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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절망 클럽 &#187; 검을 다루는 자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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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흥미로운 것들에 대한 기록.</description>
	<lastBuildDate>Thu, 16 May 2013 04:32:14 +0000</lastBuild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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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사(紫蛇)</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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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9 Mar 2007 02:03:16 +0000</pubDate>
		<dc:creator>김 승엽</dc:creator>
				<category><![CDATA[검을 다루는 자들]]></category>
		<category><![CDATA[소설과 시]]></category>
		<category><![CDATA[장편소설]]></category>
		<category><![CDATA[무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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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오랜만에 구름이 걷히어 밝은 햇살이 고개를 내민 날 황제는 창 밖으로 얼마 전의 화재 때문에 시커멓게 그을린 운하궁 한 쪽을 내다보고 있었다. 날이 밝아선지 타다만 기둥이 더욱 흉물스럽게 보였지만 황제는 마치 재미있다는 듯한 얼굴로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십수 명의 인부들이 재투성이가 된 채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모양을 바라보던 황제는 픽 하고 짧은 웃음을 흘리더니 몸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오랜만에 구름이 걷히어 밝은 햇살이 고개를 내민 날 황제는 창 밖으로 얼마 전의 화재 때문에 시커멓게 그을린 운하궁 한 쪽을 내다보고 있었다. 날이 밝아선지 타다만 기둥이 더욱 흉물스럽게 보였지만 황제는 마치 재미있다는 듯한 얼굴로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br />
 십수 명의 인부들이 재투성이가 된 채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모양을 바라보던 황제는 픽 하고 짧은 웃음을 흘리더니 몸을 돌려 방 한 쪽에 놓여 있는 탁자 쪽으로 가 앉았다.</p>
<p>‘아직까지 연한으로부터 아무 소리도 없는 것을 보니 양진이 잡히지는 않았나 보군. 그런데 그 이막우 라는 자가 어떤 자 이기에 연한과 나 모두에게 적이 되는 자라는 거지?’</p>
<p>양진의 일을 생각하다 이막우라는 이름을 떠올린 황제는 한동안 이리저리 생각하다 결국 답을 내지 못하고 말았다. 그 대신 이막우란 자와 양진이 같이 탈출했다는 것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혹 양진과 그 자가 함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답답함을 느꼈는지 작게 기침을 했다가 창밖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양조웅으로 부터 연락이 올 때가 지난 것도 걱정되기 시작했다.</p>
<p>‘연락을 기다리는 수밖에&#8230;&#8230; 다른 수가 없으니&#8230;&#8230;’</p>
<p>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채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신세에 한심함을 느낀 황제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술잔을 자신 쪽으로 끌어다 놓는 순간 문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p>
<p>“황제 폐하! 연한공이 뵙기를 청합니다.”</p>
<p>죄수들의 탈옥과 화재를 이유 삼아 연한이 황제의 거처 앞에 세워둔 병사의 목소리였다. 겉으로는 자신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곤 하지만 실제로는 감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황제는 잘 알고 있었다.</p>
<p>“들라 해라!”</p>
<p>황제의 말에 문이 열리고 연한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한손에는 비단 천에 쌓인 긴 상자를 든 채 고개를 숙여 황제에게 예를 취한 연한은 황제가 앉은 탁자 쪽으로 다가와 말했다.</p>
<p>“거처하시기에 불편하시진 않으십니까?”</p>
<p>“뭐 괜찮소. 그런데 무슨 일이시오?”</p>
<p>황제가 이렇게 말하며 맞은편 의자에 앉으라는 손짓을 보내자 연한이 손에 들었던 긴 상자를 탁자위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아 말했다.</p>
<p>“재밌는 물건을 보여 드리러 왔습니다.”</p>
<p>“재미있는 물건이라. 연한이 재미있어 하는 물건이라니 궁금해지는 구려. 그 보자기에 싸인 물건이요?”</p>
<p>“예”</p>
<p>대답과 함께 연한이 탁자 위에 올려 있던 비단 보자기를 풀었다. 보자기가 풀리자 옻칠을 한 긴 나무 상자가 드러났다. 연한이 재미있어하는 물건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던 황제는 상자가 긴 것을 보고 검이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검이 들어가기에는 좀 짧다는 생각이 들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연한이 조심스럽게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p>
<p>“이게 뭐요!”</p>
<p>상자 안의 내용물을 본 황제가 놀라 이렇게 소리쳤지만 연한은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띤 채 말했다.</p>
<p>“보시는 바와 같이 팔 입니다.”</p>
<p>연한의 징그러운 웃음에 황제가 벌떡 일어서면서 소리쳤다.</p>
<p>“아니 이 따위 물건을 재미있는 것이라고 가져오다니 아무래도 연한이 망령이라도 난 모양이구만”</p>
<p>황제가 이렇게 말하고 보기 싫다는 얼굴로 방을 나가려는데 연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p>
<p>“보통의 사람 팔 이였다면 황제 폐하께 보여드리러 가져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게 바로 저번 화재를 틈타 탈출한 이막우란 자의 팔입니다.”</p>
<p>“그게 무슨 소리요?”</p>
<p>방을 나가려던 황제가 이막우란 말에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연안이 다시 말했다.</p>
<p>“어찌하여 재미있는 물건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앉으시지요.&#034;</p>
<p>연한의 징그러운 웃음에 내키진 않았으나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황제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연한이 덥석 상자안의 팔을 들어 올려 황제 앞에 내려놓더니 말했다.</p>
<p>“이게 그자의 팔 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십시오. 이 팔에 자줏빛 비늘이 가득 나 있습니다.”</p>
<p>“그럼 이게 원래의 색이란 말이요?”</p>
<p>사실 처음에 팔을 보았을 때도 보라색이 감도는 것을 보고 오래되어 그런 색이 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황제는 보라색 비늘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놀라 말했다.</p>
<p>“예 그 팔은 십수 년이 지났지만 썩지 않았습니다. 다만 가끔 뱀처럼 허물을 벋을 뿐이지요.”</p>
<p>사람이 팔이 잘려서도 허물을 벋고 썩지도 않는다는 말에 황제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턱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그 자줏빛 비늘에 취해 손을 가져가 만져보았다. 차갑고 부드러운 감촉에 황제가 연신 쓰다듬는데 연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p>
<p>“더 재미있는 것은 이 팔을 이막우란 자가 스스로 잘랐다는 것입니다.”</p>
<p>하지만 황제의 귀에는 연한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 부드러운 감촉과 빛깔에 홀려 다른 사람의 잘린 팔이라는 것도 개의치 않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연한은 황제가 아무 말 없이 팔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바라보더니 빼앗듯 집어 들며 말했다.</p>
<p>“이 물건이 탐나신 모양입니다.”</p>
<p>손에서 팔을 빼앗겨 연한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황제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p>
<p>“아니오. 내 이런 해괴한 물건을 가져 무엇 하겠소”</p>
<p>“그러시다니 다행입니다.”</p>
<p>연한은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상자에 팔을 집어넣은 뒤에 뚜껑을 닫고는 말했다.</p>
<p>“그 이막우자는 전 주경황제의 자객이었는데 어느 날 검 한 자루만 달랑 들고는 선황제폐하가 계시던 황궁으로 쳐들어 왔었습니다.”</p>
<p>연한의 이야기에 황제의 눈이 반짝였다. 자신이 궁금해 하던 이막우란 자의 이야기이기에 그랬는지 아니면 황궁에 검 한 자루만 들고 쳐들어 왔다는 무모한 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p>
<p>“선황제폐하와 저를 해 하겠다고 배짱 좋게 홀로 쳐들어온 그자가 벤 숫자가 무려 일흔 명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검술과 보랏빛을 내는 괴기한 검에 수많은 병사들이 쓰러져 갔고 검에 일가견이 있다는 장수들만 열댓 명이 그의 손에 쓰러졌었지요. 결국 제가 나서게 되었는데 저도 그를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저의 목이 막 그의 검에 떨어질 찰라 무슨 일인지 그자가 비명을 지르며 물러서더니 바닥에 떨어진 병사의 검을 집어 들어 자신의 오른팔을 잘라냈습니다.”</p>
<p>연한의 이야기를 듣던 황제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턱을 만지작거리자 연한이 이야기를 계속했다.</p>
<p>“저의 목을 치려던 검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고 바닥에는 자줏빛으로 변한 그자의 팔만 떨어져 있었습니다.”</p>
<p>“도무지 알 수가 없군. 스스로 자신의 팔을 잘랐다 그 말이오?”</p>
<p>황제가 참지 못하겠는지 묻자 연한이 대답했다.</p>
<p>“저는 쓰러져 보지 못했으나 나중에 선황제 폐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자가 저의 목을 베려고 검을 쳐든 순간 갑자기 그 자의 자줏빛 검이 뱀처럼 그의 팔을 휘감더니 이내 그 자가 자신의 팔을 잘라냈다고 하셨습니다.”</p>
<p>“그렇다면 그 검이 그 자의 팔에 스며들기라도 했단 말이오?”</p>
<p>“저도 믿을 수 없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어째서 그가 자신의 팔을 잘랐는지 알 수 없지만 남겨진 그자의 팔이 자줏빛 비늘을 가진 것으로 보아선 그것이 사실인 듯 합니다. 자신의 팔을 자르고 쓰러진 그 자를 죽이지 않은 것은 선황제폐하께서 그자의 검술에 반하셨기 때문이었는데 그자가 지금 까지 살아남아 탈옥을 하다니 정말 세상일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입니다.”</p>
<p>“정말 그렇구려.”</p>
<p>연한의 말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이막우란 자가 양진과 같이 갔다면 무슨 일을 할지 몰라 속으로는 별의 별 생각을 다 하고 있었다. 그런 황제의 마음을 눈치라도 챘는지 상자를 다시 보자기에 싸서 일어서던 연한이 웃으며 말했다.</p>
<p>“괜한 물건을 보여 드렸나봅니다. 안색이 별로 좋지 않으시니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p>
<p>“재미있는 이야기 잘 들었소.”</p>
<p>황제의 말에 예를 취하고 방을 나가던 연한이 멈추어서더니 말했다.</p>
<p>“제가 자신의 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언젠가 그자가 저를 다시 찾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강양진과 함께 저의 목을 베러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하하”</p>
<p>연한이 웃음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나자 황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이막우란 불안이 그의 가슴을 더 세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p>
<p>‘이막우가 주경황제의 자객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서 저 팔을 가져왔군. 내 뜻대론 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인가?’</p>
<p>황제는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막우란 사내가 자신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오지 않는 양조웅으로부터의 연락이 그를 초조하게 만들었다.<br />
“술 한 잔 하지 않고선 못 견디겠군!”</p>
<p>황제는 이렇게 말하고는 술잔에 술을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자신으로서는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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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추가비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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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5 Mar 2007 01:12:27 +0000</pubDate>
		<dc:creator>김 승엽</dc:creator>
				<category><![CDATA[검을 다루는 자들]]></category>
		<category><![CDATA[소설과 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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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무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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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추가비문 해가 서산마루에 뉘엿거리자 쉴 곳을 찾으려고 말을 재촉하던 희문이 길 한쪽에 서 있는 이정표에서 상양이 가까웠음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돌려 마차 안의 희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상양이 멀리 않았으니 쉬지 않고 간다면 내일 새벽 즈음에는 추가비문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구만.” 그 말에 희연이 마차 밖을 잠시 내다보는 듯 하더니 말했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길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추가비문</strong></p>
<p>해가 서산마루에 뉘엿거리자 쉴 곳을 찾으려고 말을 재촉하던 희문이 길 한쪽에 서 있는 이정표에서 상양이 가까웠음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돌려 마차 안의 희연을 바라보며 말했다.</p>
<p>“상양이 멀리 않았으니 쉬지 않고 간다면 내일 새벽 즈음에는 추가비문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구만.”</p>
<p>그 말에 희연이 마차 밖을 잠시 내다보는 듯 하더니 말했다.</p>
<p>“여기서 조금 더 가면 길 왼쪽으로 작은 샛길이 보일 겁니다. 그 길을 타면 자정 전에는 도장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p>
<p>“그런가?”</p>
<p>희연의 말에 희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재촉했다. 그 때 지금껏 잠이라도 잤는지 눈을 감고 있던 사량이 고개를 들어 희연에게 물었다.</p>
<p>“전부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어르신도 알고 계신 것을 보면 추가비문이 생긴지 오래 된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곳이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곳이라.”</p>
<p>사량의 물음에 하진도 궁금했었는지 눈을 희연에게로 돌렸다.</p>
<p>두 남자의 시선에 동시에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인지 아니면 질문에 답하는 것이 난처했는지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던 희연이 잠시 고개를 숙이는 듯싶더니 입을 열었다.</p>
<p>“상양 남쪽 추가촌을 중심으로, 전래되던 검류를 이어받은 도장입니다. 다른 검류와 섞여 전통을 잃을 것을 우려해서 추씨 성을 이어받은 사람들만 그 제자로 삼았고 다른 도장과의 교류도 별로 없어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p>
<p>“그렇군!”</p>
<p>희연의 말에 사량은 이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지만 옆에 있던 하진은 뭔가 의심쩍다는 듯한 표정으로 희연을 바라보고 있었다.</p>
<p>“그렇다면 팔륜문과는 교류가 있었던 거요?”</p>
<p>일후가 떠오른 듯 하진이 이렇게 묻자 희연의 얼굴이 잠시 굳는 듯했다. 하지만 금세 표정을 바꾸고 하진을 바라보며 말했다.</p>
<p>“팔륜문과는 아버지 때부터 인연이 있었다고 하더군요.”</p>
<p>희연은 이렇게 말하고는 마차를 몰고 있는 희문의 뒷모습을 살피는 것 같았다. 하진도 더 이상 캐묻지 못하고 눈을 돌리는데 희문이 마차를 세우고는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br />
“말했던 샛길이 저쪽인가?”</p>
<p>희문의 물음에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던 희연은 한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p>
<p>“예 맞습니다. 저 길을 쭉 따라가시면 됩니다.”</p>
<p>“알았네.”</p>
<p>희연이 말한 샛길로 마차가 들어가자 길가로 높이 솟은 나무들 때문에 마차 안이 더욱 어두워졌다. 길이 좁아서인지 마차가 제 속도를 내지 못하는 듯하자 사량이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밖을 살펴보고는 말했다.</p>
<p>“금방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길이구만.”</p>
<p>사량의 말에 희연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지만 마차 안이 어두워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p>
<p>샛길을 따라 얼마나 들어갔을까 이제 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할 수 없이 하진이 내려서 횃불을 들고 길을 밝혀 가고 있었다.</p>
<p>달도 뜨지 않아 스산한데 풀벌레 소리 섞인 바람이 횃불을 흔들고 있었다. 주변의 기운이 의심스러웠는지 하진이 허리에 차고 있는 검에 왼손을 올려놓는 순간 앞쪽의 어둠 속에서 뭔가 번쩍이는 것 같아 눈을 부릅뜨고 다시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잘 못 보았나 싶어 눈을 한번 비비고 길을 재촉하는데 이번에는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길 한쪽에서 들려 멈추어 섰다.</p>
<p>“누구냐?”</p>
<p>횃불을 왼손에 옮겨 잡고 오른손으로 검 자루를 잡은 채 하진이 길가 숲을 향해 이렇게 소리치자 마차에 앉아 있던 희문이 무슨 일이냐는 듯 하진을 향해 말했다.</p>
<p>“무슨 일 이냐?”</p>
<p>희문의 물음에 하진이 아무 말 없이 소리가 났던 숲을 살피는 순간 이번에는 마차 뒤쪽에서 기척을 느끼고 눈을 돌렸다. 그 바람에 횃불이 흔들려 주변이 잠시 어두워진 틈을 타 높게 솟은 나무 위에서 무엇인가 검은 형체가 하진의 뒤로 내려왔다. 그것을 느끼고 하진이 몸을 틀며 검을 뽑으려는 순간 어느새 하진의 목에 차가운 칼날이 닿았다.</p>
<p>“네 놈은 누군데 비문(秘門)의 길에 들어선 거냐?”</p>
<p>목에 검을 들이댄 자의 숨결과 함께 들린 말에 횃불을 바닥에 떨어 뜨린 하진이 칼날을 피해 고개를 젖히며 말했다.</p>
<p>“그건 저 안에 있는 아가씨한테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p>
<p>등 뒤의 남자를 놀리는 듯한 하진의 목소리에 칼날이 목을 조금 스쳤는지 알싸한 통증이 하진의 목덜미를 타고 내려갔다. 그 순간 마차 뒤쪽에서 검은 그림자 둘이 하진과 사내 쪽으로 나가왔다.</p>
<p>“향안! 검을 거두어라 아가씨와 같이 오신 손님들이시다.”</p>
<p>그 말에 하진의 목을 겨누던 검이 거두어지며 뒤 쪽의 사내가 뒤로 물러났고 하진은 목의 가는 상처를 만지며 뒤를 돌아보았다.</p>
<p>하진보다 머리하나는 더 있을 듯한 키의 남자가 검은색 옷을 아래위로 입은 채 자신의 팔뚝만한 길이의 짧은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있었다.</p>
<p>하진이 바닥에 떨어진 횃불을 집어 들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앞 선 쪽은 다름 아닌 희연이었고 그 뒤에 선 것은 향안이라 불린 남자처럼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남자였다.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남자는 하진의 앞에 다가와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p>
<p>“실례를 범했습니다. 이 길이 워낙 찾는 이들이 없어 혹 수상한 자들인가 오해를 했습니다.”</p>
<p>남자의 말에 하진이 같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희연을 향해 물었다.</p>
<p>“이 사람들이 나타날 정도니 도장이 가까운 모양이오?”</p>
<p>“도장은 아직 한 참 더 가야 해요. 이 사람들은 수상한 자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나와 있는 것뿐 이구요”</p>
<p>희연의 말에 하진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짧게 끄덕이는데 하진의 뒤쪽에 서있던 향안이란 사내가 하진의 손에서 횃불을 받아 들며 말했다.</p>
<p>“저희들이 길을 밝힐 테니 마차에 타시지요.”</p>
<p>남자의 말에 하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목을 만지며 쳐다보더니 희연과 함께 마차에 올랐다. 하진이 마차에 오르자 희문이 웃는 얼굴로 돌아보며 말했다.</p>
<p>“네 검이 무뎌진 바람에 큰 사고가 안 일어났구나.”<br />
검이 무디어졌다는 희문의 말에 하진이 자리에 앉으며 희문을 쳐다보았다가 아무 말 없이 목을 어루만졌다. 두 사내의 안내를 받아 마차가 출발하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희연이 뭔가를 꺼내 하진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p>
<p>“피가 좀 나는 모양이던데 이거라도 둘러요.”</p>
<p>희연이 건넨 손수건을 받아든 하진이 희연 쪽을 한번 바라보았지만 어둠 때문에 그녀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p>
<p>“고맙소. 그런데 길에 저런 사람들이 나와 지켜야 할만한 비밀이라도 있는 거요?”</p>
<p>하진의 물음에 희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하진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희연의 침묵과 함께 마차 안이 조용해지는 것 같더니 희문이 고개를 돌려 마차 안을 바라보며 말했다.</p>
<p>“이제 모두 마차에서 내려야 할 것 같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가야한다는 구만.”</p>
<p>희문의 말에 사량이 자고 있던 자하를 깨우며 말했다. </p>
<p>“이봐 이제 걸어서 가야 한다네.”<br />
사량이 어깨를 흔드는 바람에 깨어나긴 했지만 마차 안이 어두워 사량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자하는 하진이 마차 밖으로 내려선 것을 보고 대충 상황을 눈치를 채고 누워 있던 인하를 깨워 부축하고는 마차에서 내려 왔다.</p>
<p>사람들이 마차에서 내려서자 앞에서 횃불을 들고 길을 안내하던 향안이란 사내가 다가와 희연에게 말했다.</p>
<p>“아가씨 말과 마차는 저희들이 보살필 테니 손님들을 모시고 올라가시지요.”</p>
<p>“아버님께 손님들이 오신다고 먼저 전해야 할 텐데&#8230;&#8230;”</p>
<p>희연이 말에 남자가 고개를 돌려 뒤를 한번 바라보더니 말했다. </p>
<p>“교운 형님이 먼저 올라가서 전하실 겁니다.”</p>
<p>“음”</p>
<p>향안의 말에 희연은 짧게 답하고는 그의 손에서 횃불을 받아든 채 희문에게 말했다.</p>
<p>“제가 앞장서겠습니다.”<br />
“그러도록 하게”</p>
<p>희연이 횃불을 들고 앞장서서 조금 걸어가자 길 앞쪽으로 커다란 문이 나타났다. 사람의 키 두 배 높이의 문 위에 달린 추가비문(秋家秘門)이라는 커다란 현판이 횃불 빛에 흔들리는데 그 모습이 마치 불타오르는 듯했다.</p>
<p>희연이 그 큰 문을 밀어 열자 그 크기만큼이나 요란한 소리에 숲에서 잠자던 새들이 놀라 괴상한 울음소리와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p>
<p>“얼마나 비밀스러운 곳인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구먼.”</p>
<p>하늘로 날아오르는 산새들을 쳐다보려는 듯 고개를 쳐들었던 사량이 문 안으로 들어선 희연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희문은 그 모습마저 반갑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p>
<p><span id="more-486"></span><br />
 문을 열고 안쪽의 길을 따라 들어가자 그들 앞에 돌로 만든 계단이 나타났다. 인하를 부축하고 있던 자하는 아무래도 그녀가 오르기에는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계단을 오르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그녀를 업으려는 듯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말했다.<br />
“이 계단을 오르는 건 무리인 것 같으니까 업혀요.”</p>
<p>자하의 말을 못들은 것은 아니지만 인하가 선뜻 업히지 못하고 있는데 계단을 오르고 있던 사량이 그것을 발견하고는 아래로 내려와 말했다.</p>
<p>“아무래도 자네가 업는 것보다는 내가 업는 게 나을 것 같은데.”</p>
<p>사량의 말에 자하가 얼굴을 붉히며 일어나자 사량이 인하 앞에 등을 대고 앉으며 말했다.</p>
<p>“어서 갑시다.”</p>
<p>사량의 말에 인하가 머뭇거리다 결국 업혔다. 생각보다는 가볍다는 생각을 하며 벌떡 일어선 사량은 별 표정 없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br />
 원수를 등에 업고 계단을 오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분명 스스로의 감정을 속이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지 못한 이 아가씨에게 죄를 묻는 다는 것 또한 도리에 맞는 일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바닥으로 눈을 향한 채 계단을 오르던 사량이 숨을 돌리려고 고개를 든 순간 희연이 들고 가는 횃불이 마치 자신의 부하들이 죽을 때 그 가운데서 불타오르던 모닥불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생각이 꼬리를 물어 살인귀가 날린 검에 맞아 죽은 장호의 얼굴이며 자신이 날렸던 화살들이 떠올랐다. </p>
<p>‘그래 여기서 손을 놓아버리면 된다.’</p>
<p>사량의 머릿속에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 계단에서 등에 업혀 있는 이 아가씨를 떨어뜨려 버리면 자신의 고민이 일순에 해결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속 다른 한편에서는 검도 들지 않은 게다가 병든 여자를 죽이려고 하는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예전 그 때처럼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일을 저지르고 말 것인가 하는 생각은 이내 사량 자신의 인생이란 것이 이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가하는 생각에 까지 이어졌다. 이런 저런 생각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손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던 사량은 인하를 다시 고쳐 업고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에게 뻗친 유혹의 손길을 뿌리치듯 힘 있어 보이는 걸음으로 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br />
 사량의 이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맨 뒤에서 계단을 오르고 있던 자하의 눈은 인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련함 때문에 생긴 동정 같은 것인지 아니면 그녀를 여동생으로 느끼는 감정인지, 왜 자신의 눈이 그녀를 향하고 있는지 자하는 알 수 없었다. 곁에서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뒷모습이라고 자하는 생각했다.</p>
<p> 계단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자 횃불을 들고 앞서 가던 희연이 숨을 돌리는 듯 하더니 뒤쪽을 바라보며 말했다.</p>
<p>“이제 다 왔습니다.”</p>
<p>“그래 알고 있네.”</p>
<p>희연의 말에 희문이 이렇게 대답하고는 옛 생각이라도 하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 희문의 옆을 지나 계단 끝에 다 다른 하진은  벽돌이 깔려 있는 길의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진이 바라보고 있는 정면과 양쪽으로 큰 건물에서 흘러나온 불빛으로 도장 제자들이 연습장으로 쓰임직한 가운데의 공터는 훤하게 빛나고 있었다.<br />
 희연은 계단 끝에 멍하니 서서 도장을 바라보고 있는 하진의 옆에 다가서서는 겨우 들릴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p>
<p>“조일후의 일은 입 밖에 내지 말아요.”</p>
<p>희연의 말에 하진이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돌려 희연을 바라보았지만 어느새 그녀는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째서 조일후의 일을 꺼내지 말라고 하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전보다 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는 희연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그러기 힘들 것 같았다.</p>
<p>하진이 희연의 뒤를 따라나서자마자 계단 끝에 다다른 사량은 몇 걸음 앞으로 나와 희연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하진의 뒤를 따라 갔다. 그런 사량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인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p>
<p>“고맙습니다.”</p>
<p>인하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빠른 걸음으로 하진의 뒤를 따르던 사량이 잠시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알았다는 듯 등을 돌린 채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전보다는 조금 느려진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p>
<p>희연이 막 공터 한가운데 들어섰을 때 가운데 건물의 문이 열리며 몇 명의 사람들이 걸어 나오더니 그 중 몇은 희연에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취했고 다른 몇은 희연과 같이 온 일행들을 살피고 있었다.</p>
<p>“안 그래도 소식이 없어 수소문하러 사람을 보내려던 참이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p>
<p>한 가운데 서있던 남자가 희연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하자 희연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p>
<p>“다친 곳은 없지만 그간 있었던 일이 많아요.”</p>
<p>희연의 말에 가운데 있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 쪽으로 걸어나와 하진을 바라보며 말했다.</p>
<p>“저희 도장에 손님이 찾아 오신게 참 오래간만입니다. 그래 어디의 누구신지?”</p>
<p>남자가 하진 앞에 서서 이렇게 묻자 하진이 예를 취하고 대답을 하려는 순간 하진 뒤쪽에 서있던 희문이 남자를 향해 말했다.</p>
<p>“추문주(門主) 그간 평안하시었나?”</p>
<p>희문의 말에 하진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가 옆으로 나와 뒤쪽에 서있던 희문을 한참을 바라보더니 말했다.</p>
<p>“죄송스럽습니다만 저는 처음 뵙는 것 같습니다.”</p>
<p>남자의 말에 희문이 큰소리로 웃더니 앞으로 한걸음 걸어 나오며 말했다.</p>
<p>“이 사람 나이를 먹어 그런가? 이 늙은이도 자네를 기억하는데 자네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다니.”</p>
<p>희문의 말에 남자가 다시 한번 희문을 살펴보는 듯 하더니 알았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p>
<p>“아이고 이런 감희문 어르신이 아니십니까. 어찌 어르신이 저희 여식과 함께 오셨습니까?”</p>
<p>“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네. 긴 이야기는 좀 있다 하기로 하고 &#8230;&#8230;참 여기는 내 손자놈 이라네.”</p>
<p>희문이 하진을 소개하자 순간 남자의 눈이 반짝하고 빛나는 것 같았다. 하진은 살기마저 내보이는 남자의 눈빛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잘못 보았거니 생각하고는 말했다.</p>
<p>“이 하진이라고 합니다.”</p>
<p>하진이 고개를 숙이며 이렇게 말하자 남자도 작게 고개를 숙이더니 말했다.</p>
<p>“추가비문의 추재명이라고 하네.”</p>
<p>남자가 이렇게 말하고 고개를 드는데 다시 한번 그의 눈에서 살기 같은 것이 내비쳤다.</p>
<p>‘내가 잘못 본 것인 줄 알았더니&#8230;&#8230;’</p>
<p>하진이 인사를 마치고 물러서자 희문이 사량과 자하를 소개하고 인하를 소개할 순간 갑자기 추재명의 팔을 잡아 안으로 끌면서 말했다.<br />
“자 밤도 늦었는데 이렇게 밖에 세워 둘 셈인가?”</p>
<p>희문의 갑작스런 행동에 추재명이 놀라는 듯하더니 이내 일행을 안으로 안내하고는 마침 옆에 서있던 향안이란 사내를 보며 말했다.</p>
<p>“손님들께 대접할 음식을 가져오라 하거라.”</p>
<p>추재명의 말에 향안이 사라지자 아직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있던 희연을 바라보며 말했다.</p>
<p>“어떻게 저 어르신을 만난 게냐? 그리고 저 하진이란 젊은이가 정말 저 어른의 친손자가 맞느냐?”</p>
<p>아버지의 물음에 희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p>
<p>“사이는 좋지 않은 것 같지만 친손자가 맞아요.”</p>
<p>“오호! 그래!”</p>
<p>희연의 말에 추재명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하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희연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p>
<p>건물 안쪽으로 들어간 일행들은 추가비문 사람의 안내를 받아 큰 방으로 안내되었다. 연회나 회의 시에 쓰임직한 큰방 한가운데는 긴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있었고 벽에는 초상화 몇 점이 걸려 있었다. 일행을 안내한 추가비문의 사람이 문을 닫고 나가자 방에는 하진 일행만이 남게 되었다.</p>
<p>“자 일단 자리에 앉자구나”</p>
<p>희문이 의자를 빼 앉으며 말하자 나머지 사람들도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사량은 자리에 앉지 않고 방 주위를 거닐며 주변을 한참 살피는 듯하더니 희연과 추재명이 방안으로 들어오자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p>
<p>방 안으로 들어온 추재명은 웃는 얼굴로 희문을 바라보며 말했다.</p>
<p>“어르신! 세월은 속이지 못하나 봅니다. 다시 오시면 꼭 검을 한번 겨루어 보려고 마음먹었었는데 아무래도 그만 두어야겠습니다. 하하하”</p>
<p>추재명이 이렇게 말하고는 하진을 한번 흘깃 쳐다보자 희문도 웃으며 대답했다.</p>
<p>“나이를 먹으니 십년이 일년과 같네 그려. 하지만 자네도 예전 같지는 않아 보이네. 예전에는 피가 끓은 젊은이였는데 말일세.”</p>
<p>“그렇습니까! 하하하하”</p>
<p>희문의 말에 하진을 바라보던 재명이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하진이 계속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재명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추재명의 옆에 앉아 있던 희연이 입을 열었다.</p>
<p>“어르신께서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셔서 모셔 왔어요!”</p>
<p>희연의 말에 웃고 있던 재명이 무슨 일이지 하는 얼굴로 희문을 바라보았다.</p>
<p>“다른 것이 아니고 이 아가씨의 힘을 빌리고 싶어서네.”</p>
<p>“아니 힘을 빌리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p>
<p>희문의 말에 재명이 다시 이렇게 묻자 희연이 대신 말했다.</p>
<p>“어르신께서 하시는 일에 같이 가자고 하시는데 제가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하여 이렇게 모셔왔습니다.”</p>
<p>희연의 말이 끝나고 재명이 무슨 일인지 물으려하는데 희문이 먼저 대답했다.<br />
“자네도 알고 있을 걸세. 검을 찾는 일이라네!”</p>
<p>순간 희문의 말에 추재명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지금까지의 웃는 얼굴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금세 어두워진 추재명의 얼굴에 옆에 앉아 있던 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p>
<p>“예전에 말씀하신 그 검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p>
<p>추재명이 자신을 향해 이렇게 묻자 희문은 아무런 대답 없이 고개만을 끄덕였다. 그 모습에 추재명은 희연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가 아무 말 없이 일어서더니 말했다.</p>
<p>“손님들께 실례인 줄은 알지만 잠시 제 딸과 이야기 좀 나누고 오겠습니다.”</p>
<p>희연은 검을 찾는 일이란 말에 정색하며 나가는 아버지를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따라 나갔다.</p>
<p>밖으로 나간 추재명은 방문에서 한참을 벗어나더니 뒤따르는 희연을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p>
<p>“넌 저 노인네가 말하는 검들이 어떤 물건들인지 알고 있느냐?”</p>
<p>재명의 물음에 희연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p>
<p>“자세히는 알고 있지 못해요.”</p>
<p>희연의 대답에 재명이 음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며 말했다.</p>
<p>“저 노인네가 아직 말을 하지 않은 모양이구나. 하긴 쉽게 꺼낼 이야기는 아니지.”</p>
<p>“무슨 말씀이세요?”</p>
<p>희연의 물음에 재명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희연을 바라보며 말했다.</p>
<p>“네 생각은 어떠냐? 갈테냐?”</p>
<p>“예?”</p>
<p>재명의 갑작스런 물음에 희연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내 알아듣고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대답했다.</p>
<p>“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p>
<p>“뭐냐?”</p>
<p>희연의 대답을 기다리던 재명은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에 뭔가 걱정스러운 듯한 얼굴을 했다.</p>
<p>“팔륜문의 조일후가 자신의 스승을 죽이고 사라졌어요.”</p>
<p>“뭐라고!”</p>
<p>희연의 말에 재명도 많이 놀랐는지 자신도 모르게 크게 소리치고 말았다. 그 놀란 얼굴을 바라보며 희연이 다시 말했다.</p>
<p>“다급히 저희들과 맞붙었던 괴상한 자들에게서 도망치느라 그 이후 조일후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어요.”</p>
<p>희연의 말에 재명이 턱을 쓰다듬더니 말했다.</p>
<p>“어째서 조일후가 그런 짓을&#8230;&#8230;”</p>
<p>희연은 재명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p>
<p>“아버지! 제가 간다고 하면 허락하실 건가요?”</p>
<p>갑작스런 희연의 물음에 재명이 고개를 들어 희연을 바라보더니 말했다.</p>
<p>“엄청나게 위험한 일이 될 거다. 저 노인네도 겉으로는 웃음을 흘리고 있지만 실은 무서운 사람이고 말이야. 어째서 너를 데리고 가려는 지도 잘 모르겠구나.”</p>
<p>“가고 싶어요.”</p>
<p>희연은 이렇게 말하고서는 재명의 얼굴을 바라보았다.<br />
재명은 자신의 딸이 뭔가 다짐한 듯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불안한 마음에 얼굴을 찌푸렸다. 딸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지금 자신은 희연을 말려야만 했다. 잠시 침묵하던 재명은 할 수 없다는 듯 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p>
<p>“네 생각이 그렇다면 가거라. 하지만 그 전에 네게 해줄 말이 있다.”</p>
<p>“예!”</p>
<p>재명과 희연이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희문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그림들을 바라보던 희문은 어느새 하진의 뒤쪽으로 다가가더니 말했다.<br />
“추문주가 어째서 네게 살기를 보이는지 아느냐?”</p>
<p>하진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희문을 하진이 놀라 바라보자 희문이 다시 입을 열었다.</p>
<p>“옛날에 네 애비가 저 추문주를 꺽은 일이 있었다.”</p>
<p>희문의 말에 하진이 놀란 얼굴로 하진을 바라보자 희문이 하진의 귀에 입을 가까이 가져가며 말했다.</p>
<p>“너를 꺾어 그 설욕을 할지도 모르지!”</p>
<p>희문이 이렇게 말하고는 자리로 돌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희연과 재명이 방안으로 들어왔다.</p>
<p>“그래 따님과 이야기는 다 나누었는가?”</p>
<p>“하하하 예.”</p>
<p>희문의 물음에 재명이 이렇게 말하고서는 자리에 앉았다.</p>
<p>“그래 어떻게 하기로 했는가?”</p>
<p>“같이 가겠다고 하니 제가 달리 말릴 수가 없습니다. 어르신께서 많이 보살펴 주십시오.”</p>
<p>재명이 웃으며 이렇게 말하자 희문이 잘되었다는 듯 탁자를 가볍게 치면서 말했다.</p>
<p>“그거 잘되었구먼. 자네라면 쉽게 허락할줄 알았네.”</p>
<p>희문이 이렇게 말하고 웃음을 띠자 재명이 희연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더니 말했다.</p>
<p>“어르신께서 찾으시는 그 검들의 행방은 알고 계십니까?”</p>
<p>“확실치는 않지만 실마리는 있다네. 그 것을 찾아갈 작정이라네.”</p>
<p>희문이 이렇게 말하자 재명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번에는 하진을 바라보며 말했다.</p>
<p>“어르신께 검술을 배웠을 테니 실력이 상당하겠구먼?”</p>
<p>재명이 자신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자 하진이 그의 웃는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p>
<p>“아버님께 조금 배웠을 뿐입니다.”</p>
<p>하진이 이렇게 말하고서는 재명을 바라보자 순간 재명의 눈이 무섭게 하진을 쳐다보더니 다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p>
<p>“자네 아버지께 배웠다니 꼭 그 실력을 보고 싶군”</p>
<p>“기회가 있길 바랍니다.”</p>
<p>하진이 이렇게 말하자 재명이 갑자기 크게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p>
<p>“제가 가서 음식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 오겠습니다.”</p>
<p>재명이 이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가자 희문이 재미있다는 듯 하진을 바라보며 말했다.</p>
<p>“쉽게 물러서지는 않는구나.”</p>
<p>그 말에 희연이 무슨 이야기인가하고 하진을 바라보았지만 하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p>
<p>식사를 하는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재명은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즈음해서 나타났다. </p>
<p>“식사가 입에 맞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p>
<p>재명은 이렇게 말하고는 희연을 불러 차를 내오게 하고는 의자에 앉더니 말했다.</p>
<p>“그런데 저기 앉아있는 아가씨는 누구신지?”</p>
<p>인하를 바라보며 재명이 이렇게 묻자 희문이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p>
<p>“유문좌파 유호종의 딸 유인하라네.”</p>
<p>희문의 말에 사량은 재명이 놀랄 거라고 생각했지만 재명은 별로 놀란 것 같지 않았다. 다만 희문의 말을 듣고 더 유심히 인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작게 끄덕이더니 말했다.</p>
<p>“어르신께서 소개를 안 해주시기에 나름대로 짐작은 했었습니다. 그렇다면&#8230;.”</p>
<p>재명이 뭔가 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희문이 얼른 일어나며 말했다.</p>
<p>“자네에게 긴히 할말이 있는데 잠시 나가세나.”</p>
<p>희문이 갑자기 일어나 이렇게 말하자 재명이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p>
<p>두 사람이 나가자 인하가 뭔가 물어보려는 듯 주위를 보았지만 모두 숨기려는 것이 있는 듯 그녀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p>
<p>자하는 희문과 재명이 나간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의 눈은 빛났다. 추가비문에 들어선 이후부터 그 이름 때문인지 모든 것이 비밀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p>
<p>희연이 내온 차를 다 마실 때까지 두 사람은 돌아오지 않더니 시간이 늦어 잠자리로 안내될 때가 되자 희문만이 방으로 돌아왔다.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표정이 굳어 있는 희문에게 인하는 뭔가 말하려 하는 것 같았지만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p>
<p>밤이 깊었지만 하진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움직이는 마차에서도 잘 자던 잠이 편안한 침상위에 눕자 오지 않는 것에 하진은 신기해하고 있었다. 추재명이 보였던 살기 때문일까 하고 생각하던 하진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위의 물을 한잔 따라 마시고는 의자에 앉았다. 등도 켜져 있지 않은 어두운 방에 하진이 멍하니 앉아 있는데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p>
<p>“자는 거예요?”</p>
<p>희연의 목소리에 하진이 무슨 일인가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가로 다가갔다. </p>
<p>“밤늦에 무슨 일이요?”</p>
<p>하진이 이렇게 말하며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희연과 함께 재명이 같이 서 있었다.</p>
<p>“아직 자고 있지 않았군.”</p>
<p>재명은 하진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 미소가 무엇을 뜻하는지 하진은 알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의 허리에서는 검을 찾아 볼 수 없었는데 지금 자신을 찾아온 재명의 허리에는 짧은 검이 달려 있었다.</p>
<p>“무슨 일이십니까?”</p>
<p>짐작은 갔지만 짐짓 모른 채 하진이 묻자 재명이 말했다.</p>
<p>“자네와 한번 겨뤄보고 싶어 밤늦게 딸아이를 앞세워 이렇게 왔네.”</p>
<p>재명의 말에 하진이 희연을 한번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단순한 호기심에 하진과 겨루어 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p>
<p>“그럼 한수 배우겠습니다.”</p>
<p>하진은 이렇게 말하고는 흑요를 허리에 차고는 방을 나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재명은 계속 미소를 짓고 있었다.</p>
<p>세사람이 향한 곳은 본관 왼편에 있는 대련장 이었다. 바닥에 마루가 깔린 대련장 한가운데 선 재명은 하진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흘깃 쳐다보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p>
<p>“진검으로 할 텐가?”</p>
<p>‘진검으로 하기를 바라시는군.’</p>
<p>재명의 물음에 하진은 이렇게 생각했지만 선뜻 그렇게 말하지는 못하고 허리의 검을 풀어 희연에게 건네며 말했다.</p>
<p>“지금 제게 적당한 검이 없으니 목검으로 하겠습니다.”</p>
<p>“그렇다면&#8230;&#8230;”</p>
<p>재명 역시 검을 풀어 희연에게 맡기고는 대련장 한쪽 벽에 걸려있는 목검을 집어 들었다. 재명이 찼던 검만큼이나 길이가 짧은 목검뿐이어서 하진이 적당한 목검을 찾고 있는데 희연이 옆으로 다가와 목검을 건네며 말했다.</p>
<p>“아버지가 저러시는 걸 처음 봐요. 말려 봤지만 안됐어요.”</p>
<p>“그냥 목검으로 간단히 겨뤄보는 거요.”</p>
<p>하진이 목검을 받아 들고 이렇게 말하자 희연이 대련장 가운데로 걸어가며 말했다.</p>
<p>“일단 시작하면 간단하지 않을 거예요.”</p>
<p>희연의 말에 하진은 짐작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띠고는 목검의 무게를 손에 익히려는 듯 몇 번 휘둘러보았다.<br />
 그리고는 느린 걸음으로 대련장 한 가운데로 걸어가 목검을 왼 손으로 잡고 고개를 숙여 예를 취한 뒤 재명을 향해 말했다.</p>
<p>“제가 아버지를 대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p>
<p>그 말에 순간 재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의 숨겨진 마음을 들킨 듯 한 쪽 눈썹을 추켜세운 재명은 자신의 짧은 검을 거꾸로 잡고는 희연과 하진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p>
<p>“꼭 그럴 수 있기를 바라네!”</p>
<p>마주선 두 남자의 사이에서 뭔가 알 수 없는 힘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희연은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껏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짧은 검을 하진에게 겨누고 살기를 품어 내고 있는 모습에서 희연은 눈을 떼지 못했다.</p>
<p>먼저 움직인 것은 하진이었다. 긴 목검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재명의 오른쪽 어깨를 향해 내리치자 재명의 짧은 검이 그 것을 살짝 쳐내 빗나가게 했다. 그리고 하진 쪽으로 빠르게 한 걸음 다가서서는 손바닥을 하진에 옆구리에 살짝 밀어내듯 가져다 대었다. 그 것 때문이었는지 하진의 몸이 균형을 잃었지만 금세 다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순간 자세가 흐트러진 하진을 바라보던 재명이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p>
<p> 흐트러졌던 자세를 바로잡은 하진은 다시 검을 움직여 재명의 정수리 쪽으로 검을 내리쳤다. 그리고 재명이 공격을 받아내는 순간 하진의 왼발이 앞쪽으로 깊게 나가면서 어깨로 재명의 몸을 밀어냈다. 강한 힘에 재명의 몸이 붕 하고 뜨는 듯싶더니 뒤 쪽으로 서너 걸음 물러섰다. 재명의 자세가 풀린 틈을 노리고 하진의 검이 옆으로 움직여 재명의 오른쪽 허리를 쳤다. 하지만 재명은 그것을 가볍게 쳐내며 몸을 돌려 하진의 배에 발을 날렸다. 명치에 맞지는 않았지만 어찌나 큰 충격이었는지 뒤로 두 바퀴나 굴러 나가떨어진 하진은 허리 뒤쪽이 아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통증을 참으며 벌떡 일어선 하진이 자세를 다시 잡자 재명이 이를 악문 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p>
<p>“한 번씩 치고받았구먼.”</p>
<p>재명의 웃음에 하진도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검을 고쳐 잡았다. 재명의 공격이 날카로울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의 거센 공격에 일단 당하고 나니 섣불리 맞서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p>
<p>하진의 서 있는 자세를 바라보던 재명이 순간 짧은 목검을 거꾸로 잡더니 튀어 올랐다. 그리고는 하진에게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목과 배를 살짝 스치고 가슴 쪽으로 올라오는 재명의 검을 막아낸 하진은 재명의 빠른 검을 막기 벅찼는지 뒤로 물러섰다. 여름 날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재명의 검을 가까스로 피하는 하진이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재명의 공격들이 어딘지 모르게 느슨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하진의 눈을 현란한 공격으로 속이고 그 틈을 노려 필살의 일격을 가할 것 만 같았다.  하진은 자신을 몰아붙이는 재명의 검을 거세게 위로 쳐올리고는 곧바로 상대의 목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그 때 였다. 마치 그 것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재명의 얼굴에 미소가 스치는 것 같았다. 그 미소에 이상한 낌새를 느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하진의 검을 피하며 한 걸음 나선 재명은 두 손으로 잡고 있는 하진의 목검 자루를 한 손으로 쥐고는 하진의 목을 향해 검을 날렸다.<br />
 짧은 목검이 소리도 내지 않고 하진의 목을 부러뜨릴 듯 날아드는 그 순간 어디선가 쉬익 하는 괴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p>
<p>“이게 뭐지?”</p>
<p>하진의 목을 치려던 재명이 자신의 오른손에서 뭔가 차가운 기분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뭔가 기다란 것이 그의 팔에 휘감겨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하고 있었다.</p>
<p>재명이 그 기다란 것이 어디서 나온 건지 그 끝을 따라 눈을 움직이는 동안 하진은 벌써 희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p>
<p>희연의 손에 들려 있던 흑요에서 네 개의 촉수가 뻗어 나와 하진의 목을 치려는 재명의 손을 막고 있었다. 희연과 재명의 눈이 놀라 커진 그 순간 하진은 재명의 손을 뿌리 치고 뒤로 물러났고 그와 동시에 재명의 손을 막고 있던 촉수들이 풀려났다. 네 개의 촉수가 마치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재명의 손 옆에서 잠시 머물었다가 하진의 팔로 날아와 박혔다. 그 고통으로 하진이 손에 들고 있던 목검을 놓쳐 바닥에서 큰 소리를 내며 튀어 올랐다.</p>
<p>“이건 도대체 뭐냐?”</p>
<p>손에 박혀 꿈틀거리고 있는 촉수를 바라보던 재명이 희연과 하진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말했다. 아버지의 물음에 희연이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흑요를 들어보는 그 순간 칼날이 검집에서 스스로 빠져 나오더니 하진의 손을 향해 날아갔다. 화살이 날아가듯 바람 소리를 내던 흑요가 새가 둥지에 앉듯 하진의 손에 들어가자 재명이 옷자락을 날리며 물러섰다.</p>
<p>‘네가 내 목숨을 구한 거냐?’</p>
<p>자신의 들어와 있는 흑요를 바라보며 하진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재명이 말했다.</p>
<p>“자네가 진검을 들었으니 나도 이 목검으로 상대할 수는 없겠구먼.”</p>
<p>재명이 이렇게 말하고 희연에게 다가가 자신의 검을 달라는 듯 손을 내밀자 희연의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p>
<p>“이 이상은 하지 마세요. 아버지! 저 손에 들린 검은 보통 물건이 아니에요”</p>
<p>걱정스러운 듯 희연이 이렇게 말하자 재명은 그녀의 손에 들린 자신의 검을 빼앗듯 받아 들더니 말했다.</p>
<p>“걱정마라. 저런 요기에 짓눌릴 만한 애비가 아니다.”</p>
<p>희연에게 자신 있게 말은 했지만 사실 재명의 눈은 계속해서 하진의 손에 들린 검은 날의 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검에서 흘러나오는 요기와 살기에서 젊은 시절이라도 떠올렸는지 순간 재명은 자세를 잡고 서서는 말했다.</p>
<p>“진검까지 들었으니 이제는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주지 그러나.”</p>
<p>재명의 의미 있는 말 한마디에 하진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가 희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대로라면 분명 둘 중 하나는 목숨을 잃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는 것도 마음 내키지는 않았다.</p>
<p>‘어찌 한다’</p>
<p>하진이 고민에 빠져 있는 것에 아랑 곳 하지 않고 재명의 몸이 날아들었다. 검을 거꾸로 잡고 하진의 몸을 갈기갈기 찢을 듯 공격해오는 재명의 기세에 눌려 잠시 멈칫했던 하진은 재명의 공격을 막아내며 뒤로 물러섰다. 어찌할 방법이 없어 물러서기만 하는 하진이 순간 버티고 서서 자신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 재명의 검을 힘 있게 밀어 내고는 곧이어 재명의 오른쪽 옆구리를 찔렀다. 자신도 모르게 나간 공격에 잠시 멈칫하고 있는데 재명이 검을 손에서 돌려 바로 잡고는 하진의 팔에 긴 상처를 냈다. 그 바람에 두 손으로 검을 잡고 있던 하진이 왼손을 놓고 오른손으로만 검을 잡은 채 재명의 다음 공격을 쳐내고는 물러섰다.</p>
<p>왼팔의 상처를 참으며 한손으로 검을 잡고 자세를 잡은 하진의 귀에 피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피가 떨어지는 것은 그의 왼팔만이 아니었다. 흑요에서 뻗어 나온 촉수가 박힌 오른 손에서도 어느새 피가 흘러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p>
<p>“이제 그만 하면 된 것 같으니 두 분 다 그만 두세요.”</p>
<p>하진의 상처에서 떨어진 피를 바라보던 희연이 참지 못하겠는지 이렇게 소리쳤지만 두 남자 모두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p>
<p>“이제 그만 두세요!”</p>
<p>그녀의 긴 외침과 함께 하진의 몸이 움직였다. 마치 일격에 재명의 몸을 두 동강으로 자르기라도 할 듯 흑요가 횡으로 긴 울음을 내며 움직였다. 하진의 그 커다란 공격을 기회 삼아 재명이 하진의 몸 으로 깊게 파고 들었다. 그리고 그의 짧은 검이 하진의 옆구리에 이빨자국을 남기려는 듯 날아가는 순간. 하진의 왼손이 먼저 재명의 가슴에 닿아 있었다. </p>
<p>‘이걸 노린거냐?’</p>
<p>재명이 머릿속으로 이런생각을 떠올렸을때는 이미 늦은 때였다. 명치를 위로 올려 친 하진의 공격에 재명의 몸이 작게 들썩이는 듯하더니 뒤로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p>
<p>말 그대로 필사의 일격이었다. 하진의 엄지손가락이 갈비뼈 사이를 파고 들었는지 재명의 가슴이 피로 물들기 시작할 즈음 재명이 기침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재명이 쓰러지자 다가와 부축하던 희연이 그의 가슴에서 흐르는 피를 발견하고는 손으로 막았다.</p>
<p>“놔둬라!”</p>
<p>재명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희연의 손을 뿌리치고 천천히 일어서더니 자세를 풀고 서있는 하진을 향해 말했다.</p>
<p>“아직 끝나지 않았네.”</p>
<p>“어르신께 더 가르침을 받고 싶지만 오늘은 너무 늦어서 안되겠습니다.”</p>
<p>하진은 이렇게 말하고선 고개를 숙여 예를 취하고는 희연에게 다가가 검집을 받아들었다. 그런 하진의 모습에 재명이 이를 악물고 끓어오르는 화를 참는 듯 보였다. 하진은 자신의 팔에 박힌 흑요의 촉수 때문에 검집에 집어 넣지도 못하고 그대로 검을 든채 재명의 옆을 지나 대련장 문 앞으로 향하다 멈추어서서는 말했다.</p>
<p>“제가 아버지를 대신 할 수 있겠습니까?”</p>
<p>하진의 목소리에 재명은 자신의 상처를 손으로 잡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막고 다른 이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p>
<p>“네가 네 아비 보다 낫구나. ”</p>
<p>그 목소리에 재명이 놀라 고개를 돌렸다. 대련장 입구 쪽에서 하진 말고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자 재명이 순간 탄식을 내 뱉었다.</p>
<p>“음 어르신 말씀이 맞습니다.”</p>
<p>마치 이제는 더 어찌할수 없겠다는 듯 체념한 목소리로 일어서 검을집어 넣은 재명이 희연의 부축을 받아 하진의 뒤로 걸어가며 말했다.</p>
<p>“아드님의 신묘한 검술을 다시 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제게는 그런 연이 없는 모양입니다.”</p>
<p>재명의 말에 그림자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희문이 그제야 한 걸음나서 모습을 드러내더니 말했다.</p>
<p>“자네가 본 검을 이 놈은 본 적도 없네.”</p>
<p>희문의 말에 재명이 믿을수 없다는 듯 하진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았다가 말했다.</p>
<p>“그렇다면 더 이상 변명할 것도 없이 제가 지고 말았습니다. 하하하.”</p>
<p>재명은 그렇게 웃더니 희문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취하고는 희연과 함께 서둘러 대련장을 나갔다.<br />
재명과 희연이 사라지자 희문이 말했다.</p>
<p>“아무래도 악연인가 보구나. 일생 패배를 모르던 사람이 내 자식과 손자에게만 패하다니.”</p>
<p>“그 아버지의 검이란 건 뭡니까? 추문주는 아무래도 그 검술 때문에 자기가 패배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p>
<p>하진의 물음에 희문이 수염을 한번 쓰다듬더니 말했다.</p>
<p>“그건 나중에 네놈이 진짜 네 애비보다 나아진다면 알려주마. 일단은 그 손에 박혀 있는 것부터 빼내야 할 것 같은데.”</p>
<p>희문의 말에 하진이 자신의 손에 박힌 흑요의 촉수들을 힐끔 쳐다보았다가 말했다.</p>
<p>“이 검이 아니었다면 추문주가 저를 죽였을거라고 생각하십니까?”</p>
<p>희문은 순간 하진의 날카로운 눈빛을 발견하고는 미소지었다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p>
<p>“그 팔에 박힌 것들은 어찌 할 셈이냐. 왼팔의 상처도 간단하게 치료해야 할 것 같은데.”</p>
<p>“괜찮습니다.”</p>
<p>하진은 이렇게 말하고는 흑요를 검집에 집어넣고 양 손으로 잡은 채 대련장을 빠져 나갔다. 하진이 나가자 희문도 그의 뒤를 따라나서려다 문득 무슨 일인지 멈추어 서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p>
<p>“그러고 보니 왜 냄새가 나지 않지?”</p>
<p>그리고는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밖으로 나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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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또 다른 여행의 출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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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1 Mar 2007 00:56:16 +0000</pubDate>
		<dc:creator>김 승엽</dc:creator>
				<category><![CDATA[검을 다루는 자들]]></category>
		<category><![CDATA[소설과 시]]></category>
		<category><![CDATA[장편소설]]></category>
		<category><![CDATA[무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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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또 다른 여행의 출발. 여관에 딸린 식당에 식사를 하려고 들어선 순간 자신들을 향한 수상한 눈빛에 세 사람이 잠시 멈칫했다 자리에 앉았다. 양조웅은 자리에 앉자마자 입구 쪽에 서서 점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저 자가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이 수상하던데.” 조웅이 이렇게 말하더니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맞은편에 앉았던 세향이 그의 손목을 잡으며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또 다른 여행의 출발</strong>.</p>
<p>여관에 딸린 식당에 식사를 하려고 들어선 순간 자신들을 향한 수상한 눈빛에 세 사람이 잠시 멈칫했다 자리에 앉았다.<br />
 양조웅은 자리에 앉자마자 입구 쪽에 서서 점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p>
<p>“저기 저 자가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이 수상하던데.”</p>
<p>조웅이 이렇게 말하더니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맞은편에 앉았던 세향이 그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p>
<p>“시끄러워져서 불편해지는 것은 우리 쪽이야. 잠시 기다려 보는 것이 좋겠는데.”</p>
<p>세향의 만류에 조웅이 할 수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았고 조웅 옆에 앉았던 일후도 입구 쪽의 남자를 바라보더니 말했다.</p>
<p>“점원이 우리 쪽을 가리키며 뭐라고 하는 것을 보니 저 남자가 당신들을 찾고 있는 것 같소만.”</p>
<p>일후의 말에 세향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 쪽 남자를 살펴보려고 하는데 어느새 남자는 사라지고 보이질 않았다. 남자를 발견하지 못한 세향은 점원을 부르려는 듯 손짓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br />
 세향의 부름에 점원은 남자가 나간 입구 쪽을 한번 살펴보는 듯 하더니 내키지 않는 듯한 걸음으로 세향에게 다가와 말했다.</p>
<p>“뭘 드시겠습니까?”</p>
<p>점원의 물음에 세향이 어울리지 않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p>
<p>“가게에 들어올 때 보니 좋은 향기가 나던데 무슨 음식이지?”</p>
<p>세향의 물음에 조웅이 무슨 짓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세향을 바라보았다. 당장 멱살이라도 잡아 남자가 자신들에 대해 무엇을 물었는지 알아내야 할 텐데 의외로 세향이 음식이야기를 꺼내자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었다. 세향의 물음에 점원이 말했다.</p>
<p>“주방에서 근채(芹菜)를 넣어 만든 돼지고기 잡채를 만들고 있는데 그것을 드시겠습니까?”</p>
<p>점원의 말에 세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웅과 일후을 한 번씩 바라보고는 말했다.</p>
<p>“두 사람도 괜찮다고 하는 것 같으니 그것하고 좋은 술 있으면 내오게.”</p>
<p>“예”</p>
<p>점원이 대답을 하고 몸을 돌리려는 데 세향이 그의 옷자락을 잡아끌더니 말했다.</p>
<p>“그런데 방금 전에 그 남자가 뭘 물었지?”</p>
<p>세향의 물음에 점원이 놀라는 듯 하더니 죄라도 지은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p>
<p>“저…….이세향과 양조웅이란 이름을 들어봤냐고 물어보기에 손님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 그렇게 부르는 것 같았다고 알려줬습니다.”</p>
<p>“뭐라고?”<br />
<span id="more-485"></span><br />
점원의 대답에 조웅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금방이라도 그를 때릴 듯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와는 반대로 세향은 얼굴에 웃음이 가시지 않은채 멱살을 잡고 있는 조웅의 손을 풀고는 말했다.</p>
<p>“그럼 그 남자는 잘 아는 남자인가?”</p>
<p>세향이 잡힌 멱살을 풀어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자 점원은 잠시 컥소리를 내며 숨을 고르더니 말했다.<br />
“예, 이 주변에 자주 나타나는 자라 잘 알고 있습니다.”</p>
<p>점원의 말에 세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p>
<p>“그래 알았으니 가서 음식이나 가져오게”</p>
<p>점원이 빠른 걸음으로 음식을 가지러 사라지자마자 도대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조웅이 말했다.</p>
<p>“아니 저 놈을 저렇게 보내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더 캐물어야 하지 않는가?”</p>
<p>조웅의 물음에 세향이 됐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p>
<p>“겁을 집어 먹고 다 이야기 했는데 시끄럽게 할 이유가 없지. 게다가 우리의 이름을 묻고 간 그 남자가 우리가 기다리는 자가 보낸 사람 일수도 있잖아. 기다리고 있으면 뭔가 일이 일어날 테니 우리는 음식이나 먹으며 기다리면 돼”</p>
<p>잠시후 점원이 내온 음식에 조웅이 젓가락을 가져가려는 찰라 식당 문이 열리며 두명의 남자가 들어섰다. 허연얼굴이 푸르스름한 빛까지 내는 두 사람은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세사람이 앉아 있는 탁자를 발견하고는 다가왔다.</p>
<p>“남자 둘이 이쪽으로 다가오는데&#8230;&#8230;”</p>
<p>일후가 이렇게 말하며 세향을 바라보았다. 그 말에 세향이 고개를 돌려 어느새 자신의 등 뒤에 다가와 있는 남자들을 바라보았다.</p>
<p>긴 머리를 단정히 묶고 수염을 깎아 파르스름한 턱을 내밀며 세향과 조웅을 바라보는 젊은 남자는 깨끗한 무명옷을 입고 있었고 그 뒤에는 희끗한 수염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풀어헤친 노인이 검은 색 옷을 입고 서 있었는데 한쪽 소매가 힘없이 펄럭거리는 것이 아무래도 한쪽팔을 잃은 것 같아보였다.<br />
 젊은 남자는 고개를 돌린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세향의 눈을 노려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p>
<p>“내가 이세향과 양조웅이란 사람을 찾고 있는데&#8230;&#8230;”</p>
<p>젊은 남자의 목소리에 세향의 맞은편에 앉아 젊은 남자를 바라보던 조웅이 이제야 생각난 듯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p>
<p>“제대로 찾아왔구만. 혹시나 했는데 자네가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네.”</p>
<p>조웅의 말에 젊은 남자가 세향의 옆에 앉더니 조웅을 보며 말했다.</p>
<p>“그 놈들이 영 형편없는 자들 인줄 알았더니 사람은 제대로 찾은 것 같구만.”</p>
<p>젊은 남자의 말에 세향이 말했다.</p>
<p>“그럼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이군요. 그런데 이 분은?”</p>
<p>세향이 노인을 바라보며 말하자 노인이 의자를 가져와 앉으며 말했다.</p>
<p>“저 미친놈을 따라온 사람이요. 쫓기는 신세라 어디 몸 맡길 곳도 없고 해서 말이요”</p>
<p>노인의 말에 조웅이 눈을 찌푸렸다. 남자의 얼굴이 왠지 낯익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을 쉽게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노인의 얼굴을 노려보던 조웅이 뭔가 물으려는 순간, 젊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p>
<p>“내 이름은 강양진, 이 쪽의 노인네는 이막우라고 하고 두 사람의 이름은 이세향과 양조웅이라 알고 있지만 여기 있는 이 젊은 검사는 이름이 뭐지?”<br />
양진이 이렇게 말하고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조일후를 가리켰다.<br />
자신을 향한 양진의 눈빛이 어딘지 정상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으며 일후가 말했다.</p>
<p>“팔륜문의 조일후라고 합니다.”</p>
<p>조일후의 대답에 양진은 그런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와 반대로 막우의 눈은 가늘어 지며 일후의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노인의 그 섬찟한 눈빛에 일후가 순간 어찌된일인지 알수 없어 입을 다물고 있는데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p>
<p>“팔륜문의 검사가 어찌해서 이런 모임에 끼어 있는지 이상하구만.”</p>
<p>노인의 말에 일후가 뭔가 그것에 대해 해명이라도 하려는 듯 입을 여는데 그보다 먼저 조웅이 탁자를 탁치더니 손가락으로 막우를 가리키더니 말했다.</p>
<p>“이제야 생각이 났어. 당신 혹시 영격(影擊)이라 불리던 그 이막우가 아닌가?”</p>
<p>조웅의 말에 일후와 세향의 눈이 모두 막우를 향했다. 다른 이들의 눈이 자신을 향하자 막우가 얼굴에 미소를 짓더니 조웅을 보며 말했다.</p>
<p>“영격(影擊)이라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별호구만. 내 이름을 아는 것을 보니 당신도 보기 보다는 오래된 사람이구만.”</p>
<p>막우가 이렇게 말하자 조웅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p>
<p>“잊을수가 없지. 어째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고 했는데 당신이 그 이막우라니 믿을수가 없구만. 벌써 십수년전에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살아서 만나리라고는, 게다가 예전대로라면 이렇게 마주 앉아 있을수 없을텐데 말이야”</p>
<p>조웅의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던 양진이 알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p>
<p>“뭐야 이 늙은이가 도대체 어떤 자기에 그러는 거지?”</p>
<p>“이 자의 손에 죽은 사람들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지 , 전쟁터에서 죽인 자들의 피가 허공에 뿌려져 붉은 구름처럼 보였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었으니까.”</p>
<p>조웅의 말에 양진이 의외라는 듯 막우를 바라보며 말했다.</p>
<p>“노인네도 팔이 있었을 때는 이름 꽤나 날린 모양이구만.”</p>
<p>양진의 말에 막우가 픽하고 웃더니 세향 앞에 놓여있던 술잔을 끌어 자신 앞에 놓고 술을 따르고는 말했다.</p>
<p>“인연이 있었는가 보군. 그러면 술이라도 한잔 나누어야지.”</p>
<p>막우가 이렇게 말하고 단숨에 술을 들이키자 조웅도 한잔 들이키고는 말했다.</p>
<p>“그래 술기운이라도 빌리지 않으면 같이 있기 힘들겠군.” </p>
<p>막우와 조웅 사이에 이상한 분위기가 흐르자 그것을 눈치 챈 세향이 말했다.</p>
<p>“어찌 되었든 일행들이 다 모였으니 이제 이야기를 해야 겠군. 어찌되었건 우리에겐 사람이 필요하니 예전의 감정은 일단 묻어두고 우리가 해야 할일에 대해 이야기 합시다.”</p>
<p>세향은 말을 마치고는 일후를 한번 쳐다보고 말했다.</p>
<p>“지금의 두 사람으로 이제 여섯 명이 되었군요. 우리는 황제폐하의 명을 받들어 백록이란 검의 형제들을 찾아 검의 무덤으로 가는 문을 열어야 합니다.”<br />
‘검의 무덤!’</p>
<p>세향의 말에 일후가 눈을 크게 떴다. 검의 무덤이란 것은 들어본 적도 없을 뿐 아니라 왜 그런 것을 황제가 명령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일후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세향에게 자세한 내막을 물으려 하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막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p>
<p>“검의 무덤이라니 그게 뭐지?”</p>
<p>“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은 그곳이 검의 무덤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 뿐 그 외에는 어디에 있는 곳인지 어떻게 가는 곳인지도 몰라요.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네 자루의 검이 필요하다는 것 뿐입니다.”</p>
<p>“그렇다면 그 곳을 찾아가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요?”</p>
<p>세향의 말에 일후가 묻자 그녀가 일후를 한번 쳐다보더니 말했다.</p>
<p>“우리가 검의 무덤으로 가는 길을 찾고 난 뒤에는 폐하와 함께 움직일 겁니다. 일단은 찾는 것이 가장 시급한 입니다.”</p>
<p> 세향의 말에 조웅이 뭐라고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떼었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세향의 눈초리에 다시 입을 다물었다.<br />
“그렇다면 일단은 그 검들을 찾아야 겠군. 그럼 그 검들은 어디에 있지?”</p>
<p>세향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탁자위의 음식을 지분거리던 양진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p>
<p>“당신이 가진 백록 외에 다른 검을 찾기 위해 일단은 이 검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을 갈 거예요. 일단 서량(西墚)의 견형서 라는 사람을 찾아 다른 검들이 어디에 있는 지 듣고 그 이후에 행동에 대해 결정할거에요.”</p>
<p>“견형서라&#8230;&#8230;!”</p>
<p>막우가 아는 이름인지 되뇌었다. 하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있는데 양진이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p>
<p>“서량이라면 가는 길에 복성을 지나겠군. 음 거기서 만날 사람이 있는데 잘됐어.”</p>
<p>양진의 말에 세향이 조웅을 한 번 흘깃 쳐다보더니 말했다.</p>
<p>“시간이 많이 지체 되었으니 지금이라도 출발해야 해요. 나는 양조웅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테니 다른 분들은 방에 가 계세요. 말을 구하면 바로 출발할 겁니다.”</p>
<p>세향이 이렇게 말하고 일후에게 양진과 막우를 묵고 있는 방으로 안내하라는 듯 손짓을 보냈다. 양진이 먹고 있던 음식 접시를 집어 든채 일후를 따라 사라지자 그제야 조웅이 세향을 향해 말했다.</p>
<p>“검의 무덤에 대한 것만 이야기하고 깊은 사정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더군, 어째 서지?”</p>
<p>조웅의 말에 세향이 특유의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p>
<p>“조일후나 강양진 거기다 저 이막우란 자 모두 우리가 쉽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게다가 우리가 찾는 것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면 저들 중 누군가는 금방 우리의 적으로 돌아설지도 모르는 일이거든.”</p>
<p>“하지만 같이 움직이다보면 눈치 채이고 말텐데?”</p>
<p>그녀의 말이 맞는다는 듯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웅이 말하자 세향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p>
<p>“눈치 챘을 때는 입을 다물게 해야 할 거야. 그때는 당신이 나서야 겠지.”<br />
세향이 이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나가자 조웅도 그녀 뒤를 따라 나서며 말했다.</p>
<p>“그렇게 쉬운 상대들이 아니라는 게 문제군.”</p>
<p>조웅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주인에게 돈을 건네는 세향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p>
<p>일후는 양진과 막우를 자신이 묵고 있는 방으로 안내하고는 밖으로 나와 세림의 방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막 방문을 열려는 순간 방 안쪽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손잡이를 잡고 있던 일후의 손이 멈추었다.</p>
<p>‘분명 아직도 묶여 있을 텐데.’</p>
<p>일후가 이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방문을 여는데 안쪽의 어둠 속에서 뭔가 움직이고 있었다. 사락거리는 천 소리와 함께 침상위에 검은 형체가 눈에 빛을 내며 앉아 일후를 노려보고 있었다.</p>
<p>“죽었지 확인이라도 하러 온 건가?”</p>
<p>목이 끓어오르는 듯한 소리가 일후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 목소리에 압도된 것인지 일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문 앞에 서서 세림을 바라볼 뿐이었다.</p>
<p>“당신들이 날 죽이지 않고 살려 놓은 것은 이유가 있었겠지?”</p>
<p>세림이 이렇게 말하고서는 일어나 일후 쪽으로 다가왔다. 얼굴에 감긴 붕대 사이로 번뜩이던 눈이 자기 쪽으로 다가오자 일후는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p>
<p>“어떻게 묶여 있던 끈을 풀어낸 거요?”</p>
<p>일후가 겨우 입을 열자 다가서던 세림이 멈추어 서서 한쪽에 놓여 있던 검을 허리에 차고는 말했다.</p>
<p>“끈을 풀어낸 게 아니라 팔목이 말랐는지 헐거워져서 저절로 빠진 거야.”</p>
<p>세림이 이렇게 말하고서는 다시 일후 쪽으로 다가서는데 그제야 방문으로 새어 들어온 빛으로 그의 몸이 확연히 들어났다. 나뭇가지처럼 마른 그의 몸이 흡사 움직일 때 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낼 것만 같았다.</p>
<p> 일후앞에 가까이 다가선 세림은 그 마른 손을 일후의 어깨에 얹으며 말했다.</p>
<p>“고맙다는 인사를 해야하는 건가?”</p>
<p>얼굴의 움직임이 웃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의 목에서 새어나온 소리 때문에 더욱 괴기스러웠다. 일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겨우 입을 열어 대답했다.</p>
<p>“이제 곧 출발할거요.”</p>
<p>“출발?”</p>
<p>세림은 일후의 말에 어깨에 올려놓았던 손을 내려놓고는 문 밖으로 한걸음 나서더니 말했다.</p>
<p>“출발이라. 하지만 이런 몸으로 여행같은 것을 할 생각같은건 없는데. 그 여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하는데 지금 어디 있는지 아나?”</p>
<p>세림의 말에 일후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p>
<p>“당신이 나나 그 여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짐작할 수 있지만 성급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br />
“성급한 짓이라 내가 당신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말하는 건가?”</p>
<p>“나는 몰라도 아마 그 두 사람은 죽이기 쉽지 않을 거요. 게다가 당신이 그런 몸으로 살아난 것이 우리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소.”</p>
<p>일후의 말에 세림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p>
<p>“무슨 소리지? 죽이기 쉽지 않을 거라니.”</p>
<p>“나도 처음부터 그들과 같이 움직인게 아니요. 난 팔륜문의 검사로 그 들과 싸웠다가 그 여자의 요술에 걸려들어 그들과 함께 있게 된 거요. 당신도 검사였던 것 같은데 어디의 검사요?”</p>
<p>일후가 묻자 세림이 자신의 검 자루를 한번 만져보더니 말했다.</p>
<p>“우운류의 한세림이었지.”</p>
<p>“?”</p>
<p>일후는 세림의 말끝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는 무슨 이유인지 물으려고 하는데 세림이 먼저 물었다.</p>
<p>“당신의 이름은?”</p>
<p>“내 이름은 조일후요.”</p>
<p>일후가 자신의 이름을 대답하자 세림이 방 쪽으로 다시 다가서며 일후의 귀에 자신의 입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는 말했다.</p>
<p>“그럼 그 자들은 뭐하는 자들이지?”</p>
<p>자신의 귀에 와 닿는 세림의 차가운 숨결을 느끼며 일후가 말했다.</p>
<p>“황제의 명을 받아 움직이는 사람들 이라고 들었소!”</p>
<p>세림은 일후의 말에 뒤로 물러서더니 검 자루를 한번 쥐고는 말했다.</p>
<p>“황제의 명이라 그것 때문에 나를 살려 이용하려고 한건가?”</p>
<p>세림의 물음에 일후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세림의 붕대 감긴 얼굴이 웃기라도 하는지 주름이 생겼다. </p>
<p>“나를 살려둔 것을 후회하도록 만들어 주어야겠는데.”</p>
<p>세림은 이렇게 말하고서는 방으로 다시 들어와 침상위에 앉아서 창문에 쳐있는 휘장을 걷고 방안으로 들어오는 빛을 쳐다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p>
<p>“목에 개목걸이라도 걸어 끌고 다닐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군.”</p>
<p>점심 때 즈음 말 여섯 필이 식당 앞에 나란히 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안에서는 여섯 명이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p>
<p>아무런 대화도 없는 조용한 식탁에서 막우와 양진의 눈이 세림을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 양진이 코를 찡긋거리며 입을 열었다.</p>
<p>“여기 이 붕대 감고 있는 괴상한 놈은 누구야?”</p>
<p>양진의 말에 세림의 눈이 붕대 사이로 살기를 내비치며 양진을 바라보았지만 그런 살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양진이 다시 말했다.</p>
<p>“밥맛 달아나게 퀴퀴한 냄새도 풍기는 것 같은데&#8230;&#8230;”</p>
<p>양진의 말에 세림의 손이 앉은 상태에서 검을 뽑으려는 지 왼쪽허리춤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누군가의 발이 자신의 발을 밟는 것을 느끼고 세림이 검 자루를 잡았던 손을 놓고 발밑을 바라보았다.</p>
<p>양진 옆에 앉아 있던 막우의 발이 세림의 발을 밟고 있었고 세림이 하려는게 무엇인지 안다는 듯 만류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p>
<p>자신의 발을 밟고 있는 막우를 바라보던 세림이 만류를 뿌리치고 검을 다시 뽑으려하는데 양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p>
<p>“검을 뽑으려거든 밥이나 먹고 해보자고. 네놈처럼 말라빠진 해골바가지 같은 놈 때문에 밥맛을 잃고 싶지는 않거든.”</p>
<p>양진이 젓가락을 입에 가져가며 눈을 살짝 치켜떠 세림의 눈을 노려보며 말하자 세림의 손이 결국 검을 뽑고 말았다. 하지만 검이 검집 밖으로 몸이 다 나오기 전에 옆에 있던 일후가 검을 뽑으려는 세림의 오른 팔꿈치를 잡고 말했다.</p>
<p>“그만 두시오. 지금 당신 몸으로 이길 수 없을 거요.”</p>
<p>일후의 말에 아랑곳 하지 않고 세림이 몸을 일으키려는데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던 세향이 입을 열었다.</p>
<p>“죽어 썩어가는 놈이 성격은 그대로네.”</p>
<p>세향의 그 말에 결국 세림이 검을 뽑아 양진의 머리 쪽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것이 양진의 머리에 닿기도 전에 무엇인가 날아들어 세림의 이마에 맞았다. 세림의 이마에 맞은 것은 다름 아닌 막우가 던진 찻잔이었다. 산산 조각난 찻잔 조각이 붕대에 달라붙은 채 그 안에 남아 있던 찻물이 세림의 얼굴에 감긴 붕대에 스며들었다.</p>
<p>찻잔을 던져 세림의 움직임을 멈춘 막우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멈추어 서 있는 세림을 바라보며 말했다.</p>
<p>“그만 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p>
<p>고개를 돌려 막우를 바라보던 세림은 그의 손이 탁자 위의 젓가락을 잡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p>
<p>‘저 젓가락 만으로도 나를 막을수 있다는 뜻인가?’</p>
<p>세림이 막우의 손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양진이 말했다.</p>
<p>“네 놈을 통째로 쪼개버릴려고 했는데 늙은이가 방해를 하는구만.”</p>
<p>“뭣이!”</p>
<p>양진의 말에 세림이 이렇게 소리치며 다시 검을 날렸다. 세림의 날이 양진의 가슴에 막 닿으려는데 검이 무엇인가 무거운 것에 눌린 듯 탁자에 쳐 박히고 말았다. 무엇이 자신의 검을 짓눌렀는지 살펴보던 세림은 막우의 젓가락이 검을 누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놀랐다.</p>
<p>“젊은이 더 이상 소란 피우지 말고 자리에 앉지! 그리고 양진 네놈도  미친 소리 그만 하고 밥이나 먹거라”</p>
<p>막우의 말에 양진이 피식 웃으며 밥을 먹기 시작하자 막우가 다시 한번 세림을 바라보고 말했다.</p>
<p>“자네처럼 가벼운 검이라면 이 놈에게 상처도 내지 못할 거야.”</p>
<p>막우의 말에 세림은 자신의 검을 짓누른 젓가락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가 화를 이기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돌려 밖으로 나갔다. 세림이 밖으로 나가는 모습에 세향이 눈짓으로 일후를 따라 보내고는 미소를 띠며 막우를 바라보고 말했다.</p>
<p>“검을 젓가락으로 막는 것을 보니 예전의 이름이 허명은 아닌 모양이네요.”</p>
<p>세향의 말에 막 젓가락을 탁자에 내려놓은 막우가 고개를 들어 세향을 노려보더니 말했다.</p>
<p>“밖으로 나간 세림이란 자며, 여기 앉아 있던 조일후란 젊은이도 그렇고 마치 아가씨가 수족 부리듯 하던데 그 미소를 무기삼아 이 노인네도 그렇게 부리고 싶은 건 아니겠지?”</p>
<p>“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수족을 부리듯 하다니요. 호호호”</p>
<p>막우의 말에 세향이 무엇이 재밌는지 웃더니 다시 말했다.</p>
<p>“그건 그렇고 어르신도 저희들과 같이 가실건가요?”</p>
<p>웃음을 머금은 채 세향이 이렇게 말하자 막우는 그 미소를 띤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막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있던 양진이 세향을 바라보더니 말했다.</p>
<p>“이 노인네가 같이 가면 안 되는 건가? 하긴 팔 하나가 달아난 이런 괴팍한 노인네가 따라가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겠지!”</p>
<p>“아닙니다. 같이 가주시면 저희에겐 큰 도움이 되실 텐데요.”</p>
<p>세향은 이렇게 말하고는 술잔을 들더니 말했다. </p>
<p>“그럼 이제 저희들의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술 한 잔 나누고 떠나도록 하지요.”</p>
<p>세향의 말에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모두 잔을 들자 세향이 다시 말했다.</p>
<p>“우리들이 하려는 일이 성공하기를 기원하면서…….”</p>
<p>세향이 이렇게 말하고 술을 마시자 다른 사람들도 그녀를 따라 술을 마셨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술을 마시는 동안 막우의 눈은 세향을 향하고 있었다.</p>
<p>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말에 탄 채 하곡을 떠나는 여섯 명의 머리위로 검은 구름이 드리우고 있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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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과거로부터의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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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0 Jan 2007 19:00:59 +0000</pubDate>
		<dc:creator>김 승엽</dc:creator>
				<category><![CDATA[검을 다루는 자들]]></category>
		<category><![CDATA[소설과 시]]></category>
		<category><![CDATA[장편소설]]></category>
		<category><![CDATA[무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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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과거로부터의 ……. 멀리 손유책의 집이 보이기 시작하자 사량이 반가운 표정으로 마차에 앉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제 다 왔습니다.” 사량의 말에 희문의 밖을 내다보더니 말했다. “말들도 많이 지쳤을 텐데 잘 됐군.” 희문의 말을 듣고 희연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하진을 바라보았다. 마차에 올라탄 뒤 그의 얼굴을 처음 바라보는 것 같 은 느낌이 들었다. 의식적으로 피한 것은 아니었지만 웬일인지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과거로부터의 …….</strong></p>
<p>멀리 손유책의 집이 보이기 시작하자 사량이 반가운 표정으로 마차에 앉은 사람들에게 말했다.</p>
<p>“이제 다 왔습니다.”</p>
<p>사량의 말에 희문의 밖을 내다보더니 말했다.</p>
<p>“말들도 많이 지쳤을 텐데 잘 됐군.”</p>
<p>희문의 말을 듣고 희연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하진을 바라보았다. 마차에 올라탄 뒤 그의 얼굴을 처음 바라보는 것 같<br />
은 느낌이 들었다. 의식적으로 피한 것은 아니었지만 웬일인지 그와는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다. 희연이 하진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하진이 고개를 들어 희연을 바라보았다. 잠시 어색한 눈으로 마주보던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눈을 돌렸다. </p>
<p>“다 왔습니다.”</p>
<p>사량이 이렇게 말하고 마차에서 내려섰고 다른 이들도 마차에서 내려섰다. 사량이 말들을 풀어 집 뒤쪽에 묶으려 하는데 방문이 열리며 유책이 나타났다.<br />
“무슨 일로 찾아오신 분들입니까?”</p>
<p>사량과 희문을 미처 보지 못한 유책이 하진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유책의 물음에 하진이 뭐라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데 희문이 마차 뒤 쪽에서 나타나 말했다.</p>
<p>“오래간 만이구만.”</p>
<p>희문을 발견한 유책이 얼른 방에서 나와 마당에 내려서며 예를 취하고는 말했다.</p>
<p>“정말 오래간만에 찾아 오셨습니다. 안 그래도 찾아오실 때가 되었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잘되었습니다.”</p>
<p>유책이 이렇게 웃으며 말하자 희문도 얼굴에 웃음을 띠우고 말했다.</p>
<p>“자네 친구와 같이 왔다네. 그나저나 내가 예전에 부탁했던 일은 알아보았는가?”</p>
<p>“친구라니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p>
<p>친구를 데려왔다는 말에 유책이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마침 마당 뒤쪽에 말을 묶으러 갔던 사량이 나타나 말했다.</p>
<p>“너무 자주 들르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쫒아내지는 않겠지?”</p>
<p>“쫓아내면 갈 데도 없는 놈이니 그럴 수는 없지.”</p>
<p>사량을 발견한 유책이 반가운 듯 사량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리고는 주변에 있는 다른 이들이 누구인지 물어보려고 하다 밖에 사람들이 서있으면 남의 눈에 의심을 받을까 싶어 사량과 희문을 집 방안으로 안내하며 말했다.</p>
<p>“제가 워낙 여러 사람에게 눈엣 가시 같은 존재라 몰래 보는 눈들이 많으니 일단 방 안으로 들어가시지요.”</p>
<p>“그래 그럼세!”</p>
<p>희문과 사량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희연도 안으로 들어갔고 자하와 하진 역시 인하를 부축하여 방안으로 들어갔다.<br />
<span id="more-442"></span><br />
“누추합니다만 일단 앉으시지요”</p>
<p>유책이 앉기를 권했지만 바닥에 쌓인 책 때문에 다른 이들이 선뜻 앉지를 못하자 사량이 바닥의 책을 치우고 앉으며 말했다.</p>
<p>“앉을 자리를 만든 뒤에 앉으라 할 것이지. 대충 치우고 앉으시는 게 좋겠습니다.”</p>
<p>사량의 말에 희문이 웃으며 바닥의 책을 치우고 앉았고 다른 사람들도 이내 책을 한쪽으로 치우고는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유책도 자리에 앉으려다 말했다.</p>
<p>“이거 손님들이 오셨는데 차도 내오지 않았으니……. 어서 가서 차를 내오겠습니다.”</p>
<p>유책이 이렇게 말하고 방을 나서려고 하는데 희문이 됐다는 듯 말했다.</p>
<p>“차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먼저 내가 부탁했었던 것부터 이야기 해주게”</p>
<p>“아! 그것 말씀이십니까?”</p>
<p>희문의 말에 유책이 이렇게 대꾸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선 사량을 쳐다보고는 말했다.</p>
<p>“자네도 이제는 그 적랑이란 검이 어떤 검인지 알고 있겠구만?”</p>
<p>사량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유책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옆에서 책 하나를 집어 들어 펼치더니 말했다.</p>
<p>“어르신께 부탁을 받은 뒤에 사서들을 뒤지다 찾아낸 겁니다. 저희 가문 조상님께서 쓰신 일기인데 여기에 그 검들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나옵니다.”</p>
<p>유책은 이렇게 말하고는 책을 희문 앞으로 밀어 놓으며 말했다.</p>
<p>“그 일기를 쓰신 손화사라는 분께서 적랑을 얻은 뒤에 우리 가문의 가보가 된 것 같습니다.”</p>
<p>희문이 책을 읽는 동안 유책의 이야기는 계속 됐다.</p>
<p>“여덟 문파가 지배하던 시절 어떤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책에도 자세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그 일이 있은 뒤 그 검들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그 중 적랑, 흑요, 자사, 청파 이 네 자루에 대한 이야기만 조금 나오는데 그 검들이 각자 괴이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p>
<p>괴이한 힘이라는 말에 하진의 눈이 잠시 반짝였다. 하곡의 유문도장에서 겪었던 흑요라는 검의 이상한 능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까 싶어서였다. 하진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사량이 적랑을 풀어 앞에 내 놓으며 말했다.</p>
<p>“그렇다면 이 검의 능력은 뭔가?”</p>
<p>사량의 물음에 유책이 반가운 얼굴로 적랑을 받아 들더니 말했다.</p>
<p>“적랑은 사람을 베면 벨수록 칼날이 붉어진다고 하네. 게다가 적랑이란 검이 가진 원래 성격이 피를 머금고 싶어 하기 때문에 끝까지 베어내지 않고 그 끝에 걸린다네.”</p>
<p>“그 끝에 걸린다고?”</p>
<p>유책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사량이 되물었다.</p>
<p>“말 그대로 세상 그 무엇도 완벽한 절단을 하지 못하는 검일세.”</p>
<p>유책의 말에 사량이 말도 안 된다는 듯 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했다.</p>
<p>“참 그러고 보니 예전 이 검을 뽑아 들었을 때 뭔가에 홀린 듯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그것도 혹 이 검 때문이 아닌가?”</p>
<p>사량의 말에 갑자기 유책의 눈이 커졌다. 뭔가 많이 놀란 듯 자신의 손에 들린 적랑을 살펴보더니 말했다.</p>
<p>“정말인가? 자네에게 그 일이 일어났다는 말인가?”</p>
<p>믿을 수 없다는 듯 말하는 유책의 모습을 이상하게 느낀 희문도 유책을 보며 말했다.</p>
<p>“맞네, 눈이 마치 산짐승의 눈처럼 번뜩이더군.”</p>
<p>희문을 말을 듣고 유책이 한숨을 작게 내쉬더니 말했다.</p>
<p>“그것이 바로 적랑의 다른 능력입니다. 검 스스로 선택한 주인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합니다. 검이 가진 욕망이 주인에게 옮겨가는 것이라 일기에는 쓰여 있는데 그것이 사용하는 검사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주인을 해를 끼치기도 합니다.”</p>
<p>“해를 끼친다고?”</p>
<p>사량이 해를 끼친다는 말에 이렇게 묻자 유책이 검을 살짝 뽑아 칼날의 빛깔을 살펴보더니 말했다.</p>
<p>“검 스스로가 자신의 색을 찾고 싶어하는 걸세. 그래서 강한 살기를 가진 자를 만나면 그 주인의 명을 갉아 먹으면서 사람들의 피를 머금고 붉어지고 싶어하는 거지. 검이 주인의 혼을 잠식할때마다 일년씩 명이 줄어든다고 쓰여 있네. 대대로 손가 가문의 사람에게만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는데 자네한테도 일어날 줄은&#8230;&#8230;”</p>
<p>유책이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실수였다고 생각했는지 안타까운 표정을 짓자 사량이 웃으며 말했다.</p>
<p>“일년씩이라&#8230;&#8230;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게 무슨 상관이 있겠나? 그나저나 자네 어째서 저 검을 나에게 준건가?”</p>
<p>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사량의 얼굴을 바라보던 유책은 적랑을 다시 사량에게 건네며 말했다.</p>
<p>“내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나 자네에겐 혹 도움이 될까 해서 건넨 것인데 그게 자네에게 해가 될지도 모르겠군.”</p>
<p>유책은 이렇게 말하고서는 사량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량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p>
<p>“자네 마음은 내가 잘 알고 있으니 그런 생각은 하지 말게”</p>
<p>“그렇다면 다른 검들이 가진 능력은 무엇인가?”</p>
<p>희문이 뒤쪽에 앉은 하진을 한 번 바라보고는 이렇게 물었다. </p>
<p>“적랑말고 다른 검들의 능력은 간단하게만 적혀 있는데 자사는 자줏빛 칼날이 뱀처럼 유연하게 움직인다고 하고 청파의 경우는 스치기만 하여도 상처가 갈갈이 찢겨 패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흑요의 경우는&#8230;..”</p>
<p>유책이 흑요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려 하는데 희문이 하진에게서 흑요를 받아 유책에게 내 밀며 말했다.</p>
<p>“이게 그 흑요라는 검일세”</p>
<p>“아!”</p>
<p>유책은 희문이 내민 흑요를 받아들고 자루에 달린 네 개의 돌기를 살펴보다가 말했다.</p>
<p>“흑요는 주인의 피를 빤다고 합니다. 그 검은 칼날이 실은 요괴의 일부분이란 말이 잠시 나오는데 그래서 사람의 피가 검날을 타고 돌면 그 예리함과 강도가 배가 된다 합니다. 그리고&#8230;&#8230;”</p>
<p>유책이 이렇게 말하고 흑요를 가지고 있던 하진을 바라보더니 말했다.</p>
<p>“그 주인에게 변화가 생긴다고 합니다.”</p>
<p>“변화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p>
<p>지금껏 유책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하진이 이렇게 물었지만 유책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머뭇거렸다.</p>
<p>“이 아이가 내 손자 하진이란 놈일세. 유문좌파의 유호종이 내가 맡긴 이 검을 이 아이에게 다시 준 것 같은데 그 뒤에 피를 빨린 것 같네”</p>
<p>대답을 머뭇거리는 유책을 보며 희문이 이렇게 말하자 유책이 할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p>
<p>“강하지 않은 자는 몸 속에 흐르는 요괴의 피에 먹혀 변화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떤 것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어르신께서 검의 향기를 맡을 수 있게 되신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만.”</p>
<p>“확실히 내가 검의 향기를 맡게 된 것이 이 흑요를 얻게 된 이후였지만 난 피를 빨린 적은 없었네. 하진은 피를 빨렸으니 어쩌면 더 다른 변화가 나타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 이구만.”</p>
<p>희문이 이렇게 말하고는 하진을 한번 바라보았다가 뭔가 생각하는 듯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숙였다.<br />
유책은 하진에게 흑요를 다시 건네고는 말했다.</p>
<p>“그 변화가 무엇인지 모릅니다만 흑요를 지배하는 자야 말로 생사를 지배하는 자라는 말이 적혀 있소. 조심하는 게 좋을 듯 싶소만”</p>
<p>하진은 유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흑요를 다시 허리에 찼다. 그 때 희문이 고개를 들어 하진을 보면서 말했다.</p>
<p>“그 검을 계속 쓸테냐?”</p>
<p>희문의 물음에 하진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저 손유책이라는 남자의 말을 믿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방안이 조용해졌는데 그 것을 깨고 사량이 입을 열었다.</p>
<p>“다른 검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가?”</p>
<p>“내가 찾아본 바로는 이 네 자루에 대한 이야기 밖에 없었네. 꽤 많은 사서들을 찾아보았지만 사서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것으로보아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은 것 같아.”</p>
<p>유책의 대답에 희문이 입을 열었다.</p>
<p>“이미 우리 손에 적랑과 흑요가 있으니 자사와 청파를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되겠는가?”</p>
<p>“일기가 적혀 있을 당시 적랑은 손가의 뢰격류에 흑요는 나안문의 양평웅에게 있었으니 다른 검들도 그 당시 여섯 문파에 흩어져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p>
<p>유책의 말에 희문이 어렵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p>
<p>“하지만 예전 팔문파 시절의 문파들은 이제 남아 있지 않은데 힘들 것 같구만.”</p>
<p>“하지만 그 중 이름은 다르지만 원류를 이어받은 문파들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팔륜문 같은 경우도 예전 백형류를 이어 받은 문파이고 섬현파 역시 세현파를 이어받은 경우니 그런 문파들을 찾아본다면 분명 찾을 수 있을 겁니다.”</p>
<p>유책의 입에서 팔륜문의 이야기가 나오자 희연의 눈이 잠시 술렁였다. </p>
<p>“아무래도 추가비류를 찾아가 상의를 해봐야 겠구만.”</p>
<p>희문이 희연을 보며 이렇게 말하고서는 잠시 멈추었다 유책에게 말했다.</p>
<p>“어떤가 자네도 가지 않겠나. 그 검들을 찾으려면 자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말일세”</p>
<p>희문의 물음에 유책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겨우 입을 열었다.</p>
<p>“조금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p>
<p>“생각은 무슨 생각인가, 그렇게 오랫동안 죽은 듯 묻혀 살았으니 이제 세상 구경도 할때가 되었네.”</p>
<p>생각해 보아야 겠다는 말에 사량이 이렇게 말하더니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p>
<p>“같이 가세.”</p>
<p>사량의 말에 유책이 아무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일어나면서 말했다. </p>
<p>“차 좀 내오겠습니다.”</p>
<p>유책이 차를 내온다며 방을 나가자 벽을 기대고 한 쪽에 앉아 있던 인하가 입을 열었다.</p>
<p>“저희 아버지 일 때문 이시라더니 그 검들에 대한 이야기는 무엇입니까?”</p>
<p>인하의 갑작스런 물음에 희문이 난처한 얼굴을 지으며 말했다.</p>
<p>“그 검들이 너희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이 있단다.”</p>
<p>난처함을 피하느라 희문이 대충 둘러대자 그것을 눈치 챘는지 인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p>
<p>“저 하진이란 분이 차고 계시는 것이 아버지께서 아끼시던 검 같은데 그 것을 저분이 가지고 계신 것은 또 무슨 이유 입니까?”</p>
<p>“유호종 어른이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의 안전을 부탁하시며 내게 주신 것이요.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유호종 어른을 돌아가시게 한 도끼사내가 이 흑요란 검을 찾고 있었으니 이 검에 대해 알면 그 도끼 사내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그런 것이오.”</p>
<p>하진의 말을 들은 인하의 얼굴에서 의심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p>
<p>희문은 하진이 혹 유인하가 실은 아버지를 상처 입히고 도장 제자들을 모두 죽인 살인귀라는 것을 말할까 싶어 조마조마하고 있다 안심한 표정으로 하진을 바라보았다.</p>
<p>하지만 사량의 얼굴은 어두워 졌다. 자신의 부하들을 잔인하게 죽인 그 살인귀가 살아 아무것도 모르는 척 저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이었다. 불쑥 그의 가슴에서 살의가 솟구쳤지만 사량은 그것을 꾹 눌러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p>
<p> 희연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옆을 지나 밖으로 나가는 사량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만약 자신이 그와 같은 상황이라면 저 유인하란 아가씨가 살아있는 사실을 쉽게 용납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희연은 사량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은 조일후를 용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빠졌다.</p>
<p>잠시 후, 유책이 차를 가지고 온 뒤 한 참이 지나서도 사량은 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차를 마시며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던 희문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p>
<p>“하루 묵어갈까 하고 생각했는데 그러기는 힘들 것 같고 여기서 상양이 그리 멀지 않으니 어서 빨리 상양으로 떠나야 할 것 같네. 어떤가? 같이 갈 텐가?”</p>
<p>희문이 이렇게 말하고 일어서자 유책도 따라 일어서더니 말했다.</p>
<p>“저는 여기 남아 있겠습니다. 혹 죽었다던 친구가 살아올지도 모르니 그를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p>
<p>유책의 대답에 희문이 할 수 없다는 듯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p>
<p>“자! 상양에 가는 길에 마을에 들러 쉬도록 하지.”</p>
<p>희문의 말에 사람들이 유책에게 인사를 하고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유책이 배웅이라도 하려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사량이 방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p>
<p>“같이 가지 않을 텐가?”</p>
<p>“자네에게 이야기 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네. 양진이 살아 있다네.”</p>
<p>유책의 입에서 흘러나온 양진이란 말에 사량의 눈이 커졌다.</p>
<p>“아니 그가 정말 살아 있단 말인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p>
<p>사량이 유책의 양어깨를 잡고 이렇게 물었다.</p>
<p>“어제 아침에 운하궁에서 편지가 왔는데 운하궁 지하에 그동안 갇혀 있다가 얼마 전에 탈출했다고 하더군.”</p>
<p>유책의 말에 사량이 금방 눈물이라도 흘릴 얼굴이 되어선 말했다.</p>
<p>“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다니 믿을 수가 없구먼.”</p>
<p>“그래. 나도 믿을 수가 없지만 혹 그가 나를 찾아올 것 같아 떠날 수가 없네.”</p>
<p>유책의 말에 사량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p>
<p>“알겠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그가 정말 찾아오거든 내 안부라도 전해주게”</p>
<p>유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량과 함께 방을 나오며 말했다.</p>
<p>“저기 많이 다친듯한 아가씨가 유호종의 딸 같은데 그렇다면 요즘 시끄러운 그 살인귀가 아닌가?”</p>
<p>유책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사량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p>
<p>“맞아. 내 부하들을 죽였던 원수이기도 하지”</p>
<p>“뭐?”</p>
<p>유책의 놀란 얼굴에 사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새 떠날 채비를 마친 마차에 오르며 유책에게 말했다.</p>
<p>“언제 친구들끼리 모여 술 한 잔 나눌 때가올지 모르겠구먼.”</p>
<p>“분명 그럴 때가 올걸 세”</p>
<p>다른 이들과 작별 인사를 마치고 마차가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던 유책은 마차가 사라지고 난 뒤 방으로 돌아와 찻잔에 남아있던 식은 차를 들이키고는 중얼거렸다.</p>
<p>“친구들이 모여 술을 마실 때가 정말 올 수 있을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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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살육을 아는 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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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0 Jan 2007 04:00:04 +0000</pubDate>
		<dc:creator>김 승엽</dc:creator>
				<category><![CDATA[검을 다루는 자들]]></category>
		<category><![CDATA[소설과 시]]></category>
		<category><![CDATA[장편소설]]></category>
		<category><![CDATA[무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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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살육을 아는 자 강 양진과 이 막우가 하곡에 들어선 것은 백형을 넘은지 닷새가 되는 날이었다. 양진이 옷차림에는 어울리지 않는 거들먹거리는 걸음걸이로 사람 눈길이라도 끌려는지 하곡 성문을 넘자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 하나가 두 사람을 수상하게 여겼는지 잡아 세우려 하다 눈에 천을 감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맹인이라 생각했는지 그만 두고 말았다. 양진의 팔에 달린 커다란 쇳덩이를 봤더라면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살육을 아는 자</strong></p>
<p>강 양진과 이 막우가 하곡에 들어선 것은 백형을 넘은지 닷새가 되는 날이었다. 양진이 옷차림에는 어울리지 않는 거들먹거리는 걸음걸이로 사람 눈길이라도 끌려는지 하곡 성문을 넘자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 하나가 두 사람을 수상하게 여겼는지 잡아 세우려 하다 눈에 천을 감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맹인이라 생각했는지 그만 두고 말았다. 양진의 팔에 달린 커다란 쇳덩이를 봤더라면 분명 세웠을 터였지만 막우가 몸으로 가린 덕분에 문지기의 눈을 피할 수가 있었다. 잠시 동안이지만 자신들을 주시하던 문지기의 눈초리를 눈치 챈 막우가 앞서가는 양진 옆으로 다가서면서 말했다.</p>
<p>“그렇게 거들먹거리고 걷다가는 길 가던 개도 한 번 더 쳐다볼 거다.”</p>
<p>막우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이 걸리는지 이렇게 말하자 양진이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고개를 돌려 천에 가려 보이지 않는 막우의 눈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p>
<p>“난 개 말고 관병들이 좀 쳐다봐 줬으면 좋겠는데.”</p>
<p>양진이 이렇게 말하자 막우가 할 수 없는 놈이라는 듯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앞 장서 가던 양진이 무슨 생각인지 식당 한 곳으로 들어가 척하니 자리에 앉자 막우도 얼른 그의 뒤를 따라 그의 앞자리에 가서 앉았다.</p>
<p>“돈도 없는 놈이 어떻게 하려고 이런 곳에 들어오나?”</p>
<p>막우가 이렇게 말하자 양진이 번쩍 손을 들어 점원을 부르더니 말했다.</p>
<p>“여기 요기 할만 것 하고 술 좀 가져오게.”</p>
<p>양진이 이렇게 말하자 양진과 막우의 몰골을 훑어보던 점원이 주인 쪽을 한번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행색을 보아하니 둘 다 맹인 같은데다 먹고 돈도 제대로 낼 것 같지 않아 주인에게 내쫓을지를 묻는 것이었다.</p>
<p> 두 사람을 맹인으로 생각했는지 이제 손짓까지 하는 점원을 바라보던 막우가 무슨 생각이냐는 듯 탁자 밑으로 양진을 살짝 걷어차자 갑자기 양진이 탁자위에 허리에 찼던 백록을 탁 소리가 나게 올려놓더니 말했다.</p>
<p>“계속 거기 서서 주인 눈치만 보고 있다가는 언제 네 놈 손이 달아날지&#8230;&#8230;”</p>
<p> 양진이 이렇게 말하자 점원이 깜짝 놀란 얼굴로 다시 주인을 바라보았다. 점원의 놀란 얼굴에 멀리 서서 바라보고 있던 주인은 탁자위에 올라온 검을 보고는 달려오더니 말했다.</p>
<p>“아이구 죄송합니다. 점원 놈이 몰라 뵙고 실수를 한 모양입니다.”</p>
<p>주인이 달려와 굽실거리자 옆에 서 있던 점원도 주인을 따라 굽실거리기 시작했다. 양진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짐짓 화가 누그러진 듯 탁자 위에 올려놓은 백록을 내려놓더니 말했다.</p>
<p>“주인장은 말이 좀 통하는구먼. 어서 가져오게.”</p>
<p>양진의 말에 주인이 점원을 데리고 사라졌고 고개를 돌려 주인과 점원을 바라보던 막우가 양진을 바라보며 말했다.</p>
<p>“이건 말 그대로 강도짓이구만”</p>
<p>막우의 말에 양진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p>
<p>“굶어 죽을 지도 모르는데 강도짓이라도 해야지.”</p>
<p>양진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지만 막우는 저 주인이 그대로 밖으로 나가 관병들에게 알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계속 고개를 돌려 점원과 주인을 살폈다. 하지만 막우의 생각이 지나쳤는지 주인은 그대로 자리에 돌아가 있었고 잠시 후 점원이 음식과 술을 가지고 왔다.<br />
<span id="more-441"></span><br />
 점원이 음식을 놓고 가자 양진은 기다렸다는 듯 술을 들어 잔에 따르지도 않고 병채 들어 들이키더니 막우에게 술병을 건네더니 말했다.</p>
<p>“오랜만의 술이라 그런지 목을 넘어가면서 취하는 것 같구만.”</p>
<p>막우는 양진이 건넨 술병을 받아 잔에 한잔 따라 마시고는 젓가락을 들어 점원이 내온 수육을 한 젓가락 집어 들었다. 막우가 젓가락을 들고 천천히 먹는 것과는 달리 양진은 마치 걸신이라도 들린 듯 맨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입가에 묻은 고기 기름을 손등으로 훔치더니 저쪽에서 탁자를 정리하고 있던 점원을 불렀다.</p>
<p>양진의 손짓에 점원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자 양진은 대 뜸 점원의 목덜미를 잡아끌더니 귓가에 대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p>
<p>“이 주변에서 이 세향이나 양 조웅이란 이름을 들어 본적이 있느냐?”</p>
<p> 어찌나 강한 힘으로 목덜미를 잡았는지 점원이 겁에 잔뜩 질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앞에서 보고 있던 막우가 손을 뻗어 점원의 목을 잡고 있는 양진의 손을 풀었다. 양진의 손이 풀리자 점원이 자신의 목덜미를 주무르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더니 말했다.</p>
<p>“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p>
<p>“그래. 그렇군.”<br />
 양진이 이렇게 말하고는 손짓으로 점원을 다시 보내고서는 탁자위의 술병을 들어 한 모금 들이키고는 말했다.</p>
<p>“어떻게 찾는다. 이세향 , 양조웅이라. 양조웅이란 이름은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으니 이것을 어떻게 한다? 벽에다 벽보라도 붙여야 하는 건가?”</p>
<p>혼잣말을 하듯 양진이 이렇게 중얼거리자 아무 말 없이 음식을 먹고 있던 막우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p>
<p>“그래 그 두 사람을 찾아야 하는 건가?”</p>
<p>막우의 말에 양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p>
<p>“뭐 별로 찾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계속 이렇게 강도짓을 하면서 다닐 수도 없을 것 같아서 그런 것뿐이지.”</p>
<p>“그도 그렇구먼.”</p>
<p> 양진의 말에 막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때 누군가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기척을 느끼고는 막우가 고개를 돌렸다.</p>
<p>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네 명의 사내가 막우와 양진이 앉은 쪽을 잠시 훑어보더니 그대로 주인에게 다가갔고 그들이 오자 주인이 눈짓으로 두 사람 쪽을 가리키며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그들에게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p>
<p> 자신들을 향한 눈빛에 막우가 고개를 돌려 양진을 바라보았으나 양진은 그 들의 눈빛 같은 것은 눈치 채지 못했는지 술만 들이켜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막우가 술병을 잡아 들이키고 있는 양진의 손을 잡는데 어느 틈에 다가왔는지 네 명중 하나가 막우 쪽으로 다가와 말했다.</p>
<p>“꽤나 거친 양반들이라는데 음식값은 가지고들 계시겠지.”</p>
<p>“그런 것 가지고 있지 않은데 어쩌지”</p>
<p>막우가 뭐라 하기도 전에 양진이 사내를 향해 말했다.</p>
<p>“오호라. 무전취식이라도 하시겠다. 우리가 이 곳을 보호해주는 댓가를 받는 이상 당신들을 그냥 둘 수는 없지.”</p>
<p>사내는 말을 마치고서는 뒤로 한걸음 물러서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더니 말했다.</p>
<p>“검을 차고 있는 것을 보니 검사인 것 같은데 순순히 돈을 낼 테냐 아니면 우리들과 겨루어 볼 테냐?”</p>
<p>사내의 말에 양진이 큰소리로 웃더니 막우를 보며 말했다.</p>
<p>“빌붙어 먹고 사는 주제에 주둥아리는 살았구먼. 그렇지?”</p>
<p>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내의 검이 양진의 목 쪽으로 날아들었지만 양진의 팔에 달린 쇳덩이에 막혀 짧은 떨림 만을 남기고 뒤로 물러섰다.</p>
<p> 사내의 선공에 막우가 뒤로 물러났고 양진이 검을 들고 일어서더니 뒤에 서 있던 나머지 세 명의 검사를 향해 소리쳤다.</p>
<p>“그래 너희들도 검사들이냐?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뽑아봐라.”</p>
<p>순식간에 둘러싸인 양진이 재미있다는 듯한 얼굴로 네 명의 검사를 바라보며 말했다.</p>
<p>“하긴 무전취식하는 나나 빌붙어 먹고사는 너희들이나 다를 바 없지만 나는 내게 검을 들이댄 놈들을 그냥 보내지는 않거든.”</p>
<p>양진이 이렇게 이야기하자 뒤 쪽에 서서 바라보고 있던 막우가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내뱉었다.</p>
<p>“미친놈을 건드렸구먼.”</p>
<p>그 말이 신호가 되기라도 한 듯 양진을 둘러싸고 있던 네 명중 오른쪽 끝에 있던 사내가 기합소리와 함께 양우의 가슴 쪽으로 검을 찔러 들어왔다. 양진은 몸을 돌려 검을 피하며 앞쪽으로 나온 사내의 오른 발등을 찍은 채 팔에 매달린 쇳덩이로 얼굴을 세게 후려쳤다. 발등이 검에 꿰뚫린 채 얼굴을 얻어맞은 사내는 그대로 뒤로 고꾸라졌는데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코언저리가 뭉개져 마치 코가 없어진 것처럼 보였다.<br />
 바닥에 넘어져 온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던 세 명의 검사가 그 모습에 놀랐는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양진은 쓰러진 검사를 흘깃 쳐다보더니 발 등에 박혀 있던 검을 뽑아 사내의 가슴에 가져가더니 말했다.</p>
<p>“죽은 건가?”</p>
<p>그 말과 함께 검이 사내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떨고 있던 사내의 몸이 멈추자 양진이 검을 뽑아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세 명의 검사를 향해 말했다.</p>
<p>“너희들도 이 정도인건 아니지? 그래 가지고서는 빌붙어 먹고 사는 것도 힘들겠는데.”</p>
<p> 양진의 말에 쓰러진 동료를 바라보며 양진에게 검을 겨누고 있던 검사 하나가 양진의 오른쪽 어깨를 세로로 베어 들어왔다. 자신의 어깨를 노리고 날아오는 검을 양진은 옆으로 밀어내 흘리고는 사내의 이마 한가운데 검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마치 머리에 자국만을 남기려는 듯 양진의 검은 머리를 꿰뚫지 않고 작은 상처만을 남겼다.</p>
<p>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남자는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멈춰서 버렸다. 양진은 이마에 닿았던 검을 거두면서 뒤로 물러서 말했다.</p>
<p>“재미없다”</p>
<p>그 말에 남은 두 명의 검사가 자신들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아직도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는 사내의 양쪽 팔을 잡고 물러서면서 소리쳤다.</p>
<p>“네 놈 가만두지 않겠다.”</p>
<p>그리고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식당을 나가자 양진이 그들의 뒤에다 대고 소리쳤다.</p>
<p>“그래 좀 재미있는 놈을 데리고 와라!”</p>
<p>양진은 이렇게 말하고 미친 듯 웃어대더니 저 쪽 구석에서 겁에 질린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주인과 점원을 향해 이리오라는 듯 손짓을 보내며 말했다.</p>
<p>“거기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이 시체나 치우지 그래. 먹는데 이런 흉물스러운 게 있으면 밥맛 떨어지잖아.”</p>
<p>양진은 이렇게 말하고서는 자리에 가 앉자 막우가 걸어와 시체를 한 번 훑어보더니 말했다.</p>
<p>“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잘도 죽이는구먼. 자비나 인내 같은 말은 잃어버리기라도 한 모양이지.”</p>
<p>하지만 양진은 막우의 말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술만 들이켜고 있었다. 술 한 병을 다 마셨는지 탁자위에 술병을 턱하고 내려놓은 양진은 죽은 검사의 시체를 끌고 나가는 주인과 점원을 바라보며 소리쳤다.</p>
<p>“술이 떨어졌으니 술 좀 더 가져오게”</p>
<p>양진의 말에 시체를 끌고 나가던 점원이 고개를 굽실거리며 대답했다.</p>
<p>시체를 한 곳으로 치운 점원이 술병을 들고 양진에게 왔을 즈음 식당 입구가 시끄러워지더니 열 댓 명의 사내가 들어섰다. 그들이 들어서자 막우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멀찍이 물러서면서 양진에게 말했다.</p>
<p>“네가 바라는 대로 재미있는 놈이 온 것 같다.”</p>
<p>“응?”</p>
<p>막우의 말에 양진이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묻다가 식당 입구 쪽에 몰려서 있는 사내들을 발견하고는 픽 웃으며 말했다.</p>
<p>“배 좀 채우려다가 시체만 쌓겠군!”</p>
<p>양진은 이렇게 말하고서는 손으로 탁자위의 고기를 한 움큼 집어 들어 입안 가득 우겨 넣더니 백록을 들고 사내들 쪽으로 걸어갔다. 양진이 걸어오자 기다렸다는 듯 맨 앞에 서 있던 사내가 손가락으로 양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p>
<p>“우리 아이들을 건드린 게 네놈이냐?”</p>
<p>사내의 거친 목소리를 들으며 떡 하니 앞에선 양진은 남자의 옷차림과 허리에 찬 검을 살펴보는 듯하더니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p>
<p>“빌붙어 사는 놈이 옷차림 하난 거창하구나.”</p>
<p>“뭣이!”</p>
<p>양진의 말에 사내가 검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양진은 검을 뽑지도 않고 사내를 바라보고 있다가 턱을 만지면서 말했다.</p>
<p>“네 놈 하나로 되겠나. 이 왕 떼로 몰려 왔으니 한꺼번에 덤벼보시지.”</p>
<p>양진의 말에 사내가 더 이상 참기 힘들었는지 검을 날렸다. 비어있는 양진의 가슴을 향해 바람소리와 함께 내려오는 검을 양진은 슬쩍 뒤로 물러나 피했고, 피할 것을 예감했는지 사내의 검은 바로 방향을 바꾸어 양진의 왼쪽 허리로 찔러 들어왔다. 양진은 검도 뽑지 않은 채 몸을 틀어 찔러 들어오는 사내의 검을 피하더니 몸을 되돌리며 발검과 함께 앞에선 사내의 허리를 쳤다. 양진의 검이 사내의 몸에 잠긴 듯 멈추더니 사내의 입에서 바람이 새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br />
양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검을 당겨 사내의 몸에서 빼냄과 동시에 사내의 목을 가볍게 그었다. 순간 사내의 몸이 뒤로 쓰러지더니 목에서 품어져 나온 피가 뒤에 서있던 검사들의 얼굴에 흩뿌려졌다.</p>
<p>얼굴에 뜨거운 피를 뒤집어쓴 검사들이 순간 검을 뽑아 들며 양진을 향해 공격해 들어왔다. 양진은 자신의 온몸을 향해 쏟아지는 공격을 팔에 매달린 쇳덩이로 흘려내면서 자신의 옆구리를 향해 공격해 들어오는 사내의 가슴에 검을 꽂았다. 가슴뼈 사이를 살짝 스치며 꽂혔는지 손끝에 뼈가 긁히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양진은 괴상한 미소를 흘렸다. 양진은 자신의 쪽으로 쓰러지는 사내의 멱살을 잡아 앞에선 검사들에게 집어 던지며 뒤로 물러서면서 소리쳤다.</p>
<p>“제대로 된 놈은 없구만.”</p>
<p>두 명의 동료를 잃은 사내들이 양진의 목소리에 겁이라도 집어 먹었는지 슬금슬금 물러서는데 순간 뒤 쪽에서 카랑 카랑한 목소리가 그들의 발걸음을 막았다.</p>
<p>“저 놈 하나를 죽이지 못하고 물러설 테냐?”</p>
<p>그 목소리에 도망치려던 사람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있는데 그들 사이를 뚫고 카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인 듯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 이제 막 스물이 넘었을 듯해 보이는 젊은 여자가 땋아 내린 머리를 어깨 뒤로 넘기며 무리 앞에 서더니 양진을 향해 말했다.</p>
<p>“무슨 이유로 우리에게 검을 들이대는 거냐?”</p>
<p>여자의 말을 듣고 있던 양진은 재미있다는 듯 여자를 훑어보다가 그녀의 허리에 검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검 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p>
<p>“네가 우두머리인가 보구나? 거 재미있겠는데.”</p>
<p>양진이 이렇게 말하고는 검 끝을 떨어뜨린 채 여자의 얼굴을 노려보자 검집을 잡고 있던 여자의 왼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p>
<p> 멀찌감치 떨어져 양진을 바라보던 막우는 이제는 볼 것도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아 술을 따라 마시고 있었다.</p>
<p>“잔말 말고 물은 말에나 대답해라!”</p>
<p>양진의 빈정거리는 소리에 여자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p>
<p>“그러고 보니 여자를 품어본지도 오래된 것 같은데&#8230;”</p>
<p>양진은 이렇게 말하면서 앞에선 여자의 알몸이라도 쳐다보는 듯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턱을 만지며 음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여자도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것을 알았는지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p>
<p>“장식 삼아 달고 다니는 줄 알았더니 쓸 줄도 아는 모양이구만.”</p>
<p>검을 뽑아든 여자의 자세를 살펴보고는 양진이 이렇게 내뱉더니 바닥을 향하고 있던 검을 쳐들었다. 오른손만으로 검을 잡고 그 끝으로 여자의 가슴 한가운데를 겨누고 있던 양진은 자신의 머리 쪽을 노리는 여자의 검을 살짝 쳐내면서 앞으로 뻗은 여자의 오른팔을 살짝 베었다. 푸른 색 옷이 배어나온 피로 보라색으로 물들었지만 여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상처도 살피지 않고 다음 공격을 계속했다. 팔에서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지만 그게 오히려 여자의 전의를 불태우게 했는지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양진은 자신의 몸에 구멍이라도 내려는 듯 빠른 속도로 찔러 들어오는 여자의 검을 피하면서 왼손으로 잡고 있던 검 집으로 여자의 왼쪽 무릎을 안쪽으로부터 후려쳤다.<br />
 그 바람에 중심을 잃은 여자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가 재빨리 일어나려는 순간 양진의 검이 여자의 왼쪽 어깨를 찔렀다. 깊게 찌르지는 않았지만 통증이 심했는지 순간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br />
 뒤 쪽에 물러서 바라보고 있던 막우는 양진이 금세라도 끝낼 수 있는 싸움을 길게 끌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여자를 베는 것을 꺼려서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검을 잡은 손으로 왼쪽 어깨의 상처를 막고 있던 여자가 한 걸은 뒤로 물러서자 뒤쪽에 서 있던 검사들이 앞으로 튀어나와 양진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양진의 검이 움직여 오른쪽 끝에 있던 사내의 뺨을 꿰뚫고 들어갔다. 뺨을 꿰뚤린 사내가 검을 한손으로 잡고 왼손으로 뺨을 만지는 자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사내의 검을 아래에서 위로 쳐 떨어뜨리게 하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그 반동력으로 목을 쳤다. 완전히 베어지지 않고 목 한가운데 들어간 검을 그대로 밀어 뒤에 있는 사내의 눈을 찌른 양진은 그 상태에서 검을 한번 비틀어 빼낸 양진은 자신의 왼쪽 허리를 노리는 검을 쇳덩이로 막아 흘리고는 몸을 움직여 왼쪽 어깨로 상대의 몸을 강하게 밀쳤다. 그리고선 어깨에 밀려 나가떨어진 상대의 정강이를 밟아 부러뜨리고는 자신의 뒤쪽으로 다가서는 검사의 검을 피하며 상대의 겨드랑이를 검으로 쳐올렸다. 팔이 잘리지는 않았지만 상처를 깊게 입은 상대가 팔에 힘을 잃고 검을 떨어뜨리자 가슴을 세로로 베고는 검 자루로 얼굴을 후려쳐 쓰러뜨렸다.</p>
<p> 술을 마시다 양진이 싸우는 모습을 돌아본 막우는 많은 수의 적을 상대하는 그의 움직임이 남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먼저 공격하지 않고 상대의 선공을 기다렸다 흘려내고는 공격하는 것이 마치 전장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본능적으로 피하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움직임. 하지만 거기에 살인을 즐기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조금은 다른 점이었다. 전장의 긴장이 보이지 않는 것이 신기한 일이라고 막우는 생각했다.</p>
<p> 양진은 자루에 맞고 쓰러진 남자를 넘으며 자신의 왼쪽 어깨를 내려치는 검사의 검을 맞받아쳤다 자신의 공격이 막히자 상대의 오른발이 양진의 명치를 노리고 날아들었지만 양진은 왼손으로 발목을 잡고는 밀어냈다. 중심을 잃고 상대가 쓰러지자 그 모습이 웃기기라도 한 듯 양진이 픽하고 웃었다. 넘어졌던 검사가 일어나 자세를 다시 잡는 순간 양진은 자신의 오른쪽에서 공격해 오는 검사의 허리를 검으로 돌려쳐 쓰러뜨리고는 막 일어나 양진의 다리를 찔러 들어오는 검사의 정수리를 검으로 내리쳤다. 머리가 깨진 것처럼 둔탁한 소리를 내며 상대가 쓰러지자 양진이 쓰러진 시체를 넘으며 남은 검사들을 향해 소리쳤다.</p>
<p>“시간 끌지 말고 한꺼번에 공격해라.”</p>
<p>하지만 그 말에 오히려 검사들이 뒤로 물러서자 양진이 웃으며 말했다.</p>
<p>“처음의 기세는 다 사라진 건가? 이제 좀 재미있어지려고 하는데.”</p>
<p>그 말에 상처 입은 어깨를 누르며 뒤에 물러서 있던 여검사가 앞으로 내딛으며 양진의 팔을 자를 듯 베어 들어왔다. 매우 빠른 공격이었지만 양진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여 검사의 검을 쇳덩이로 막으며 양진의 검이 여검사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여검사의 목을 꿰뚫을줄 알았던 검은 살짝 닿기만 할뿐 더 움직이지 않았고 그 바람에 여검사가 옆으로 검을 쳐내고는 다시 뒤로 물러설 수 있었다. 목이 살짝 찔렸는지 피가 묻어 나오자 여 검사의 눈이 양진의 눈을 노려보았다. 잠시 그 녀의 눈을 마주보던 양진은 뒤 쪽에 서있던 검사들을 향해 소리쳤다.<br />
“여자를 앞세우고 너희들은 그 뒤에 숨을 생각이냐?”</p>
<p>양진의 말에 뒤에 서있던 검사들이 앞으로 나서려하자 여검사가 그들을 막으며 말했다.</p>
<p>“나나 너희들이 나서봤자 희생만 늘 뿐이다.”</p>
<p>그 말을 들은 양진이 검에 묻은 피를 가볍게 털어내고는 실망했다는 표정이 되어 말했다.</p>
<p>“뭐야 도망이라도 치겠다는 말인가? 그 좋던 기세는 다 어디간거지.”</p>
<p>그러자 여 검사가 옆에 있던 사내에게 뭐라 귓속말을 했고 무슨 이야기였는지 말을 들은 검사가 밖으로 뛰쳐나갔다.</p>
<p>“다른 놈들을 더 불러오라고 한건가?”</p>
<p>양진이 이렇게 묻자 여검사가 입술을 씰룩거리는 듯 하더니 말했다.</p>
<p>“네 놈에게 걸맞은 상대를 불러오라고 한 것 뿐이다.”</p>
<p>“나에게 걸 맞는 상대라 그런 놈이 있을 리가 없는데&#8230;&#8230;”</p>
<p>양진은 이렇게 말하고는 뭐가 재미있는지 큰소리로 껄껄대며 웃다가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는 말했다.</p>
<p>“그렇다면 너희들도 그 놈이 올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소리 겠군. 그럼 나도 그 걸맞은 상대를 같이 기다려 볼까.”</p>
<p>양진이 몸을 돌려 자리에 돌아와 앉자 술잔을 들이키던 막우가 말했다.</p>
<p>“꽤나 요란하게 밥을 먹는군.”</p>
<p>“재미있는 것이 있을 때는 놀면서 먹기도 하거든”</p>
<p>양진이 이렇게 말하고는 술병을 집어 들자 막우가 그의 눈을 잠시 바라보았다. 제정신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려고 했던 것일까 양진의 눈을 주시하던 막우는 젓가락으로 고기 한점을 집어 들고는 말했다.</p>
<p>“여자는 왜 죽이지 않았지?”</p>
<p>막우의 말에 양진이 술병을 탁자에 내려 놓더니 말했다. </p>
<p>“여기서 죽여 버리면 더 재미있는 상대가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p>
<p>“더 재미있는 상대라 정말 그 이유뿐인가?”</p>
<p>막우가 이렇게 말하고는 집어들은 고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양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막우의 뒤쪽에 검사들과 함께 서있는 여자를 바라보더니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p>
<p>“내 여동생이 살아있으면 저 정도 나이가 되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p>
<p>한참 후에 새어나온 양진의 말에 막우가 그런 건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p>
<p>“전쟁터에서 싸우는 것처럼 날 뛰더니 그 이유 때문에 죽이지 않았다고 참 웃기는 놈이란 말이야. 너란 놈은. 그래 다음 상대를 베고 난 뒤에도 저 여검사는 살려둘 생각이냐?”</p>
<p>그 말에 양진이 다시 한번 여검사를 바라보더니 말했다.</p>
<p>“전장에서 만난 적을 살려 준다는 건 웃기는 일이겠지?”</p>
<p>막우는 순간 양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가 미쳐서 그런 건지 아니면 오랫동안 갇혀 지내 그의 성품이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 막우는 아무 말 없이 양진을 바라보다가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p>
<p> 탁자에 마주 앉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술을 마시고 있는 두 사람과는 달리 입구 쪽에 모여 있던 검사들은 죽은 동료의 시체를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가끔 고통 섞인 신음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양진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 두 번째 가져온 술병이 비어갈 무렵 양진이 점원을 부르려고 고개를 돌리는데 마침 식당 문이 소리를 내며 남자 하나가 식당으로 걸어 들어갔다. 흰머리가 섞인 머리를 곱게 넘기고 갈색으로 염색한 삼베옷을 입은 삼십대 중반 정도의 남자를 바라보던 양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p>
<p>“그래 내 상대가 당신인가?”</p>
<p>양진이 물었지만 남자는 양진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옆에 있는 여검사에게 말했다.</p>
<p>“왜 날 부른 거지?”</p>
<p>남자의 물음에 여자가 눈으로 양진을 가리키고는 말했다.</p>
<p>“저 자에게 당했습니다.”</p>
<p>그 말에 남자는 자신의 허리에 찬 검을 왼손으로 잡으며 말했다.</p>
<p>“하긴 그런 일이 아니면 날 부르지도 않았겠지”</p>
<p>남자는 이렇게 말하더니 양진 쪽으로 다가와 마주섰다. 남자를 주시하고 있던 양진은 남자의 걸음걸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검을 잡았다.<br />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헤치고 양진 앞에 선 남자는 주위의 시체들을 한번 훑어보더니 말했다.</p>
<p>“아무리 실력이 형편없는 자들 이라곤 하지만 이건 너무 하구만.”</p>
<p>남자의 말에 양진이 앞쪽에 있던 시체의 팔을 발로 치우며 말했다.</p>
<p>“저런 놈들에게 팔린 걸 봐서는 별 기대는 되지 않는데&#8230;&#8230;”</p>
<p>양진의 말에 남자는 씩하고 미소를 짓더니 검을 뽑았다. </p>
<p>“먹고는 살아야 하니까.”</p>
<p>똑바로 선채 검만 뽑아든 남자를 바라보며 양진도 검을 뽑았다. 양진이 검을 뽑음과 동시에 남자가 앞 쪽으로 뛰어들며 양진의 목 쪽으로 검을 날렸다. 양진이 그 검을 옆으로 피하며 앞으로 나온 남자의 팔을 베려는데 어느 틈에 남자의 발이 양진의 무릎을 걷어찼다.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자세를 잡느라 남자의 팔을 베지 못하고 양진이 뒤로 물러서자 검이 이번에는 양진의 가슴 쪽으로 파고들었다. 너무 빨라 양진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팔에 매달린 쇳덩이로 진로를 가로 막자 검이 옆으로 살짝 비켜가며 양진의 옷자락을 찔렀다 빠졌다.</p>
<p>“어때 이 정도면 당신 상대가 될 만한가?”</p>
<p>남자가 뒤 쪽으로 두어 걸음 빠져 이렇게 묻자 양진이 미소 지은 얼굴로 대답했다.</p>
<p>“확실히 기다린 보람은 있는데.”</p>
<p>양진은 이렇게 말하고 옷자락에 뚫린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보았다. 그리고 검을 세워 잡는가 싶더니 어느새 남자 쪽으로 뛰어올라 남자의 목을 가로로 베었다. 양진의 공격을 남자는 검으로 막으며 피하는 듯하더니 옆에 있던 긴 의자 한쪽을 발로 걷어차 양진 쪽으로 날렸다. 얼굴 쪽으로 긴 의자가 쓰러지는 것을 양진이 쳐내고 남자의 가슴을 베기 위해 앞으로 나섰을 때는 남자의 검이 벌써 양진의 눈을 노리고 날아들고 있었다. 양진이 급히 몸을 틀어 남자의 검을 피하고 그 반동으로 비어있는 남자의 허리를 베려고 검을 날렸는데 남자의 왼손에 들려있던 검 집에 막히고 말았다.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양진의 어깨 쪽으로 검을 내리쳤는데 양진의 어깨에 닿으려는 찰라 양진의 팔에 매달린 쇳덩이에 막아 공허한 소리를 내고는 튕겨져 나갔고 서로의 공격이 막힌 두 남자는 두 걸음씩 물러섰다.</p>
<p>“술을 좀 마신 모양이군. 숨을 내쉴 때 술 냄새가 풍겨오는게.”</p>
<p>“그나저나 저런 놈들에게 팔리기엔 아까운 실력인데.”</p>
<p>남자와 양진의 싸움을 바라보던 막우가 이렇게 말하자 남자가 뒤쪽에 서있는 여검사를 바라보더니 말했다.</p>
<p>“저 노인도 죽여야 하는 건가?”</p>
<p>마치 귀찮을 일거리가 늘게 될 것을 걱정하는 듯한 사내의 목소리에 막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p>
<p>“부디 늙은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으면 좋겠군.”</p>
<p>남자는 여검사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p>
<p>“그럼 다시 시작해볼까”</p>
<p> 이번에는 검을 두 손으로 잡고 다리를 벌린 채 떡 버티고 선남자는 마치 이번에는 끝장을 내겠다는 듯한 눈빛으로 양진을 노려보았다. 그 에 비해 양진의 자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한 손으로 검을 잡고는 어서 공격해 보라는 듯 여유 있는 얼굴로 서 있는 것이 남자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남자의 오른발이 앞으로 나오는 것을 신호로 양진의 검 날이 옆으로 눕더니 위로 쳐 올려졌다. 남자의 손목을 쳐올리는 것처럼 보이던 검이 방향을 바꾸어 남자의 가슴을 향했을 때는 남자의 몸이 옆으로 틀어지며 양진의 어깨를 공격했다. 하지만 어깨를 노린 것이 허수였는지 금세 뒤쪽으로 빠지더니 남자의 오른발이 자세가 낮아진 양진의 턱을 노리고 날라들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발이 양진의 턱에 적중했지만 양진은 꿈쩍도 하지 않고 남자의 왼쪽 허벅지를 찔렀다. 뼈를 피해 근육사이에 검이 박히자 남자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오더니 허벅지 뒤쪽으로 빠져나온 검을 맨손으로 움켜쥐고는 양진의 목을 향해 검을 날렸다. 남자의 허벅다리에 박힌 검을 미처 빼지 못한 양진은 팔의 쇳덩이로 검을 쳐내더니 남자의 왼쪽 발등을 세게 밟고는 검을 뽑아냈다.</p>
<p>“큭”</p>
<p>검이 허벅지에서 빠져나가자 남자의 일그러진 입가로 고통이 내비쳤다. 하지만 남자는 피가 흐르는 허벅지에서 손을 떼고 검을 두 손으로 잡고 섰다. 검 날을 잡고 있던 손에서 피가 흘러 팔꿈치에서 방울이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p>
<p> 일순의 정지, 마치 두 사람은 그렇게 그 자리에 멈추어서 움직이지 않는 동상 같았다. 살의와 살의가 맞부딪쳐 금방이라도 그 안을 일그러뜨릴 것처럼 춤추었지만 두 사람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흐르는 것 같았다.</p>
<p>“전쟁에 나갔었나 보군.”</p>
<p>남자의 팔꿈치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을 바라보며 양진이 말했다.</p>
<p>“맨 손으로 검을 잡았다고 그렇게 생각한 건가?”</p>
<p>“꼭 그렇지만은 않아. 나랑 비슷한 것 같아서 물어본 것뿐이야.”</p>
<p>자신과 그가 비슷하다는 말에 남자가 웃음을 뗬다. 하지만 어느새 그의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남자가 크게 숨을 들이키는 것 같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p>
<p>“마지막으로 당신 이름을 듣고 싶군.”</p>
<p>“내가 이기게 되면 알려주지.”</p>
<p>양진이 웃으며 말하자 남자가 검 끝을 세우며 말했다.</p>
<p>“당신이 이길 것 같아서 물어본 거야.”</p>
<p>말을 마치고는 남자가 앞으로 뛰어들며 양진의 머리를 치려는 듯 검을 쳐들었다. 그리고 남자의 검이 양진의 머리를 치려는 순간 검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멈추었다. 어느새 양진의 검이 남자의 오른쪽 가슴을 깊게 꿰뚫고 있었다. 남자의 품에 안긴 듯 파고들어간 양진은 남자에게만 들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p>
<p>“강양진. 내 이름이다.”</p>
<p>양진의 말에 남자는 자신의 예감이 맞았다는 듯 웃으며 손에서 검을 떨어뜨렸다. 양진의 등 뒤로 검이 떨어지면서 맑고 가벼운 종소리가 울렸다. 양진이 검을 비틀지 않고 그대로 뽑아내어 뒤로 빠지자 남자는 오른손으로 상처를 잡으며 쓰러질 듯 뒤로 물러서더니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양진을 바라보았다.</p>
<p>“전쟁터에서 죽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 당신에게 죽으니 전쟁터에서 죽는 셈이 되는 건가.”</p>
<p>마지막 힘을 내어 말을 하는지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약해져 갔고 어느새 입가로 피까지 흘리고 있었다.</p>
<p>“그 상처로는 죽지 않아.”</p>
<p>양진이 검에 묻은 피를 털어 검 집에 집어넣고는 말했다. 하지만 남자는 상처 입은 왼손을 흔들더니 잠시 고개를 숙여 피 섞인 기침을 내뱉고는 말했다.</p>
<p>“이대로 죽고 싶어. 어차피 미련 같은 건 없으니까.”</p>
<p>남자는 이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뒤로 젖혀 천정을 바라보았다.</p>
<p>“어서 이 남자를 의원에게 데리고 가라.”</p>
<p>남자를 바라보던 막우가 뒤 쪽에 서서 바라보고 있는 무리에게 소리쳤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고 여검사만이 천천히 다가와 그를 부축하려는 듯 팔을 잡았다. 하지만 남자는 그 손을 뿌리치고는 긴 탁자에 몸을 누이더니 말했다.</p>
<p>“어차피 돈에 팔린 몸이야. 너희들에게도 그 이상의 가치는 없을 텐데”</p>
<p>남자의 말에 여자가 다시 한번 그의 팔을 잡아끌었지만 그는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양진에게 말했다.</p>
<p>“마지막에 심장을 찔러 줬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p>
<p>그리고는 숨을 거두었는지 고개를 떨궜다. 양진은 잠시 남자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여검사를 향하며 물었다.</p>
<p>“이 남자 이름은 뭐지?”</p>
<p>“우리도 이름은 모른다. 단지 가끔 그의 실력이 필요할 때 돈을 주고 부를 뿐이지.”</p>
<p>여자가 차갑게 내뱉자 양진이 의자에 앉더니 말했다.</p>
<p>“아깝군. 그럼 이제는 어떻게 하지? 너희들과 이야기를 끝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p>
<p>양진의 말에 여자가 뒤 쪽의 검사들을 한 번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p>
<p>“무릎이라도 꿇으란 말이냐?”</p>
<p>여검사는 이렇게 쏘아 붙이더니 다시 검을 뽑으려는 듯 검자루를 잡았다. 그러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막우가 들고 있던 젓가락을 자루를 잡고 있는 여검사의 손목을 향해 던졌다. 손목을 향해 날아간 젓가락은 여자의 손목에 맞고는 바닥에 떨어졌고 그 바람에 여자의 눈이 막우에게로 향하자 그가 입을 열었다.</p>
<p>“더 피가 흐르기 전에 늙은이가 나서야 겠군. 뭐 이런 일에 껴들만한 주변머리 같은 것은 없지만 지금은 저 죽은 사람들을 묻어 주는 게 급한 일인 것 같은데.”</p>
<p>“무슨 말이야. 저 놈들을 싹 죽여 버리고 나가면 그만이지.”</p>
<p>막우의 말에 양진이 이렇게 말하더니 벌떡 일어나 여 검사쪽 으로 다가서더니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p>
<p>“네가 검을 뽑으면 저 쪽에 서있는 놈들은 도망칠지도 몰라. 네가 죽어서 살릴만한 가치가 있는 놈들인가?”</p>
<p>양진의 말에 여 검사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이더니 검을 잡았던 손을 놓고는 말했다.</p>
<p>“어떻게 하자는 이야기냐?”</p>
<p>“패자치고는 꽤나 뻣뻣한데. 원래는 다 죽여 버릴 생각이었지만 그 쪽에서 고개를 숙여줬으니 나도 적당한 선에서 물러서 줄까”</p>
<p>양진은 이렇게 말하고는 뭔가 생각하는 듯 턱을 만지작거리더니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말했다.</p>
<p>“일단 앉아서 이야기해 보자고, 어쩌면 부탁해야 할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p>
<p>양진의 말에 여검사의 얼굴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 찌그러졌다. 하지만 이내 포기했는지 뒤 쪽에 서있는 검사들을 불러 시체를 치우게 하고는 양진과 막우가 앉아 있는 자리로 와 앉았다.</p>
<p> 그 때까지 자리에 앉아 시체들을 바라보던 양진이 막우를 바라보더니 말했다.</p>
<p>“돈에 팔린 자 치고는 괜찮은 실력이었어. 안 그래 늙은이?”</p>
<p>“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란 놈에게는 돈에 팔린 다는게 수치 스런 일인지 모르지만 저 남자도 나름대로 길을 찾은 것뿐이야. 뭐 스스로도 수치스럽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긴 하지만.”</p>
<p>막우가 막 들려나가고 있는 시체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 말에 양진이 흥하고 콧소리를 내더니 여검사에게 말했다.</p>
<p>“니 패거리들이 설치지 않았으면 아직 살아있을 사람인데 말야. 안그래”</p>
<p>양진의 비꼬는 말에 여검사가 양진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양진은 그것을 즐기는 듯 바라보더니 다시 말했다.</p>
<p>“십여 년만에 여자랑 눈을 맞춰보니까 기분 좋아지는데. 그나저나 너희들에게 부탁할 게 있어. 그 부탁을 꼭 들어줬으면 좋겠는데&#8230;&#8230;”</p>
<p>“돈이냐?”</p>
<p>양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검사가 물었다. 잠시라도 양진과 같이 있는 것이 기분 나쁜 듯 어서 빨리 이야기를 마치고 일어났으면 하는 눈치였다.</p>
<p>“돈도 좋긴 하지만 그것보다 사람을 먼저 찾아야 하거든.”</p>
<p>양진은 이렇게 말하며 퍼석한 머리를 한번 쓸어 넘기더니 말했다.</p>
<p>“이세향 과 양조웅이라는 사람들을 찾아줬으면 하는데 말야. 너희들 패거리라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p>
<p>양진의 말에 여검사가 알아들었다는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p>
<p>“살려준 대가치고는 너무 싼가? 도망친다거나 관에 신고할 생각 같은건 하지 말라구. 쉽게 잊거나 포기하는 성격은 아니니까.”</p>
<p>양진이 나가는 여검사의 뒤에 대고 이렇게 말하자 밖으로 걸어 나가던 그녀가 잠시 멈추어 섰다. 분함을 참는 듯 검을 잡고 있는 왼손에 힘을 주는 것 같더니 이내 밖으로 나갔다.</p>
<p>여검사가 무리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자마자 양진은 구석에 숨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식당 주인을 향해 손짓을 했다. 겁에 질려 슬금슬금 걸어나오는 주인에게 양진은 빈 술병을 가볍게 던지며 말했다.</p>
<p>“주인장이 마음에 들어서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가서 술이나 더 가져오지.”</p>
<p>양진이 던진 술병을 간신히 잡은 주인은 양진의 말에 굽실거리며 사라졌다. </p>
<p>“여기서 그 여자가 올 때 까지 기다릴 참인가? 아무래도 여기에 오래 머무는 것은 위험할 것 같은데 저 주인놈이 관에 신고를 할지도 모르고 말야.”</p>
<p>막우가 양진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 이렇게 묻자 양진이 씩 웃는 얼굴로 막우를 향하며 말했다.</p>
<p>“어디 갈 곳도 없고 여기 있는 편이 좋잖아. 공짜 술도 있고.”</p>
<p>양진은 이렇게 말하더니 머리를 긁적였다.<br />
막우는 양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곳에서 탈출하고 난뒤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지만 원래 성격인지 가끔씩 이상한 언동을 하는 양진이 불안하기만 했다.</p>
<p>그 사이 양진은 주인의 손에서 술병을 낚아채 들이키더니 주인의 어깨를 꽉 잡고서는 말했다.</p>
<p>“여기 묶을 방도 있겠지. 우리 두 사람 씻고 쉬어야 할 것 같은데 말야”</p>
<p>“예 있고 말굽쇼”</p>
<p>주인장의 말에 양진이 흡족한 듯 가볍게 그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돌려보냈다.</p>
<p>“사람 모양은 하고서 손님들을 맞아야 겠지!”</p>
<p>양진의 말에 막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볼 뿐이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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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핏자국만큼 흐릿하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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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9 Jan 2007 04:00:44 +0000</pubDate>
		<dc:creator>김 승엽</dc:creator>
				<category><![CDATA[검을 다루는 자들]]></category>
		<category><![CDATA[소설과 시]]></category>
		<category><![CDATA[장편소설]]></category>
		<category><![CDATA[무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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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핏자국만큼 흐릿하게. 산새 소리마저 상쾌한 아침, 하진이 작은 짐을 짊어지고 방에서 걸어 나왔다. 새로 지어 입은 옷이 아침 햇살 때문인지 반짝이는 것 같았지만 그의 얼굴은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어두웠다. 깨끗하고 반듯하기만 한 새옷이 불편한지 어깨를 한 번 움직여 보다가 통증을 느꼈는지 이를 악물었다. 이를 악문채 잠시 그대로 멈춰 통증을 삭이던 하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핏자국만큼 흐릿하게.</strong></p>
<p> 산새 소리마저 상쾌한 아침, 하진이 작은 짐을 짊어지고 방에서 걸어 나왔다. 새로 지어 입은 옷이 아침 햇살 때문인지 반짝이는 것 같았지만 그의 얼굴은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어두웠다. 깨끗하고 반듯하기만 한 새옷이 불편한지 어깨를 한 번 움직여 보다가 통증을 느꼈는지 이를 악물었다. 이를 악문채 잠시 그대로 멈춰 통증을 삭이던 하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쓴채 이렇게 중얼거렸다.</p>
<p>“내 돈을 가지고 옷을 맞추다니&#8230;”</p>
<p>사실 하진이 입고 있는 옷은 희문이 여행에 앞서 사람들에게 나눠준 것이었다. 어디서 돈을 났는지 새 옷을 지어 사람들에게 나눠 주더니 고맙다는 말은 하진에게 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제서야 하진은 자신이 유호종에게 받았던 금덩이를 떠올렸다. 지금껏 그 금덩이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있었던 하진은 뒤 늦게 자신의 몸을 뒤졌지만 그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신이 아파 누워 있을때 희문이 꺼내 간거라는 생각이 들긴했지만 하진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p>
<p>하진이 마당에 나와 다른 사람들이 나오기를 기다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희연이 밖으로 걸어나왔다. 긴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방에서 나오는 희연을 바라보며 하진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픽하고 웃더니 고개를 돌렸다. </p>
<p>“왜 사람을 보고 웃는 거에요? 뭐 이상하기라도 한건가요?”</p>
<p>희연이 자신을 바라보더니 웃으며 고개를 돌린 하진을 바라보고 이렇게 말하자 하진이 다시 고개를 돌려 희연을 바라보더니 말했다.</p>
<p>“단정하게 묶은 머리를 보니까 예전 처음 만났을때 일이 생각나서 그랬소.”</p>
<p>“그게 웃을 만큼 재미있는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p>
<p>희연이 무표정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자 그 모습이 더 재미있다는 듯 하진이 다시 웃음을 띠며 말했다.</p>
<p>“새 옷이 잘 어울린다는 말이니까 그렇게 정색은 하지 마시오.”</p>
<p>하진이 이렇게 말하고 웃자 희연이 싱겁다는 듯 흥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마루에 가서 걸터앉았다. 하진은 마루에 앉아 있는 희연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의 어딘가에는 그 날이 짧은 도가 숨겨져 있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br />
<span id="more-440"></span><br />
자신을 향한 하진의 눈길이 신경쓰이는지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p>
<p>“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요.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고 말이에요!”</p>
<p>희연의 목소리에 하진이 눈길을 돌리며 작은 헛기침을 몇 번 내뱉더니 말했다.</p>
<p>“기분 나빴다면 미안하오. 당신 몸 어디에 그 도가 숨겨져 있을지 궁금했을 뿐이오”</p>
<p>하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량이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고는 희연과 하진 사이에서 이상한 분위기라도 느꼈는지 머뭇거리다가 큰 몸짓으로 기지개를 펴면서 말했다.</p>
<p>“자네 할아버님이 안 보이시는데 어디 가셨나?”</p>
<p> 사량의 물음에 하진이 고개를 돌려 사량을 한번 바라보더니 아무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하진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사량은 그럴줄 알았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혹 희연은 아는지 싶어 물으려고 고개를 돌려 희연을 바라보았다.</p>
<p>“저도 잘 모르겠는데요.”</p>
<p>자신을 바라보는 사량의 눈빛을 보고 희연이 이렇게 대답하자 사량은 할 수 없다는 듯 희연 옆자리에 풀썩 주저 앉더니 말했다.</p>
<p>“딱딱하군”</p>
<p>사량의 혼잣말을 듣던 희연은 무엇이 딱딱하다는 말인지 잠시 생각하다 서희가 방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는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다.</p>
<p>“그동안 폐를 많이 끼쳤어요.”</p>
<p>희연이 서희에게 미리 작별인사라도 하려는 듯 이렇게 이야기하자 서희가 웃으며 대답했다.</p>
<p>“덕분에 집에 사람이 많아서 즐거웠는걸요. 항상 오라버니랑 둘만 있어서 심심했는데.”</p>
<p>서희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마당에 서있는 하진을 향해 말했다.</p>
<p>“어깨 조심해요. 난 하진 오라버니가 멀쩡한 몸으로 한번 우리집에 찾아오는걸 봤으면 좋겠어요.”</p>
<p>서희의 말에 하진은 못들은척 마당을 거닐뿐이었다.</p>
<p>“당신 말에는 왠지 꼼짝도 못하는 것 같네요?”</p>
<p>서희의 말에 아무말도 하지 않는 하진이 신기했는지 희연이 이렇게 묻자 서희가 희연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 나지막히 말했다.</p>
<p>“사람들하고 싸움이나 하고 다닐 줄 알지 아직 어린애 같거든요.”</p>
<p>서희의 말에 희연이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로 웃자 하진이 고개를 돌려 두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p>
<p>‘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p>
<p>하진은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는 두 사람을 탐탁치 않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버리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이 길 떠날 준비를 마치고 밖에 나가 희문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자하는 인선과 함께 인하 옆에 앉아 있었다. 아직 잠들어 일어나지 않은 그녀를 바라보던 자하는 인선에게 말했다.</p>
<p>“여기서 잘 지내고 있어라. 따라가고 싶은 네 마음은 이해 하지만 여기서 지내는 것이 너에게 좋을 것 같아.”</p>
<p>자하의 말에 인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인하만 바라보고 있었다.</p>
<p> 자하는 손을 들어 인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p>
<p>“ 좋은 분들이신 것 같으니 여기서 잘 지내고 있거라.”</p>
<p>자하가 이렇게 말하고서 일어서서 나가려는 데 인선이 자하의 옷자락을 잡더니 말했다.</p>
<p>“여기서도 검을 배울 수 있나요?”</p>
<p>인선의 말에 일어서던 자하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검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는 인선의 손을 잡고서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물었다.</p>
<p>“검을? 왜 검을 배우고 싶은거지?”</p>
<p>자하가 이렇게 묻자 인선이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가 이내 무엇인가 다짐한 듯 말했다.</p>
<p>“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무 힘도 없이 당하고 싶지만은 않아요”</p>
<p>“그건 검을 배워서 해결되는 일 같지는 않구나.”</p>
<p>자하는 이렇게 말하고서는 인선의 눈을 바라보았다. 강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인선의 모습이 마치 자신의 어린시절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자하는 다시 입을 열었다.</p>
<p>“하지만 네가 진정 검을 배우고 싶거든 서운 아저씨께 말씀드려서 글을 먼저 배우 거라. 네가 글을 깨우치고 천권의 책을 읽은 뒤에도 검을 배우고 싶다면 내가 검을 가르쳐 주마.”</p>
<p>자신의 말에 인선이 실망한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자하는 미소 띤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p>
<p>“검을 배워야만 강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란다.”<br />
자하가 이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가자 인선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멍하니 인하의 얼굴을 바라보다 벌떡 일어서 자하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p>
<p>자하가 밖으로 나왔을 때는 아침 일찍 사라졌던 희문이 어디선가 마차를 구해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마당에 마차를 세운 희문은 마당으로 내려서며 밖에 나와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p>
<p>“자 이제 마차도 준비했으니 출발해 볼까.”</p>
<p>희문이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 하자 옆에서 바라보고 있던 하진이 다가서며 물었다.</p>
<p>“이 마차도 그 금덩이로 사신 겁니까?”</p>
<p>하진의 물음에 희문이 웃으며 말했다.</p>
<p>“아직 많이 남았는데 돌려줄까? 네가 금덩이를 허술하게 가지고 다닌 덕분에 여행이 꽤 편해 질 것 같구나.”</p>
<p>희문이 이렇게 말하며 웃자 하진이 그런 희문이 웃음이 못마땅한 듯 고개를 돌리며 얼굴을 찌푸렸고 그런 하진의 모습이 재밌다 는 듯 희문은 더욱 큰 소리로 웃어댔다. </p>
<p> 하진이 말을 어루만지고 있는 사이 희문이 그 옆을 지나 희연에게 다가가더니 물었다.</p>
<p>“아무래도 자네 아버지를 먼저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추가비문은 아직도 그곳에 있는가? 하도 도장을 자주 옮기는 곳이라 예전에 내가 알던 곳에 없을지도 모르겠구먼.”</p>
<p>희문이 이렇게 묻자 희연이 옆에 앉은 사람들을 잠시 살피더니 말했다.</p>
<p>“아버지 대 이후에는 도장을 옮긴 적이 없으니 어르신이 알고 계신곳이 맞을 겁니다.”</p>
<p>“그럼 상양 쪽이라는 말이구먼. 그렇다면 복성을 들어가는 것이 나을 것 같구먼. 이보게, 사량! 손유책의 집은 자네가 잘 알고 있지?”</p>
<p>희문의 갑작스런 물음에 마차를 바라보던 사량이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p>
<p>“예. 제가 알고 있습니다만.”</p>
<p>“그렇다면 유책에게 먼저 들러 자네가 가진 검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고 상양으로 가보세.”</p>
<p>“예.”</p>
<p>희문의 말에 사량이 짧게 대답하고는 일어섰다. 희문은 막 밖으로 나온 자하를 발견하고는 열린 방문안의 인하를 살펴보더니 말했다.</p>
<p>“아직 저 아이는 안 일어났는가?”</p>
<p>“예”</p>
<p>희문의 물음에 자하가 대답했다. 그 말에 희문이 마루에 잠시 걸터 앉아 숨을 돌리더니 말했다.</p>
<p>“그럼 자네 둘이 저 아이를 깨워서 마차에 좀 태워주겠나.”</p>
<p>희문의 말에 사량과 자하가 인하를 깨우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사이 마당으로 나온 서운이 말을 살피고 있는 하진에게 다가서며 말했다.</p>
<p>“아무래도 이번에는 오래 걸릴 것 같은데?”</p>
<p>서운이 이렇게 말하자 하진이 입술 한쪽을 살짝 올리며 미소 짓더니 말했다.</p>
<p>“아무래도 그럴 것 같은데. 귀찮은 식객이 오랫동안 없어질 테니 두 사람은 좀 편해지겠구먼.”</p>
<p>“골칫덩이 검사가 사라지니 좀 편해지기는 하겠지.”</p>
<p>서운이 이렇게 받아치고는 웃자 하진도 따라 웃었다.</p>
<p>“할아버님께 서운한 게 있었거든 이번기회에 다 잊어버리게 그래도 자네에게는 하나뿐인 혈육이지 않은가?”</p>
<p>희문과 같이 여행을 하는 하진이 걱정되었는지 서운이 이렇게 말하자 하진이 잠시 침묵하며 말갈기만 만지고 있더니 말했다.</p>
<p>“저 유인하라는 아가씨의 일이 아니었다면 따라나서지 않았을거야.”</p>
<p>“이유야 어쨌든 말일세.”</p>
<p>서운은 이렇게 말하고서 하진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p>
<p>“자네 어깨도 상처는 많이 아물었지만 무리하게 움직였다가는 다시 도질테니 조심하고&#8230;&#8230;”</p>
<p>서운이 하진의 어깨를 바라보고는 이렇게 당부하자 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p>
<p>잠시 후 자하와 사량이 인하를 부축해 마차에 태우고 나자 희문이 마루에서 일어나 마차에 올라타면서 배웅하려고 서있는 서운과 서희을 바라보며 말했다.</p>
<p>“너희들에게 신세를 너무 많이 졌구나.”</p>
<p>희문의 말에 서운이 고개를 숙여 예를 취하더니 말했다.</p>
<p>“아닙니다. 예전 할아버님께서 신세를 많이 지셨다고 했는데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저희가 오히려 감사드립니다.”</p>
<p>“그렇게 말하니 손자나 할아비나 염치없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아 부끄럽구나.”</p>
<p>희문은 이렇게 작별 인사를 하는 사이 하진과 희연도 마차에 올라탔다. 자하는 마차에 올라타 서희에게 인선을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는 인선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서운함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마차 안의 자하를 바라보는 인선을 자하는 웃는 얼굴로 쳐다보며 말했다.<br />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때까지 건강히 잘 있어라.”</p>
<p>자하의 말에 인선은 고개만 끄덕이고는 인선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자하는 손을 뻗어 인선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p>
<p>사람들이 다 마차에 오르고자 희문이 마차를 출발시켰고 서희와 서운 그리고 인선은 떠나는 마차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p>
<p>출발하는 마차 안에서 자하가 인선을 바라보며 인선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고 다른 사람들은 마차에 모여 앉아 있을 뿐이었다.</p>
<p>세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자하가 자리에 앉았고 한쪽에 누워 있던 인하가 그것을 보고는 물었다.</p>
<p>“어디로 가는 거지요?”</p>
<p>인하가 묻자 옆에 앉아 있던 희연이 잠시 마차를 몰고 있는 희문을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마차를 몰던 희문은 그런 희연의 눈빛을 눈치 채고는 말을 모는 중간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p>
<p>“네 아버지일 때문에 만날 사람이 있어서 거기에 가는 길이란다. 참 그러고 보니 그 유문좌파의 전인이라는 사람에게 우리가 어디로 갔는지 전해달라고 했나?”</p>
<p>말을 돌리려는 듯 희문이 이렇게 이야기 하자 하진이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p>
<p>“서운에게 말은 해놨습니다.”</p>
<p>하진이 낮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희문을 바라보던 인하가 다시 누워 버렸다. 하진의 목소리가 무거웠기 때문인지 아니면 더 이상 물을 힘이 없기 때문인지 그대로 다시 누운 인하는 눈을 감아버렸다.</p>
<p>인하가 눈을 감아버리고 나자 마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각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밝은 날과는 대조적인 가라앉은 분위기가 마차 안을 지배하고 있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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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패와 잠식, 정신과 육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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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5 Jan 2007 20:45:28 +0000</pubDate>
		<dc:creator>김 승엽</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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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소설과 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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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무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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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한세림의 방은 해가 중천에 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어둠이 자신의 살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막아 주기라도 한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더 이상 밝은 곳에 나설 마음이 없었기 때문인지 그는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그렇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지금 이대로 몸이 완전히 썩기를 기다리는 것일까? 그런 세림이 손톱이 다 빠져버린 손을 뻗어 검을 잡았다. 칼날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한세림의 방은 해가 중천에 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어둠이 자신의 살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막아 주기라도 한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더 이상 밝은 곳에 나설 마음이 없었기 때문인지 그는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그렇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br />
 지금 이대로 몸이 완전히 썩기를 기다리는 것일까?</p>
<p> 그런 세림이 손톱이 다 빠져버린 손을 뻗어 검을 잡았다. 칼날을 잡고 검 끝이 자신을 향하도록 하고는 자신의 심장을 겨누어 보았다. 그대로 자신의 심장이라도 도려낼 셈이었는지 칼날을 가슴에 가져다 대었지만 차마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바닥에 떨어진 검은 방안의 어둠이라도 깨려는 듯 청명한 소리를 울렸다. </p>
<p>‘난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한 인간도 못되는가? 지금 이런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8230;&#8230;’</p>
<p>세림은 이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목을 만져 보았다.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살이 썩어들어가는 지금의 자신, 도대체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그는 되새겨보았다.<br />
<span id="more-439"></span><br />
어린 아이가 날린 검을 피하지 못한 것도 우스운 일이었고 우운류의 명예란 것을 지키려고 그 들을 죽이려 했던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더러운 검사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손에 무고한 사람들의 피를 묻히려고 하다니&#8230;&#8230; 자신이 지금껏 지키려 했던 것들을 스스로 무너뜨리려 했던 것이었다. </p>
<p>‘천벌이라도 받은 건가?’</p>
<p>세림은 이렇게 생각하고는 자기 스스로도 어이없다고 느꼈는지 픽하고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자신이 정말 천벌을 받은 거라면 정말 억울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단 한번의 실수가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나락으로 빠지게 만들다니 왠지 억울한 느낌마저도 들었다. </p>
<p>그런데 그 때 방문이 열리며 방안으로 이세향이 들어섰다. 양손에 뭔가를 들고 조일후와 함께 들어선 세향은 방안의 냄새에 잠시 코를 막았다가 창에 드리워진 휘장을 걷어내고는 세림에게 다가섰다.<br />
휘장이 걷히자 방안에는 눈이 부실정도의 빛이 쏟아져 들어왔고 그 대문에 세림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는지 그의 목에서 가죽 주머니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p>
<p>“무슨 짓이냐!”</p>
<p>세림이 눈을 가리며 이렇게 소리치자 세향이 다가서며 말했다.</p>
<p>“보살펴 주고 있는 사람한테 그게 할만한 소리인가? 뭐 하기는 이미 죽은 놈을 보살펴준다는 것이 웃기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야.”</p>
<p>세향이 이렇게 말하며 웃자 옆에 서있던 일후의 얼굴이 그녀의 웃음 소리가 거슬렸는지 잠시 일그러졌다 펴지면서 세림을 향했다.</p>
<p>“아무래도 당신을 이대로 가만 놔두었다간 안될 것 같아서 방법을 찾아봤소.”</p>
<p>일후의 말에 세림이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하고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자 아직도 얼굴에 웃음이 가시지 않은 세향이 오른쪽 입 꼬리를 살짝 위로 올리더니 말했다.</p>
<p>“이대로 썩게 놔두기에는 아깝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말일거야. 뭐 넌 잘 모르겠지만 상당히 쓸만한 존재거든.”</p>
<p>세향의 말이 끝나자 세림의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그리고는 세향이 들고 온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시작했다.</p>
<p>나무로 짜 맞춘 두 개의 양동이의 한 쪽에는 허연 가루가 가득 들어 있었고 다른 한 쪽에는 검은 색의 천 같은 것이 잔뜩 담겨 있었다. 세림이 대체 저 두 양동이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일후에게 물어보려 하는데 열린 방문으로 들어온 바람을 타고 뭔가 진한 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다.</p>
<p>‘이건 송진 냄새 인데!’</p>
<p>양동이에서 나는 듯한 강한 송진 냄새를 맡고 세림이 고개를 들어 왜 저 양동이를 가져왔는지 물으려 하자 세향이 그것을 눈치챘는지 세림쪽으로 다가와 그의 팔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p>
<p>“이제야 송진 냄새를 맡은 모양이지? 맞아 저 허연 가루는 소금이고 그 옆에 있는 것은 송진을 잔뜩 바른 붕대지.”</p>
<p>세향 에게 팔을 잡힌 세림이 그녀의 말을 듣고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다는 듯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자 세향이 그의 손에 끈을 감아 침상 기둥에 빠른 손놀림으로 묶더니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일후에게 도와 달라는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p>
<p>“짐작도 안가는 모양이지?”</p>
<p>세향의 말에 팔을 묶인 세림이 다른 손으로 그것을 풀려 했지만 어느새 다가온 일후의 손에 자유롭던 손마저 묶이고 말았다. 순식간에 양손을 묶인 세림이 이제 다리를 잡아 묶으려는 세향의 가슴을 발로 차면서 소리쳤다.</p>
<p>“이게 무슨 짓이지? 어서 풀지 못해!”</p>
<p>세림의 일격에 가슴을 맞고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진 세향이 가슴을 손으로 문지르며 천천히 일어서더니 화가 났는지 눈썹을 치켜올리고는 소리쳤다.</p>
<p>“이런 건방진 놈! 그 썩은 몸뚱이로 날 걷어차!”</p>
<p>세향은 이렇게 소리치고는 어느새 손에 검은색 공을 만들어 들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 손을 세림을 향해 뻗자 검은색 공이 방안을 가로 질러 세림의 머릿속으로 스며들 듯 들어가 버렸다. 검은 색 공이 세림의 머릿속에 파고 들자 방금 전까지 양 손에 묶인 끈을 풀려고 발버둥치던 세림의 몸이 힘이 빠진 듯 움직임이 멈추더니 그대로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세림의 옆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일후가 놀란 얼굴로 세향의 얼굴을 바라보자 세향이 손으로 옷에 묻은 먼지를 떨어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p>
<p>“잠시 정신만 잃게 만들었을 뿐이니까.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지 마!”</p>
<p>그리고는 세림의 머릿속에 들어갔던 검은 공을 끌어당기자 이내 세향의 손으로 돌아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세향은 축 늘어져 있는 세림의 모습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그의 양다리도 끈으로 묶고 나서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p>
<p>그 것은 한 뼘 정도 길이의 단도였다. 자루에 붙어 있는 금장식이 방안으로 들어오는 빛에 반짝여 일후의 눈을 어지럽혔다. 세향은 단도를 뽑아 날을 살펴보는 듯 하더니 그대로 침상위로 올라가 세림을 깔고 앉은 채로 고개를 돌려 일후를 바라보더니 말했다.</p>
<p>“구경만 할건가? 소금이라도 이리 가져와!”</p>
<p>세향의 말에 일후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소금이 든 양동이를 들고 세림 쪽으로 다가서며 말했다.</p>
<p>“썩지 않도록 도와 줘야겠다고 하더니 단도를 꺼내들고 뭘 하려는 거요?”</p>
<p>일후가 묻자 세향이 큭큭 하는 소리를 내며 웃는 것 같더니 갑자기 단도를 거꾸로 잡고 세림의 배에 내리꽂았다. 그 모습에 놀라 일후가 세향과 세림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는데 세림은 정신을 잃어서 인지 아니면 통증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p>
<p>“무슨 짓이요!”</p>
<p>놀란 일후가 이렇게 외치자 세향이 그대로 단도를 내리그어 세림의 배를 가르더니 코를 막고 말했다.</p>
<p>“정말 몰랐던 거야? 그럼 내가 소금을 왜 가져왔다고 생각한거지. 사람이 죽으면 원래 내장이 더 빨리 썩는 법이야. 그것을 막으려고 하는 것뿐이야. 설마 내가 이놈을 생선처럼 절일 거라고 생각한건가?”</p>
<p>세향은 이렇게 말하고서는 가른 배에 손을 집어넣고 양쪽으로 벌린 뒤에 일후에게 말했다.</p>
<p>“그 소금을 이 안에다 집어넣어. 빨리!”</p>
<p>세향의 재촉하는 말에 일후가 소금 양동이를 들고 다가섰다. 세향의 말대로 내장은 더 많이 섞었는지 풍겨 나오는 냄새에 눈이 다 따가운 것 같았다. 일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는 세향이 벌린 배안에 소금을 부어넣었다. 배어나온 피에 하얀 소금이 붉게 물들자 세향이 손으로 그것을 한 움큼 집어 뱃속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p>
<p>거의 양동이 반절이나 되는 소금이 세림의 뱃속으로 사라지자 세향이 소금과 피가 잔뜩 묻은 피를 이불에 닦더니 세향의 배 주변에 있는 소금을 치워내고는 실을 가져와 꿰매기 시작했다. 바느질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건지 엉성하게 세림의 배를 꿰맨 세향이 자신도 지쳤는지 이마에 배어 나온 땀을 훔치고는 일후를 보며 말했다.</p>
<p>“이 짓거리를 다시 안하려면 저 내장을 다 끄집어내야 하지만 이런 곳에서 그런 짓을 하기도 쉽지 않으니 할 수 없지. 이제 저 송진 먹인 붕대만 감으면 되는데 그건 당신이 좀 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수 없는 몸이긴 하지만 여자가 남자 알몸에 붕대를 감는다는 건 좀 거슬리니까 말이야”</p>
<p>세향이 이렇게 말하고 침상에서 내려오자 일후가 그녀의 얼굴에 퍼진 미소에 반사적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세림 쪽으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세림의 팔에 묶은 끈을 풀어내고 그의 윗도리를 벗겨낸 뒤 상체에서부터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피 냄새와 썩는 냄새 거기에 송진 냄새가 섞여 이로 설명할 수 없는 악취에 일후의 정신마저 그 악취에 스며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이 그의 손을 늦추지는 않았다. 송진 덕분에 달라붙는 붕대를 세림의 양팔과 얼굴 그리고 상체에 까지 감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체에 붕대를 감은 일후는 심호흡이라도 하는 듯 깊게 숨을 한번 들이키고는 붕대가 감긴 세림의 양팔을 다시 묶고는 이제 그의 다리에 묶인 끈을 풀기 시작했다. 그 때 즈음 되자 옆에 서서 세림의 몸에 붕대 감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세향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리고 방밖으로 나갔고 뒤이어 일후의 손이 세림의 바지를 벗겨내고는 그의 하체에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p>
<p>붕대를 다 감고 검은 붕대로 온몸이 감긴 세림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일후는 자신이 뭔가 끔찍한 일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의 몸이 썩어 없어지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세림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죽은자의 평온해야 할 잠을 그가 방해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자 그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잠시 그렇게 서서 세림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일후는 벗겨 놓았던 바지를 다시 입히고 그의 발을 묶었다. 그리고 일이 다 끝난 것 같아 방 밖으로 나오려는데 세향이 품에 뭔가를 안고 다시 방으로 들어섰다.</p>
<p>“붕대는 다 감은 건가?”</p>
<p>그녀는 이렇게 말하고서 세림을 찬찬히 내려다보더니 자신이 가져온 것은 내려놓고는 일후를 바라보았다.</p>
<p>“이제 이 방안에 향을 피우면 끝이겠군.”</p>
<p>“향! 무슨 향을 피운다는 거지?”</p>
<p> 일후가 향이란 말에 이렇게 묻자 세향이 아무 말 없이 자신이 들고 온 향로에 향을 세우고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송진 붕대를 감고 방안의 괴상한 냄새가 송진 냄새만으로 줄어들었다 싶었는데 향을 피우자 더 괴상한 냄새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갖가지 냄새가 섞여 일후의 감각을 괴롭히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관자놀이에 손을 가져갔다. 정신이 몽롱해지는 느낌과 함께 두통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일후는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이런 냄새는 분명 현세의 냄새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방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치 이쪽은 죽음과 악취가 가득한 세계라는 생각에 그는 한 시라도 빨리 이 방에서 나가고 싶었다. 결국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일후가 방문 쪽으로 몸을 돌리자 향을 피우고 세림을 바라보고 있던 세향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p>
<p>“왜 향냄새가 좋지 않은가? 아니면 이 향이 혼백이라도 불러들일까봐 무서운 건가? 난 단지 이 향이 시체 썩는 것을 막는 일도 한다고 해서 피운 것뿐이야.”</p>
<p>막 방문을 나서려던 일후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세향이 어떤 표정일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 재미있다는 듯한 얼굴로 자신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 일후는 선뜻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그녀의 그런 얼굴이 두렵다기보다는 지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는 구토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일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 방안의 냄새가 사라지자 몽롱함은 사라지는 것 같았지만 불쾌한 느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일후는 그의 두통이 가라앉은 뒤에도 계속 오른 손으로 관자놀이를 주무르고 있었다.</p>
<p>일후가 밖으로 나가고 나서도 세향은 나가지 않고 방안의 향내를 맡으며 침상 위에 누워 있는 세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뱃속에 소금을 채운 채 붕대에 감겨 있는 세림의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바라보던 그녀는 문득 저 남자의 존재가 자신에게 정말 이득이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분명 저 남자가 저렇게 썩어 가는 것이 스스로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강한 힘과 원혼이 만들어낸 괴물.<br />
어쩌면 그대로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 나은 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저 남자의 힘이 필요했다. 그것이 나중에 자신에게 위협이 될지 모른다고 해도 그녀로서는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p>
<p>“정말 저 남자에게는 불행스런 일이군!”</p>
<p>세향은 뭐가 재미있는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방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때 마침 양조웅이 세향을 찾았는지 두리번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섰다.</p>
<p>“이 냄새는 또 뭐지?”</p>
<p>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조웅은 방 안의 괴상한 냄새를 맡고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뒤 이어 손에 들고 있던 종이쪽지를 세향에게 건네며 말했다.</p>
<p>“주인께서 이 쪽으로 누군가를 보내셨다고 하는데.”</p>
<p>양조웅의 말에 세향이 쪽지를 펼쳐보지도 않고 다시 조웅에게 건네며 말했다.</p>
<p>“나한테 줘도 소용없어. 어차피 이 나라 글은 읽지도 못하니까. 그나저나 누군가라니 무슨 소리지?”</p>
<p> 세향이 읽지 못한다며 종이쪽지를 다시 건네자 조웅이 픽하고 웃으며 받아 들더니 말했다.</p>
<p>“이세향이 글을 못 읽는다니 그것 참 재미있는 일이군.”</p>
<p>“그럴만한 기회가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내용이나 제대로 말해봐”</p>
<p>세향이 웃고 있는 조웅을 바라보며 다그치자 조웅이 쪽지를 옷 속에 집어 넣고 말했다.</p>
<p>“다른이에게 내용이 들킬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인지 쪽지에 정확하게 누구라고는 적혀 있지 않아. 다만 쪽지에는 칼날을 보낸다고 적혀 있을 뿐이지.”</p>
<p>“칼날을 보낸다고.”</p>
<p>세향이 조웅의 말에 알 수 없다는 듯이 이렇게 되묻자 조웅이 이야기를 계속했다.</p>
<p>“주인의 칼날이라면 내가 짐작이 가는 사람이 한명 있긴 한데 이게 그 사람인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군. 보낸 다는 사람이 그 사람이라면 벌써 십수 년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자 인데&#8230;&#8230;”<br />
조웅은 이렇게 말하고서는 뭔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갑자기 픽하니 웃으며 말했다.</p>
<p>“만약 그 남자가 우리에게 온다면 정말 재미있겠는데!”</p>
<p>“그건 무슨 소리지?”</p>
<p>재미있겠다는 조웅의 말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세향이 물었다. </p>
<p>“내가 알고 있는 주인의 칼날 이라면 강양진이란 사람뿐이야. 그런데 그 강양진이란 남자가 꽤 괜찮은 검사거든.”</p>
<p>“당신보다 실력이 위라는 소리인가?”</p>
<p>세향이 이렇게 말하자 조웅이 픽하고 웃더니 말했다.</p>
<p>“한번도 겨루어 본적이 없어서 모르지만 말이야. 아마도 그럴걸.”</p>
<p>조웅은 이렇게 말하더니 뭔가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세향을 잠시 바라보더니 말했다.</p>
<p>“아무래도 그 사람이 하곡에 도착할 때 까지는 여기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때?”</p>
<p>조웅의 말에 세향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p>
<p>“안 그래도 시간이 많이 지체 되었는데 이제 사람까지 기다려야 겠군.”</p>
<p>조웅이 그런 곤란하다는 세향의 표정을 잠시 살피다가 침상에 누워 있는 세림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말했다.</p>
<p>“저기 침상위에 붕대로 감아 놓은게 그 썩어가던 놈인가?”</p>
<p>조웅의 물음에 세향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p>
<p>“저기 저 남자에 황제가 보낸다는 사람까지 합하면 이제 다섯 사람이 되는 건가?”</p>
<p>세향의 말에 조웅이 웃음을 흘리더니 말했다.</p>
<p>“그래도 제대로 된 사람은 밖에 나가 있는 저 조일후란 자 뿐이구만.”</p>
<p>“그런 셈인가?”<br />
조웅의 말을 세향이 이렇게 받아치더니 방 밖으로 나가며 고개를 돌려 세림을 한번 살펴보고는 말했다.</p>
<p>“다섯이라&#8230; 수가 적어서 움직이기는 좋겠군.”</p>
<p>세향의 말에 조웅도 방 밖으로 나서며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렸다.</p>
<p>세향과 조웅이 방을 나가고 얼마나 지났을까. 해가 저물었는지 방안에 다시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한 무렵, 침상위에 묶여 있던 세림이 눈을 떴다. 이상한 느낌에 누운 채 고개만 들어 자신의 몸을 살펴보던 세림은 몸 전체에 붕대가 감겨 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그들이 자신의 몸에 무슨 짓을 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뭔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 거라는 느낌에 등 언저리에 알 수 없는 한기를 느꼈다. 저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왜 자신의 몸에 이런 짓을 해 놓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다만 한 가지 자신이 괴이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br />
 세림은 팔과 다리에 묶여 있는 끈을 풀어 보려고 했지만 그것이 쉽게 풀리지 않자 이를 악 물었다. </p>
<p> 자신이 힘으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진 듯 세림은 깊은 절망감에 한 숨을 내쉬었다가 언젠가 자신과 싸운 적이 있던 이하진이란 검사를 떠올렸다.<br />
 왜 자신이 이하진을 떠올렸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얼굴을 떠올리자 왠지 자신의 몸이 썩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나마 잊을수 있을 것 같았다. 스스로 인정하는 상대를 만났을 때의 흥분 때문이었을까 몸은 썩어가고 있었지만 검사로서의 피는 아직도 그를 몸에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p>
<p> 세림은 하진과의 승부를 내지 못했던 싸움을 떠올리며 잠이라도 청하려는 듯 눈을 감았다. 현실을 잊기 위한 잠시 동안의 도피였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것이 그 자신의 몸과 정신을 검사의 어두운 욕망에 점차 빠져들어 가게 하는 것을 그는 눈치 채지 못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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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칼날의 첨단에는 무엇이 있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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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5 Dec 2006 02:17:10 +0000</pubDate>
		<dc:creator>김 승엽</dc:creator>
				<category><![CDATA[검을 다루는 자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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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군운 동쪽으로 삼일을 가면 하늘을 떠받치는 듯 우뚝 솟은 두개의 봉우리가 나타난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신이 장난이라도 쳐 놓은 듯 형제처럼 솟은 두 개의 산은 흑과 백, 선과 악을 상징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 모습이 달랐다. 북쪽에 솟은 산은 풀 한포기 찾아 볼 수 없는 바위산으로 사시사철 빙설에 뒤덮여 하얗다 못해 푸르른 빛을 발하며 남쪽의 산보다 조금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군운 동쪽으로 삼일을 가면 하늘을 떠받치는 듯 우뚝 솟은 두개의 봉우리가 나타난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신이 장난이라도 쳐 놓은 듯 형제처럼 솟은 두 개의 산은 흑과 백, 선과 악을 상징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 모습이 달랐다. 북쪽에 솟은 산은 풀 한포기 찾아 볼 수 없는 바위산으로 사시사철 빙설에 뒤덮여 하얗다 못해 푸르른 빛을 발하며 남쪽의 산보다 조금 높아 그 이름이 백형산(白兄)이라 했고 남쪽의 산은 수십 수백 년 된 거목들로 뒤덮여 있었으나 백형산의 흰빛이 너무 강해서인지 아니면 죽은 나무들이 많아서 인지 그 색이 푸르게 보이지 않고 검은 빛을 띠어 그 이름을 흑제산(黑弟)산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 이름은 그 기이한 형상에 의해 세인들이 붙인 이름일 뿐이고 실제로는 북의 산은 독지(篤志), 남의 산은 비령(菲翎)이라 했다. </p>
<p> 산세가 험해 좀처럼 사람이 접근하지 않는 백형산 중턱에 검은 그림자 두개가 나타났다. 백지에 떨어진 두 방울 먹물처럼 눈 쌓인 백형 한 자락에 나타난 두 그림자는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두 사람 모두 눈에는 검은색 천을 감은 채 거친 숨을 내쉬는 모습이 꽤나 지친 것 같았지만 어디에도 그들이 쉴만한 자리는 찾을 수가 없었다.<br />
<span id="more-433"></span><br />
“어떤 미친놈이 이런 산을 오르자고 그런 거야?”<br />
입가에 허옇게 서리가 붙은 채 앞장서 가던 사내가 갑자기 멈추어 서서 뒤 따라오던 사람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이렇게 소리쳤다. 앞서 가던 남자의 커다란 목소리에 뒤따라오던 남자 역시 멈추어서더니 말했다.</p>
<p>“바로 네놈이지 누구긴 누구냐! 미친놈!”</p>
<p>뒤의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이렇게 말하자 그 말을 들은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전혀 기억나지 않는 듯한 얼굴로 다시 소리쳤다.</p>
<p>“내가 이런 산을 오르자고 했다고? 난 기억나지 않는데……. 노인네가 이쪽으로 가자고 하지 않았었나?”</p>
<p>“으음”</p>
<p>앞선 남자의 말에 뒤의 남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는 작게 신음소리만을 내뱉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앞쪽의 남자가 갑자기 큰소리로 웃더니 뒤의 남자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p>
<p>“이런 미친 노인네. 이렇게 험한 산으로 가야 안전하다고 한 게 노인네였잖아. 그런데 내가 그랬다고 덮어씌워!”</p>
<p>앞선 남자의 큰 목소리에 뒤의 남자가 신음소리 같은 목소리로 내뱉었다.</p>
<p>“안 그래도 낮에는 눈이 안 보여 고생하는데 온통 허옇게 눈이 쌓여  번쩍이는 산으로 내가 가자고 그랬다고? 저 젊은 놈이 정말 미쳤구먼!”</p>
<p>뒤의 남자는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아직도 큰소리로 웃어대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p>
<p>“그렇게 큰소리로 계속 떠들다간 눈사태라도 날 테니 조심하는 것이 좋을걸!”</p>
<p>“눈사태? 눈사태 따위에 이 강양진이 죽을 것 같아? 그 밑에서도 십년을 살아남았는데 내가 여기서 죽는다고?”</p>
<p>양진이 이렇게 다시 소리치자 뒤 따르던 막우는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p>
<p>막우가 걸어 올라오기 시작하자 양진이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산 정상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허연 김이 피어오르는 몸이 식기 전에 산을 넘어야겠다고 마음먹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p>
<p>그리고 부러진 창을 지팡이 삼아 산을 오르던 막우는 남쪽 멀리 보이는 비령산을 바라보았다. 앞서 가고 있는 저 강양진이란 자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저 산을 다시 보지 못했을 수 있었다는 생각에 막우는 산을 오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게 몇 년 전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예전 그는 저 산을 넘은 적이 있었다. 아내도 자식도 버리고 그는 홀로 저 산을 넘은 적이 있었다.</p>
<p>‘무엇을 위해서 나는 저 산을 넘었었는가?’</p>
<p> 막우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지만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p>
<p>‘검이었나?’</p>
<p>막우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얼른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검에 뜻을 품었다면 아마 그는 저 산을 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산을 넘었다. 시간이 지나 퇴색한 자신의 의지에 막우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p>
<p>‘집사람과 아이는 잘 있을까?’</p>
<p>매정하게 떠나버리고서 아내와 아이를 생각하는 자신이 우습기도 했지만 이제 성인이 되어있을 자신의 아이 생각에 막우는 잠시 눈을 감았다. 혹 자신의 아이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였지만 역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p>
<p>“이막우도 무디어지고 말았구나.”</p>
<p>막우는 웃으며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양진의 뒤를 따랐다.</p>
<p>태양이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할 무렵 양진이 산 중턱에서서 산 너머 보이는 멀리 보이는 마을을 가리키며 막우에게 말했다.</p>
<p>“이봐 늙은이 잘하면 오늘 날이 저물기 전에 저 마을에 닿을 수 있겠는데.”</p>
<p>양진의 말을 듣고 막우가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고는 말했다.</p>
<p>“그럼 여기서 잠시 쉬어가자.”</p>
<p>그리고는 작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 모습에 양진이 안 된다는 듯 꽥하고 소리를 질렀다.</p>
<p>“이런 곳에서 쉬게 되면 땀이 식어서 더 추울 거라고 힘들어도 지금 빨리 갈 길을 재촉해야 돼.”</p>
<p>양진이 이렇게 말하고서는 앉아있는 막우의 팔의 잡아 일으키려고 하자 막우가 씨익하고 웃으며 양진을 바라보며 말했다.</p>
<p>“왜 혹 연한의 수하들이 쫓아올까봐 걱정이라도 돼서 그러는건가?”</p>
<p>“뭐!”</p>
<p>막우의 말에 양진이 화라도 난 듯 얼굴을 찌푸렸다. </p>
<p>“그깟 연한의 수하쯤이야 내 한 손으로도 쓸어버릴 수가 있어. 그런데 내가 겁을 낸다고! 이 노인네 생각해서 말했더니&#8230;&#8230;”</p>
<p>양진은 이렇게 말하더니 막우의 옆에 놓인 작은 바위에 털썩 주저 안자 말했다.</p>
<p>“그래 쉬자고! 나야 노인네 보다 젊으니 이런 추위 정도야 걱정 없으니!”</p>
<p>“그래그래.”</p>
<p>막우는 이렇게 말하고서는 잠시 숨을 돌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양진을 바라보며 말했다.</p>
<p>“어째서 그 팔에 쇳덩이는 잘라내지 않는 거냐?”</p>
<p>막우가 묻자 양진이 자신의 팔에 달린 쇳덩이를 들어 쳐다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p>
<p>“몰라. 십여 년을 이걸 차고 있으면서 정이라도 들었나?”</p>
<p>양진의 대답에 막우가 손을 뻗어 차가워진 쇳덩이를 만져 보더니 말했다.</p>
<p>“이런 게 팔에 달려 있으면 검을 쓰는데도 불편할 텐데. 뭐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것 아닌가?”</p>
<p>“다른 이유?”</p>
<p>양진이 골똘히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무릎을 탁치고는 말했다.</p>
<p>“아 그래! 생각났다!”</p>
<p>그 모습에 막우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양진을 바라보았다.</p>
<p>“사실은 말이지 나도 뭔가 생각이 있어서 이걸 달아 놓았는데 지금까지 잊어버리고 있었어!”</p>
<p>양진의 대답에 막우가 웃기는 놈이라는 표정으로 양진을 쳐다보았다가 다시 물었다.</p>
<p>“그래 그럼 그 이유가 뭐야?”</p>
<p>“방패야!”</p>
<p>양진이 간단하게 방패라고 대답하자 막우가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물었다.</p>
<p>“방패라니! 그런 게 필요한가? 몸만 둔해지고 상대에게 틈만 주게 될 텐데.”</p>
<p>“하하하 그러니까 당신이 노인네야.”</p>
<p>막우의 물음에 양진이 큰소리로 웃더니 쇳덩이가 달린 팔을 들어 막우에게 들이밀며 말했다.</p>
<p>“이렇게 탈옥수가 된 이상은 일대 일의 싸움보다는 다수와의 싸움이 많을 거란말야. 거기서 이 놈으로 많은 상대의 공격을 흘려 내려고 했던 거야. 이제는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덕분에 한손으로도 검을 쓸 수 있게 되기도 했고 말이지!”</p>
<p>양진의 말을 들은 막우는 자신의 얼굴 앞에 와 있는 쇳덩이를 앞으로 밀어 내더니 웃는 얼굴로 말했다.</p>
<p>“이래서 네 놈이 미친놈이라는 거다. 알겠냐?”</p>
<p>“응?”</p>
<p>막우의 말에 양진이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막우를 바라보았다.</p>
<p>“그런 쇳덩이를 끌고 사람들 사이를 다니면 성한 놈으로 보지 않을 텐데, 도망 다니는 놈이 그렇게 사람들 눈을 끌려고 하니 미친놈이지!”</p>
<p>막우가 이렇게 말하자 양진이 그 말도 맞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막우 쪽으로 고개를 확 돌리고 말했다.</p>
<p>“그래서 놈들이 잡으러 오면 다 죽여 버리면 되잖아!”</p>
<p>양진이 이렇게 말하자 막우가 할 수 없다는 듯이 신음소리를 흘리더니 말했다.</p>
<p>“미친놈하고 이러고 있는 내가 웃기는 놈이지! 네 놈 검이나 이리 줘봐! 귀한 검 같은데 한 번 구경이나 해보자!”</p>
<p>막우가 양진의 허리에 꽂힌 검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자 양진이 자신의 검을 한번 힐끔 쳐다보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검집 채 뽑아 막우에게 건넸다.<br />
 양진에게 검을 받아든 막우는 검집에서 검을 뽑아 날을 세우고 겨누어 살펴보았다. 눈밭에 반사된 햇빛 때문인지 허옇게 번쩍이는 칼날을 살펴보던 막우는 다시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는 자루를 감싸고 있던 천을 풀어내고는 다시 그 밑의 가죽마저 풀어내더니 슴베가 드러나자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p>
<p> 양진은 막우가 하는 모양을 가만히 살펴보고 있다가 그가 슴베에 적힌 문구를 유심히 살펴보자 고개를 들이밀어 슴베와 막우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p>
<p>“왜? 뭐라고 적혀 있는데 그렇게 유심히 쳐다보는 거요?”</p>
<p>양진의 물음에 막우가 다시 풀어 놓은 검 자루를 맞추면서 말했다.</p>
<p>“이 검은 누구에게 받은 거냐?”</p>
<p> 막우가 이렇게 묻자 양진은 무슨 소리냐는 듯한 얼굴로 그의 손에서 검을 빼앗아 다시 풀어 슴베를 살펴보더니 말했다.</p>
<p>“백록(白鹿) 이라는 말 밖에 없는데 왜 그러는 거요!”</p>
<p>양진이 이렇게 말하자 막우가 슴베 반대쪽을 보여주며 말했다.</p>
<p>“독지 삼년(三年)? 이게 뭐가 어쨌다는 거야?”</p>
<p>양진이 이렇게 묻자 막우가 턱을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p>
<p>“원래 슴베에는 만든 이의 이름과 날짜 같은 게 적히는 법인데 이 검에는 만든 이 이름은 없고 독지 삼년이라고 이상한 날짜만 적혀 있어서 그런 거다.”</p>
<p>“백록이 만든 사람 이름 인가 보지, 아! 그러고 보니 이 검 이름이 백록이라고 그랬었지!”</p>
<p>“만든 이 이름 대신에 검 이름이 적혀 있는 거로구만 그럼 이 독지 삼년은 뭐야? 독지 산에서 현제 삼년에 만들었다는 건가?”<br />
막우가 이렇게 묻자 양진이 음 하고 뭔가 고심하는 듯 하더니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p>
<p>“그게 도대체 어쨌다는 거야! 이 노인네야. 그런걸 알아서 뭐할려고?”</p>
<p>양진이 이렇게 소리치자 막우가 날카로운 눈으로 양진을 노려보며 말했다.</p>
<p>“그 놈 혓바닥 놀리는 꼬락서니 하고는…….흠!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검을 본적이 있어서 그런 거야! 그 검에는 자사(紫蛇)라는 이름과 비령 사년이라고 적혀 있었거든!”</p>
<p>“자사?”</p>
<p>막우의 말에 양진이 뜻밖이라는 듯 이렇게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보던 막우는 자사와 백록이라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다가 알 수 없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양진에게 말했다.</p>
<p>“이제 그만 쉬고 가자!”</p>
<p>“뭐야 사람 궁금하게 만들더니 그만 둔건가?”</p>
<p>막우가 일어서자 양진도 따라 일어나며 이렇게 말했다. 그 모습에 막우가 입가에 미소를 흘리면서 양진에게 이야기 했다.</p>
<p>“잘은 모르지만 그 백록이라는 검하고 자사가 관계가 있는 것 같으니까 조심해! 예전에 내가 쓰던 자사라는 놈은 요물이었거든!”</p>
<p>“요물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야!”</p>
<p>양진이 이렇게 되묻자 막우가 허허거리더니 양진 허리의 백록이란 검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말했다.</p>
<p>“나중에 기회가 되면 알려주지!”</p>
<p>막우가 이렇게 말하자 양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양진을 바라보며 말했다.</p>
<p>“기분 괴상하게 만드는 노인네 구만!”</p>
<p>양진은 이렇게 말하더니 길을 재촉했고 막우도 그 뒤를 따르며 백록이란 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p>
<p>‘백록이라. 어쩌면 해를 끼치지 않을 수도 있는 건가? 자사야 그 성질이 워낙 차갑고 어두웠지만 저 검은 그런 것 같지는 않으니&#8230;&#8230;’</p>
<p>산자락을 다 내려오기까지 막우는 백록이란 검 생각에 빠져 있었다.</p>
<p> 허연 눈밭이 점차 사라지고 땅에 푸른빛이 돌기 시작할 즈음에는 해가 저물어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지만 두 사람은 멈추지 않았다. 눈 쌓인 산을 벋어 났지만 야영을 하기에는 추운 날씨였다. 양진의 뒤를 따르던 막우는 땀에 흠뻑 젖은 천조각을 벗어버렸다. 땀 때문인지 눈이 따갑기도 했지만 날이 어두워지자 앞이 잘 안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p>
<p> 바람이 가라앉고 키 작은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양진이 멈추어 뒤따라오던 막우를 바라보며 말했다.</p>
<p>“조금만 더 가면 쉴 만한 곳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은 괜찮소?”</p>
<p> 양진의 목소리가 꽤 차분해 진 것을 느끼고는 막우가 양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p>
<p>‘저 놈! 이제 좀 제정신이 돌아온 건가?’</p>
<p>막우는 이렇게 생각하며 멈춰선 양진에게 다가서며 말했다.<br />
“날을 새며 걸어도 상관없으니 걱정하지 마.”</p>
<p>그 말에 양진은 다시 걷기 시작하더니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p>
<p>“그런데 어쩌다 그런 곳에 갇힌거요?”</p>
<p>“응?”</p>
<p>막우가 양진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이렇게 되묻자 그제서야 고개를 돌리고 다시 물었다.</p>
<p>“어쩌다 거기 갇히게 된 거냐고 물었소.”</p>
<p>“너는 왜 갇혔냐?”</p>
<p>양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막우가 이렇게 받아쳤다. 그러자 양진이 조용히 옛일을 되새기는 듯 하더니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p>
<p>“지금의 현제가 즉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버지와 나는 연한이 어떤 더러운 술책을 꾀하고 있다고 생각했소. 권좌 세습을 막기 위해 뭉쳤던 영주들의 수장이 그 세습을 주장하고 양제의 나이어린 아들을 황제로 내세운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지. 게다가 양제 사후에 세상사람 모두가 연한이 권좌에 앉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때에 말이오.”</p>
<p> 뒤따르며 양진의 말을 듣던 막우는 그의 차분한 음성이 신기하게까지 느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괴상한 목소리로 정신 나간 소리를 연발하던 자가 저렇게 말하는 게 신기했던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앞으로 달려 나가 이야기 하는 양진의 얼굴이라도 확인하고 싶었지만 양진의 이야기가 계속 되자 그 생각도 사라져 버렸다.</p>
<p>“ 겉으로는 양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황제의 정해진 임기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연한이 어떤 속셈이 있다는 것은 알아챌 수 있었소.”</p>
<p>“속셈?”</p>
<p>막우는 도대체 연한이 무슨 이유로 현제를 내세웠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p>
<p>“그 속셈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지 못했지만 양제의 신하였던 아버지는 연한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결국 아들인 나를 데리고 나서셨소&#8230;&#8230;”</p>
<p>“그게 실패한 거로구만.”<br />
막우가 양진의 말을 끊고 이렇게 말했다. 그 말에 양진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p>
<p>“원래 나도 아버지와 함께 참수 되었어야 하지만 부자를 같이 참수 시키면 세인의 비난을 받을 것을 걱정했는지 그렇게 하지는 않았소. 황제와 내가 어린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목숨을 구하게 된 나는 유배지 대신 운하궁의 지하에 갇히게 된 거요.”</p>
<p>양진은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니 옛일이라도 생각이 났는지 초승달이 빛나고 있는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았다. 그 바람에 발걸음이 늦추어져 양진과 막우의 거리가 가까워졌다.</p>
<p>“결국 신하의 도리란 것을 실천하다가 그 모양이 된 거구만.”</p>
<p>막우가 이렇게 말하자 갑자기 양진이 큰소리로 웃어젖히더니 뒤로 획 고개를 돌리고 막우를 쏘아보며 말했다.</p>
<p>“맞아! 맞는 이야기야. 그래 그러는 노인네는 어쩌다 그 속에 갇혔지. 나보다 더 훨씬 오래전에 그 곳에 갇힌 것 같은데 말이야.”</p>
<p>마치 귀신같이 치켜 올라간 눈매에 범인이라면 금세 겁이라도 먹었겠지만 막우는 픽 웃으며 그의 옆으로 다가서더니 어깨를 한번 툭 치더니 말했다.</p>
<p>“나도 그 신하의 도리라는 것 때문에 그 곳에 갇혔거든&#8230;.하하하하!”</p>
<p>뭐가 즐거운지 호쾌한 웃음소리로 한참을 웃던 막우가 자신을 노려보는 양진의 눈을 마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p>
<p>“다른 점이 있다면 자네와 자네 아버지가 모시던 양제와 연한을 죽이려고 했다는 점이 다른 점이랄까.”</p>
<p>막우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p>
<p>“촌구석 검사가 출세를 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 양제 즉위 이전 황제 세습을 꿈꾸던 주경황제에게는 그의 야심 만큼이나 많은 적들이 있었고 그 때문에 그 들에 대항할 검사들이 필요했지. 하지만 검사들이란게 원래 귀족이나 관하고는 거리가 먼 족속들이 아닌가. 덕분에 별다른 배경도 없던 나는 검 실력하나만으로 발탁되어 그 주경황제에 편에 서서 그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네.”</p>
<p>“썩은 나무에 둥지를 틀고, 시체를 밟아 자신의 영달을 꾀했다는 말이구만.”</p>
<p>막우의 말을 듣던 양진의 눈빛이 약간은 수그러 들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 말에 막우는 그 말이 맞다는 듯 웃더니 이야기를 계속했다.</p>
<p>“맞아! 그랬던 거지. 결국 그 썩은 나무가 뽑힐 때 까지도 나는 그 둥지를 떠나지 않고 연한과 양제를 죽이려고 하다 잡히게 된 거지. 계란으로 바위를 치더라도 그것이 검사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하고 말이지. 내가 검사라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황제의 개가 된놈이 결국 그 검사의 도리라는 것을 지키려고 하다 이 신세가 되다니 웃기는 일이지.”</p>
<p>막우는 이렇게 말하고서는 얼굴을 찌푸렸다. 옛일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그의 팔은 잘리고 남아 있지 않은데도 마치 아직도 달려 있는 것처럼 그 손끝이 아파오는 것 같았다.</p>
<p>양진은 막우의 말을 듣더니 대뜸 이렇게 이야기 했다.</p>
<p>“그럼 결국 우리는 적이면서 친구가 되는 거구만. 양제를 사이에 주고는 적이고 연한을 두고는 친구라. 재미있는 인연이군.”</p>
<p>“그렇게 되는구만.”</p>
<p>두 사람은 나란히 걸으며 큰소리로 같이 웃기 시작했다. 차가운 밤공기를 헤치고 울려퍼지는 두사람의 웃음소리는 다른 사람이 들었으면 귀신의 것이라고 여길만큼 음산한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지만 두사람에게는 뭔가 알수 없는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웃음소리였다.</p>
<p> 아무 말 없이 웃으며 걷던 두 사람은 커다란 나무 밑에 다다르자 멈추어 섰다.</p>
<p>“여기서 쉬어갈 셈인가?”</p>
<p>멈춰선 막우가 양진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자 양진이 나무에 기대어 앉으며 말했다.</p>
<p>“하곡까지 가려면 여기에서 쉬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8230;&#8230;”</p>
<p>그 말에 막우도 그 옆에 따라 앉더니 이제 막 눈을 감은 양진을 깨우며 말했다.</p>
<p>“이대로 그냥 잘 테냐?”</p>
<p>막우의 물음에 양진이 눈에 매었던 천을 풀어헤치며 대뜸 소리쳤다.</p>
<p>“아니 그럼 그냥 자야지. 여기서 불이라도 피우자는 이야긴가? 불씨 하나 구할 수 없는 데서 불 피울 재주라도 가지고 있으쇼?”<br />
양진이 귀찮은 노인네라는 듯 이렇게 다그치자 막우가 허허거리더니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며 내놓으며 말했다.</p>
<p>“어떤 놈이 불씨가 없다고 하더냐? 젊은 놈 성질하고는 쯧쯧.”</p>
<p>“이제 뭐요?”</p>
<p> 양진이 막우가 꺼내놓은 물건을 바라보니 그것은 다음 아닌 부싯돌과 곱게 말린 종이였다. 양진이 그것을 보고 어디서 났느냐고 물으려고 하는데 그것을 눈치 챘는지 벌써 일어나 나뭇가지를 모으던 막우가 대답했다.</p>
<p>“옷 안쪽 주머니에 있더구먼. 그런데 불 정도는 피울 줄 알겠지?”</p>
<p>그 물음에 양진이 말린 종이를 한번 들추어보더니 일어나 막우 쪽으로 가며 말했다.</p>
<p>“팔 하나 보다는 두 팔로 모으는 게 빠를 테니 노인네는 가서 불이나 피우쇼. 나뭇가지는 내가 모으지”</p>
<p>양진의 말에 막우가 작게 웃음을 흘리더니 말했다.</p>
<p>“이 미친놈! 한 손으로 어떻게 불을 피우는가. 혹 정말 불도 못 피워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p>
<p>막우가 이렇게 말하자 양진이 풀어헤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p>
<p>“불 피워 본지 하도 오래돼서 잊어버렸나?”</p>
<p>그 모습에 막우가 소리 내서 웃더니 나무 밑으로 가서 부싯돌을 집어 들면서 말했다.</p>
<p>“그러고 보니 귀한 집 아들이라 불이란 것을 피울 일이 없었겠구먼.”</p>
<p>막우는 이렇게 말하면 양진이 뭐라도 한마디 하겠구나 생각하고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양진은 나뭇가지만 주워 담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p>
<p> 막우는 자리에 앉아 발로 부싯돌을 잡고는 한참을 씨름하다 겨우 불을 피우고는 아직도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 양진을 불렀다. </p>
<p>다행히 나뭇가지가 불에 바싹 말라 있어 불이 제법 커지자 막우가 두 손을 뻗어 불을 쬐고 있는 양진을 바라보며 말했다.</p>
<p>“그런데 하곡에는 무슨 일로 가는 거냐?”</p>
<p>막우의 물음에 양진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p>
<p>“하곡에 가서 사람을 만나라고 했거든.”</p>
<p>“만나라고 했다고? 누가 그랬다는 거냐?”</p>
<p>막우가 그의 짧은 대답에 이렇게 되묻자 양진이 짜증난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p>
<p>“누구긴 누구야. 황제 놈이지!”</p>
<p>“뭐?”</p>
<p>황제라는 말에 막우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도와주었으니 저 강양진이란 자가 그 지하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것이 황제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p>
<p> 막우가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양진이 갑자기 자신의 검을 뽑아 들고는 모닥불을 쑤시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막우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의 손에서 검을 빼앗아 들더니 말했다.</p>
<p>“ 아니 그래도 검사라는 자가 검을 불쏘시개로 쓰다니 &#8230;&#8230;”</p>
<p>그러자 양진이 다시 막우의 손에서 검을 빼앗더니 다시 검으로 모닥불을 들쑤시며 말했다.</p>
<p>“노인네 아직도 검사라는 이름에 미련이라도 남아 있나 보지?”</p>
<p>“음……. 아무리 그래도 그 따위 짓거리는 하지 않아.”</p>
<p>막우가 양진의 짓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 했지만 양진은 상관하지 않는 다는 듯 계속 하다 말했다.</p>
<p>“어차피 검이란 것은 도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p>
<p>그 말에 막우가 양진의 눈을 바라보았다. 광기가 가신 그의 눈을 바라보던 막우는 그의 눈빛이 검사답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분명 양진의 두 눈은 양진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막우가 아닌 것 같았다. 마치 막우의 뒤편에 자신의 과거라도 숨어 있는 듯 그의 눈은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진의 눈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던 막우가 나뭇가지로 불속에 들어가 있는 양진의 검을 꺼내 불 밖으로 내 놓으며 말했다.</p>
<p>“네 말대로 도구일 뿐이지만.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는 사람들로서는 그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지.”</p>
<p>“덕분에 목숨을 부지한다! 라……. 그 한치 앞 목숨도 알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끌어들인 것이 바로 이 물건이 아니던가?”</p>
<p>양진이 이렇게 말하고서는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막우가 양진의 손에서 검을 빼앗아 들더니 그것으로 양진의 목을 겨누더니 말했다.</p>
<p>“착 하고 손에 감기는 맛이 일품인 놈이야. 한 때였지만 난 말이지, 이 검이란 것의 목표란 결국 사람을 죽이는 거라고 생각했었지. 자 봐 이 검 날 끝을&#8230;&#8230;”</p>
<p>막우는 이렇게 말하고서는 검 날을 눈으로 가리키더니 말을 계속 했다.</p>
<p>“이렇게 선 날에 검사들의 가치가 살아 있는 거야. 진정한 검사라면 어느 쪽에도 휩쓸리지 말고 그 검의 날이 있는 방향으로만 나가야 하는 거지. 삶이나 죽음 따위는 연연하지 말고 검 하나 만을 믿어야 하는 거야. 결국 그것이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한다고 해도 말이야.”<br />
막우가 이렇게 말하자 양진이 픽하고 웃더니 검집을 허리에서 뽑아 검에 끼워 넣어 막우의 손에서 빼앗아 들고는 말했다.</p>
<p>“그래 그렇게 말하는 노인네는 그 검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살아왔나?”</p>
<p>양진의 말에 막우가 픽하고 웃더니 말했다.</p>
<p>“그래 나도 그렇게 살지 못했지. 그래서 말이야.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살려고 마음먹었거든”</p>
<p>막우의 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뭐가 재미있는지 한참을 웃더니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잠이라도 들었는지 조용한 풀벌레 소리와 모닥불 타는 소리만이 두 사람을 감쌌다. </p>
<p>“자는가?”</p>
<p>누워 있던 막우가 몸을 일으키며 이렇게 말했지만 양진에게선 대답대신 코고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막우는 천천히 양진이 누워있는 옆으로 다가가 놓여 있던 백록이란 검을 집어 들더니 검을 뽑아 모닥불 빛에 살펴보았다. 그을음이 검 끝에 묻어 있는 것을 보고는 막우는 검을 무릎사이에 놓고 천천히 날을 닦으며 중얼거렸다.</p>
<p>“이런 검에 숯검정이 묻어 있는 꼴을 누군가 봤다면 아마 널 죽이려고 했을 거다.”</p>
<p>막우는 이렇게 말하고서는 누워서 잠에 곯아떨어진 양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알 수 없는 놈이라는 듯 웃더니 백록을 들고 한참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잠도 자지 않고 밤을 보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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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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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4 Dec 2006 05:33:04 +0000</pubDate>
		<dc:creator>김 승엽</dc:creator>
				<category><![CDATA[검을 다루는 자들]]></category>
		<category><![CDATA[소설과 시]]></category>
		<category><![CDATA[장편소설]]></category>
		<category><![CDATA[무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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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불이 켜지지 않은 어두운 방안에서 눈을 뜬 하진은 잠시 그대로 벽에 기대어 앉아 문 옆에 세워져 있는 흑요를 바라보았다. 창으로 들어오는 어스름한 달빛에 형체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진의 눈은 흑요 로부터 떨어지지 않았다. ‘저 검을 뽑는다면 어떻게 될까?’ 문득 하진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감희문의 말 대로 염라의 냄새를 맡고 도끼를 든 그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불이 켜지지 않은 어두운 방안에서 눈을 뜬 하진은 잠시 그대로 벽에 기대어 앉아 문 옆에 세워져 있는 흑요를 바라보았다. 창으로 들어오는 어스름한 달빛에 형체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진의 눈은 흑요 로부터 떨어지지 않았다. </p>
<p>‘저 검을 뽑는다면 어떻게 될까?’</p>
<p>문득 하진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감희문의 말 대로 염라의 냄새를 맡고 도끼를 든 그 사내가 나타날지 궁금했던 것일까? 그 보단 그 염라의 냄새란 것을 확실하게 맡아 보고 싶다는게 더 정확할 듯 싶었다. </p>
<p>‘검에서 냄새라……. 그것도 염라의 냄새?’</p>
<p>흑요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다 문득 상처가 아물어 가는지 어깨가 간지럽기 시작하자 주변을 살짝 긁어보던 하진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밤바람이라도 맞으면 괜찮아질까 싶어 밖으로 나왔다. 웃옷도 입지 않은 채 붕대만을 감고는 마당으로 걸어 나온 하진은 간지러움이 조금 가라앉자 오른손으로 마당 한 편에 놓아두었던 목도를 집어 들었다.<br />
 한 손으로 자루를 짧게 잡고는 가볍게 허공을 내려 그어보던 하진이 순간 등 뒤의 인기척을 느끼고는 몸을 돌리며 목검을 가로로 그었다. 그 바람에 하진의 등 뒤에서 하진을 바라보던 그림자가 뒤로 한바퀴 재주를 넘어 피하더니 재빠른 몸짓으로 짧은 도를 뽑으며 말했다.</p>
<p>“무슨 짓이에요!”</p>
<p>하진은 순간 저쪽에서 들려오는 여자 목소리에 희연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목검을 거두고 자세를 풀면서 말했다.</p>
<p>“소리도 없이 등 뒤로 다가왔으니 내 탓만은 아니요.”</p>
<p>하진이 멋쩍은 듯 이렇게 이야기 하자 희연도 본능적으로 뽑았던 도를 다시 집어넣고는 말했다.</p>
<p>“밤중에 나와 있어서 무슨 일이 있나 했을 뿐이에요.”</p>
<p>희연의 말에 하진이 희연을 잠시 바라보았다. 뭔가 고민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던 하진이 작게 으음 하는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면서 무엇을 찾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p>
<p>“상처가 간지럽기에 바람이라도 좀 쐬면 나을까 싶어 나왔소. 그건 그렇고 당신도 심각한 고민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니요?”</p>
<p> 하진은 이렇게 말하고는 마당 한 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하진의 말을 듣던 희연이 뭔가 들킨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br />
<span id="more-432"></span><br />
“그런 것 없어요!”</p>
<p>희연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당 한쪽에서 목도를 집어들은 하진이 그것을 희연 쪽으로 던지면서 말했다.</p>
<p>“안 그래도 몸이 근질근질 했는데 내 상대나 좀 해주는 게 어떻소?” </p>
<p>하진의 말에 얼떨결에 목도를 받아든 희연이 흥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자세를 잡으면서 말했다.</p>
<p>“다친 사람과 상대 하는 게 좀 걸리지만 원한다면 해주죠!”</p>
<p>하진은 그런 희연을 바라보며 보이지 않게 살짝 웃고는 한손으로 목도를 잡고는 희연 쪽으로 다가가서더니 말했다.</p>
<p>“그럼 한수 부탁합시다.”</p>
<p>하진의 말에 희연도 살짝 웃더니 그가 한 손으로 검을 잡은 것을 보면서 말했다.</p>
<p>“다쳤다고 봐주지는 않을 거예요. 한손으로는 힘들걸요.”</p>
<p>하진은 희연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그대로 희연의 얼굴 쪽으로 목도를 찔러 들어갔다. 하진의 공격에 희연이 뒤로 물러서 피하면서 몸을 돌려 하진의 옆구리에 발을 날렸다. 그러나 하진은 그 발을 피하지 않고 목검자루로 받아치고는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희연의 목도가 반대쪽으로 날아들어 하진의 왼쪽 허리에 닿았다. 금세 방향을 바꾸어 공격하는 희연의 몸놀림에 하진이 놀라 바라보자 희연이 하진의 옆구리에 검을 거두고는 웃으며 말했다.</p>
<p>“방심했나 보군요.”</p>
<p>“아니요. 당신 움직임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소.”</p>
<p>하진은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하진이 자세를 잡자 희연 역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자세를 잡고는 말했다.</p>
<p>“아직 몸이 덜 풀렸나 보군요.”</p>
<p>희연은 이렇게 말하고는 하진의 다리 쪽으로 목도를 찔러 들어갔다. 하진은 자신의 오른 쪽 다리를 노리는 희연의 목도를 쳐내고는 반대로 희연의 왼쪽 발등을 찌르는 척하다가 그대로 쳐올려 그녀의 무릎을 베려고 했으나 그 전에 희연의 검이 하진의 낮추어진 목을 노리고 날아들자 검을 옆으로 거두고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어깨 뒤로 희연을 밀쳐내고는 옆으로 피했다. 하진에게 밀린 희연은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서더니 하진의 오른쪽 옆구리 쪽으로 목도를 날렸다.</p>
<p> 하진은 목도를 아래로 돌려 희연의 목도를 쳐내고는 희연의 오른쪽 발을 밟으며 그녀의 왼쪽 어깨를 밀어냈다. 그러자 희연의 왼쪽 발이 뒤로 빠지면서 그녀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목도가 비어 있는 하진의 왼쪽 어깨에 닿았다. </p>
<p>“이번에는 내가졌네요.”</p>
<p>그녀가 몸을 다시 일으키면서 말하자 하진이 밟고 있던 그녀의 발에서 발을 떼고는 말했다.</p>
<p>“비긴 거 같소.”<br />
하진이 이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허리에 와 있는 희연의 목도를 보면서 웃자 희연 역시 미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p>
<p> 하진이 그녀의 유연한 몸놀림이 자신이 지금껏 보아왔던 검사들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는데 방문이 열리더니 서운이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p>
<p>“이 봐 밤중에 나와서 뭐하는 건가?”</p>
<p>하진이 희연과 같이 목도를 들고 있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서운은 고개를 좌우로 작게 흔들면서 하진의 손에서 목도를 빼앗아 들고는 말했다.</p>
<p>“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무리 목도라도 몸을 움직이는 것은 상처에 좋지 않아.”</p>
<p>서운은 이렇게 말하고서는 희연을 바라보았다. 서운이 그녀를 나무라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멋쩍은 듯 살짝 몸을 돌려 목도를 세워 두고는 방으로 돌아갔고 하진은 그대로 서서 그녀가 방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다가 서운에게 말했다.</p>
<p>“상처가 간질거려서 바람이라도 쐴까 하고 나와 본거야. 그보다 유인하 아가씨의 상태는 어떤가?”<br />
하진의 물음에 서운이 들고 있던 목도를 옆에 세워놓으며 말했다.</p>
<p>“그 자하라는 검사가 열심히 간호하고 있는데 아직 정신이 돌아오진 않았어. 몸의 상처가 놀랄 정도로 치유가 빨라서 아마 자네 상처보다도 빨리 나을 거야.”</p>
<p> 서운의 말에 하진이 음 하는 신음소리를 내더니 말했다.</p>
<p>“그녀가 어서 정신을 차려야 할 텐데 말이야.”</p>
<p>하진이 이렇게 말하자 서운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뭔가 생각난 듯 하진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p>
<p>“참 그건 그렇고. 자네! 할아버님과는 계속 그렇게 말도 하지 않을 건가?”</p>
<p>서운의 물음에 하진이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p>
<p>“나에겐 그렇게 쉽게 잊혀질만한 일이 아냐. 게다가 할아버지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계신 것 같지 않고 말이야. 난 그게 화가 나는 거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타나서는 변명 한마디 않는 게 말이야.” </p>
<p>“하지만 그래도 자네에겐 하나 밖에 없는 혈육 아닌가.”</p>
<p>서운의 말에 하진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서운의 말이 맞았지만 그동안 쌓였던 응어리가 그렇게 쉽게 사라질리 없었다. 하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서운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는지 서운의 등을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p>
<p>“몸도 풀었을 텐데 이제 들어가 쉬게.”</p>
<p>서운은 방으로 돌아가는 하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p>
<p>“두 사람 모두 알 수가 없군.”</p>
<p>서운이 방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하가 마당으로 나왔다. 그 역시 하진처럼 바람이라도 쐬러 나온 건지 마당을 잠시 거닐다가 인하가 누워있는 방이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멈추어 섰다.<br />
 그리고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더니 방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p>
<p>“연자하입니다.”</p>
<p>자하는 문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는 잠시 기다렸다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서는 서희가 인하를 간호하고 있다가 자하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일어나며 말했다.</p>
<p>“걱정되셔서 오셨나 보네요.”</p>
<p>“아! 예&#8230;&#8230;”<br />
서희의 말에 자하가 어색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런 자하의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서희는 손을 입으로 가리며 소리죽여 웃다가 말했다.</p>
<p>“약 먹을 시간이 된 것 같네요.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그동안 봐주실래요?”</p>
<p>하지만 앉아 있던 자하는 서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마치 죽은 듯 누워 있는 인하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자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제야 서희는 그가 귀가 들리지 않는 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어깨를 건드려 다시 말하려다가 이내 그만두고는 밖으로 나갔다.</p>
<p> 인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자하는 그녀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것을 보고 닦아줄 것을 찾아 고개를 돌리다가 서희가 방안에 없는 것을 발견했다.</p>
<p>‘뭐라고 말했는데 내가 또 못 알아들은 건가?’</p>
<p>자하는 이렇게 생각하며 옆에 놓여 있던 작은 수건을 집어 들어 인하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주었다. 고통 때문일까? 아니면 나쁜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일까? 눈을 찌푸린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자하가 그녀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리다 스스로가 자신의 행동에 흠칫 놀라 손을 떼고는 뒤로 물러나 앉았다.</p>
<p>‘왜 그랬지?’</p>
<p> 물론 땀 때문에 그녀에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것이 이상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자하는 그 순간 자신의 가슴속에 일었던 조그마한 감정에 놀라고 있었다. 자신이 보아온 그녀의 모습이라곤 이렇게 눈을 감은 채 누워 있는 모습뿐이었다. 그녀에 대한 애처로움이 어느새 다른 감정이 되어버린 것일까?<br />
 자하는 다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가슴에 올려져 있는 그녀의 여린 팔을 발견하고는 진짜 이 여인이 살인귀가 맞을까 하고 생각했다. </p>
<p>‘이야기 한번 나눠 보지 못했는데&#8230;&#8230;’</p>
<p>자하는 이렇게 생각하며 인하에게 조금 다가가 다시 이마에 땀을 닦아주었다.</p>
<p> 이 때 인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아버지의 검을 든 채 그녀는 정원에 나와 있었다. </p>
<p>‘이게 나인가?’</p>
<p>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을 바라보던 인하가 이렇게 생각하다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버지 도장의 제자들이 양손으로 검을 잡은 채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p>
<p>‘왜 저러지?’</p>
<p>그들의 눈빛이 평소와 다른 것에 인하는 이렇게 생각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보고 있는 듯한 그들의 눈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언제라도 달려들 듯한 살기가 그녀를 소름끼치게 했다.</p>
<p>“왜 그러&#8230;&#8230;!”</p>
<p>그들이 내 뿜는 살기에 짓눌려 겨우 입을 열었던 인하는 순간 저쪽에 사람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p>
<p>‘왜 저기 사람이 죽어있지?’</p>
<p>그리고는 손으로 그 쪽을 가리키고 뭔가 말을 하려는 데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무리중 하나가 검을 날렸다. 순간 그녀는 두 눈을 감았다. 왜 그가 자신을 죽이려 하는지도 모른 채 두려움에 떨며 눈을 다시 떴을 때는 그녀의 오른손에 들렸던 검이 어느새 그의 목을 꿰뚫고 있었다.</p>
<p>“아!”</p>
<p>두 눈을 부릅뜬 채 입으로 피를 흘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친 순간 인하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소리쳤다. 분명 자신은 눈을 감았을 뿐인데 어느새 그녀의 손에 들렸던 검이 그의 목을 꿰뚫고 있다는 사실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수 없었다.</p>
<p>‘내가 아니야. 내가 찌른 게&#8230;&#8230;’</p>
<p>그녀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녀의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았고 이제는 마치 깃털처럼 가벼운 느낌이 되어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몸에서 혼이 빠져나가는 것이 이런 것일까. 그녀는 공중에 떠오르며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p>
<p> 분명 저기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는 여자가 자신일 텐데 어째선지 그 모습은 자신이 아닌 듯 했다. 그런데 그 때 그녀가 바라보고 있던 그녀의 몸이 고개를 돌려 공중에 떠오른 자신을 바라보았다. 마치 다른 혼이 있는 것처럼 이상한 미소를 띠며 공중에 떠 있는 인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다.</p>
<p>“아냐! 저게 나 일리 없어. 내가 아냐!”</p>
<p>인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소리쳤다. 즐기기라도 하는 듯한 미소를 띠며 피를 뒤집어 쓴 채 서있는 모습은 마치 귀신같았다. 지옥에서 라도 걸어 나온 듯한 그 모습은 분명 자신의 몸이었지만 그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믿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더 맞았다.</p>
<p>혼이 빠져나간 인하의 몸은 잠시 그렇게 공중을 바라보다가 뒤쪽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또 다른 검사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리고는 마치 재미있는 놀이라도 하고 있다는 듯한 얼굴로 다시 공중을 바라보며 말했다.</p>
<p>“이게 너야!”</p>
<p>“아냐! 내가 아냐!”</p>
<p>인하는 고개를 흔들며 이렇게 소리치다가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를 내려보고 있는 자하와 눈이 마주쳤다. </p>
<p>“일어났군요!”</p>
<p>인하가 일어난 것을 발견한 자하가 놀란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인하는 그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 번에 눈을 떴을 때와는 또 다른 방안, 그리고 처음 보는 사내. 잠들어 있는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br />
 인하가 주위를 둘러보며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내려고 하는 동안 자하가 일어나 밖으로 나가면서 소리쳤다.</p>
<p>“일어났습니다!”</p>
<p>‘누구에게 말하는 거지? 아버지인가?’</p>
<p>인하는 누워서 밖으로 나가는 자하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보았다. 전처럼 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직 고통은 남아있었다. </p>
<p>‘내가 어떻게 이 곳에 와 있는지 물어봐야 하는데&#8230;&#8230;’</p>
<p>인하는 이렇게 생각하며 벽에 기댄 채 문 밖을 내다보며 누군가 오기를 기다렸다.</p>
<p>잠시 후 자하를 따라 희문이 방 안으로 들어와 깨어난 인하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p>
<p>“이제야 정신을 차렸군. 그래 다친 곳은 많이 좋아졌는가?”</p>
<p> 희문의 물음에 인하가 짧게 예 하고 대답하고서는 희문과 자하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p>
<p>“그런데 여기가 어디지요? 그리고 어르신은 누구신지?”</p>
<p>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인하의 눈빛을 바라보던 희문은 막 인하의 입술을 읽고 뭔가 말하려고 하는 자하를 막고서는 천천히 말했다.</p>
<p>“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구먼. 나는 이조윤 이라고 하네. 아가씨 아버지와는 친구사이일세.”</p>
<p>“그런데 제가 왜 이곳에 누워 있는지?”</p>
<p>자신을 이 조윤이라고 소개한 희문의 말을 들은 인하가 이렇게 묻자 희문이 곤란하다는 듯한 얼굴로 작게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p>
<p>“자네가 어떻게 이렇게 다쳤는지에 대한 기억은 나는가?”</p>
<p>희문의 물음에 인하가 그 때의 일을 떠올리려는 듯 눈을 감았다가 머리라도 아파오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눈을 떠 말했다.</p>
<p>“아니오. 제가 지병 때문에 발작을 일으켜 정신을 잃었던 것만 기억이 나고 그 이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p>
<p>인하가 이렇게 말하고는 희문의 등 뒤, 문 쪽에서 사람의 움직임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고,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희문과 자하도 그녀를 따라 고개를 돌려 문 쪽을 향했다.</p>
<p> 문에는 어느새 나타났는지 모르게 하진이 서서 유인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자하나 희문처럼 그녀가 깨어나 반가워하는 표정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진은 방 안으로 들어와 문 옆에 기대어서서는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p>
<p>“어째서 그녀에게 이야기 하지 않는 겁니까? 그녀가 평생 모르고 살기라도 바라시는 겁니까?”</p>
<p>하진의 말에 희문이 그만두라는 듯한 얼굴로 손자를 바라보았지만 하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p>
<p>“아가씨! 나를 기억하시오. 얼마 전 댁에서 식객으로 지낸 적이 있는 이 하진이란 검사요.”</p>
<p>하진의 말에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인하가 조금 알아보겠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p>
<p>“예 아버님과 이야기 나누시는 것을 뵌 것 같아요.”</p>
<p>“그렇다면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이야기 하겠소. 당신이 발작을 일으킨 날&#8230;&#8230;”</p>
<p>“그만둬라!”</p>
<p>하진이 막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는 찰라 희문이 벼락같은 목소리로 하진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하진은 노여워하는 희문의 얼굴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p>
<p>“자신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래야만 그녀 스스로 자신의 이후의 행동에 대해 결정 내릴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녀에게 숨기려고 하시는 모양인데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p>
<p>하진의 말을 듣던 인하가 희문과 하진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물었다.</p>
<p>“제가 저지른 일이라니요? 제가 무슨 일을 저질렀나요?”</p>
<p>그녀가 꾸었던 악몽이 불안함을 가져왔기 때문일까? 하진의 말을 듣자 인하는 그녀가 꾸었던 꿈들이 혹시 자신이 저질렀다고 말하는 저 사내의 말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거기다 아버지의 친구라 말하며 뒤에 서있는 사내를 탐탁치 않을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노인 역시 그런 생각을 가중시키고 있었다.</p>
<p>“어떻게 아가씨가 저질렀던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말해주겠소. 지난 며칠 아가씨는&#8230;&#8230;”</p>
<p>“내가 말하마!”</p>
<p>하진이 다시 말하려고 하자 희문이 그의 말을 막고서는 심각한 얼굴로 인하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그녀에게 사실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하진에게 듣는 것보다 자신에게 듣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p>
<p>“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이후 유문좌파에 엄청난 일이 일어났었다.”</p>
<p>희문이 겨우 입을 열자 그 말을 듣고는 인하가 놀라 희문에게 가까이 다가서려다 통증을 느끼고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p>
<p>“아버지께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거예요?”</p>
<p>다급한 인하의 목소리에 희문이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데 하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p>
<p>“도끼를 든 괴인과 맞서 싸우다 돌아가셨소. 그리고 유문 도장의 제자들은 어떤 살인귀를 만나 죽고 말았소.”</p>
<p>하진의 말에 인하가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눈이 동그래져서 희문을 바라보며 물었다.</p>
<p>“저 사람 말이 사실이에요? 아버지와 도장 제자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이…….”</p>
<p>희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혹 하진이 그 살인귀의 정체에 대해 인하에게 이야기 할 것이 걱정되어 뒤를 돌아 하진을 한번 바라보았다. </p>
<p> 유호종과 제자들의 죽음을 알린 하진은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 듣고서는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고 있는 인하를 차가운 눈으로 내려보고 있었다. </p>
<p>‘저 흐느낌! 정말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단 말인가?’</p>
<p>하지만 그녀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녀가 저지른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수백 수천의 검사들이 유인하란 살인귀를 잡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그녀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이야기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진이 그녀에게 살인귀의 정체를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말하려는데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고 있던 인하가 몸을 일으켜 하진을 바라보며 물었다.</p>
<p>“그 살인귀는 또 누구죠?”</p>
<p>흐느낌과 함께 섞여 나온 그녀의 목소리에 주술에라도 걸린 듯 순간 방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막, 인하에게 살인귀의 정체를 말하려고 하던 하진과 희문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던 자하 모두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생각이라도 하는지 인하에게서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br />
 그 때 방문이 열리며 서희가 약 쟁반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섰다가 방안의 사람들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인하가 일어난 것을 보고는 말했다.</p>
<p>“이제야 일어났네요.”</p>
<p> 얼굴에 미소를 지은 채 인하에게 다가가 앉은 서희는 그제야 방안의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는 방안의 남자들을 한번씩 훑어보다가 모르겠다는 듯이 작게 흠 하는 소리를 내고는 인하에게 약사발을 건네며 말했다.</p>
<p>“어서 드세요.”</p>
<p>인하가 작게 고개를 숙이며 약사발을 받아들자 서희가 다시 일어서 방밖으로 나가면서 말했다.</p>
<p>“아가씨가 정신을 차렸다고 오라버니께 알려야겠네요.”</p>
<p>서희가 나가고 나서 인하는 약사발을 손에 든 채로 대답을 기다리는 듯 희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p>
<p>“당신이 발작을 일으켰을 때 전과 다른 일은 없었나요?”</p>
<p>자하가 이야기를 돌리려고 생각했는지 인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하의 물음에 인하가 자하를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조그맣게 “다른 일?” 하고 말하더니 뭔가 생각났는지 입을 열었다.</p>
<p>“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어요?”</p>
<p>‘목소리?’</p>
<p>하진이 목소리가 들렸다는 말을 듣고는 이상한 일이라 생각하는데 희문이 입을 열었다.</p>
<p>“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던가?”</p>
<p>“아니요. 전에는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가 저를 불렀어요. 그리고 꿈에서도 계속 그 목소리가 들려왔고요?”</p>
<p>전에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라는 말에 희문이 음 하고 뭔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다시 물었다.</p>
<p>“그래, 그 목소리가 뭐라고 그랬는지 기억은 나는가?”</p>
<p>희문의 물음에 인하가 볼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말했다.</p>
<p>“같은 목소리라는 것은 기억나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p>
<p>인하가 이렇게 말하자 희문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말했다.</p>
<p>“우리가 너무 괴롭혔군. 약이 식기 전에 어서 들게.”</p>
<p>그리고서는 자하를 남겨 놓고는 하진의 옷자락을 잡아 끌며 밖으로 나갔다.</p>
<p>희문과 하진이 밖으로 나가자 인하는 약사발을 든 채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고 자하는 멍하니 그녀가 흐느끼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손수건을 건네려다 손수건이 지저분 하자 다시 집어넣고는 말했다.</p>
<p>“더 식기 전에 약 드시죠. 아픈 분을 혼자 놔두기 뭣하지만 지금은 혼자 계시는 게 더 좋을 듯 하군요.”</p>
<p>자하의 말에 흐느끼던 인하가 고개를 들어 그를 한번 쳐다보더니 약을 마시고는 사발을 쟁반위에 내려놓았다. 그녀가 약을 마신 것을 본 자하가 쟁반을 들고 나가려고 하는데 인하가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br />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자하가 놀라 바라보자 인하가 자하에게 말했다.</p>
<p>“혼자 있는게 무서워요. 조금 더 같이 있어주시면 안되나요?”</p>
<p>“예?”</p>
<p> 그녀의 말에 자하가 놀라 말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어쩌면 이제 세상에 자신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녀를 외롭게 만들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p>
<p>‘혼자 방안에 남겨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겠지.’</p>
<p> 지금 그녀가 어떤 기분일지 자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느낌, 어쩌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보다 더욱 더 그녀를 슬프게 만들고 있을지도 몰랐다. </p>
<p>밖으로 나온 희문은 그를 뒤따라 나온 하진을 향해 몸을 돌리고는 방 안에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말했다.</p>
<p>“네 녀석의 잔인한 한 마디가 아니라도 슬픈 아이다. 아버지를 잃고 아파하는 아이에게 사실을 말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야”</p>
<p> 타이르는 듯한 희문의 말에 하진의 얼굴에 잠시 조소가 스치는 것 같았으나 부지불식간의 일이라 희문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조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p>
<p>“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저지른 일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시체위에 모래를 뿌려 놓는다고 해도 비가 오면 드러나는 것 아닙니까. 지금 알리는 게 저 아가씨를 위해서도 좋은 일 일겁니다.”</p>
<p>희문의 부드러운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하진의 목소리도 방안에서처럼 차갑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하진의 목소리가 그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아가씨를 걱정하는 조부의 모습을 보는 하진의 마음속에서 뭔가가 조그맣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런 하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희문의 말이 이어졌다.</p>
<p>“비가 와서 드러날 것이 걱정된다면 깊게 파묻으면 된다. 그리고 나도 언제까지 숨길 생각은 없다. 단지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뿐이지.”</p>
<p>희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진의 입이 열렸다.</p>
<p>“세상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을 숨기자고 하시는 겁니까. 이 후로도 어떤 자들이 저 아가씨를 노릴지 모르는데 그 때마다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p>
<p>하진은 이렇게 말하고 자신의 목소리가 조금 컸다고 생각했는지 방쪽을 한번 살펴보았다. 희문은 하진의 말을 듣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하진이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자 그제야 말을 계속 했다.</p>
<p>“우리가 저 아이를 데리고 가면 된다. 어차피 저 아이가 이 곳에 있으면 서운 남매도 위험해 질지 모르니까.”</p>
<p>인하를 데리고 가겠다는 희문의 말에 하진의 눈이 커졌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듯 하진이 물었다.</p>
<p>“저 아가씨를 데리고 그 괴상한 검들을 찾아 나서겠다는 말씀이십니까?”</p>
<p>하진의 물음에 희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p>
<p>“그래야 네가 저 아가씨를 보호하기도 쉬울 것 아니냐?”</p>
<p>희문의 말에 하진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검을 찾는 일을 도와 달라는 조부의 부탁을 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유인하라는 아가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조부는 자신의 고민 같은 것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쉽게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너무나 단순 명료해서 뭐라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는 희문의 말에 하진은 뭐라 입을 열려고 했다가 그만 두고 말았다.<br />
 희문은 그런 손자의 얼굴을 잠시 살피다가 하진에게는 보이지 않게 작게 미소를 짓고서는 말했다.</p>
<p>“네가 이조윤의 손자라면 알아들을 줄 알았다. 네 애비도 뻣뻣했지만 그래도 내 말을 무시하는 녀석은 아니었어. 길을 잘못 들게 한 것이 한 이 될 뿐이다.”</p>
<p>희문이 갑작스레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자 하진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희문은 그런 하진의 얼굴을 보고 뭔가 눈치 챘는지 흠 하고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방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p>
<p>“날이 차지는데 이제 그만 들어가라”</p>
<p>하진은 잠시 그렇게 자리에서서 방으로 들어가는 희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p>
<p>“느닷없이 나타나 할아버지 노릇이라도 하시겠다는 건가?”</p>
<p>그리고는 희문의 뒷모습이 새삼 낯설게 느껴지는 것을 신기해하며 자신의 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p>
<p> 하진이 방으로 들어가고 나자 마당 한쪽 어두운 곳에 몸을 숨기고 서있던 서운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생각지 않게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게 된 서운은 방금 전 하진이 서있던 자리에서 서서 눈가를 긁다가 인하가 있는 방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 앞에 서서 작게 기침을 하고 방 안에 들어서려다 울다 지쳐 잠든 인하와 그 옆에 앉아 그녀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자하를 발견하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다시 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마당 한 가운데 서서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다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작게 흔들더니 마당 한쪽의 어둠으로 사라져 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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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형의 칼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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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0 Nov 2006 04:36:25 +0000</pubDate>
		<dc:creator>김 승엽</dc:creator>
				<category><![CDATA[검을 다루는 자들]]></category>
		<category><![CDATA[소설과 시]]></category>
		<category><![CDATA[장편소설]]></category>
		<category><![CDATA[무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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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인형의 칼날 군운의 구름이 여전히 운하궁의 하늘을 뒤덮은 어느 오후, 황제는 술에 취해 가희의 부축을 받은 채 침소에 들어서고 있었다. “폐하! 약주가 과하신 모양이어요.” 가희가 교태 섞인 미소와 함께 말하자 황제가 흐릿해진 눈으로 손을 좌우로 크게 흔들며 말했다. “아니야. 더 마셔야지. 껍데기뿐인 황제가 할일이 그것밖에 더 있겠느냐” 황제가 술 취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자 가희가 흠칫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인형의 칼날</strong></p>
<p>군운의 구름이 여전히 운하궁의 하늘을 뒤덮은 어느 오후, 황제는 술에 취해 가희의 부축을 받은 채 침소에 들어서고 있었다.</p>
<p>“폐하! 약주가 과하신 모양이어요.”</p>
<p>가희가 교태 섞인 미소와 함께 말하자 황제가 흐릿해진 눈으로 손을 좌우로 크게 흔들며 말했다.</p>
<p>“아니야. 더 마셔야지. 껍데기뿐인 황제가 할일이 그것밖에 더 있겠느냐”</p>
<p>황제가 술 취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자 가희가 흠칫 놀라며 말했다.</p>
<p>“껍데기라니요. 폐하 아닙니다.”</p>
<p>가희의 말에 황제는 잠시 그 흐릿해진 눈이 반짝하고 빛나며 가희의 눈을 바라보았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녀를 덥석 안으며 말했다.</p>
<p>“너는 그렇게 생각하느냐?”</p>
<p>황제의 술에 취한 목소리에 가희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p>
<p>“그래 너라도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구나.”</p>
<p>황제가 안고 있던 가희와 떨어져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물이라도 마시려는 건지 탁자 쪽으로 다가가자 가희가 얼른 그의 팔을 잡아 부축했다. </p>
<p>“조심하십시오.”</p>
<p>“그래 그래!”</p>
<p>가희의 말에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듯이 대답하더니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 그 때 방문이 열리며 노인하나가 방안으로 들어섰다. 백발의 곱게 틀어 올린 머리가 노인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그 큰 눈과 얼굴은 40대로 보기에도 충분했다. 보라색 비단으로 만든 옷자락을 펄럭이며 황제의 방으로 들어선 노인은 황제 앞에서 예도 취하지 않은 채 곧은 허리를 뻣뻣이 펴고 술에 취해 의자에 앉아 있는 황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br />
그런 노인을 먼저 발견한 것은 황제였다. 황제는 뻣뻣하게 서서 자신을 내려보고 있는 노인의 얼굴을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p>
<p>“약주가 과하셨던 모양입니다.”</p>
<p>노인은 황제와 눈이 마주치고 서야 마지못해 예를 취하고서는 이렇게 말했다. </p>
<p>“아! 이게 누구요. 군운 영주가 아니시오!”</p>
<p>황제의 말에 가희가 고개를 돌려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가 자리를 피하라는 영주의 눈빛에 황제를 한번 쳐다보며 머뭇거렸다가 조심스레 방 밖으로 나갔다. 영주는 가희가 방 밖으로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그녀가 방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자 탁자에 엎드려있는 황제에게 다가가 말했다.</p>
<p>“오늘은 황제께 한 가지 여쭐 것이 있어 왔습니다.”</p>
<p>분명 황제에게 존대를 하고 있긴 했지만 어딘지 그의 눈빛과 얼굴 표정은 황제 앞이라고 하기에는 거만해 보였다. </p>
<p>“나에게 물어 볼게 있다니 그게 무엇이오?”</p>
<p>황제가 겨우 고개를 들어 이렇게 말하자 영주가 황제 앞의 의자에 앉아 황제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p>
<p>“요즘 이상한 자들과 어울리신다고 들었습니다만&#8230;&#8230;”</p>
<p> 황제와 같은 자리에 앉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눈을 마주치고 말하는 영주의 태도는 분명 황제를 섬기는 신하의 자세라 볼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황제는 그런 영주의 태도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러운 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p>
<p>“이상한 자들이라니. 운하궁 밖을 벗어난 적이 없는 내가 어찌 이상한 자들과 만날 수 있겠소.”</p>
<p>마치 변명하듯 술이 취한 목소리로 황제는 이렇게 말하고는 이내 다시 탁자에 엎드렸고 영주는 그런 황제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다가 다시 말했다.</p>
<p>“그렇다면 혹 선황제때 황제 친위대에 있었던 양조웅이라는 자를 아십니까?”</p>
<p>순간 양조웅이라는 이름에 황제의 눈이 반짝였으나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영주에게 보이지는 않았다. </p>
<p>“양조웅이라! 내가 아는 양조웅이라면 이미 죽은 사람으로 아는데.”</p>
<p>황제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영주를 바라보며 말했으나 그럼에도 영주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p>
<p>“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만, 얼마 전 운하궁 근처에서 그를 보았다는 자가 있습니다.”</p>
<p>황제를 추궁하는 듯한 영주의 말에 황제가 소리 내며 웃으며 말했다.</p>
<p>“아니 죽은 줄 알았던 신하가 살아 돌아왔다면 반가운 일일 텐데, 수상한 사람을 만나느냐 물으며 그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가 수상한 자라는 말이오?”</p>
<p>황제가 웃으며 이렇게 말하자 영주 또한 억지웃음을 흘리며 말했다.</p>
<p>“죽었다는 자가 살아 돌아다닌다니 그것이 수상한 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게다가 살아생전 양조웅이 선황제폐하를 그림자처럼 모셨고 폐하께도 각별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쭈어 보았습니다.”</p>
<p>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영주를 놀리기라도 하듯 황제의 표정에 장난기가 어리더니 말했다.</p>
<p>“처음에는 이상한 자들과 어울리나 묻더니 죽은 양조웅의 이야기를 꺼내고 , 묻는 것이 이상한 것 같은데 아니요?”</p>
<p>황제의 말에 장난기 어린 얼굴을 억지웃음이 사라진 무표정한 얼굴로 주시하던 영주가 잠시 아무런 말도 하고 있지 않다가 일어서며 말했다.</p>
<p>“양조웅이 살아 돌아왔다면 분명 황제폐하께 찾아올 것이니 그때는 제 안부라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p>
<p>그리고서는 고개를 숙여 예를 취하고서는 몸을 돌려 방문 쪽으로 다가가다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멈추어 서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p>
<p>“북방에 있다는 사초국의 무녀는 죽은 자를 살리고 산 자의 마음을 읽는다 들었습니다. 이세향이라는 무녀가 무슨 일인지 군운에 왔었다는데 혹 그 사초국 무녀를 아시면 제게도 보내 주시지 않겠습니까? 저도 꼭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말입니다. 하하하핫”</p>
<p>영주는 이렇게 말하고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지으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황제는 방금 전의 흐릿한 눈빛은 간데없고 반짝이는 눈으로 영주가 나간 방문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가희가 들어오자 다시 눈빛을 바꾸고 고개를 떨어뜨리며 술에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p>
<p>“가희야. 가서 술이나 더 가져오너라. 연한공이 가고나니 왠지 술생각이 더 나는구나!”</p>
<p>황제의 말에 방에 들어선 가희가 예라고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황제는 가희가 나가자 천천히 탁자에서 일어나 창문 쪽으로 가서 운하궁을 나서는 연한공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p>
<p>“늙은 여우가 날 이곳에 가두더니 이제는 손발까지 묶으려 하는 구나.”</p>
<p>황제는 한 동안 그렇게 창 밖을 바라보다 다시 취한 걸음으로 탁자로 다가가 엎드렸다.<br />
<span id="more-425"></span><br />
그날 밤, 운하궁을 감싼 어둠을 뚫고 황제가 방에서 걸어 나왔다. 항상 그의 뒤를 따르던 가희도 없이 혼자 검을 찬 채 방에서 나온 황제는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정원으로 가로 질러 어디 론가로 향했다.<br />
 정원을 가로질러 운하궁 서쪽 끝자락에 있는 석조 건물 앞까지 가는 동안 순찰을 도는 병사 서넛과 마주칠 뻔 했지만 날렵한 몸짓으로 몸을 숨겨 그들의 눈을 피했다.<br />
 얼마 뒤, 석조 건물의 커다란 나무 문 앞에 선 황제는 허리에 차고 있던 술병을 꺼내 한 모금 마시고는 손에 조금 덜어 옷자락에 술을 묻히더니 조심스레 나무문을 밀어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p>
<p> 밖의 어둠과는 달리 횃불로 밝혀진 건물 안의 모습을 잠시 훑어보던 황제는 문 옆에 앉아 고개를 꾸벅이며 졸고 있는 두 명의 병사를 바라보다가 그 중 가까이 있는 이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p>
<p>“교대냐?”</p>
<p>잠에서 덜 깨, 황제를 보지 못하고 눈을 비비며 옆에 놓인 창을 들던 병사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챘는지 고개를 들어 황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깜짝 놀라 무릎을 꿇고는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p>
<p>“황제 폐하. 이런 곳에는 어인일로&#8230;&#8230;”</p>
<p>이렇게 말하며 아직도 잠에 빠져 코를 골고 있는 병사의 허벅지를 찔러 댔지만 너무 깊이 잠에 빠졌는지 다른 하나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p>
<p>“이런, 초병이 잠에 빠져 코까지 고니 이를 어쩐다.”</p>
<p>술에 취해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순찰을 돌던 병사들을 피할 때의 날렵한 몸짓은 온데간데없이 벽에 기대 흐릿한 눈빛으로 황제가 말했다.</p>
<p>“죽을 죄를 지었습니다.”</p>
<p> 벌벌 떨며 고개를 조아리던 병사가 옆에 앉아 코를 고는 병사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말했다. 허벅지를 꼬집히고 서야 잠에서 깬 다른 병사는 상황이 어찌 된지도 모르고 앗! 하는 소리를 내지르며 옆의 병사를 쳐다보았다가 그가 고개를 조아리는 것을 보고 누구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것인지 하고 고개를 들었다가 황제가 술에 취한 행색으로 두 사람을 내려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얼른 엎드려 고개를 숙였다.</p>
<p> 황제는 그런 두 명의 병사를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겁이라도 주려는지 짐짓 엄한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p>
<p>“여기서 당장 목을 벤다 해도 할말이 없을 터!”</p>
<p>목을 벤다는 황제의 말에 고개를 조아린 두 명의 병사가 놀란 듯 어깨가 들썩였다.<br />
그러고 보니 평소 검을 찬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황제가 검을 차고 있는 모습에 아무래도 이대로 저세상으로 간다고 생각했는지 처음 일어났던 병사는 벌벌 떠는 것이 애처롭기 까지 했다.</p>
<p>“좋아. 그렇게 떠는 모습을 보니 목숨 귀한지는 아는 모양이구나. 목숨을 살려 줄 테니 내 부탁 한 가지를 들어줄 테냐?”</p>
<p> 금방이라도 검을 뽑아 자신들의 목을 칠 줄 알았던 황제가 조금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목숨을 살려준다고 하자 방금 전까지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던 두 명은 동시에 예하고 대답했다. 황제는 병사들의 대답을 듣더니 얼굴에 작은 미소를 띠고는 엄한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p>
<p>“내가 이곳에 왔다 갔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되느니라.”</p>
<p>“예!”</p>
<p>목숨을 살려 준다는 말에 두 명의 병사가 주저 없이 대답하자 그것이 미덥지 않았던지 황제가 다시 한번 말했다.</p>
<p>“혹 이 사실이 새어 나갔을 때에는 네 놈들의 목숨 뿐 아니라 네 놈들 혈족에게 까지 화가 미칠 것이니 명심하거라.”</p>
<p>“명심하겠습니다.”</p>
<p>“그럼 일어나 맡은 소임을 다하도록 하라”</p>
<p>명심하겠다는 말을 듣고서야 안심이 되었는지 황제가 두 명의 병사를 일어나게 하고는 안쪽의 문으로 휘청 이며 걸어가더니 말했다.</p>
<p>“내 취기가 가시지 않았으나 너희들의 얼굴은 확실히 기억할 터이니 내 말을 잊었다가는 큰일을 당할 것이다!”</p>
<p>“예&#8230;&#8230;”</p>
<p>엉금 거리며 일어나 창을 잡은 병사가 황제의 말에 겁먹을 얼굴로 다시 대답했다.</p>
<p> 겁에 질린 얼굴로 창을 잡고 문을 지키는 두 명의 병사를 뒤로 하고 안쪽 문으로 들어간 황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방안에는 커다란 우물마냥 둥그런 구멍이 파여 있었고 그 구멍 안 깊숙이 나선계산과 함께 횃불이 켜져 있었다. 얼마나 깊은지 확인하려는 듯 구멍 안을 바라보던 황제는 방벽에 걸린 횃불 하나를 집어 들고는 아래로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래로 내려 갈수록 습한 기운과 함께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바닥에 내려온 황제가 고개를 들어 자신이 내려온 구멍을 올려다보았다. 그 커다란 구멍이 이제는 주먹 만하게 보이는 것이 꽤나 깊게 내려온 것 같았다. 횃불을 들고 바닥에서 이어진 동굴을 걷던 황제 앞에 철창살이 나타났다.</p>
<p>“아무도 없느냐?”</p>
<p>혀 꼬부라진 황제의 소리가 동굴을 울리며 퍼져나갔다. 그런 황제 목소리의 메아리 마냥 철창너머 저쪽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p>
<p>“어떤 놈인데 잠도 못 자게 하는 거냐?”</p>
<p>짜증 섞인 노인의 목소리가 울리자 황제는 창살 너머 불빛 사이로 누군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느릿한 걸음걸이의 대머리 노인 하나가 걸어와 창살 앞에 서서 황제를 위 아래로 훑어보며 달갑지 않다는 목소리로 말했다.</p>
<p>“누군데 이렇게 늦은 시간에 나를 깨운 거요?”</p>
<p> 세상 두려운 것이 없는 사람 마냥 황제를 훑어보는 노인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자신이 누군지 알지 못하는, 이 어딘지 괴팍해 보이는 노인의 성미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황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p>
<p> “영주님의 명으로 안에 있는 죄수를 만나러 온 사람이오.”</p>
<p>황제가 이렇게 말하자 그때 까지도 황제의 옷차림과 얼굴을 훑어보던 노인이 미덥지 못한지 음 하는 신음 소리를 내며  허리에 찬 열쇠 꾸러미를 꺼내 들며 말했다.</p>
<p>“10년이 넘도록 영주가 이 곳으로 사람을 보낸 적이 없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구먼&#8230;&#8230;”</p>
<p>노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철창살 문을 열어 황제를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는 다시 말했다.</p>
<p>“행색을 보아 하니 귀한 분이신 것 같은데, 그래 어떤 죄수를 만나러 오신 거요. 늙은 놈이요 아니면 젊은 놈이요?”</p>
<p>‘늙은 놈! 젊은 놈!’</p>
<p>황제는 노인의 말을 알 수 없어 잠시 머뭇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노인에게 말했다.</p>
<p>“강양진이란 자를 만나러 왔소만&#8230;&#8230;”</p>
<p>황제의 말에 노인이 누군지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p>
<p>“그 이름이면 젊은 놈이요. 나를 따라 오시오.”</p>
<p>노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안 쪽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횃불로 밝혀진 동굴 안 쪽으로는 철문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노인은 그 중 한 문 앞에 서더니 황제를 돌아보며 말했다.</p>
<p>“이 방이요.”</p>
<p>“두 사람만 조용히 해야 할 말이니 문을 열어주고 가시오. 이야기가 끝나면 내가 다시 부르겠소.”</p>
<p>황제의 말에 노인이 미덥지 않은 표정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가 열쇠 꾸러미를 꺼내 열쇠를 열고 문을 열어 주고는 말했다.</p>
<p>“늙은 놈이 소리 지를 때가 됐으니까 되도록 빨리 이야기를 끝내시오. 바로 옆방이라 소리가 굉장히 클 거요.”</p>
<p>노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안 쪽에 있는 나무로 된 문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p>
<p>노인이 방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황제는 조심스레 한숨을 내쉬고는 작게 기침을 한 뒤에 무거운 철제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 열고 열지 않았는지 경첩이 녹슬어 귓가를 거스르는 소음을 내기 시작했고, 그 소리에 황제가 얼굴을 찌푸리며 천천히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발에 무엇인가가 채여 더욱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 시끄러운 소리 때문이었을까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 부스럭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것이 황제의 눈에 들어왔다.</p>
<p>“강양진! 자네인가?”</p>
<p>황제가 숨 넘기는 듯한 소리를 내는 철문을 닫으며 어둠 속을 향해 말했다. 문 위쪽의 철창구멍 사이로 들어오는 맞은편의 횃불 빛이 안쪽까지는 닿지 않아 황제가 서있는 곳을 빼고는 어둠이 가득 찬 공간이었다. 황제의 목소리를 들은 어둠 속의 사람 그림자가 고개를 들어 황제를 바라보며 말했다.</p>
<p>“강양진! 강양진! 그래 내 이름이구만. 강양진! 그런데 어떻게 당신이 내 이름을 알지?”</p>
<p>“양진. 나일세. 내 얼굴을 보게.”</p>
<p>황제는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강양진의 억양이 이상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치 넋이 나간 사람의 것처럼 목소리의 고저가 맞지 않았다.</p>
<p>“ 빛을 등지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밖에 가서 횃불이라도 들고 오지 그래. 그래야 누군지 알지! 그렇지! 그래야 누군지 알지. 흐흐흐 흐흐.”</p>
<p> 웃음소리가 어찌나 음산한지 순간 황제의 등이 싸늘하게 식었다. </p>
<p>‘저 친구가 정신이 나간 것인가? 아닐 거다. 아닐 거야.’</p>
<p>황제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며 철문의 시끄러운 울음을 열고 동굴 벽에 걸린 횃불을 들고는 안으로 들어왔다.</p>
<p>황제가 한 손에 횃불을 들고 다른 손으로 철문을 닫느라 사람 그림자 쪽에서 뒤돌아 있다 몸을 돌린 순간 횃불로 윤곽을 드러낸 저 편 사람의 형체가 안광을 뿜으며 황제를 노려봤다.</p>
<p>“이게 누군가? 이게 누구야! 황제 폐하 아니신가? 이런 곳에 납시었으니 내가 고개라도 숙여야 하는 건가?”</p>
<p>방금 전까지의 이상한 억양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황제의 얼굴에 남아 있던 불안이 사라져갔다.</p>
<p>“그래 날세. 자네를 만나려고 영주의 눈을 피해 왔네. 어디 얼굴 좀 보세나.”</p>
<p>자신을 알아보는 강양진의 말에 황제가 미소를 지으며 횃불을 들고 다가섰다. 그러자 양진 역시 천천히 일어나 고개를 들고는 황제 쪽으로 걸어왔다. 황제의 가죽신이 바닥에 닿을 때 내는 사삭 거리는 소리는 양진이 발걸음을 뗄 때 마다 내는 철그렁 하는 소리에 묻혀버렸다.</p>
<p>“음&#8230;&#8230;”</p>
<p>황제는 자신 쪽으로 걸어오는 양진의 몰골을 바라보다 신음을 내뱉고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br />
등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는 수세미처럼 엉켜 있고 양팔과 다리에는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 것인지 백 근은 족히 나갈듯한 쇳덩이가 손가락 두께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걷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시커멓게 때가 절어 있는 걸레만도 못한 바지를 걸친 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양진을 보던 황제는 횃불을 내려놓고 양손으로 그의 뺨을 어루만지며 산발이 된 머리를 넘겨 양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쇳덩이의 무게 때문인지 양팔을 늘어뜨린 채 황제를 바라보던 양진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광인의 그것처럼 횃불 하나로 밝혀진 어두운 방안에서 살기 가득한 안광을 내뿜으며 그가 입을 열었다.</p>
<p>“황제 놀이가 실증이 나신건가? 십년이나 잊었던 친구를 찾아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신 걸보니 술과 여자에 절어 사는 것도 이제 실증이 난 모양이지?”</p>
<p> 자신을 비웃는 양진의 살기 띤 눈을 바라보던 황제가 천천히 양손을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황제를 바라보던 양진이 커다란 소리로 웃더니 쇳덩이가 매달린 팔을 들어 황제를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p>
<p>“싫증이 나셨다면 새로운 유희꺼리를 찾아 연한공과 상의나 해보시지 어째서 이런 냄새나는 곳까지 기어오셨나. 하하하. 이제야 연한공이 목을 조르던가? 황제도 사람이니 죽는 것은 두려울 테지. 그래서 옛 친구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러 왔구나?”</p>
<p>양진의 조소 섞인 목소리를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던 황제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p>
<p>“자네 기억하는가? 내 칼날이 되어 주겠다던 자네의 맹세를 기억하는가?”</p>
<p>“맹세?”</p>
<p> 맹세라는 말에 양진이 황제를 손가락질 하던 손을 내리며 기억나지 않는 다는 표정으로 말했다.</p>
<p>“맹세! 맹세라 내 이름 석자 기억 못하는 자에게 맹세라.”</p>
<p> 고개를 숙인 채 이렇게 중얼거리던 양진이 순간 고개를 들더니 황제를 바라보며 말했다.</p>
<p>“아버지는 돌아가셨지…….그래 그러니 아버지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 어머니는? 그래 어머니는 그전에 돌아가셨고……. 동생들은 있던가? 여동생 하나! 남동생 하나! 그래 둘이 있었지. 둘은 잘 살고 있을까?”</p>
<p>방금 전의 조소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대는 양진의 얼굴을 바라보던 황제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양진의 두 손을 잡았다. 그 때였다. 커다란 남자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p>
<p>“이막우, 내 이름은 이막우, 이막우, 이막우”</p>
<p>마치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릴까 안절부절못한 듯 커다란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되뇌고 있었다. 양진은 그 목소리를 듣자 황제에게 얼굴을 들이밀더니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되는 듯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p>
<p>“저 방 노인네가 시작했군. 자네 알아? 저 방 노인네가 자기 이름이 이막우라고 저렇게 밤마다 소리 지르는 덕분에 내가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거든. 그럼 나도 시작해야지. 그래 그래야지 연한의 목을 쥐어짜려면 그래 시작해야지!”</p>
<p>양진은 이렇게 말하더니 쇳덩이가 매달린 팔로 황제를 밀쳐 내더니 보이지 않는 검이라도 잡은 듯 벽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분명 자신의 몸무게 보다 무거운 쇳덩이가 양팔과 다리에 매달려 있어 팔을 드는 것조차 힘들 텐데 벽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양진의 몸짓은 날카롭고 정확했다. 그 모습을 놀래서 바라보던 황제가 벽에 뭔가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횃불을 가져갔다.<br />
 돌로 그어 그렸는지 벽마다 검을 들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그것들에 이름을 붙였는지 이마에는 이름이 하나씩 붙어있었다. 연한공이라는 글씨가 쓰인 사람 그림 뒤에 얼굴만 내밀고 있는 황제의 그림이 있고 그 밑으로는 양진의 동생들 그림인지 아이 둘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황제는 연한공의 뒤편에 머리를 내밀고 있는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려 무거운 쇳덩이가 달린 팔을 휘두르고 있는 양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br />
 벽의 사람들이 실제로 서 있는 것처럼 어찌나 그 모습이 생생한지 아무것도 쥐지 않은 그의 손에 검이 쥐어져 있는 것 같았다. 기합소리도 없이 입을 꼭 다문 채 사면의 벽을 보이지 않는 검으로 찌르고 베던 양진의 입에서 이상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p>
<p>“옆방의 늙은이는 이막우, 이 방의 젊은 놈은 강양진! 아버지는 연한공에게 죽었고 동생들은 어찌 됐는지 알 수도 없다네. 죽었는지 살았는지 이름 석자가 무겁다네&#8230;&#8230;”</p>
<p> 거친 숨소리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양진의 노랫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자신의 이름만 되뇌던 옆방의 늙은이도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p>
<p>“반평생 검만 보고 살았는데 팔 하나만 남았다네. 연한의 목에 검을 박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이름 석자도 잊어서 검이 무엇인지 이제는 모른다네. 알아도 무엇인지 도통 알 수 없다네.”</p>
<p>양 쪽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듣던 황제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벽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양진을 향해 자신이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던져 주었다. 양진은 황제가 던져 주는 검을 보지도 않고 잡더니 벽에 그려진 연한공의 머리를 찔렀다. 석벽에 그려진 그림에 검이 박히자 양진의 입가에 미소가 흐르더니 황제를 보며 말했다.</p>
<p>“좋다. 좋아. 얼마 만에 잡아보는 검이냐. 연한의 목을 베기 딱 좋은 검이다!”</p>
<p>양진의 미소를 바라보던 황제가 말했다.</p>
<p>“내게 칼날이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내 칼날이 되어주겠는가? 양진!”</p>
<p>황제의 간곡한 말을 들으며 검을 휘두르던 양진이 멈추어 서더니 검을 황제의 목에 들이대며 말했다.</p>
<p>“연한 못지 않게 네게도 원한은 있다. 이 냄새 나는 지하에 갖혀 지내느니 차라리 죽여줬으면 하고 생각할 때마다 네가 계집들을 껴안고 술에 취해 나뒹구는 모습이 떠올랐다.  왜 너 같은 놈의 칼날이 되겠다고 맹세를 했는지 나 자신을 한탄하면서 언젠간 연한을 죽이고 너도 죽이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그런데 미쳐가는 놈에게 찾아와 옛 맹세대로 네 놈의 칼날이 되어 달라고? 술병을 허리에 차고 술 냄새를 풍기며 버렸던 친구를 찾아온 놈의 칼날이 되어달라고?”</p>
<p>차가운 눈빛으로 양진이 이렇게 말하자 황제가 자신의 목에 온 칼날을 내려보며 말했다.</p>
<p>“그래. 나도 연한의 꼭두각시가 되어 언제 죽을지 모를 황제 놀음 하는 것에 싫증이 났으니 네 손에 죽는 것도 좋겠구나. 손유책, 황사량, 그리고 너까지 내 친구들이 모두 나 때문에 화를 당했으니 내가 죽는 것이 차라리 너희들에게 좋겠구나.”</p>
<p>“하하하. 여자들만 품고 살더니 입에 발린 거짓말만 늘었구나.”</p>
<p>양진은 이렇게 말하고 검을 거두더니 황제의 허리에 꽂힌 검집에 검을 다시 꽂고는 말했다.</p>
<p>“나는 너를 죽이고 싶어도 너 때문에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에 너를 죽일 수가 없다. 그래 다시 한번 네 칼날이 되어주마!”</p>
<p>양진의 말에 황제가 양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p>
<p>“고맙다. 양진! 이럴 때 사량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사량이 어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아쉽구나.”</p>
<p>“사량. 사량이 누구지?”</p>
<p>황제의 말에 양진이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황제는 그런 양진의 어깨를 한번 꼭 잡더니 자신의 검을 건네주며 말했다.</p>
<p>“아마도 밖에 나가면 네 정신도 돌아올 거야. 너처럼 강한 녀석은 꼭 그럴 거다. 자 받아라. 백록(白鹿)이라는 검이다. 이 검을 가지고 하곡으로 가서 이세향과 양조웅이라는 자들을 찾아라. 그 들에게 내가 보냈다고 하면 될 거야.”</p>
<p>황제의 말을 듣던 양진이 화를 버럭 내며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던 황제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p>
<p>“정신이 나갔다고? 누가 정신이 나갔단 말이냐. 내가? 정작 정신이 나간 놈은 네놈이지!”</p>
<p>“그래 맞다. 내가 정신이 나갔지. 하곡으로 가서 이세향과 양조웅이란 사람들을 찾거라.”</p>
<p>황제가 말하자 양진이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물었다.</p>
<p>“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내 아무리 이 쇳덩이에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이런 것들을 차고 여기를 나가는 건 힘들텐데.”</p>
<p>양진의 물음에 황제가 양진이 손에 들고 있는 검을 가리키며 말했다.</p>
<p>“그 검이라면 네 팔과 다리에 채워진 사슬과 자물쇠를 쉽게 자를 수 있을것이다.”</p>
<p>“음 그래!”</p>
<p>황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양진이 검을 뽑아 왼손에 쥐고는 자신의 오른손 팔목에 달린 쇳덩이를 떨어뜨려냈다. 무쇠를 두부 자르듯 자르는 백록이란 검을 잠시 바라보던 양진이 신기한 듯 자신의 다리에 매달린 쇳덩이를 떼어 내더니 말했다.</p>
<p>“아! 좋구나. 좋아”</p>
<p>왼손에 매달린 쇳덩이만을 남겨둔 채 이렇게 말하는 양진에게 황제다 말했다.</p>
<p>“연한을 죽이고 나라를 되찾을 기회일 지도 모른다. 양진! ”</p>
<p>“나라를 되찾아? 누구의 나라를 되찾는단 말이냐?”</p>
<p>양진이 다시 이상한 소리를 하자 황제가 작게 신음소리를 내뱉었다가 다시 말했다.</p>
<p>“내가 올라가면 너는 조금 있다가 여기를 지키는 노인과 위에 있는 초병들을 죽이고 나가거라. 그들은 내가 이곳에 온 것을 알고 있으니 살려 둘 수가 없다.”</p>
<p>황제의 말에 양진이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황제를 방밖으로 밀어내고는 말했다.</p>
<p>“잔소리 말고 올라가거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하곡의 이세향과 양조웅을 찾아가면 되는 거 아니냐?”</p>
<p>양진의 말에 황제는 정말 그가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할 수 없이 천천히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p>
<p>“고맙다. 양진!”</p>
<p>황제는 이렇게 말하며 밖으로 나갔고 양진도 자신이 갇혀 있던 방 앞에 서서 황제를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p>
<p>“칼날이라. 칼날이면 뭐든 죽이면 되는 거지.”</p>
<p>양진은 이렇게 말하더니 괴기스런 미소를 흘렸다. 그 때였다.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자신을 부르러 오지 않자 노인이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 사이 잠을 잤는지 눈을 부비며 횃불에 비친 양진의 모습을 보더니 말했다.</p>
<p>“그래 이야기는 다 끝난 거요?”</p>
<p>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지 양진을 황제로 보고 노인이 이렇게 말하자 그 소리를 듣던 양진이 백록이란 검을 뽑아 들면서 말했다.</p>
<p>“칼날이란 건 벨 때 쓰는 물건이야.”</p>
<p>양진의 말에 노인이 그제야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양진 이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돌아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노인의 마지막이었다. 양진이 손에 들린 검의 날을 잡더니 마치 단검을 던지듯 노인을 향해 던졌다. 벽에 줄지어 서있는 횃불을 지나며 불꽃처럼 번쩍이던 칼날이 긴 신음과 함께 날아가 노인의 등을 꿰뚫었다.<br />
 노인의 외마디 비명이 동굴 안에 울렸다. 칼날을 잡을 때 베였는지 피가 흐르는 손을 입으로 빨던 양진은 쓰러진 노인 쪽으로 다가가 그의 등에 박힌 검을 뽑으며 말했다.</p>
<p>“네 놈이 귀찮다고 굶길 때마다 내가 이 곳을 빠져 나가면 네 놈 간을 꺼내 씹어 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네 놈 간도 네 놈 성질처럼 더러워서 맛도 없을 것 같다.”</p>
<p>양진은 이렇게 말하고는 뭔가 분이 풀리지 않는지 쓰러진 노인의 머리를 세게 발로 차고는 노인이 나온 방으로 들어갔다. 탁자와 의자가 방 가운데 있고 문 맞은 편 벽 쪽으로 침대가 있는 조그만 방이었다. 양진은 들어가자마자 물 주전자를 찾아 들이키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자신이 입을 만한 옷을 찾았다. 마침 한쪽 벽에 걸려 있는 검은 색 옷을 발견한 양진은 얼른 그 옷으로 갈아입고는 노인의 침대에 팔을 베고 누워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노인의 옷이 양진에게는 조금 작았지만 양진은 그런 것은 상관 하지 않는 듯 계속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노인의 허리춤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들고는 이막우라는 사람이 갇혀 있는 방 쪽으로 걸어갔다.</p>
<p>“이보쇼! 시끄러운 노인네!”</p>
<p>철문 앞에선 양진이 안 쪽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지만 안 에서는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p>
<p>“밤마다 미친개처럼 짖더니 이제는 아무 말도 안하는구만!”</p>
<p> 양진은 투덜거리며 방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억센 손이 양진의 목을 움켜잡았다. 갑작스런 일에 양진이 컥컥거리며 자신의 목을 잡은 상대의 명치 쪽에 주먹을 날리자 손이 풀렸다.</p>
<p>“나는 이막우다.”</p>
<p>양진에게 명치를 맞은 자가 이렇게 말하자 양진이 자신의 목을 한번 만졌다 뭔가 뜨거운 것이 목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고는 소리쳤다.</p>
<p>“이런 미친 노인네! 풀어 주려고 왔더니 목에다 구멍을 내!”</p>
<p> 화가 치밀었는지 소리를 지르던 양진이 검을 뽑아 들고는 어둠 속에 숨은 노인을 벨 듯 달려들었다. 하지만 양진이 어렴풋 보이는 사람 그림자에 검을 날린 순간 그의 무릎이 꺾이며 어느새 뒤 쪽으로 다가온 노인의 손이 양진의 목을 다시 움켜쥐고는 말했다.</p>
<p>“내 이름을 부르면 놓아주마!”</p>
<p>노인의 말에 검을 거꾸로 잡고 뒤쪽을 찌르려고 마음먹었던 양진이 자신의 목을 잡은 노인의 손을 힘들게 풀고는 뒤돌아서서 말했다.</p>
<p>“좋아! 이막우! 이 미친 노인네야”</p>
<p>양진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순간 노인이 미친 듯이 웃더니 말했다.</p>
<p>“하하하하. 그래 이막우야. 내 이름은 이막우다.”</p>
<p>양진은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고는 자신의 앞에서 큰소리로 웃고 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왼팔은 잘렸는지 보이질 않고 오른팔과 양다리에 쇳덩이를 매달고 있는 노인을 바라보던 양진은 자신의 손에 있던 열쇠 꾸러미를 노인에게 건네주고는 말했다.</p>
<p>“그 무거운 거나 풀어버리쇼. 이제 이 곳을 나갈 테니까.”</p>
<p>“이곳을 나간다고?”</p>
<p>양진이 건네준 열쇠로 자신의 팔과 다리에 매달린 쇳덩이를 풀어내던 노인이 이렇게 말했다. </p>
<p>“나가야지! 그럼 이런 곳에서 죽을 셈이요?”</p>
<p>양진은 이렇게 말하고서는 방밖으로 걸어 나왔고 이막우 역시 뒤이어 따라 나왔다. 방 밖으로 나온 양진은 입구 쪽으로 걸어가며 이막우에게 말했다.</p>
<p>“그 괴상한 노래 부르는 것을 보면 검을 좀 쓰시나 보던데?”</p>
<p>양진의 물음에 막우가 큰소리로 웃더니 말했다. </p>
<p>“건방진 네놈보다는 나을 거다.”</p>
<p>막우가 이렇게 말하자 양진역시 큰소리로 웃더니 말했다.</p>
<p>“연한에게 갇힌 미친개 두 마리가 풀렸으니 오늘 운하궁에 시체 꽤나 쌓이겠구만!”</p>
<p> 양진과 막우 두 사람은 그렇게 시끄럽게 웃어 대며 나선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황제는 침소에 돌아와 있었다. 혹 자신이 나갔다 돌아오는 것을 본 사람을 없을까 걱정하며 자리에 누운 황제는 양진의 정신이 이상한 것을 걱정하며 잠을 청했다.</p>
<p> 지상에 다다른 양진은 기세도 당당하게 두 명의 보초가 있는 입구 쪽 문을 열고는 밖으로 나가 어리둥절한 표정의 초병들이 창을 들기도 전에 검을 날려 두 명의 목을 베어버렸다.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쓰러진 두 구의 목 없는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를 바라보던 막우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창을 집어 들더니 말했다.</p>
<p>“그래 운하궁 밖으로 나갈 승산이 있느냐?”</p>
<p>“내 몸 하나 나가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늙은이를 데리고 가는 건 힘들겠는데!”</p>
<p>양진의 말에 막우가 웃더니 밖으로 통한 문으로 걸어가며 말했다.</p>
<p>“내가 하고 싶은 말이군!”</p>
<p> 밖으로 걸어 나온 두 사람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깊게 숨을 들이키더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차가운 밤공기와 두 사람을 비추는 달빛이 가져다주는 해방감에 두 사람 모두 말을 잃은 듯 했다.</p>
<p> “바람을 쐬어 본적이 언제였는지 모르겠구만.”</p>
<p>잠시 동안의 침묵을 깨고 막우가 이렇게 말했다. 그 때까지도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양진이 고개를 내리며 막우에게 이야기 했다.</p>
<p>“당신 평생에 이런 호사를 다시 누리게 된 게 다 내덕이라는 것만 아쇼!”</p>
<p>양진의 말에 막우가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에 잡은 창을 양진의 목에 겨누더니 말했다.</p>
<p>“탈출하는 놈이 두 명이면 추적하는 놈들도 두 패로 갈라지겠지. 네 놈이 노린 게 그거 아니냐? 그런데 공치사라니 재밌는 놈이구만.”</p>
<p>막우의 말에 양진이 무슨 소리냐는 듯한 얼굴로 자기 목 앞에 온 창을 옆으로 살짝 치우더니 말했다.</p>
<p>“그건 무슨 개소리요? 밤마다 미쳐서 노래 부르는 게 하도 불쌍해서 꺼내 줬더니 이상한 소리만 하는구만.”</p>
<p>“흠. 그래?”</p>
<p>양진의 말에 막우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대답하더니 창을 거두고는 다시 말했다.</p>
<p>“그렇다면 내가 너를 따라가도 상관없겠구만.”</p>
<p>“맘대로 하쇼.”</p>
<p>양진이 이상한 노인네라는 듯이 막우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렇게 내 뱉었다. 그 때 저 쪽에서 한 무리의 병사들이 막우와 양진을 발견했는지 달려오기 시작했다.</p>
<p>“노인네가 쓸데없는 짓 하는 바람에 들켰구만!”</p>
<p>양진이 달려오는 병사들을 발견하고 이렇게 말하자 막우가 창을 바로 잡더니 말했다.</p>
<p>“바람도 쐬었으니 이제 몸을 좀 풀어봐야지.”</p>
<p>막우의 말에 양진이 병사들 쪽으로 다가가면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p>
<p>“당신도 미쳤구만.”</p>
<p>자신들 쪽으로 다가오던 양진을 발견한 10명의 병사들 중 하나가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앞으로 나서 양진 쪽으로 창을 겨누면서 말했다.</p>
<p>“이 밤중에 누군데 어슬렁거리는 거요?”</p>
<p> 밝은 곳에서 양진의 모습을 보았다면 물을 필요도 없이 바로 사로잡으려 했을 터였지만 어둠 속이라 양진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지 이렇게 묻자 양진이 오른손으로 검을 손으로 잡고서 천천히 다가서며 말했다.</p>
<p>“저승사자다”</p>
<p>양진은 마치 어린아이를 놀랠 때 지으면 어울릴 듯한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며 검을 뽑았다. 양진의 왼손에서 빠져나온 검은 창 밑으로 완만한 곡선을 지르며 스쳐지나가 병사의 왼쪽에서 멈추었다. 그 와 동시에 배를 가로로 베인 병사가 창을 떨어뜨리며 자신의 배를 움켜잡고 무릎을 꿇었고 양진은 그 옆을 지나며 무릎을 꿇은 병사의 오른쪽 목을 베고는 그 뒤에 서 있던 병사의 배에 검을 박았다. </p>
<p>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뒤에 서있던 병사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양진에게 창을 겨누었지만 끝이 떨리는 창이 양진에게 걸림돌이 될 수는 없었다. 양진의 검은 두 명을 베고도 멈추지 않은 채 세 번째 제물을 찾아 움직였다.</p>
<p> 멀리서 양진이 병사들에 둘러싸인 것을 보며 다가오던 막우는 방금 전 양진의 검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p>
<p>“창을 상대할 때 어깨를 비우는 것을 보니 네놈도 비융문 제자구나!”</p>
<p>세 번째 희생자의 목에 검을 찔러 넣은 양진이 자신의 왼쪽 허리로 들어오는 검을 왼팔에 매달린 쇳덩이로 막아 흘려 내며 창을 끌어 당겨서 쑥 딸려 나온 병사의 관자놀이에 검을 박았다 빼면서 오른쪽에서 공격하려던 다른 병사의 목을 베어버렸다.<br />
 순식간에 네 명이 쓰러지자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던 병사중 하나가 몸을 돌려 달아나려고 했다. 자기들로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다른 병사들을 더 부르려는 생각이었겠지만 어느 틈에 다가온 막우의 창이 그의 가슴에 박히고는 말았다. 한손으로 검을 잡듯 창끝을 잡은 막우는 병사의 가슴에 박힌 창을 낚시라도 하듯 하늘로 쳐올려 가슴을 가르더니 몸과 함께 휙 돌려 다른 병사의 목을 살짝 베고는 자세를 낮추며 다시 몸을 돌려 그 병사의 배를 가로로 베었다.<br />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여섯 명의 병사가 쓰러지자 남은 네명 중 하나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그 소리가 목에서 빠져 나오기도 전에 막우의 창날이 병사의 턱밑을 찔렀다. 그리고는 창날이 턱밑에 박힌 채 막우가 들어 올리자 병사의 목이 쩍하고 수박 갈라지는 소리를 내며 뒤로 꺾이면서 피가 사방으로 튀어나갔다.<br />
  양진은 막우의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리더니 앞으로 튀어 올라 왼팔의 쇳덩이로는 왼쪽 병사의 머리를 내리치고는 오른손의 검으로 오른쪽 병사의 가슴을 꿰뚫고는 내려앉았고 그와 동시에 막우의 창이 남은 병사의 찔러 들어오는 창을 위로 쳐올리며 상대의 가슴에 박혔다. </p>
<p>열명의 병사가 흘린 피로 바닥에 흥건했지만 비명소리 하나 흘러나오지 않은 것이 마치 귀신이라도 나타나 저지른 일 같았다.</p>
<p>마지막 병사의 가슴에 박혔던 창을 뽑은 막우는 창을 짧게 잡고 창날을 한번 훑어보더니 옆으로 휙 내던지며 말했다.</p>
<p>“몇 놈 상대하지 않았는데 벌써 날이 무디어졌구먼.”</p>
<p>그리고선 죽은 병사가 떨어뜨린 창을 하나 들어 왼발로 밟아 절반으로 부러뜨리더니 날이 있는 쪽을 집어 들며 말했다.</p>
<p>“다른 놈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8230;&#8230;”<br />
혼잣말처럼 내뱉은 막우의 말을 들은 양진이 막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다.</p>
<p>“그 죽은 놈들 옷이라도 벗겨서 입으쇼.”</p>
<p>양진의 말에 막우가 자신의 다 떨어진 옷을 한번 훑어보다가 죽은 병사 하나를 끌어다 옷을 벗겨 입으며 물었다.</p>
<p>“몸도 풀었으니 이제 슬슬 빠져 나가는 게 어때? 이놈들 시체를 발견하면 금방 우리를 쫓을 텐데말야.”</p>
<p>막우의 물음에 양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p>
<p>“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이제는 서두르자고? 거 참 웃기는 양반이구만”</p>
<p>그러더니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p>
<p>“난 하곡으로 갈 거요. 뭐 따라온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방해가 되면 내가 노인네 목을 벨 거요.”</p>
<p>“하곡이라&#8230;&#8230; 좋아. 어차피 갈 곳 없는 인생이니 하곡까지 한번 따라나서 볼까.”<br />
양진의 말에 병사의 옷으로 갈아입은 막우가 반으로 잘라낸 창을 다시 집어 들며 말했다. 막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양진은 담 밑의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긴 채 달리기 시작했고 막우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p>
<p>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담을 타고 달리던 양진은 어느 순간 몸을 날려 그대로 담 위로 뛰어 올라 넘어갔고 막우가 그 뒤를 따랐다.</p>
<p> 두 사람이 운하궁을 빠져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서 깬 황제가 한손에 등불을 들고는 방에서 빠져나와 가희의 방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복도에 기름을 조심스럽게 끼얹고는 불을 붙인 뒤 다시 방에 돌아왔다. 조금 지나 매캐한 연기가 복도를 타고 황제의 방까지 새어 들어오자 그제야 가희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들은 황제는 잠시 창으로 가서 밖을 살펴보며 양진이 운하궁을 빠져 나갔는지 생각하다가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밖으로 뛰쳐나왔다.<br />
불길이 치솟는 운하궁을 바라보던 황제는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 나오는 가희를 발견하고는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으며 물었다.</p>
<p>“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p>
<p>“예.”</p>
<p>정신이 나간 듯 힘없이 황제의 품에 안긴 가희를 내려보던 황제는 멀리 동쪽에서 해가 밝아오는 것을 바라보았다.</p>
<p>그 때 가희를 안고 있는 황제의 등 뒤로 흰 옷자락을 새벽바람에 날리며 연한공이 다가왔다. 불타오르는 운하궁의 한쪽 자락을 무표정한 얼굴로 잠시 바라보던 그가 황제에게 말했다.</p>
<p>“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p>
<p>말은 이렇게 했지만 연한의 표정은 걱정하는 듯한 얼굴이라기보다는 황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꿰뚫어 보려고 하는 얼굴 같았다. 연한의 목소리에 가희를 안고 있던 황제가 고개를 돌려 연한을 바라보며 말했다.</p>
<p>“도대체 어떤 자가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어서 알아내도록 하시오!”</p>
<p>짐짓 화가 난 듯 황제가 이렇게 소리치자 연한은 그런 황제의 표정이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황제는 연한이 혹 수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걱정하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숙였던 연한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뒤쪽에서 부장 하나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다가와 황제에게 예를 취하더니 연한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는 말했다.<br />
“운하궁 서쪽에서 순찰을 돌던 열명의 병사가 시체가 되어 발견 됐습니다. 그리고 서쪽 지하에 감금되어 있던 죄수 두 명이 탈출했습니다.”</p>
<p>“죄수 두 명!”</p>
<p>부장의 말에 연한이 부장을 내려 보며 이렇게 소리쳤다. 미간을 찌푸린 채 작게 신음을 내뱉는 연한을 바라보던 황제는 무슨 일이라는 표정으로 연한을 바라며 물었다.</p>
<p>“운하궁에 죄수가 있었소?”</p>
<p>황제의 물음에 연한이 아무 말 없이 황제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말했다.</p>
<p>“두 명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폐하께서도 아는 사람일 겁니다.”</p>
<p>연한의 말에 황제가 무슨 말이냐는 듯 다시 물었다.</p>
<p>“나도 아는 사람이라고? 대체 그게 누구요?”</p>
<p>“강양진 입니다.”</p>
<p>황제의 물음에 연한이 이제 알겠다는 듯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p>
<p>“양진! 양진이 이곳 운하궁에 있었단 말이요?”</p>
<p>황제가 아쉽다는 듯 이렇게 말하자 연한이 부장에게 손짓을 해 물리고는 말했다.</p>
<p>“예. 강양진이 이곳에 있었지요. 그리고 또 한 명 이막우라는 자도 이곳에 있었습니다.”</p>
<p>“이막우! 그건 누구요?”</p>
<p>황제의 물음에 연한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p>
<p>“폐하와 제게 모두 적이 되는 남자입니다. 그런 자가 강양진과 같이 탈옥을 했다니 세상일이란 정말 아무도 모르는 일인 듯싶습니다.”</p>
<p>연한의 말에 황제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p>
<p>‘연한과 내게 모두 적이 되는 자! 대체 누구지?’</p>
<p>황제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연한이 다시 말했다.</p>
<p>“그 둘이 탈옥하는 때 화재가 일어난 것을 보니 아무래도 두 놈이 탈출하며 불을 지른 모양입니다. 하지만 강양진이라면 폐하가 계신 곳에 불을 지르진 않았을 테니 아무래도 이막우가 불을 지른 모양입니다.”</p>
<p>“&#8230;&#8230;”</p>
<p>연한의 말에 황제는 말없이 연한을 바라보았고 연한 역시 그런 황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p>
<p>“그 것도 아니라면 누군가 궁 안에서 그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호응을 한 것 일수도 있겠지요. 불을 끄느라 정신이 팔려 그만큼 그들이 탈출하는데 수월할 테니까요.”</p>
<p>연한의 말에 순간 황제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지만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연한은 그런 황제의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불타오르는 운하궁을 바라보던 연한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p>
<p>“아무래도 저의 목을 노리는 자들이 늘어가는 모양입니다. 하하하하하”</p>
<p>황제는 그런 연한의 말을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품에 안긴 가희의 얼굴을 내려보았다.</p>
<p> 그 때 즈음 양진과 막우는 군운의 평야를 달리고 있었다. 언제 그들을 쫓을지 모를 추적대를 피해 군운을 벗어나 산길을 타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10년을 넘게 갇혀 있던 사람들이었지만 무거운 쇳덩이로 단련이 되어서인지 마치 들판을 달리는 말처럼 그들의 움직임은 힘찼다. 그러나 해가 떠올라 동녘이 밝아오기 시작하자 앞서 달리던 양진이 손으로 눈을 가리며 벌판 한가운데서 멈추어 섰다.</p>
<p>“젠장! 십년 만에 해를 보는구만.”</p>
<p>하지만 10년을 지하에 갇혀 있던 그에게 햇빛이 가져다주는 고통은 해가 떠오를수록 커지기만 했다. 양진이 멈춰 서서 눈을 가리고 움직이지 않자 그 위에 서있던 막우도 눈을 오른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p>
<p>“이제 태양 아래 설수 없는 놈들이 된 거다. 하하하하. 그렇게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옷자락이나 길게 뜯어봐라.”</p>
<p>옷자락을 뜯으라는 막우의 말에 양진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돌려 막우를 바라보려다가 눈이 너무 부시자 얼른 자신이 입고 있던 검은 옷자락을 뜯어 막우에게 건네려고 했다. 하지만 막우는 그것을 받아 드는 대신 자신의 허리춤에 꽂혀 있던 창을 들고 세로로 내려 그어 옷자락 가운데를 가늘게 베어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양진이 손목을 잡으며 무슨 짓이냐고 말하려고 하는데 막우가 양진이 떨어뜨린 검은 옷자락을 얼른 집어 들면서 말했다.</p>
<p>“이걸로 눈을 가리면 될 꺼다. 베인 곳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이라면 그다지 눈부시지도 않을 테고&#8230;&#8230;”</p>
<p>막우의 말에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양진이 웃으며 말했다.</p>
<p>“노인네! 머리 좋은데.”</p>
<p>그리고는 막우가 들고 있는 옷자락으로 눈을 가렸다. 작은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으로 희미하게나 밖을 볼 수 있었고 눈부심도 참을 만 한 것 같았다. </p>
<p>“너만 할 셈이냐 어서 하나 더 뜯어내봐!”</p>
<p>“하하하하! 그러지”</p>
<p>막우의 말에 양진이 자신의 옷자락을 다시 찢어내자 막우가 다시 창 끝으로 길게 구멍을 냈다. </p>
<p>“자 받으슈”</p>
<p>양진이 뜯어낸 옷자락을 막우에게 건넸다. 그러자 막우가 화를 버럭 내며 소리쳤다.</p>
<p>“이런 미친놈. 외팔이에게 건네면 내가 어쩌란 말이냐!”</p>
<p>“하하하 그렇구만!”</p>
<p>막우의 말에 양진이 웃으며 막우의 눈을 옷자락으로 가려주고는 말했다.</p>
<p>“남들이 보면 장님 둘이 돌아다니는 줄 알겠구만! 하하하”</p>
<p>“그만 실실대고 가는 게 어떠냐?”</p>
<p>양진의 웃음소리가 거슬렸는지 막우가 말하자 양진이 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p>
<p> 붉은 몸을 천천히 드러내는 태양을 마주보며 태양에 바로 설수 없는 두 명의 사내가 밝아오는 평야를 달리는 모습은 마치 동쪽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 같아 보였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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