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in – 마녀, 여왕이 되다 #10
2008년 5월 20일 by 김 승엽Tw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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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유용할지 모른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것을 문제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난 그냥 묵인하기로 했다. 다만 그것으로 이 귀찮은 포로의 처리를 그녀에게 떠 넘기기로 마음 먹었다.
“그 비밀을 지켜주는 대신 저 포로를 맡아줘.”
“자기가 저질러 놓고 내게 떠 넘기는 건가?”
에린은 이렇게 대답하긴 했지만 이미 자신의 장난감을 뺐기고 싶지 않았는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APC가 도착하자 1소대의 인원이 먼저 탑승해 출발했고 2소대가 남아 무인 정찰기를 작동시키고 통신 장비와의 연결 상태를 확인했다. 그 사이 에릭은 포로에게 혹시 남아 있는 이주민이 더 있는지와 연구시설에 대해 심문했다. 대부분의 질문에 침묵하던 포로는 연구시설에 대해서만은 입을 열었다. 그의 말로는 연구 시설의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상주하는 연구원이 십 여명이고 주 마다 수송선이 오간다는 것으로 보아 이 행성의 환경 유지 시스템을 관리하기 위한 연구 시설은 아닌 것 같았다. 인원 수도 너무 적었지만 수송선이 주 단위로 오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포로를 심문하고 나서 에릭은 1소대와 3소대에게 연구 시설에 침투에 안전을 확보하고 연구 시설 내에 정보원이나 문건의 수색을 명령했다. 그리고 중대 본부에 보르조이나 기타 전투 가능 집단에 대한 정보 수집을 명령하고는 APC에 올라탔다.
아직도 불이 꺼지지 않은 마을의 연기가 저물어 가는 석양의 노을을 향해 퍼져나가는 것을 뒤로하고 우리는 연구 시설을 향해 출발했다.
한 밤의 사냥개
APC의 어두운 조명에 비친 부대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전우들의 죽음과 전투로 지친 그들의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에린의 표정을 오히려 더 밝아진 것 같았다. 아니 에린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음에도 그들의 표정이 너무 어두워져서 상대적으로 밝아 보이는 것인지도 몰랐다. 대원들이 야간용 장비들을 챙기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나도 장비들을 확인했다. 야간 투시경과 각종 센서들이 부착된 HUD (Head Up Display)를 쓰고 수신호 용의 센서를 전투 장갑에 부착하자 에린이 물었다.
“그걸 쓰면 컨택트 렌즈를 빼야 하지 않아?”
“그럴 필요 없어. 그런데 수신호는 알고 있나?”
“대부분은.”
그 때, 부대원 한 명이 나와 에린을 향해 소리쳤다.
“너희들은 뭐가 그렇게 즐거워서 떠드는 거야!”
수송선에서 에린에게 찝적대던 덩치였다. 그가 금방이라도 덤벼들듯한 표정으로 노려보자 에린이 빈정대며 말했다.
“넌 뭐가 그렇게 우울해서 안그래도 더러운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거지?”
“뭐!”
APC안 부대원들의 차가운 시선이 에린과 내게 향했다. 그런 눈빛을 즐기듯 에린이 싸늘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출발할 때 봤던 그 멋진 표정들이 전투 같지 않은 전투 한 번에 그렇게 변한 것을 보니 꽤 귀엽단 말야.”
“한 번만 더 지껄이면 그 입을 뭉개버리겠어.”
덩치의 말에 에린이 픽하고 웃었다.
“발끈하는 것도 귀엽네.”
에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덩치가 일어섰다. 좁은 APC안에서 일어선 덩치의 모습에서 풍기는 위압감이 순식간에 내부에 가득차 올랐다. 하지만 그는 일어섰을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것이 그를 노려보는 에릭의 무서운 눈초리 때문이었는지, 에린의 손에 들린 단검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다시 앉는 그의 움직임에서 덩치 역시 지쳐있었으며 가라앉은 분위기를 소란스럽게 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잠깐의 폭풍이 지나간 뒤 입을 연 것은 쟈크였다.
“자! 모두 야간 장비 장착하고 통신 상태 다시 점검해!”
부대원들이 장비를 다시 점검하자 쟈크가 에릭에게 CPC를 보여주었다. 말 대신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보아 CPC에 수신호로 작성되는 문자 메시지를 통해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CPC를 바라보는 에릭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몰래 지켜보는 동안 에린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중대 본부가 공격당했어.”
내가 놀라 에린을 쳐다보자 쟈크가 우리를 발견하고 손의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에릭이 나와 에린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황이 좋지 않군요.”
“수송선이 안전하다면 작전을 중지…….”
“그건 안됩니다! 아니 아직 작전 불능 상태는 아니니까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에릭이 말했다. 그리고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1소대와 3소대가 연구 시설을 찾아내서 연구원들을 심문하고 있습니다. 그 쪽에서 정보원의 시체를 발견했다니 우리가 도착해 문건을 찾으면 작전을 완료할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 다른 부대원들에게는 알리지 않을 생각입니까?”
“임무 완수 후에 알려도 늦지 않습니다.”
그의 얼굴에서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많은 수의 부대원을 잃은 상황에서 임무까지 완수하지 못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쩌면 보르조이의 존재가 그를 몰아세우고 있는지도 몰랐다. 확실한 것은 그의 표정을 보아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때, CPC에서 메시지 수신을 알리는 신호를 내보내는 것을 확인하고 어떤 내용인지 확인했다. 그것은 회사에 보고하기 위한 설문지 파일의 도착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수신 시간이 많이 지나있었는데 설문지 파일의 내용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중대 본부가 공격 받은 시간에 도착했는지 보고서의 처음과 마지막 부분이 손상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CPC의 손상된 파일 복구 루틴이 살려낸 부분은 전체 설문 중 10여개 정도의 질문뿐이었다.
중대 본부에서 설치한 안테나를 통해 중계 전송을 통해야만 전송이 가능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연구 시설의 안테나를 조작해 새로 설문지를 전송 받고 보고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보다 심각한 것은 설문의 내용이었다. 이주민과의 전투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전투상황에 대한 질문과 피해 대처에 대한 내용 그리고 이주민의 상황에 대한 질문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회사가 이주민의 존재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보고자가 있거나 폭스트롯팀의 모든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또 설문에 에린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도 문제였다. 그녀가 이주민으로부터 무기를 입수한 것에 대한 것은 빠져 있었으나 전투에 참여했었는지, 어떤 형태였는지에 대해 기술하도록 되어 있었다. 에릭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 일은 어쩔 수 없었지만 나 말고 다른 보고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점과 회사에서 에린에게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이해하기도, 또한 처리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 설문파일의 전문이 수신되지 못했고 상황 상 바로 보고서를 작성해 보낼 수 없어서 잠시 생각을 정리할 틈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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