고 있었다. 양진이 급히 몸을 틀어 남자의 검을 피하고 그 반동으로 비어있는 남자의 허리를 베려고 검을 날렸는데 남자의 왼손에 들려있던 검 집에 막히고 말았다.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양진의 어깨 쪽으로 검을 내리쳤는데 양진의 어깨에 닿으려는 찰라 양진의 팔에 매달린 쇳덩이에 막아 공허한 소리를 내고는 튕겨져 나갔고 서로의 공격이 막힌 두 남자는 두 걸음씩 물러섰다.

“술을 좀 마신 모양이군. 숨을 내쉴 때 술 냄새가 풍겨오는게.”

“그나저나 저런 놈들에게 팔리기엔 아까운 실력인데.”

남자와 양진의 싸움을 바라보던 막우가 이렇게 말하자 남자가 뒤쪽에 서있는 여검사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저 노인도 죽여야 하는 건가?”

마치 귀찮을 일거리가 늘게 될 것을 걱정하는 듯한 사내의 목소리에 막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부디 늙은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으면 좋겠군.”

남자는 여검사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럼 다시 시작해볼까”

이번에는 검을 두 손으로 잡고 다리를 벌린 채 떡 버티고 선남자는 마치 이번에는 끝장을 내겠다는 듯한 눈빛으로 양진을 노려보았다. 그 에 비해 양진의 자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한 손으로 검을 잡고는 어서 공격해 보라는 듯 여유 있는 얼굴로 서 있는 것이 남자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남자의 오른발이 앞으로 나오는 것을 신호로 양진의 검 날이 옆으로 눕더니 위로 쳐 올려졌다. 남자의 손목을 쳐올리는 것처럼 보이던 검이 방향을 바꾸어 남자의 가슴을 향했을 때는 남자의 몸이 옆으로 틀어지며 양진의 어깨를 공격했다. 하지만 어깨를 노린 것이 허수였는지 금세 뒤쪽으로 빠지더니 남자의 오른발이 자세가 낮아진 양진의 턱을 노리고 날라들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발이 양진의 턱에 적중했지만 양진은 꿈쩍도 하지 않고 남자의 왼쪽 허벅지를 찔렀다. 뼈를 피해 근육사이에 검이 박히자 남자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오더니 허벅지 뒤쪽으로 빠져나온 검을 맨손으로 움켜쥐고는 양진의 목을 향해 검을 날렸다. 남자의 허벅다리에 박힌 검을 미처 빼지 못한 양진은 팔의 쇳덩이로 검을 쳐내더니 남자의 왼쪽 발등을 세게 밟고는 검을 뽑아냈다.

“큭”

검이 허벅지에서 빠져나가자 남자의 일그러진 입가로 고통이 내비쳤다. 하지만 남자는 피가 흐르는 허벅지에서 손을 떼고 검을 두 손으로 잡고 섰다. 검 날을 잡고 있던 손에서 피가 흘러 팔꿈치에서 방울이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일순의 정지, 마치 두 사람은 그렇게 그 자리에 멈추어서 움직이지 않는 동상 같았다. 살의와 살의가 맞부딪쳐 금방이라도 그 안을 일그러뜨릴 것처럼 춤추었지만 두 사람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흐르는 것 같았다.

“전쟁에 나갔었나 보군.”

남자의 팔꿈치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을 바라보며 양진이 말했다.

“맨 손으로 검을 잡았다고 그렇게 생각한 건가?”

“꼭 그렇지만은 않아. 나랑 비슷한 것 같아서 물어본 것뿐이야.”

자신과 그가 비슷하다는 말에 남자가 웃음을 뗬다. 하지만 어느새 그의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남자가 크게 숨을 들이키는 것 같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당신 이름을 듣고 싶군.”

“내가 이기게 되면 알려주지.”

양진이 웃으며 말하자 남자가 검 끝을 세우며 말했다.

“당신이 이길 것 같아서 물어본 거야.”

말을 마치고는 남자가 앞으로 뛰어들며 양진의 머리를 치려는 듯 검을 쳐들었다. 그리고 남자의 검이 양진의 머리를 치려는 순간 검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멈추었다. 어느새 양진의 검이 남자의 오른쪽 가슴을 깊게 꿰뚫고 있었다. 남자의 품에 안긴 듯 파고들어간 양진은 남자에게만 들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양진. 내 이름이다.”

양진의 말에 남자는 자신의 예감이 맞았다는 듯 웃으며 손에서 검을 떨어뜨렸다. 양진의 등 뒤로 검이 떨어지면서 맑고 가벼운 종소리가 울렸다. 양진이 검을 비틀지 않고 그대로 뽑아내어 뒤로 빠지자 남자는 오른손으로 상처를 잡으며 쓰러질 듯 뒤로 물러서더니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양진을 바라보았다.

“전쟁터에서 죽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 당신에게 죽으니 전쟁터에서 죽는 셈이 되는 건가.”

마지막 힘을 내어 말을 하는지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약해져 갔고 어느새 입가로 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그 상처로는 죽지 않아.”

양진이 검에 묻은 피를 털어 검 집에 집어넣고는 말했다. 하지만 남자는 상처 입은 왼손을 흔들더니 잠시 고개를 숙여 피 섞인 기침을 내뱉고는 말했다.

“이대로 죽고 싶어. 어차피 미련 같은 건 없으니까.”

남자는 이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뒤로 젖혀 천정을 바라보았다.

“어서 이 남자를 의원에게 데리고 가라.”

남자를 바라보던 막우가 뒤 쪽에 서서 바라보고 있는 무리에게 소리쳤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고 여검사만이 천천히 다가와 그를 부축하려는 듯 팔을 잡았다. 하지만 남자는 그 손을 뿌리치고는 긴 탁자에 몸을 누이더니 말했다.

“어차피 돈에 팔린 몸이야. 너희들에게도 그 이상의 가치는 없을 텐데”

남자의 말에 여자가 다시 한번 그의 팔을 잡아끌었지만 그는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양진에게 말했다.

“마지막에 심장을 찔러 줬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그리고는 숨을 거두었는지 고개를 떨궜다. 양진은 잠시 남자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여검사를 향하며 물었다.

“이 남자 이름은 뭐지?”

“우리도 이름은 모른다. 단지 가끔 그의 실력이 필요할 때 돈을 주고 부를 뿐이지.”

여자가 차갑게 내뱉자 양진이 의자에 앉더니 말했다.

“아깝군. 그럼 이제는 어떻게 하지? 너희들과 이야기를 끝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양진의 말에 여자가 뒤 쪽의 검사들을 한 번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무릎이라도 꿇으란 말이냐?”

여검사는 이렇게 쏘아 붙이더니 다시 검을 뽑으려는 듯 검자루를 잡았다. 그러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막우가 들고 있던 젓가락을 자루를 잡고 있는 여검사의 손목을 향해 던졌다. 손목을 향해 날아간 젓가락은 여자의 손목에 맞고는 바닥에 떨어졌고 그 바람에 여자의 눈이 막우에게로 향하자 그가 입을 열었다.

“더 피가 흐르기 전에 늙은이가 나서야 겠군. 뭐 이런 일에 껴들만한 주변머리 같은 것은 없지만 지금은 저 죽은 사람들을 묻어 주는 게 급한 일인 것 같은데.”

“무슨 말이야. 저 놈들을 싹 죽여 버리고 나가면 그만이지.”

막우의 말에 양진이 이렇게 말하더니 벌떡 일어나 여 검사쪽 으로 다가서더니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검을 뽑으면 저 쪽에 서있는 놈들은 도망칠지도 몰라. 네가 죽어서 살릴만한 가치가 있는 놈들인가?”

양진의 말에 여 검사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이더니 검을 잡았던 손을 놓고는 말했다.

“어떻게 하자는 이야기냐?”

“패자치고는 꽤나 뻣뻣한데. 원래는 다 죽여 버릴 생각이었지만 그 쪽에서 고개를 숙여줬으니 나도 적당한 선에서 물러서 줄까”

양진은 이렇게 말하고는 뭔가 생각하는 듯 턱을 만지작거리더니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말했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해 보자고, 어쩌면 부탁해야 할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양진의 말에 여검사의 얼굴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 찌그러졌다. 하지만 이내 포기했는지 뒤 쪽에 서있는 검사들을 불러 시체를 치우게 하고는 양진과 막우가 앉아 있는 자리로 와 앉았다.

그 때까지 자리에 앉아 시체들을 바라보던 양진이 막우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돈에 팔린 자 치고는 괜찮은 실력이었어. 안 그래 늙은이?”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란 놈에게는 돈에 팔린 다는게 수치 스런 일인지 모르지만 저 남자도 나름대로 길을 찾은 것뿐이야. 뭐 스스로도 수치스럽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긴 하지만.”

막우가 막 들려나가고 있는 시체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 말에 양진이 흥하고 콧소리를 내더니 여검사에게 말했다.

“니 패거리들이 설치지 않았으면 아직 살아있을 사람인데 말야. 안그래”

양진의 비꼬는 말에 여검사가 양진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양진은 그것을 즐기는 듯 바라보더니 다시 말했다.

“십여 년만에 여자랑 눈을 맞춰보니까 기분 좋아지는데. 그나저나 너희들에게 부탁할 게 있어. 그 부탁을 꼭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돈이냐?”

양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검사가 물었다. 잠시라도 양진과 같이 있는 것이 기분 나쁜 듯 어서 빨리 이야기를 마치고 일어났으면 하는 눈치였다.

“돈도 좋긴 하지만 그것보다 사람을 먼저 찾아야 하거든.”

양진은 이렇게 말하며 퍼석한 머리를 한번 쓸어 넘기더니 말했다.

“이세향 과 양조웅이라는 사람들을 찾아줬으면 하는데 말야. 너희들 패거리라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양진의 말에 여검사가 알아들었다는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려준 대가치고는 너무 싼가? 도망친다거나 관에 신고할 생각 같은건 하지 말라구. 쉽게 잊거나 포기하는 성격은 아니니까.”

양진이 나가는 여검사의 뒤에 대고 이렇게 말하자 밖으로 걸어 나가던 그녀가 잠시 멈추어 섰다. 분함을 참는 듯 검을 잡고 있는 왼손에 힘을 주는 것 같더니 이내 밖으로 나갔다.

여검사가 무리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자마자 양진은 구석에 숨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식당 주인을 향해 손짓을 했다. 겁에 질려 슬금슬금 걸어나오는 주인에게 양진은 빈 술병을 가볍게 던지며 말했다.

“주인장이 마음에 들어서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가서 술이나 더 가져오지.”

양진이 던진 술병을 간신히 잡은 주인은 양진의 말에 굽실거리며 사라졌다.

“여기서 그 여자가 올 때 까지 기다릴 참인가? 아무래도 여기에 오래 머무는 것은 위험할 것 같은데 저 주인놈이 관에 신고를 할지도 모르고 말야.”

막우가 양진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 이렇게 묻자 양진이 씩 웃는 얼굴로 막우를 향하며 말했다.

“어디 갈 곳도 없고 여기 있는 편이 좋잖아. 공짜 술도 있고.”

양진은 이렇게 말하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막우는 양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곳에서 탈출하고 난뒤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지만 원래 성격인지 가끔씩 이상한 언동을 하는 양진이 불안하기만 했다.

그 사이 양진은 주인의 손에서 술병을 낚아채 들이키더니 주인의 어깨를 꽉 잡고서는 말했다.

“여기 묶을 방도 있겠지. 우리 두 사람 씻고 쉬어야 할 것 같은데 말야”

“예 있고 말굽쇼”

주인장의 말에 양진이 흡족한 듯 가볍게 그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돌려보냈다.

“사람 모양은 하고서 손님들을 맞아야 겠지!”

양진의 말에 막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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