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in – 마녀, 여왕이 되다 #4
2008년 1월 7일 by 김 승엽 View blog reactions
소란이 가라앉고 다시 조그마한 잡담과 수근거림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권을 벗어난 수송선이 작게 요동쳤다. 그러자 앉아있던 중년의 남자가 일어서서 앞으로 걸어가 부대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있으니 내 소개부터 하지. 난 GPC 소속 사설 부대 폭스트롯 팀의 부대장 에릭 샌더스라고 한다.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은 용서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 죽어버리는 것은 용서할 수 없으니 이 점 잊지마라. 그리고 이번에 새로 감찰관 토마스 헤이든씨와 경호원 에린 가넷 양이 팀에 참가하게 됐으니 두 분께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나와 에린 가넷이라는 이름의 경호원을 가르키더니 말을 계속했다. 그러자 부대원 몇이 아까 뺨에 상처를 입은 남자와 경호원을 번갈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웃었고 금세 웃음이 전염되어 수송선 안이 시끄러워졌다.
“조용! 내가 손을 대면 닉처럼 뺨에 흠집 생기는 것 정도로 끝나지 않을 테니 확실히 하도록 해라. 그럼 지금부터 이번 작전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하겠다.”
말을 마치고 에릭이 주머니에서 CPC(전투지원컴퓨터)를 꺼내 들었고 동시에 부대원들도 베낭에서 CPC나 PDA 같은 것들을 꺼내들었다. 나는 아까 베낭 안에서 CPC를 본 것을 떠올려 그것을 찾았지만 쉽게 찾을 수 없어 잠시 애를 먹은 뒤에야 그것을 꺼낼 수 있었다. 화면에 어떠한 지역의 지도가 떠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브리핑이 시작됐다.
“이번 우리의 작전지역은 OTC에서 관리하는 계획 행성 OPP-0434 지역이다. 인류 이주를 위해 환경 시설들은 준비가 완료된 지역이지만 아직 세부적인 문제가 있어 민간인 이주는 이루어지지 않은 곳인데 최근 우리쪽 정보원이 그 지역에 불시착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즉, 이번 우리임무는 CSAR (Combat Search & Rescue: 전투수색구조)이지만 구조보다는 정보원이 가지고 있는 중요 문건에 대한 확보가 우선시 된다는 점을 기억해 두길 바란다. 주의해야 할 점은 그 문건을 탈취당한 쪽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OPP-0434 지역의 특수한 상황이 작전에 영향을 끼칠것으로 생각된다. OTC쪽으로부터의 방해와 유랑자들 같은 불청객들과의 전투가 예상된다.”
OTC라면 GPC와 적대적인 기업이었다. 이주행성을 개척하고 관리하는 두 개의 거대기업의 조용한 싸움이 시작되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 정보원은 OTC에서 어떠한 정보를 빼내 탈출하려다 발각되어 불시착한 것 같았다.
“잠시 뒤, 수송선이 대기권 밖의 하이퍼 게이트를 통과하면 OPP-0434까지 도착하는데 약 5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불시착지역 주변의 대공방어망을 피해 작전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착륙한 뒤 임시 기지를 구축하고 장비를 점검하는 것을 1시간 안에 처리해야 하니 지금 푹 쉬어놓도록 아마 이번에도 꽤 피곤한 임무가 될 것 같다. 이상!”
에릭이 이렇게 말하고 묘한 웃음을 짓자 다른 사내들도 뭐가 웃긴지 킥킥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부대장 에릭은 이렇게 브리핑을 마치고 내게로 걸어오더니 옆자리에 앉았다.
“쟈크에게 이야기들었습니다. 미리 이야기를 나누었어야 하는데 늦었군요.”
그는 생김새와 다르게 점잖은 어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토마스 헤이든이라고 합니다.”
내가 이름을 말하며 손을 내밀자 그가 악수를 하면서 말했다.
“전투 경험은 있으십니까?”
전투 경험에 대해 묻는 에릭의 눈이 조금 날카롭게 변한 것 같았다. 난 잠시 어떻게 말해야 할 지 고민했다. 군 복무 기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전장에서 보내긴 했지만 실제적인 전투를 치뤄본 것은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몇 번 경험해 봤습니다.”
결국 이렇게 대답하자 에릭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나타났다.
“다행이군요. 서류를 보니 불명예 퇴역 하셨던데, 무슨 일 때문이었습니까?”
제발 그것만은 물어보지 말았으면 하던 것을 묻자 그만 나는 굳어버렸다. 하지만 숨길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명령 불복종 때문이었습니다.”
“군대에선 용납되지 않는 일을 저지르셨군요.”
이렇게 말하는 에릭의 표정은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부하들 머리 위로 폭격을 지시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결국엔 부하들도 구하지 못하고 저도 이렇게 쫓겨나 버리고 말았지만 후회하진 않습니다.”
“뭐 그런 것은 크게 상관없습니다. 저희에게 중요한 것은 헤이든 씨가 전투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니까요. 전투 경험도 있으신 것 같고 직접적인 교전에 참여하진 않으실 테니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에릭은 이렇게 말하고는 일어서서 내 경호원인 에린 가넷이란 여자를 불렀다.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고 그녀 역시 고개를 숙여 답했다.
“이제 부터는 여기 있는 가넷양과 함께 움직이시는게 좋겠습니다. 가넷양도 저희와 일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두 분이라면 제가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 같군요. 그리고 전장에서는 씨나 양 같은 호칭은 생략할 겁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불쾌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그럼……”
에릭이 말을 마치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에린은 자신의 자리에 돌아가 베낭이며 무기 같은 것을 들고와 내 옆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자리에 앉자 마자 CPC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것 쓸 줄 알아?”
이미 이름을 알고 있긴 했지만 자기 소개도 하지 않고 대뜸 반말로 이렇게 묻는 그녀의 행동에 나는 약간 당황해서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좀 가르쳐 줘!”
“아! 네…”
어째서 경호원으로 고용된 사람이 CPC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뭔가 상황이 역전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난 그런 것을 내색하지 않고 CPC 화면을 그녀에게 보여주며 간단하게 조작법을 설명했다.
“이건 아직 보안 설정이 되어 있지 않군요. 원래 지문을 인식해 다른 사람은 사용할 수 없도록 되어 있거나 같은 부대원 들만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거든요. 자 일단 화면을 한번 두드리면 켜지고 인터페이스 화면이 나타나구요. 여기서 메뉴를 건드리면 각 메뉴 화면으로 이동하고 기본적으로 주위의 CPC 들과 동기화해서 각 대원들의 위치를 표시해 줍니다.”
내 설명을 듣고 있던 세린이란 여자는 화면을 쳐다보다가 흠 하는 콧소리를 내더니 내 손에서 CPC를 빼앗아 들고는 말했다.
“뭐 대단한 건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잖아.”
“폭발물에 신호를 보내거나 전투복에 장착된 센서로부터 정보를 받아 신체정보들을 수집하는 기능 같은 것도 있으니 전투에선 꼭 필요한 물건이지요. 그런데 이런 임무는 처음 맡으셨나보군요?”
“이런 임무?”
내 물음에 그녀가 한 쪽 눈을 살짝 치켜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경호 임무 말입니다.”
“아!”
내 말에 그녀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말했다.
“팀으로 움직이게 된 것은 처음이라서 이런 물건을 사용해 볼 일이 없었어. 그리고 경호도 사실 해 본적이 없고. 그러니까 당신 … 아 이름이 뭐랬지?”
“토마스 헤이든입니다.”
“아! 토마스 헤이든. 어쨌든 당신 크게 기대는 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씨익하고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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