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지브리


2007년 3월 5일 by 김 승엽

지브리 로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자존심 "스튜디오 지브리"

지브리(Ghibli)는 사하라 사막을 통해 불러오는 뜨거운 바람을 의미한다. 이 이름은 세계 2차대전동안 이탈리아 정찰기들에서 사용된 것으로 미야자끼는 비행기와 이탈리아를 좋아해 그것으로부터 스튜디오의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의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모노노케 히메 붉은 돼지
귀를 기울이면 추억은 방울방울 반딧불의 묘

미야자키 하야오와 언제나 함께 거론되는 것이 '스튜디오 지브리'이다. 100여명 남짓한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작은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미야자키를 비롯해 타카하타 이사오 등 유능한 크리에이터들이 몸담고 있는 곳이다. 1983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제작시 인재 모집 형태로 구성된 스탭이 중심이 되어 1985년 설립되었고, 1998년 7월에는 미야자키의 아틀리에 격인 '시니어 지브리(일명 돼지집)'도 세워 졌다. 타카하다와 미야자키의 양 감독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지브리는 2,3년에 한 작품씩 극장용 애니메이션 만을 제작하고 있다. 그러나 작은 회사 규모와 적은 작품 제작량에 비하여 그 명성은 세계적이다. 그것의 시발점은 1988년에 제작된 '이웃의 토토로'이다. 처음 공개 됐을 때는 크게 히트하지 않았지만 '토토로'라는 독창적인 캐릭터와 작품 전체에 흐르는 따뜻한 가족애는 마침내 일본은 점령하고 아시아, 유럽 그리고 애니메이션의 본 고장인 미국에 까지 그 인기를 이어갔다. 그후 1989년 '마녀의 특급 배달'을 시작으로 최근작인 '원령공주'까지 일련의 작품들이 일본내에서 모두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지브리란 이름은 세상에 각인 되었다. 특히 '붉은 돼지'(1992년)는 1993년 앙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발에서 장편 대상을 수상한 후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전역의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지브리라는 상표를 정착 시키는 데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와 같이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작품성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철저한 상업적 기획에 의하여 값싸게 만들어지는 일본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기획의 초점을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하는 작가의 창작 의욕에 맞추고 있가. 때문에 이전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기계로 취급 받던 애니메이터 들이 지브리에서는 명품을 만드는 장인(匠人)으로 대접 받는다.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고 흥행은 그 다음이라는 식이다. 이런 '작가 중심적 체제'는 영화의 흥행면에서 본다면 위험성이 매우 높지만, 수준있는 작품을 만들 때는 가장 효과적인 시스템이다.

또한 일반인이 봐도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는 이야기 내용과 매 편 지루하지 않은 다양한 소재는 그중 한 요소로 좋은 작품에 목말라 있던 시대의 요구와 부합하여 흥행에서 연승 행진을 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최고가 되면 세계에서 최고가 될수 있다'는 말 처럼 지브리는 일본에서의 확실한 자리매김 후 그것을 발판으로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의 두터운 벽을 깨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지브리는 미국내에서의 디즈니처럼 일본 내에서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하고 있다.유치원의 아이들은 소풍 날이나 운동회 날에는 토토로의 주제가를 애창하고 있느며 일본인이 좋아하는 영화 선정에서는 언제나 지브리의 작품들이 높은 순위에 올라있다. 또한 지브리의 캐릭터 상품이나 비디오테이프등은 이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필수 상품이 되어 있다. 이처럼 모든 일본일들은 지브리가 만든 작품을 좋아하고 일본의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작품의 흥행이라는 외적인 면 보다는"좋은 작품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지브리의 제작이념과 같은 내적인 면을 중요시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되풀이 할수 있겠다.

블록 버스터와 디지털로 변화한다.

1996년 디즈니와 업무 제휴를 맺으면서 전세계로부터 뜨거운 주목을 받았던 스튜디오 지브리에 대해 완벽한 배급망을 확보했다는 부러움과는 반대로 디즈니에 예속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어린 소문도 무성하였다. 그러나 후자의 걱정을 뒤로 한채 원령공주가 1997년 가을 홍콩과 대만의 세계 배급을 시작으로1998년 유럽과 미국 공개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지브리의 세계진출은 예상대로 성공을 거둘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발전적인 외부의 변화와는 달리 내부에서는 예상치 못한 변화가 있었다.그중 가장 큰 것은 콘도 요시후미의 죽음 이었다. 지브리의 차기 대표 주자로서 귀를 기울이면에서 작품적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었던 그가 원인 불명의 동맥파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원령 공주의 제작후 감독으로서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느끼고 현역에서 은퇴할 뜻을 내비쳤던 미야자키는 콘도라는 믿을 만한 후배에게 지브리를 맏기고 1998년 1월에 퇴사 한바 있다.

그러던 그에게 갑작스런 콘도의 죽음은 대단한 충격이었기 때문에 은퇴 번복이라는 해프닝을 연출하게 된 것이다. 미야자키는 다시 충전된 창작에 대한 열정과 토쿠마 회장의 권유가 활동재기의 이유라고 말하고 있지만 기둥을 잃어버린 지브리의 현 상황에서 그가 내린 어쩔수 없는 긴급 처방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결과론적일지는 모르겠지만 미야자키를 중심으로 시작된 지브리는 결국 미야자키가 끝까지 책임을 지게 될 것 같다.

미야자키의 차기작에 대해서는 원령공주에 비하여 모든 면에서 더 거대한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한다. 인구 폭증, 핵 문제들 세기말적인 내용을 다룰 것이라는 미야자키의 신작은 제작비도 30∼50억 엔에 달하고 디즈니와의 대폭적인 합작도 예상되고 있어 또다른 21세기 대작을 기대할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작 기술면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 이전 셀 애니메이션의 명가(名家)로 자신들의 아날로그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깊게 심어 주었던 지브리가 제작 공정에 있어서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헤이세이 너구리대전쟁 폼포코를 시작으로 귀를 기울이면On your mark에서 부분적으로 쓰였던 디지털 기술의 사용은 1995년 지브리 사내(社內)에 컴퓨터 그래픽 부서가 생기면서 본격화 되었다. 그 후 원령 공주에서 디지털 페인팅이나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등을 사용하여 셀기법과의 멋진 조화를 만들어 냈다. 특히 디지털 페인팅 분야에서는 색지정의 장인 야스다 미치요(保田道世)의 노력으로 셀에서 느껴지는 지브리 컬러를 컴퓨터 상에서 재현하는데 성공하여 제작중 가장 큰 난제를 해결 하였다. 디지털 기술에 대하여 그다지 신뢰하지 않던 미야자키도 원령 공주제작 때에는 "이 정도 규모의 셀 애니메이션은 이 작품이 마지막이 될것이다"라며 컴퓨터 그래픽의 역할을 대폭 인정하였고,"셀은 결국 공해 물질이다"라는 판단은 자연주의자인 그를 디지털화 추진에 있어서 적극적인 입장으로 돌아서게 하였다.

이처럼 규모의 블록버스터화와 작업의 디지털화는 세계진출을 위해서 스튜디오 지브리가 가지 않으면 안되는 길이 되었다. 그리고 "단 한번의 흥행 실패로도 우리는 망한다"는 위기의 식을 언제나 안고서 훌륭한 작품성을 펼쳐 보이겠다는 의지로 양질의 애니메이션을 계속적으로 만들어온 미야자키가 앞으로 이 새로운 방향에 얼마나 적응해나갈 것인가는 지브리의 앞날을 결정 짓는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이끄는 7인의 사무라이" 라는 책에서 많은 부분을 인용했고, 이 글을 쓴 이후로 다른 지브리의 작품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시류에 한참 벗어난 글이라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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